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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64화 (264/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64화

“…아하, 황지운 씨.”

그 전까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했으나, 저렇게 자기소개를 해 주니 곧바로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는 강태한이다.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그것도 이런 곳에서요.”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사실은 선생님이 맞는지 긴가민가하면서 인사를 했었던 건데, 선생님 본인이 맞으셔서 다행입니다.”

살짝 반응을 지켜보고 있던 황지운은, 강태한이 아는 기색을 내비치자 그제야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강태한은 그와 악수를 나누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다리는 이제 완전히 나으신 것 같네요.”

“오, 역시! 딱 보면 아시는 겁니까?”

“흐음… 아니 뭐, 이쪽으로 오실 때 뛰어오시던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처음 강태한을 알아보고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황지운은 원래 생각하고 있던 용건도 잊어버린 채 거의 뜀걸음에 가까운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확실히,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라면 보여 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자기 행동을 돌이켜 본 황지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음을 터트렸다.

“전부 선생님 덕분입니다. 덕분에 보고 계신 것처럼 부상도 깔끔하게 나았고, 어찌 된 게 몸도 예전보다 더 좋아진 상태거든요.”

황지운은 보란 듯이 가벼운 스트레칭 자세를 취해 가면서 말을 했다. 그 모습에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잘 지내시고 계셨던 모양이네요.”

“후후, 티가 납니까?”

“예. 그때 안마를 받으러 오셨을 때랑은 인상부터가 다르네요.”

강태한의 말은 딱히 빈말이나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황지운은 그야말로 신수가 훤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길을 걷다가 우연히 3등짜리 즉석 복권이라도 주운 사람처럼 말이다.

“흐흠. 뭐, 이것도 방금 말씀드렸던 내용의 연장선입니다. 컨디션이 좋으니 연기도 잘되고, 그대로 미국에 진출해서 주연을 맡는다는 꿈도 이루고…….”

그는 잠시 말을 끊고 뜸을 들이다, 이내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다시 이어 말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그동안 승승장구를 해 오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인상이 밝아질 수밖에 없죠. 하하.”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에는 깊은 감사가 담겨 있었다. 결국 이 또한 강태한의 덕분이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일이 잘 풀리셨다니 다행입니다. 이번에 주연을 맡았다는 한국인 배우가 지운 씨이신가 보네요.”

“맞습니다. 제 첫 작품이자 대표작인 황혼의 수레바퀴, 이걸 본토에서도 주연을 맡아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그 소원대로 된 셈이죠.”

황지운은 한쪽 벽에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 벽보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는 신경을 쓰지 않아 보지 못했으나, 벽보의 구석에는 황지운의 이름이 영어로 큼직하게 쓰여 있었다.

“뿌듯하시겠네요.”

“뭐, 살면서 제일 자랑스러운 순간 같기는 합니다.”

황지운은 굳이 감출 것도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행복이 느껴지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어쩐 일로 여기 계십니까? 관광으로 오신 겁니까, 아니면… 미국에서도 선생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 출장을 나오신 겁니까?”

“둘 다입니다.”

강태한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러자 황지운은 알 것 같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도 미국에 와서 천마안마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뭐냐, 그… 엑스칼리버 같은 이름의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였는데요.”

“캘리버 씨요?”

“예! 맞아요, 캘리버 스미스. 그 선수분이 천마안마에서 재활 치료를 하고 계시다면서요? 그래서 간간이 이야기가 들려오더라고요.”

강태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리겔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리겔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도 들어 본 적이 있다는 의미였다.

“캘리버 선수 자체가 상당히 유명한 선수입니다. 특히 마이애미 출신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말이죠.”

“흐음… 그렇군요.”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미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현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증언을 해 주니 아무래도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럼 혹시 제 공연도 보러 오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이것 참 영광입니다만.”

“원래는 그럴 예정이었습니다만…….”

뒷말을 흐리는 동시에 강태한의 시선이 매표소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리겔이 뒷말을 이어받았다.

“표가 매진이라 구할 수가 없더군요.”

“아하… 생각해 보니 그렇겠네요.”

황지운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턱 부근에 손을 올렸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티케팅이 열리자마자 대부분의 티켓이 팔리고 첫 공연이 끝난 이후에는 완전히 매진이 되었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십쇼. 암표상을 찾아서라도 제가 꼭 구해 보겠습니다.”

“암표상이요? 에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사뭇 비장한 기색마저 담겨 있던 리겔의 목소리.

허나 그 기색이 무색하게, 옆에 서 있던 황지운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한 말투였다.

“음… 언제 공연을 보실 생각이셨죠?”

“다음 날 보려고 했죠.”

“하하, 그럼 확실히 표 구하기가 어려우실만 했네요. 뭐 어쨌거나,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한차례 웃음을 터트린 그는 매표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이야기를 좀 나누는가 싶더니, 그는 이내 종이 두 장을 한 손에 집어 든 채로 두 사람에게 되돌아왔다. 다름이 아니라 내일 있을 황혼의 수레바퀴 공연의 티켓이었다.

“이거, 받아 주십쇼 선생님.”

황지운은 손에 든 티켓을 강태한에게 내밀며 말했다. 왜인지 기뻐 보이는 표정이었다.

“사실 국내 공연이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미국으로 넘어오느라 선생님을 더 찾아뵙지 못해 좀 찝찝했었는데, 이렇게 조금이라도 보답할 기회가 왔네요.”

담백한 그의 말에서는 진심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강태한은 그가 내민 티켓을 조용히 쳐다보다, 조심스레 받아들였다. 어딘가 미묘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부담스럽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 저한테는 너무 반가운 기회니까요.”

그 표정을 미안함과 부담으로 짐작한 황지운이 넌지시 말했다. 허나 진실은 그의 짐작과는 꽤나 다른 것이었다.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젓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세 장이 필요해서요.”

“네?”

“사실 아버지랑 같이 와서 말이죠. 사람의 숫자가 세 명입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 속에서, 황지운은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이 가볍게 손뼉을 쳤다.

“…아! 이런, 제가 일정을 여쭤보면서 인원이 몇 명인지는 물어보지 않았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황지운은 그 말을 남기고 다시 매표소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졌을 때, 옆에 있던 리겔이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의외로 받을 수 있는 건 받는 타입이시군요?”

살짝 다르게 말하자면, 의외로 뻔뻔한 면모가 있다. 다소 의외의 모습에 놀란 리겔이 묻자, 강태한은 조그맣게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뭐, 받을 걸 받아 냈다기보다는… 그냥 이대로 가면 피차 애매하지 않겠습니까.”

강태한이 원하는 것은 세 장의 티켓이다.

그리고 황지운이 원하는 것은 강태한에게 느끼고 있던 감사함, 일종의 부채감으로까지 표현할 수 있을 그 마음에 대한 보답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필요한 것을 제대로 말하는 것이 낫다. 상대방도 그것을 원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흐음… 그렇군요.”

리겔은 납득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하지는 못했으나, 어쨌거나 상황이 안 좋은 것은 아니었기에 적당히 넘어가기 위한 제스처였다.

* * *

“뮤지컬이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데…….”

공연이 끝나고 난 후, 극장을 가득히 메운 박수 소리 속에서 강호연은 강태한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왜 이런 공연들을 챙겨 보는지 알게 된 경험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정말 좋은 공연이었어.”

그는 말만 그렇게 할 뿐이 아니라 깊은 감명을 받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손으로 연신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그래. 그 누구냐… 저 남자 배우.”

“황지운 씨요?”

“그래. 저 남자 배우가 부른 노래들은 다 좋았어. 무대장치들이 움직이는 것도 신기했고 말이다.”

선물이랍시고 뮤지컬 티켓을 가져왔을 때는 시큰둥한 얼굴을 보였던 강호연이었으나, 지금은 그랬던 모습이 무색할 정도로 열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뮤지컬 공연을 보고 난 이후에도 미국에서의 관광과 일정은 계속되었다.

남아 있는 관광 명소들도 대강 훑어보고, 돌아다닐 때마다 신경이 쓰이던 큼지막한 다른 호텔에서도 묵어 보고, 리겔이 따로 뽑아 놓은 맛집들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알베르토 감독이 합류하기도 하고…….

허나 그래도 결국은 끝날 시간이 오는 법이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리무진에서, 라스베이거스 쪽을 쳐다보고 있던 강호연은 시원섭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 따져 보면 얼추 일주일 정도 머물렀을 뿐인데, 한참 동안 있다가 가는 것 같구나.”

“그새 정이 드신 모양이네요.”

“뭐 그렇지… 처음 보는 도시지만, 저기서 처음 겪어 보는 일들도 엄청 많았으니 말이다.”

아쉬움이 짙은 것은 그만큼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런 강호연의 말에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음에 같이 또 오죠.”

“다음에 또?”

“네. 그러면 되죠.”

“…싫어.”

의외의 대답에 강태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다음에는… 뉴욕도 가 보고 싶구나.”

강호연의 대답에 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태한이 아니라 그 옆에 앉은 리겔의 웃음소리였다.

“맞죠, 맞죠. 확실히 한번 가 본 곳보다는 새로운 곳에 가는 게 아무래도 더 끌릴 수밖에 없죠.”

“흐음. 틀린 말이 아니기는 한데.”

“뭐 어쨌거나… 그럼, 다음에 뉴욕으로 가시게 되면 저한테도 연락을 주시죠.”

리겔의 말에 강태한이 뺨을 긁적였다.

“그때는 아마 누구한테 초대를 받는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놀러오는 걸 텐데요. 리겔 씨의 업체를 이용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은데.”

“하하, 이렇게 어설프게 홍보를 하겠습니까? 당연히 그런 말은 아니죠. 제가 말씀드리기는 뭣하지만, 저희 업체의 이용료가 꽤나 비싼 편이기도 하고요.”

리겔은 제법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그럴 리가 있겠냐는 듯이 좌우로 손을 저은 다음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두 분이랑 같이 다니는 게 제법 즐거웠어서 말이죠. 사적으로도 상관없으니, 다음에 미국에 오시면 그때도 안내를 해 드리고 싶다는 말입니다.”

리겔은 슬쩍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물론 그때는 가이드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친구로서 말이죠. 그래도 괜찮겠죠?”

당연한 말이지만, 그가 아무한테나 이런 제안을 꺼내 놓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적어도 리겔에게는 그러했다. 이런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강태한은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그의 손을 붙잡고는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서로를 마주 본 리겔과 강태한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저도 리겔 씨와 함께 다닌 요 며칠 간,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음에도 꼭 만났으면 좋겠네요.”

“리겔 씨가 그렇게 말해 주면, 우리 입장에서는 그냥 고맙고 반가운 이야기지 뭐. 하하!”

강태한의 말을 거들 듯이 창가 쪽에 앉아 있던 강호연도 넌지시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때쯤 리무진이 멈춰 섰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창문 밖으로 한산한 공항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리겔은 트렁크에 실어 뒀던 짐들을 내려 강태한에게 건네고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는 뉴욕에서 뵙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지요.”

마지막 인사와 함께 가벼운 악수를 주고받은 이후, 강태한은 천천히 뒤로 돌아 공항 안쪽으로 걸어갔다. 이제 여행은 끝이 나고, 다시금 일상으로 되돌아갈 시간이었다.

* * *

“으하아암…….”

황 실장은 나른한 몸을 일으키고는 컴퓨터에 앉았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잠을 자고 싶었으나, 할 일이 있었기에 애써 참으며 전원 버튼에 손을 올렸다.

휴가는 아직 하루가 남아 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예약은 쌓여 가고, 직원들의 일정을 조율하는 것도 필요했으니까.

휴가라 해도 일은 있을 수밖에 없고, 누군가는 일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황 실장은 어지간하면 자기가 도맡아 하는 편이 오히려 마음이 편한 사람이었다.

“…음?”

그러던 와중 테이블에 올려놨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찍혀 있는 번호를 보아하니, 해외에서 걸려 온 전화다. 황 실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귓가에 스마트폰을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혹시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

수화기 너머로는 영어가 들려왔다. 발음을 보아하니 대강 미국 쪽 느낌. 황 실장도 영어로 대답했다.

“그렇다고 하면요?”

[오, 여기는 미국 코넬 대학의 웨일 코넬 의학대학원입니다. 다른 게 아니라 저희 교수님 중에…….]

뚝.

이야기를 듣던 황 실장은 곧바로 전화를 끊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팔뚝을 긁적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요즘 보이스 피싱은 스케일도 참 크게 잡는단 말이지… 이번에는 미국 대학원이야?”

잘은 모르지만, 코넬 대학이라고 하면 미국의 아이비리그에 들어가 있는 상당히 높은 대학이다.

상식적으로 그런 곳에서 전화가 올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것에 속아넘어가기에는 이미 수많은 보이스 피싱 전화를 받아 본 황 실장이다. 그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고는 하던 일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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