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267화
엄청난 기세로 언덕길을 굴러 내려오던 리어카를 멈춰 세운 최성현. 그는 살짝 위쪽으로 고개를 젖히고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조심스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아무렇지 않게 간단하게 한 것처럼 보이기는 했으나, 막상 최성현은 꽤나 긴장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기(氣)를 익히고 수련하며 신체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은 사실이었으나, 아무리 그래도 이런 상황과 맞닥뜨린 적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실제로 응용을 해 본 적도 그리 많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
한편, 리어카의 뒤쪽에 매달려 있었던 남자아이는 한동안 벙찐 표정으로 최성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까.
겁을 먹어 잔뜩 움츠러들어 있던 아이의 어깨가 슬슬 느슨하게 풀려 갈 무렵,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조그만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저씨.”
“…아저씨?”
순간 최성현의 한쪽 입꼬리와 눈꺼풀이 위로 삐죽 올라왔다. 감사를 받은 것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그 뒤에 붙은 호칭으로 인해 튀어나온 반응이었다.
“야, 다시 한번 잘 봐 봐. 형이 왜 아저씨야? 아직 정신이 없어서 그런가? 눈에 좋은 혈 좀 짚어 줘?”
“인마, 지금 상황에서 그게 중요해?”
최성현은 자신의 나이를 증명하려는 듯 앞쪽으로 고개까지 숙여 가며 그렇게 말했으나, 뒤따라온 황 실장에 의해 금방 제지되었다. 황 실장은 아이의 어깨, 무릎, 허리 정도를 대충 짚어 보고는 조그맣게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다친 곳은 없나 보네. 놀라진 않았니?”
“네, 괜찮아요.”
아이는 이번에도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최성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어깨에 올려놨던 손을 슬쩍 혈맥 쪽으로 가져갔다.
‘…상당히 침착하네.’
아이들은 지나치게 놀라면 반쯤 경기를 일으킨 상태가 되어, 오히려 침착해 보일 때가 있다.
행여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 맥을 짚어 보았으나, 딱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 비록 사고 때문에 놀라 있기는 하지만 그저 그뿐인 것이다.
“흐음…….”
짐이 잔뜩 실린 리어카에 매달린 채로 굴러떨어지는 건, 다 큰 성인이라 해도 충분히 겁에 질릴 만한 일이다.
하물며 어린아이에게는 오죽하겠는가.
이쯤 되면 울음을 터트릴 만도 한데, 아이는 침착한 모습으로 감사 인사를 건네고 또박또박 질문들에 답하고 있었다.
“아이고, 준우 이놈아, 이놈아!”
그때쯤, 위쪽에 계시던 할머니가 야단치는 목소리로 외치며 내려오고 있었다. 방금 넘어진 것 때문인지, 발걸음이 부자연스럽게 절뚝이고 있었다.
“조심하세요, 어르신.”
그 모습을 보자마자 최성현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할머니를 부축해 드렸다. 할머니는 허둥지둥 손자에게 다가가더니, 아이의 등짝을 후려치며 말했다.
“이놈아, 내가 리어카 그냥 놓으라고 했잖아. 왜 그걸 끝까지 붙잡고 내려가서 할머니 억장을 무너지게 만들어!”
거의 울음이었다. 그 순간, 침착하던 아이의 얼굴도 서서히 일그러지더니 이내 나이 또래에 어울리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할머니, 미안해… 내가 미안해.”
아이는 할머니를 감싸 안았고, 손자의 등짝을 후려쳤던 할머니도 아이를 꼬옥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최성현과 황 실장은 옆에서 머쓱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 * *
“두 사람 모두, 이거 너무 고마워서 어쩐담…….”
대강 상황이 정리되고, 격했던 감정들도 차분히 가라앉아 갈 즈음. 최성현과 황 실장은 리어카를 뒤에서 밀며 할머니의 집까지 따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하. 아닙니다, 할머니.”
“저희가 도와드리고 싶어서 도와드리는 것뿐인데요, 뭐.”
할머니의 말에 황 실장과 최성현은 서로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말했다. 딱히 뭔가를 바라고 하는 일도 아니었기에, 생색을 낼 생각도 없었다.
“이 늙은이가 너무 고마워서 그래. 그것도 이렇게 늦은 시간에 말이야.”
“에이,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준우라 했었나?”
다만 할머니의 고맙다는 말은 아까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이대로라면 리어카가 멈출 때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최성현은 적당히 새로운 화제를 꺼내 들기로 했다.
“네, 송준우입니다.”
“자식, 아주 똘망똘망하네. 아까도 눈물 하나 안 흘리고. 애가 정말 똑 부러진 아이네요.”
송준우는 지금도 두 사람 사이에서 리어카를 밀고 있는 중이었다. 최성현은 기특하다는 듯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손자의 칭찬을 입에 담았다.
“총각이 보는 눈이 있구만. 우리 준우가 똑 부러지기는 아주 똑 부러진 아이지.”
역시나, 손자의 칭찬이 나오자 곧바로 화제가 옮겨진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할머니의 감사가 드디어 끊어지자, 최성현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다 왔어, 저기 보이는 저 집이야.”
그렇게 한동안 언덕길을 올라왔을까.
언덕길에서도 안쪽 골목으로 좀 더 들어서자, 딱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주택이 하나 있었다. 좋게 말하면 세월이 느껴지고, 좀 더 일반적으로 표현을 하자면… 꽤 낡은 집이다.
다만 딱히 이곳만 그렇다는 느낌은 아니다.
그냥 이 주변 일대의 주택가 자체가 오래되고 낙후된 지역이고, 살고 계신 주민 분들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말이다.
“두 사람 다 너무 고마워요. 내가 형편이 녹록지 못해서 줄 게 많지는 않고…….”
할머니는 몸을 뒤적거리더니, 꼬깃꼬깃한 오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지갑도 아니고 조끼 주머니에서 꺼낸 돈이었다.
“이걸로 커피 한 잔씩이라도 사 먹어요.”
“아뇨 아뇨, 아닙니다. 저희는 감사하다는 말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렇지?”
그러자 황 실장은 기겁하듯 잽싸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직접 폐지를 갖다 팔아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할머니에게 이 오천 원짜리 두 장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건 받을 수가 없다.
황 실장은 동의를 구하듯이 옆으로 시선을 보냈다.
허나 최성현은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설마 이걸 받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황 실장의 얼굴에 ‘이건 좀 아닌데?’ 하는 표정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쯤.
“…저, 할머니. 저희가 돈은 괜찮고요.”
최성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잠깐 제가 안마 좀 해 드릴 수 있을까요?”
“안마라면… 어깨 주무르는, 그 안마?”
그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안마는 받으면 좋은 것. 그런데 답례로 안마를 하게 해 달라니, 일반적인 개념으로 생각했을 때 약간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던 것이다.
“네. 사실은 제가 안마사인데, 마침 연습 상대가 없어 곤란하던 참이었거든요. 근데 제가 솜씨가 좀 모자라서 그런지, 주변에서는 도통 상대를 안 해 주려고 해서 말이죠.”
당연한 말이지만, 거짓말이다.
최성현은 말 좀 맞춰 달라는 듯이 황 실장을 쳐다보며 눈짓을 보냈고, 황 실장은 이미 짐작했다는 듯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할머니에겐 그 거짓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는지, 납득한 표정으로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만… 그럼 뭐 당연히 도와줘야지! 내가 뭐 어떻게 해 줘야 하는 건가?”
“그냥 음… 잠시만 여기 돌계단에 앉아 보실래요?”
할머니는 안 될 것 없다는 듯이 계단에 앉았고, 최성현은 뒤로 돌아가 그녀의 어깨 쪽에 손을 올렸다.
그다음에는 등. 종아리. 마지막으로 발목까지. 순서에 맞춰 간단하게 혈을 짚어 본 최성현은 확실히 알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방금 넘어져서 다치신 게 아니었네.’
강태한처럼 손 한 번 스윽 올려서 모든 걸 간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간과 공을 좀 더 들이면, 비슷한 흉내 정도는 낼 수 있다. 할머니의 몸 상태를 대강 확인한 최성현은 곧바로 발목과 종아리 쪽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절뚝이던 바로 그 다리였다.
“조금 아프실 수도 있어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어.”
최성현의 말에 할머니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나이를 먹으면, 아무래도 몸이 굳고 감각도 둔해진다. 목욕탕을 가도 열탕 정도는 가야 좀 뜨뜻하고, 한의원에서 침을 맞아도 좀 도톰한 녀석으로 찔러야 느낌이 온다.
하물며 안마 정도야 뭐.
그 정도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어어……?”
“아프세요?”
“아니, 아프지는 않은데…….”
종아리에서부터 찌릿, 한 느낌이 들더니, 강렬한 자극이 몸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기 시작한다.
다만 그 자극이 고통은 아니다.
시원하고, 편안하다. 아프기는커녕 거기에는 몸에 들어가 있던 힘도 느슨하게 만드는 안락함이 있었다.
‘성현이 스타일은 태한 씨랑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단 말이지…….’
한편, 황 실장은 그 모습을 꽤나 흥미로워하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최성현의 말대로 하면서도 살짝 어리둥절하고 긴장한 기색을 보였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풀어져 노곤해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강태한과는 여러모로 다른 스타일이다.
강태한은 좀 더 확실하게, 환자가 어느 정도 고통을 느끼더라도 문제가 있는 부분을 뜯어 고쳐놓는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최성현은 상대방을 배려하여 최대한 편안하고 안락하게 풀어 주는 스타일이다.
물론 안마의 실력 자체는 비교할 수준이 안 된다.
애초에 강태한은 얼마든지 최성현의 스타일처럼도 할 수 있지만 효율이 떨어지기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그래도 뭐, 배운 대로만 하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응용하여 활용한다는 것이… 황 실장에게는 제법 신기하면서도 기특하게 보이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그 때문인지 최성현에게만 안마를 받는 단골들도 꽤 있는 편이고 말이다.
‘…근데 언제 끝나나?’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는 방식이다. 슬쩍 시간을 확인한 황 실장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드실래요?”
“음? 아… 고맙다.”
그러던 와중, 할머니의 손자, 송준우가 큼직한 머그잔 하나를 내밀며 물었다. 거기에는 따뜻한 녹차 한 잔이 담겨 있었다.
아이는 차를 건네고는 인근의 다른 돌계단에 쪼그려 앉았고, 황 실장도 머지 않아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따뜻한 녹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진짜 어른스럽구나.”
“자주 듣기는 해요.”
송준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담담한 목소리로 답하고는, 마찬가지로 들고 있던 코코아를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달달한 코코아 향이 밤공기에 퍼져 나갔다.
* * *
“으음…….”
송준우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눈을 비볐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누워있던 이불을 개어 올린다. 이불장의 높이가 살짝 높아 초등학교 5학년짜리에겐 조금 버거워 보이지만, 이미 일과가 된 작업이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해냈다.
이제 찬물로 세수를 한 번 하고, 비어 있는 물통을 확인한다. 비어 있다면 양로원 근처에 있는 식수대에서 물을 받아 와야 한다.
“…어라?”
한데 물통들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누가 가져갔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누가 이런 허름한 집에 들어와서 물통을 훔쳐 가겠냐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저었다. 그때쯤이었다.
“음? 우리 준우 일어났어?”
할머니가 대문을 열고 손수레를 끌고 오더니, 물통을 하나씩 꺼내 놓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송준우는 짐짓 화난 목소리를 냈다.
“할머니, 물통은 내가 채워 놓는다고 했잖아! 아침에는 제대로 걷는 것도 힘들어하면서!”
준우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화를 낼 만도 했다.
할머니는 햇수가 지나갈수록 무릎 관절의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었다. 어떨 때는 자고 일어났을 때 무릎을 좀 주물러 줘야 좀 걸을 만해질 정도로.
때문에 아침에 밖에 나갔다 와야 하는 일이 있으면 본인이 도맡아 하고, 시간이 남으면 할머니의 무릎도 주물러 드리는 것이 송준우의 일과였다. 한데.
“…엉?”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뚜벅뚜벅 걸으며 물통을 날랐다. 그래. 뚜벅뚜벅 걷고 있었다. 그 걸음걸이 때문인지, 굽었던 허리도 어느 정도 살짝 펴진 것처럼 보였다.
“할머니… 무릎은 괜찮아?”
“글쎄다. 오늘 아침 일어나니까, 무릎이 너무 편하더라고. 허리도 좀 개운하고… 그래서 산책이라도 좀 다녀올 겸, 물도 떠 왔지.”
할머니는 본인도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그 모습에, 벙쪄 있던 송준우는 저도 모르게 싱긋 미소를 짓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