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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59화 (259/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59화

드르륵.

통화를 마친 에드윈은 문을 열고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침대 옆에 놓여 있는 미니 냉장고 쪽으로 걸어가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언제 일어났어?”

“…방금 전이요, 코치.”

폴 레이즌은 침대에 누운 상태로 말했다. 대답을 하는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그의 오른쪽 어깨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그는 아까 전부터 손을 들어 보려 하고 있었는데, 오른팔은 약간의 미동만 할 뿐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저, 근데 방금 전 통화 내용은 사실입니까?”

“통화 내용… 아, 들었어?”

“예. 중간쯤부터.”

에드윈은 머쓱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통화할 때 목소리가 쓸데없이 크게 나오는 것은 그의 고질적인 버릇이었다.

“이번 시즌은 원래 저를 메인 쿼터백으로 가려고 하셨다고…….”

“너도 알고 있는 사실 아니었어? 애초에 시즌 오프 때 내내 그렇게 훈련해 왔잖아.”

“…그렇기는 했죠.”

몸을 다친 상황이라 그런 것일까, 그는 평소와 다르게 고분고분한 말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기가 메인 쿼터백으로 나선다는 것.

그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완전한 상태로 복귀한 캘리버가 있는 상황에서, 메인 쿼터백을 계속 지켜 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이미 빼앗긴 적이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는 다시 한번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이런 수작을 부렸던 건데.

이제는 쿼터백은커녕 오른팔을 언제 다시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게 되었다. 이미 메인 쿼터백으로 내정이 되어 있었는데, 괜히 헛짓거리를 벌인 탓에 있던 자리까지 걷어찬 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야, 너 우냐?”

“아뇨…….”

말과는 달리 왼손으로는 눈가를 훔쳐 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에드윈은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터트렸다.

‘약할 때는 한없이 약해지는 놈이라니까.’

스포츠 팀의 스태프는, 그중에서도 코치는 선수들을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일단은 사람인지라 마음에 들고 안 들고의 차이가 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폴 레이즌은 에드윈이 그리 좋아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이라고 할까.

자기가 강자의 입장에 있다고 생각되면 무슨 짓을 해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나오고, 약자의 입장에 있을 때는 생각이라도 한 번씩 더 해 보고 움직인다.

그냥 예전부터 그랬던 놈이다.

동료들한테 시비를 걸 때도 주장인 새드릭이나 더 힘이 센 라인맨들은 예외다. 애초에 쿼터백이면서 라인맨 수준까지 몸을 키운 것도 그런 맥락 때문이 아닐까, 에드윈은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침울한 표정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딱히 동정심이 들지는 않았다.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옆에 있는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뭐 말입니까?”

“네가 다친 거 말이야. 갑자기 느닷없이 몸이 붕, 떠오르더니 360도로 회전한 것 말이야.”

일반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솔직히, 업체 쪽에서 보여 준 CCTV 영상이 아니었다면 에드윈은 아직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저절로 일어났을 리는 없고, 그렇다고 주먹을 손바닥으로 막았다고 그런 일이 일어날 리도 없고, 그럼 네가 뭔가 했다는 거잖아.”

적어도 그의 상식에서는 그러했다. 다만 폴은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비록 당사자이기는 했으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는 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르겠어요. 그냥 주먹이 막히더니, 천장이 한 바퀴 돌고는 팔이 비틀려 있었어요.”

폴의 표정은 진짜로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자기도 알 수가 없어 혼란스러워하는 표정.

이런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뭘 더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에드윈은 이제 됐다는 듯이 대충 손을 휘휘 젓고는, 덧붙이듯이 넌지시 말했다.

“그보다, 조만간 자리를 마련할 테니 그때 안마사 선생님한테 따로 사과나 해. 다친 건 너지만, 어쨌든 먼저 주먹을 휘두른 건 너니까.”

“어… 음. 그거, 꼭 그래야 합니까?”

폴의 대답에 에드윈은 순간적으로 발끈했다.

“야, 그거 사과하는 게 그렇게 쪽팔리냐? 운동한다는 놈이 일반인한테 주먹 휘두른 것 자체가 부끄럽다는 생각은 안 들고?”

결국 그는 꾸짖듯이 한 소리를 하고 말았다. 사건의 정황을 들었을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내용이고, 또한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아뇨, 그… 쪽팔려서가 아니고요.”

다만 폴이 머뭇거린 것은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한동안 망설이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는 살짝 겁에 질려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지가 않아요.”

염치가 없다, 부끄럽다,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그냥, 무서웠다.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본인도 잘 알지 못했으나, 한 가지만큼은 그의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자기는, 죽을 수도 있었다.

그 방법은 알지 못한다. 허나 자신의 몸이 붕 떠오르기 직전, 그 안마사는 분명 자신의 생사여탈 여부를 가지고 고민을 했었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본능적으로 느껴진 내용이었으나, 본능이라는 것이 객관적인 근거가 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허나 그는 분명히 그것을 느꼈다.

당시에는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런 대처도 못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주먹이 막히고 강태한의 눈과 마주친 순간, 제압되어 있었다. 그 압도적인 위압감에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던 것이다.

“사과는 드리겠지만… 만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 상황에서, 다시는 그 사람과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눈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패닉에 빠져 버리고 말 것이다. 이렇게 기억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 * *

한편, 그런 일이 있고 난 이후에도.

“끄흐어어억!”

“어허. 엄살 부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강태한의 안마는 멈추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수사를 좀 받고 보안관들과 이야기도 나누기는 했으나, 그 이상으로 강태한이 사건에 더 얽매이는 일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손바닥에 주먹이 닿았다고 사람의 몸을 뒤집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고, 애당초 이번 사건에서 먼저 폭력을 휘두른 것은 상대방 쪽이었으니까.

말하자면 혐의를 입증할 수가 없고, 설령 입증을 하더라도 정당방위의 선 안에서 그치는 정도에 불과하다. 굳이 수사를 이어 나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저 사람으로 마지막이었죠?”

“네, 맞습니다.”

강태한이 마지막 순서를 끝마치고 나왔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던 리겔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러고는 뒤쪽의 복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먼저 좀 쉬시겠습니까, 아니면 바로 식사를 하러 가시겠습니까?”

“식사로 하죠. 살짝 출출하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저도 배고프던 참이었거든요.”

리겔은 먼저 안내하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강태한이 걸음을 떼자 그 옆을 자연스럽게 따라 걸었다. 그렇게 좀 걸었을까, 호텔 로비로 내려가는 커다란 계단이 보이기 시작했을 즈음 리겔이 넌지시 말했다.

“그건 그렇고, 선생님도 참 대단하시네요.”

“뭐가요?”

“어쨌거나 좀 혼란스러우셨을 테고, 저쪽 팀에게도 불만을 표할 수 있는 상황이셨는데, 그냥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시고 계시잖아요.”

어찌 됐거나 손님을 초대해 놓고 사건을 일으킨 것은 마이애미 헤비나이츠 쪽이다. 강태한은 거기에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있었고, 일정을 파기할 수도 있었다. 그에 대한 보상도 요구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면, 쉽게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방법도 있었다. 너무 놀라서 한동안 좀 쉬고 싶다는 식으로 말이다.

허나 강태한은 그러지 않았다.

그냥 수사를 마치고 돌아오더니, 원래 일정대로 다시 진행하자고 한마디 말을 했을 뿐이다. 놀란 것은 오히려 헤비나이츠 쪽의 스태프들이었다.

“뭐… 실제로 별일이 아니었잖아요.”

다만 거기에 강태한은 별다른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다. 그는 담담하게 말하고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실제로 그에게는 별일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 김이 샌 것도 있었다.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여 무엇일까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삼류적인 행보에 실망해 버린 것이다.

강태한이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도, 이깟 일 때문에 나름 만족스레 구성되어 있던 기존 일정에 영향이 생기는 것이 오히려 더 아까웠기 때문이다.

“…마음이 넓으시군요. 아니, 한국말로는 이럴 때 그릇이 넓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릴려나요?”

“별말씀을.”

감탄 어린 리겔의 말에 강태한은 담담한 표정으로 손을 저었다. 겸손 같은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반응이었다.

* * *

한편, 그날 밤.

리겔에게 미리 이야기를 전달받은 강태한은 느긋한 걸음으로 호텔 바 안쪽으로 향했다. 널찍한 홀을 지나 다소 구석진 곳으로 들어서니, 자리에 앉아 있던 한 백인 남자가 그를 마중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태한 씨, 맞으시죠?”

“네. 그렇습니다.”

“반갑습니다. 마이애미 헤비나이츠에서 감독을 맡고 있는 알베르토 올리버라고 합니다.”

그는 강태한과 악수를 나누고는, 먼저 자리에 앉으시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는 강태한이 의자에 앉고 나서야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건 그렇고…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이후 먼저 입을 연 것은 강태한이었다. 그 말에 알베르토는 슬쩍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이내 머쓱한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하하, 마이애미에서 여기까지가 좀 멀기는 하죠.”

순간 ‘어떻게 알았지?’ 싶었으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마이애미에서 방금 도착했다는 걸 알면 누구나 꺼낼 법한 이야기였다.

“일단은… 이런 늦은 시간에 나와 주신 것, 그것부터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가볍게 인사가 오고 간 이후, 알베르토의 목소리 톤은 다소 진중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강태한이 가벼운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자, 그는 목소리에 어울리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날 있었던 불상사에 대해서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물론 그에 대한 사과도 이미 받으셨겠지만… 다시 한번, 팀을 대표해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알베르토는 더없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양식으로 고개를 숙인다거나 하는 눈에 띄는 행동은 없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이미 진심을 전달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아닙니다. 별일도 아니었고, 애당초 개인 한 명의 돌발적인 행동이었을 뿐인데요.”

“…그렇습니까.”

강태한의 말에 감독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사과가 진심이었던 만큼, 그 안도에도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강태한도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행이네요.”

“무엇이 말입니까?”

“사과를 짧게 끝내 주셔서요.”

강태한은 머리를 긁적였다.

“오늘 하루 종일 사과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선수들, 스태프들, 코치들… 아휴.”

그의 한숨에는 질색하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그는 사건이 있었던 이후에도 기존 일정대로 안마를 계속했고, 그에 따라 계속해서 헤비나이츠 관계자들을 만나 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사과를 받아 왔다. 개중에는 심심한 사과도 있었으나, 면목이 없다는 식으로 길게 늘어지는 것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젠 슬슬 질릴 수밖에.

그런 의미에서, 알베르토 감독의 말은 적당한 수준에서 끊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 말에 알베르토는 나지막하게 머쓱한 웃음을 흘렸다.

“이거… 아무래도 제 잘못도 있는 것 같습니다. 스태프들에게 따로 당부를 해 놨었거든요. 선생님에게 더 이상 실례를 저지르지 말라고요.”

“역효과가 난 모양이군요.”

그 말에 강태한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러고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그럼 이번에는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당부를 해 주시면 되겠네요.”

“하하. 선생님께서 원하신다면, 그리하겠습니다.”

강태한의 말에 감독이 옅은 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무겁고 진중했던 분위기가 가볍게 흘러가던 참이었다.

“…엇.”

그러던 와중.

순간적으로 알베르토의 머리가 움직였다. 정확히는, 그의 머리카락 전체가 마치 하나의 뭉치처럼 틀어진 것이다.

“아… 하하하. 크흠.”

그는 어긋난 가발을 다시 가다듬으며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가벼워지던 분위기가 방금 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딱딱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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