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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70화 (270/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70화

아카데미에 인근 동네 어르신들이 처음으로 다녀가고 이틀가량의 시간이 지났을 즈음.

“그래서 어르신들이랑 안마사들 반응은 어때? 잘 되어 가고 있나?”

천마안마의 휴게실에서, 강태한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최성현에게 넌지시 물었다. 약간 흥미가 섞여 있는 그런 목소리였다.

“그야 물론 아주 잘 되어 가고 있지. 후후.”

최성현은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물어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그런 반응이었다.

“반응이 좋나 보네.”

“맞아. 연습을 한 수강생들도 그리고 안마를 받고 가신 어르신들도. 양쪽 다 만족스러워하면서 아주 흡족해하고 있다고.”

어떤 기술을 익힌다고 할 때,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되도록 많은 실전을 겪어 보는 것이다.

정비 기술을 배운다면 실제로 고장이 생긴 기계들을 고쳐 보는 과정이 필요하고, 하다못해 못질 하나를 배우더라도 실제로 못을 박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론만으로는 해당 기술에 숙달되기에 한계가 있고, 결국은 실전에서 직접 몸으로 익혀야만 알 수 있는 부분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이는 대부분의 기술에 적용되는 이야기고, 안마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은 실전의 기회가 자주 주어져야 성취의 진도가 빨라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초대를 받고 아카데미에 찾아오신 동네 어르신들은, 그야말로 ‘실전과 같은 연습 상대’에 적합한 분들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연세도 있으시고, 살면서 고생도 많이 하신 만큼 근육이나 혈도 쪽에 자잘한 이상들이 군데군데 있으신 분들이 많았으니까.

“수강생들도 확실히 자기들끼리 연습을 할 때보다 훨씬 알기 쉽다고 하더라고.”

안 그래도 성취가 지지부진하여 답답하던 참인데, 이렇게 적합한 연습 상대가 직접 학원 안까지 찾아와 주시니 수강생들로서는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뭐 이런저런 일이 있다는 거 같긴 한데, 일단 동네 어르신들도 굉장히 만족하시는 것 같고.”

다만 그 뒤에 이어진 최성현의 말에는 약간 애매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순조롭다고만 말하기에는 약간 걸리는 부분이 있다고 할까. 거기에 의문을 느낀 강태한이 넌지시 물었다.

“그 이런저런 일이 뭔데?”

“아니, 사실 딱히 큰일은 아니고, 사실 내가 관여할 일도 아니기는 한데… 우리가 하루에 딱 여덟 분만 받기로 했잖아? 오전과 오후로 나눠서 말이야.”

“그랬었지.”

강태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이 서로에게 좋은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호의가 호의로 받아들여질 때의 이야기다. 그리고 호의라는 것은 당연해지면 왜곡되기 쉬운 요소이다.

그렇기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고, 강태한은 인원수의 제한을 제안했다.

얼핏 도량이 좁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최성현의 계획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 전략이지,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수강생들의 봉사와 헌신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근데, 그게 왜?”

“거기에 관련해서 동네 노인회 회장분이 일을 좀 도와주고 계시거든. 이번에는 누가 가고, 저번에 누가 갔으니 빠지고, 이런 것들을 말이야.”

최성현은 난처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근데 어제 노인정에서 싸움이 났다고 하시더라고.”

“…싸움? 왜?”

“그게… 이번에 안마를 받으러 누가 가는지로 싸웠던 거 같아. 김 씨가 안 왔으니 내 차례다, 내가 몸이 더 안 좋다, 노인회 회비는 내가 더 많이 냈다… 뭐 대강 이런 이유들을 대면서 말이지.”

최성현은 당장 떠오르는 내용들을 차례차례 입에 담았다. 자기가 말하면서도 살짝 유치한 감이 느껴지는, 그런 내용들이었다.

“흐음. 그렇구만.”

“뭐야. 의외로 덤덤하다? 좀 놀랄 줄 알았는데.”

“놀랄 이유가 어디 있다고.”

강태한은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오히려 최성현이 더 당황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약간 뭐라고 할까. 싸움의 이유가 너무 유치하다고 할까,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의외라고 해야 하나, 좀 그런 느낌이 있지 않나?”

“아냐. 물론 예외인 경우도 있지만… 원래 사람은 일정 나이를 넘어가면 오히려 유치해지는 법이야.”

그는 이번에도 담담한 목소리로 답하고는, 테이블에 내려 뒀던 찻잔을 천천히 입가로 가져갔다.

막연하게 꺼내 놓는 말은 아니었다.

무림에 있었던 시절 실제로 겪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나오는,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였다. 그 또한 환갑 너머까지 나이를 먹어 본 경험이 있고 말이다.

“뭐냐. 실제로 나이라도 먹어 본 것처럼 말하네?”

“글쎄다.”

다만 의외로 예리한 최성현의 말에는 모호한 미소를 짓는 강태한이다. 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더니, 입가로 가져온 차를 한 모금 마셨다.

* * *

“…음?”

대전 보문산 공원 입구 언저리에 위치한 고즈넉한 찻집. 그 안으로 들어선 조원호는, 안쪽 테이블에 먼저 앉아 있는 손님들을 발견하고는 조금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러고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하하, 저 빼고 여기 다 모여 계셨네요?”

이곳은 강호연의 오랜 지인, 이른바 ‘최씨’라고 더 자주 불리는 최준석이 운영하는 가게다. 그리고 가게 안에서는 최씨뿐만 아니라 김씨 그리고 강호연도 함께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뭐야, 조 사장 아니야? 여긴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은요. 가볍게 등산이나 좀 할까 해서 왔다가 우리 최 사장님 생각나서 들렀죠. 근데 아무래도 제가 타이밍을 잘 잡았나 봅니다?”

최씨와 김씨는 강호연의 지인.

조원호와는 마주친 적이 몇 번 되지 않았지만, 그의 친화력이면 그 정도 만남만으로도 친밀도를 쌓기에 충분했다. 조원호는 껄껄 웃으며 걸어오더니, 자연스레 테이블 한쪽 자리에 합석했다.

“표정이 밝네. 뭐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나?”

“있죠. 최 사장님 한 분 만나러 왔는데, 우리 호연 형님이랑 김 사장님까지 만났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만남이 세 배인데요. 하하!”

조원호의 말에 최씨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카운터 안쪽으로 걸어가며 가볍게 말했다.

“손님으로 왔는데 내가 차 한잔 정도는 대접해 줘야지. 뭐로 마실 거야?”

“아, 그야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하긴 그럴 것 같기는 했어.”

최씨는 여전히 웃음기가 어려 있는 얼굴로 작은 항아리의 뚜껑을 열었다. 그 안쪽에 담겨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강태한이 보내 주는 칡으로 담그는 칡청이었다.

“이거 달라는 거였지?”

테이블 위에 달그락, 올라오는 찻잔. 그 안에서는 달콤하면서도 쌉쌀한 칡의 향이 따스한 온기와 함께 물씬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짙은 향을 맡은 조원호는 히죽 미소를 지었다.

“역시 최 사장님, 척하면 척이시네.”

“뭘 그렇게까지. 사실, 조 사장뿐만 아니라 요즘 손님들이 열 명 찾아온다고 치면 그중의 일곱은 저걸 달라고 하거든.”

최씨의 말은 딱히 과장이 아니었다.

강태한의 칡청으로 만든 칡차를 가게에 올린 이후, 그의 찻집에는 손님들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금 시간대야 한산하지만, 등산객들이 모이는 시간이 되거나 주말이 되면 거의 만석이 되어 버릴 정도다.

그리고 그들이 주문하는 것은 대부분이 칡차다.

이거 한 잔을 마시면 등산의 피로가 싹 쓸려 내려가고 원기가 채워지는 느낌이라나. 덕분에 최씨는 주문을 받기도 전에 칡차부터 만들어 놓으면 7할의 타율로 맞출 수 있는, 그런 수준까지 이르렀다.

그야말로 이 가게의 간판 메뉴라고 할까.

조원호는 슬쩍 찻잔을 들어 올려 한 모금 마시더니, 피식 웃음을 흘리며 감탄 섞인 목소리를 흘렸다.

“이야, 역시 맛이 다르다니까. 제가 요즘 다른 찻집 돌아다니면서 칡차가 있으면 꼭 마셔 보는데, 이 맛이 안 나더라고요.”

“최씨가 찻잎 만져 온 세월이 남다르긴 하지.”

“에이. 이게 뭐 어디 내 솜씨인가? 태한이가 갖다 주는 칡이 좋은 거지. 안 그래? 강씨?”

살짝 띄워 주는 두 사람의 말을, 최씨는 자연스레 강호연을 쳐다보며 그의 아들의 공으로 돌렸다. 그러자 강호연은 머쓱해하면서도 히죽 미소를 지었다.

“아니, 뭘 또 이걸 그렇게 말하나… 물론 칡차가 칡이 좋아야 맛이 좋은 건 사실이지만 말이야. 하하.”

아들놈 자랑이 나오면 머쓱해하면서도 매번 싱글벙글해지는 강호연이다. 그러던 와중, 조원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 형님, 태한이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저번에 다녀온다 했던 미국 여행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순간 테이블에 상반되는 반응이 나타났다.

강호연은 눈에 띄게 화색을 지었고, 다른 두 사람, 최씨와 김씨는 표정이 굳었다. 그들의 시선은 거의 동시에 조원호에게로 꽂혔는데, 그 시선에는 그를 나무라는 듯한 원망의 기색이 흠뻑 묻어 나오고 있었다.

“미국 여행? 아유, 그럼! 잘 다녀왔고 말고. 그러고 보니 내가 우리 조 사장한테는 아직 말을 안 했었나 보네! 어디 보자, 그럼 이걸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나… 좋은 기억이 너무 많아서. 하하하!”

그리고 곧바로 터져 나오는 강호연의 목소리.

텐션이 잔뜩 올라가 있는 것이, 마치 조원호가 들어온 순간부터 이 순간만을 기다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그 순간 조원호는 다른 두 사람이 왜 그런 시선을 보냈는지 이해해 버렸다.

‘이건… 적어도 십 년 동안은 자랑할 내용이구만.’

사람들에게는 간혹 그런 이야기들이 있다.

몇 번을 말해도 지겹지 않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괜히 자랑을 하고 싶어지는 그런 이야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식을 둔 아버지들이라면 한두 가지씩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 함박웃음을 짓는 강호연의 표정과 그 목소리의 텐션에서, 조원호는 그런 이야기의 징조들을 느꼈다. 짐작할 필요도 없이 대놓고 느껴지는 수준이다.

물론 조원호에게는 별 상관이 없다. 애초에 그런 내용이 듣고 싶어서 물어본 거였으니까.

다만 함께 있는 두 사람은… 아마 이미 몇 번이고 들은 내용일 것이다. 그야말로 틈만 나면 미국 여행의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럼 일단 그날 집에서 나올 때 봤던 날씨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크으… 하늘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어. 우리 태한이가 또 날짜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잡은 거지.”

다만 강호연의 첫말을 들은 순간, 조원호도 ‘아차’ 하는 느낌이 들었다. 현지도 아니고 집을 나설 때의 날씨라니. 이건 앞으로 여행기를 빙자한 대서사시가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경고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쨌거나 인천공항으로 갔는데, 아이고야. 퍼스트 클래스를 타는 사람들은 무슨 대기실도 따로 있다네. 그렇게 가보니까, 무슨 침대만 한 소파가…….”

“아이고, 어서 오십쇼!”

그때쯤 들려오는 짤랑 소리.

문에 걸려 있는 종에서 난 소리다. 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질색을 하고 있던 최씨는 너무나도 반가워하며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강씨, 이거 이야기 중에 미안해서 어쩌지? 손님이 오셔서 나는 좀 가 봐야 할 것 같네.”

“으응, 다녀와.”

“어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우리 마누라가 이따 잠깐 데리러 좀 와 달라고 했었는데, 잠깐 좀 다녀와야겠어. 끝나고 연락할게.”

“그럼 가야지, 뭐. 이따 보자고.”

손님을 맞아 자리에서 일어난 최씨와 집안의 일을 언급하며 자리를 비킨 김씨.

두 사람은 금방 돌아올 것처럼 말했으나, 아마 두 사람이 자리로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 아들 자랑을 듬뿍 곁들인 미국 여행기가 끝날 때까지는 말이다.

‘뭐 어쩔 수 없나…….’

그리고 자리에 홀로 남게 된 조원호.

다만 이야기의 화두를 던진 것은 그였고, 그에게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책임이 있었다. 애초에 뭐, 이렇게 자식 자랑을 듣는 걸 그렇게 싫어하는 편도 아니었고 말이다.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지?”

“퍼스트 클래스 대기실 소파가 침대만 했다고요.”

“그래! 정말 내가 우리 태한이 덕분에 호강을 했지. 거기서 한참 있다가 비행기를 타러 가는데…….”

잔뜩 신이 나서 이야기를 이어 가는 강호연의 모습에, 조원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 * *

한편, 그러는 사이.

강태한과 천마안마에 대한 이름은 날이 지날수록 서서히, 그러면서도 눈에 띄게 퍼져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국내의 반응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올림픽을 통해 ‘안마사K’로서 더욱 이름을 날리게 되었으나, 그 이전에도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보다 좀 더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국내가 아닌 해외 쪽이었다.

[요즘 어느 안마사에 대한 이야기가 유독 자주 보이는 것 같은데, 내 기분 탓인가? 에버튼 FC도 그렇고, 갑자기 유명해진 그 안마 의자 브랜드도 그렇고.]

[이번에 NFL의 캘리버 선수가 업로드한 영상들도 있잖아. 한국에서 완전히 재활에 성공했다고. 얼마 전에는 경기에도 나왔던 것 같은데.]

[에버튼 FC에 관련된 사람이랑, 안마 의자 제작자랑 그리고 캘리버 선수의 영상에서 언급된 사람이 다 같은 사람이라고? 한 명이라는 말이야?]

[나는 그렇게 알고 있음.]

[다들 봤는지 모르겠는데,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성적도 엄청 좋았잖아. 그 선수들 인터뷰마다 안마사가 언급되던데, 그 사람도 동일 인물일걸.]

[에이, 설마. 그냥 누군지 모르니까 한 명으로 소문이 모이는 거 아님? 무슨 옛날에 있던 동양의 신비 같은 것도 아니고.]

[동양의 신비라고 보기는 어렵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고 실제로 가게도 운영하는 것 같으니까.]

아무래도 동양권보다는 안마라는 개념이 생소할 수밖에 없는 서양권. 그동안 여기저기서 해 온 활동들이 밑바탕이 되어 준 것일까. 그곳에서도 강태한의 이름이 점차 퍼져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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