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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65화 (265/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65화

“거참. 가끔 보면 이것들도 참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단 말이야. 적당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황 실장은 키보드를 두드리던 도중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지나간 일이지만, 새삼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왔던 탓이다.

“그냥 미국 어디 적당한 곳도 아니고, 코넬 대학의 의과대학? 어디 뭐 나랑 연관이 있을 법한 부분이 하나도 없잖아.”

황 실장이 외국인과 프리 토킹이 가능할 정도로 영어를 제법 잘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태원에서 일을 하며 자연스레 익힌 것일 뿐, 딱히 미국이라는 나라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살아 본 적도 없고, 가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아이비리그 대학의 대학원에서 전화가 온다니. 딱히 주변 사람 중에 연이 있을 법한 사람도 없고, 누가 봐도 보이스 피싱이었다.

‘…아니, 잠깐.’

방에 울리고 있던 키보드 소리가 잠시 멈췄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황 실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지금 미국에 가 있는 사람이 있다. 다름이 아닌 강태한이다.

‘그리고 이건 업무용 스마트폰이고…….’

사적으로 사용하는 개인 스마트폰과 달리 대외적으로 어느 정도 번호가 공개되어 있는 스마트폰.

아예 검색만 해도 나올 정도로 오픈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안마사들의 명함에 상담 문의용으로 적혀 있는 번호이기는 하다.

그렇기에… 만약 천마안마의 관계자와 연관이 생겼다면, 전화가 오는 것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게 된다. 예를 들어 강태한이 미국에서 누군가를 도와줬는데, 그 사람이 우연히 대학 교수였다거나, 주변 지인이었다거나…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일단 이야기 정도는 좀 더 들어 볼 걸 그랬나?”

황 실장은 내려놨던 스마트폰을 다시 집어 들더니, 그것을 찝찝해하는 표정으로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뭐, 중요한 일이면 다시 전화가 오겠지.’

그렇게 정리하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려던 찰나.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중요한 일인가 보네…….”

화면에 찍혀 있는 번호는 방금 전 것과 완전히 동일한 번호였다.

* * *

“으하아아…….”

최성현은 소파에 철퍼덕 주저앉으며 큰 숨을 내쉬었다. 어딘가 나른함과 아쉬움이 담겨져 있는, 그런 긴 숨이었다.

“어째서 쉬는 날은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가.”

“그러게 말이다.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엄청 길다고 생각했는데.”

최성현이 나지막하게 한마디 중얼거리자, 이미 앞서 소파에 앉아 있던 김성훈이 한마디 거들었다. 최성현은 고개를 들고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뭐 실제로 길기는 했죠. 이번 분기는 공휴일이 많았으니까.”

안마원은 그 특성상 공휴일에도 쉬기가 애매하다.

안마라는 것 자체가 사람들이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인데, 정작 많은 사람이 쉬는 날 영업을 안 한다면 그것도 뭔가 이상한 그림이었으니까.

단순히 손님이 많이 찾아온다, 장사가 잘된다와 같은 계산적인 부분을 떠나, 보다 본질적인 부분이다. 적어도 강태한은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그 대신 해당 분기에 있었던 공휴일의 숫자만큼 분기 휴가의 날짜를 늘린다. 말하자면, 미리 일하고 나중에 몰아쉬는 느낌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휴일이 많았던 이번 분기는… 꽤나 넉넉한 날짜로 잡힌 휴가 일정이었다. 해외여행을 느긋하게 다녀와도 여유가 좀 남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게. 참 길었는데… 짧네.”

허나 휴가라는 것은 아무리 길어도 금방 지나가는 법. 최성현과 김성훈의 얼굴은 나른하면서도 뭔가 아쉬움이 남아 있는, 그런 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이틀 정도만 더 쉬다가 오고 싶은…….”

“휴가 날 잘 못 쉬셨나 봐요?”

그때, 누군가 뒤쪽에서 웃음을 지으며 나타났다.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던 데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고 있었기에 김성훈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하하, 뭐야? 태한 씨 언제 왔어?”

“방금 전에 왔죠.”

강태한은 담담한 말투로 답하며 테이블 측면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많이 피곤하세요? 정 그러시다면 이틀은 무리여도, 하루 정도는 더 쉬셔도 괜찮을 듯한데.”

“응? 어, 아니야! 그냥 해 본 말이야!”

김성훈은 그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는 듯 과장된 몸짓으로 손을 저으며 말했다. 마치 기겁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요? 그럼 괜찮고요.”

“그래그래. 신경 쓰지 마. 하하, 아 잠깐 몸이나 풀러 가 볼까?”

김성훈은 살살 몸을 푸는 시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뒷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강태한에게 최성현이 넌지시 말했다.

“으이구, 왜 사람을 압박해?”

“압박? 내가 그랬나?”

강태한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다른 의도가 없었던 그로서는 의아한 말이었다.

“그야 그럴 생각으로 말한 건 아니었겠지만, 뭐랄까… 네가 그러면 없던 양심도 생긴다고 해야 할까,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할까.”

평소 강태한이 보여 주는 성실한 모습 그리고 업계 최고 수준의 페이와 다른 가게들과 비교 자체를 거부하는 직원 복지.

이런 배경에다 강태한이라는 인간 자체의 위압감까지 섞이다 보니, 그의 앞에서는 대부분의 안마사가 조심하는 경향이 있다. 뭐라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려 하고, 알아서 척척 움직인다고 할까.

“…흐음. 그런다고 내가 자르는 것도 아닌데.”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실제로 그동안 스스로 자진해서 가게를 나간 이들은 몇몇 있었지만, 해고를 당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뭐, 그게 나쁘다고 하는 소리는 아니고… 뭐 됐다. 그보다 아버지랑 미국 여행은 잘 다녀왔어?”

최성현은 적당히 이야기를 정리하고는 새로운 화제로 방향을 틀었다. 적절한 화제 전환이었다.

“아주 잘 다녀왔지. 아버지도 좋아하셨고.”

“오… 준비는 저쪽에서 다 해 줬다고 했었지?”

“맞아. 사치스러울 정도로 준비를 해 줬더라고.”

강태한의 말에 최성현이 관심을 보였다.

“뭐가 어땠길래 사치스럽다는 표현이 나오냐?”

“으음… 일단 비행기부터 퍼스트 클래스였고, 호텔도 엄청 넓은 데로 해 줬더라고. 그리고 개인 헬기까지 따로 대여를 해 줘 가지고…….”

이야기를 이어 가던 강태한은 문득 멈칫하고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쓱한 웃음을 흘렸다.

“뭔가 자랑질하는 거 같아서 좀 별론데?”

“에이, 자랑 좀 하면 어떠냐? 겸손 떨지 말고 이야기 좀 더 해 봐.”

강태한은 피식 웃고는 계속해서 미국에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다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둘이 이야기하는 중에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태한 씨 혹시 거기서 무슨 의사 선생님 만나지 않았어?”

마침 볼일이 있어 찾아왔던 황 실장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말을 들은 강태한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끄덕였다.

“네. 그랬었죠.”

“그 막 갑자기 응급 환자 생기고, 거기서 태한 씨가 환자 등 위에다가 손 한번 올리니까 의식도 없던 사람이 멀쩡해져서 눈을 뜨고. 그랬다는 말이지?”

황 실장의 말에 강태한이 신기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아직 그 이야기를 꺼내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할 정도로 거창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뭐… 사실이긴 해요.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어… 다른 게 아니고, 그쪽에서 연락이 왔거든.”

강태한의 말에 황 실장은 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전날 통화를 하면서 몇몇 정보를 따로 옮겨 적어 놓은 메모지였다.

“그러니까 웨일 코넬의 의과대학의 교수 한 분이 너를 꼭 좀 만나 보고 싶다고 하더라. 맷 레이먼이라고 하시던데, 그때 그 사람 맞아?”

“맷 레이먼… 네, 맞는 것 같아요.”

강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그 의사와 명함 한 장씩을 주고받았었는데, 거기에 그런 이름이 적혀 있었던 기억이 났다.

“근데 갑자기 왜요?”

“몰라. 교수님이니까 뭐 연구나 논문이랑 관련된 거 아닐까? 가능하다면 가게에도 한번 견학을 와 보고 싶다더라.”

“흐음…….”

강태한은 잠시 침음을 흘리다,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뭐 안 될 건 없죠.”

강태한에게는 그동안 신기하게 이어져 온 인연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인연들은, 모두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이어져 도움이 되어 오곤 했다.

아마 이번 것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저쪽에서 부탁해 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에, 강태한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최 선생님, 이 부분 혈을 잘 못 짚겠는데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갈게요.”

휴가가 끝나고 다시 영업이 시작된 천마안마. 그렇게 다시 일이 시작된 것은 이곳, 안마 아카데미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만 최성현의 기분 탓일까.

아카데미의 수강생들의 온도차는, 휴가가 시작되기 전과 후가 왠지 조금 다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최 원장님, 혹시 수업이 끝나고 난 뒤에도 연습만 좀 더 하다가도 되겠습니까?”

“저번에 배웠던 걸 실전에서도 한번 써 봤는데, 반응이 엄청 좋더라고요. 그래서 말인데, 그걸 이런 식으로 응용을 해도 괜찮을까요?”

‘다들 엄청 의욕적이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들 의욕이 올라선 상태다.

특히나 이미 안마사로서 활동을 하고 있던 중년대의 수강생들. 그동안 직접 손님들에게 활용을 해 보고 좋은 반응을 보았기 때문인지, 그들의 학구열은 그야말로 열정이란 말이 어울리는 수준이었다.

물론, 그게 결코 나쁜 일은 아니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장소에서는 바람직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그 때문인지 수업을 진행하는 최성현의 얼굴에도 흐뭇한 기색이 떠나질 않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점이 생겼다.

아니, 생겼다기보다는 예전에 미리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대두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원장님, 저번 수업에서 견갑골 쪽이 편찮으신 분들은 이 부근에 근육이 뭉쳐 있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찾기 쉽고 풀어 드리기도 쉽다고 하셨잖아요?”

“네. 그랬었죠.”

“근데 연습 상대를 해 주시는 분들이 다 건강하신 건지, 아니면 이미 다른 분들이랑 연습하시면서 다 풀린 건지, 그런 상황을 찾기가 좀 어려워서… 다시 한번 알려 주실 수 있으세요?”

그 문제점은 다름이 아니라 제대로 된 연습을 하기 힘들다는 것. 연습을 하려면 그 상대가 필요한데, 아무래도 그게 부족할 수밖에 없다.

물론 천마안마에서 강태한이 강습을 할 때도 그랬듯, 안마사들이 서로서로 교대로 상대를 해 주며 연습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안마라는 것이 몸에 불편한 점을 찾아내고 그걸 풀어 주는 것인데, 불편한 게 없는 사람을 주무르면 아무래도 여러모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이곳에 모인 안마사들은 아무래도 신체가 건장한 편이고, 피곤하면 스스로 풀어 주는 것도 가능한 인간들이다. 연습의 상대로 그렇게 적합하다고 보기는 힘든 것이다.

“물론이죠. 이번에는 응용해서 좀 더 안쪽의 근육까지 풀어 주는 것도 알려 드릴까요.”

천마안마에서 강습을 했을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던 부분이다. 그땐 모두 손님을 받는 안마사들이었고, 제대로 연습을 하지 못하더라도 그만큼의 실전 기회가 있어 충분히 익힐 수 있었으니까.

다만 아카데미 같은 경우에는 다르다.

여기에는 이미 안마사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격증만 따 놓았거나 활동을 쉬고 있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결국은 뭔가 해결책이 필요해.’

아카데미의 원장으로서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 시작한 최성현. 그런 그에게 안겨진 원장으로서의 첫 번째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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