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 안마하신다-257화 (257/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57화

“…그런데, 그게 왜 궁금하십니까?”

강태한을 쳐다보고 있던 리겔이 조심스레 물었다.

미국을 여행할 때 치안을 걱정하는 관광객은 많다. 솔직히 말하자면, 걱정할 만하다. 미국의 치안은 몇몇 도시를 제외하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니까.

사람도 많고 애초에 땅덩어리가 워낙에 크다 보니, 관리가 좀 안 되는 느낌이 있다고 할까.

법적으로 정당방위의 폭이 넓은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경찰이 다 지켜 줄 수가 없으니, 자기 방어 정도는 알아서 하라는 느낌인 것이다.

다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은 ‘강도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할 뿐이다. 그나마 좀 더 나아가면 대처할 수단을 찾는 정도다.

근데 거기서 ‘강도를 당하면 상대를 어디까지 제압을 해야 할지’를 걱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일반적이지 못한 범상치 않은 부분이다. 현지인이 아니라 관광객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건데, 총기를 소지하고 계신 건 아니겠죠?”

리겔은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상대방에 대한 과잉 진압 여부는, 곧 미국에선 총기의 사용 여부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과잉 진압을 걱정한다는 것 자체가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하하. 설마요. 공항에서 여기까지 같이 이동하셨고, 방금 전까지 식사도 같이 하셨잖아요.”

“그야 뭐, 그렇습니다만…….”

강태한은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대단한 건 아닙니다. 여행객은 되도록 조심을 하는 편이 좋으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리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를 상황이 있으니, 미리 알아 두려고 물어본 거죠. 행여나 외국인 신분으로 사고라도 일으키면, 여러모로 여행을 망치게 될 테니까요.”

강태한은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었다가 펴면서 말했다. 리겔은 가볍게 웃음을 흘리고는, 다시 한번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 마십쇼.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팀은 단순한 관광 가이드가 아니라 경호의 프로이기도 합니다. 안전한 즐거움. 그게 저희 업체의 슬로건이죠.”

어떤 상황에서도 고객이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하며, 애초에 그런 상황에 처할 일도 없도록 만든다. 그것이 경호의 기본이다.

“강도라든가, 절도라든가, 강태한 씨가 그런 상황에 처할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음. 참 믿음직하군요.”

한편, 그 말에 강태한은 다소 담담해진 목소리로 답했다. 어딘가 시큰둥해진 반응. 왠지 모르게 방금 전보다는 살짝 관심이 덜해 보이는 반응이었다.

* * *

그리고 그다음 날.

“자, 다들 좋은 아침!”

문을 열고 들어선 에드윈 코치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분위기를 휘어잡듯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테이블에 늘어지다시피 앉아 있던 선수들의 주목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에드윈.”

“뭐야, 몇몇 애들 상태가 왜 이래?”

창문으로만 봐도 오늘의 아침은 제법 화창한 편이었으나, 늘어져 있는 선수 몇몇은 ‘좋은 아침’이라 인사를 건네기에 부적합해 보였다. 그런 코치의 의문에 팀의 주장, 세드릭 로퍼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야, 오랜만에 찾아온 라스베이거스에 잔뜩 들떠 가지고 밤새 놀았던 탓이죠.”

라스베이거스는 미국의 대표적인 유흥 도시다. 말하자면, 미국 전역에서 이곳만큼 놀기 좋은 곳을 찾는 것도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 곳에 왔으면 노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는가.

이곳에 온 건 어디까지나 안마를 받기 위함이었으나, 겸사겸사 시즌 전에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는 목적도 있었기에 문제가 있는 행동도 아니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고 대부분의 선수는 느긋한 휴식으로 여행의 첫날을 마무리했으나… 그렇지 않은 선수들도 있었던 것이다.

“…에휴. 그래도 적당히 마시지 그랬냐.”

에드윈은 짧게 한숨을 내뱉고는 이마를 짚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약을 한 것도 아니고, 술 좀 많이 마셨다고 잔소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잠깐, 폴. 너는 아예 현재진행형으로 술을 마시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던 와중, 문득 그의 눈에 한 장면이 들어왔다. 구석에 앉은 폴이 컵을 홀짝이는데, 안에 담긴 내용물이 짙은 갈색의 위스키였던 것이다.

“아닙니다, 코치. 이건 해장술이라는 거예요. 하하!”

“…넌 해장술로 위스키를 마시냐?”

하아. 에드윈은 또 짤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말을 한다고 들을 놈들도 아니고, 애초에 시즌 전에 쉬러 가는 여행이라고 말한 건 자신이었으니까 말이다.

말하자면, 일정이 잡혀 있기는 하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엄연히 자유 시간이나 마찬가지라고 할까.

트레이닝이나 훈련 중에 이따위 기강을 보인다면 에드윈이 쥐어 패더라도 할 말이 없겠으나, 이런 시간에도 일일이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은 엄연한 월권행위에 속해 있었다.

“됐고, 다들 어제 스태프들한테 공지는 전달받았지?”

“예, 코치.”

“거기에 나와 있던 대로, 안마받는 순서는 먼저 연락 온 순서대로 정한 거야. 뭐 이 부분에 대해서라든가, 아니면 다른 부분에 불만 있는 사람 있어?”

선수들은 천천히 서로를 둘러보다, 이내 그 시선들은 한 명에게로 집중되었다. 이번 일정에 가장 많은 불만을 내비쳤던 폴 레이즌이었다.

“…왜? 왜 다들 나를 쳐다봐?”

“어제 비행기에서도 그 난리를 피웠으니까?”

세드릭의 말에 폴은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뭐, 나도 반성을 좀 했다구. 그 안마사가 우릴 오라 가라 한 건 아직도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뭐 어떻게 해.”

“흐음…….”

“왜, 아직도 못 미더워?”

“아니, 네 입에서 상식적인 소리가 나오니 이상해서.”

세드릭의 말에 팀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상황에 폴은 순간 발끈하는 기색을 내비쳤으나… 이내 손을 젓더니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나라고 맨날 문제만 일으키는 건 아니라고. 이번에 공지도 바로 읽고 답장을 보냈으니까 말이야. 제 순번이 세 번째인가 그럴 텐데, 맞죠? 코치.”

“맞다.”

그것 자체가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것이나 같은 의미였다. 바로 튀어나온 에드윈의 대답에 팀원들은 재차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근데 자기가 머지않아 안마를 받으러 가는 걸 알고 있는 놈이, 아침 댓바람부터 술을 마시고 있어?”

“아이… 알았어요, 알았어.”

거듭되는 지적에 폴은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고는 앞쪽으로 스윽 밀어냈다. 잠깐 퍼포먼스에 불과하겠으나 적어도 나름의 리액션은 취한 셈이다.

“어쨌거나 선생님도 곧 준비가 끝나신다고 하니, 스태프들이 말하면 공지된 순서대로 안마받으러 나가면 된다. 내일 받는 사람들은 해산하고, 나머지는 지루하더라도 여기서 시간 좀 때우고. 이상이다.”

“옙, 코치!”

“알겠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말에는 적극적으로 호응을 해 주는 선수들이다. 그와 거의 동시에 자리가 해산되면서 다소 어수선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 * *

“첫 번째 순서는 세드릭이었던가?”

“맞아. 나야.”

“역시 모범생이구만.”

“그럼 갔다 와서 아픈지 안 아픈지 좀 말해 줘.”

“뭐? 야, 덩치값 좀 해라. 마사지가 끽해 봤자 마사지지. 다른 놈도 아니고 라인맨이 엄살을 부려?”

“난 마사지 받을 때마다 아픈 기억밖에 없었다고.”

“그럼 내 소감은 별 도움이 안 되겠는데? 나는 원래 이런 거 아무렇지도 않게 받는 편이거든.”

그런 말을 했었던 세드릭이다.

“어억… 어흐극… 끄허어업!”

세드릭은 머릿속이 고통과 희열로 새하얘진 상황에서, 불현듯 방금 전 동료들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마사지가 끽해 봤자 마사지 아니겠냐. 본인이 직접 말했던 내용이었다.

딱히 동료들 앞에서 허세를 부렸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는 고통이란 개념에 꽤나 둔감한 편이었고, 경기에서 부상을 입었을 때라든가 치과에서 치료를 받을 때조차도 비명 한번 질러 본 적이 없었다.

“선생님… 아니, 마스터! 살살, 살살 플리즈!”

허나 지금은 달랐다.

마치… 신경에 직접 자극을 때려 박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동안은 신경이 비활성화되어 있어 감각이 둔감했을 뿐이고, 이게 제대로 된 고통이라고 일깨워 주는 듯한 감각이었다.

“뭘 이 정도로 엄살인가.”

“어, 엄살? 진짜 아프다고요!”

“그럼 적당한 조치를 취해 주지.”

그와 동시에 쿡, 하고 등 윗부분을 누르는 지압.

허나 바뀐 것 없이 여전히 계속되는 고통에 한마디 더 말하려던 세드릭이었으나.

‘목소리가 안 나와?’

그제야 무슨 조치를 취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픈 것을 어떻게 해 준다는 것이 아니라, 비명을 지를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해 준다는 것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 일… 어으윽!’

거기에 놀란 나머지 벙쪄 버린 세드릭이었으나, 멍을 때릴 시간도 없이 지압이 들어와, 생각조차도 중간에 끊어져 버렸다.

‘확실히 군데군데 이상이 많군.’

한편, 한참 안마를 진행하고 있던 강태한.

이곳에서 처음으로 찾아온 선수의 몸 상태를 살피며, 그는 속으로 조그마한 탄식을 흘렸다.

캘리버의 몸을 처음 살펴봤을 때와 비슷하다.

장기가 뒤흔들릴 정도의 충격을 숱하게 받아 오면서, 혈도 자체의 균형이 흔들리고 군데군데 이상이 생긴 것이다.

물론 캘리버 정도의 수준은 아니고, 당장은 체력이 탄탄하여 이런 부분들을 지탱해 주고 있었으나…….

이대로 세월이 흘러 서서히 노쇠해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혈도에 문제가 생기며 끔찍한 말년을 보내게 되었을 것이다.

‘…아니, 이 정도면 십 년만 되도 문제가 나왔겠군.’

아마 다른 선수들의 몸 상태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강태한은 짤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그 한숨은 몸을 함부로 굴린 것에 대한 한심함의 표현이었지, 그들의 앞날에 대한 걱정과 우려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정도 증상은 충분히 강태한이 조치를 취해 줄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반쯤 폐인이 되었던 캘리버도 치료를 해 줬는데, 아직 증상이 나타나지도 않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어려울 게 없는 상황이었다.

“이쯤이면… 됐나.”

지압을 마치고 슬쩍 시계를 쳐다보는 강태한.

딱 삼십 분이 지나, 정확히 시간에 맞춰 안마를 끝낸 상황이다. 그는 엎드린 세드릭의 등 위에 다시 손을 올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음?”

수혈(睡穴)을 짚어 잠을 재우려던 강태한이었으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안마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남자는 의식의 끈을 놓아 버리듯이 기절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근육만 큼직하지 정신력이 약한 편이구만.”

강태한은 그렇게 한마디 평을 내리고는, 혈 자리 하나만 짚어 놓고는 불을 끄고 방을 나왔다. 세드릭은 손가락 하나 꼼짝 못 하고 쓰러져 있다가, 정확히 한 시간 뒤에 일어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 * *

그렇게 안마를 계속 이어 가고 있던 와중.

‘…적의(敵意)?’

다음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상대방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강태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쪽을 적대시하는 기운이 느껴졌던 것이다.

‘아는 사람인가?’

슬쩍 얼굴을 보니, 그것도 아니다.

강태한은 슬쩍 선수들의 프로필을 끼워 둔 파일을 꺼내 이름을 확인했다. 폴 레이즌. 이름을 봐도 딱히 짚이는 부분은 없었다.

“헬로우, 하하하! 반갑습니다, 선생님.”

한편, 폴은 해맑은 웃음을 흘리며 과장된 제스처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잔뜩 취한 사람처럼 혀를 굴리며 말하고 있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놈이군.’

저 남자가 술을 마신 것은 사실이다. 애초부터 술 냄새가 풀풀 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저 남자가 취해 있는 것은 아니다. 몸에 취기가 있기는 하다만, 정신이 흐트러진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취객을 행세하며 속으로는 이쪽에 적대감을 품고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일단, 여기에 엎드려 보시죠.”

대체 무슨 상황일까.

이해는 가지 않는다만, 사실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무슨 일로 이러는 건지, 나름 흥미가 생길 정도였으니까.

강태한은 좀 더 상황을 지켜보려는 심산으로 옆에 마련된 침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뭐?”

다만 그 순간, 폴은 눈살을 찌푸리며 언짢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고는 강태한에게 삿대질을 하며 한층 더 커진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뭔데 나를 누워라 마라야? 이 빌어먹을 아시안 새끼. 너, 사람 오라 가라 할 때부터 짜증났다고!”

그와 동시에 휘둘러지는 주먹.

저 대사는 연기가 아닌 모양이다. 꼬부라지던 발음은 사라지고, 짜증이 잔뜩 섞인 와중에도 또박또박 발음을 했으니까 말이다.

‘흐음.’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남자의 주먹은 강태한의 손목을 노리고 있었다. 강태한은 남자가 내민 주먹을 향해 그대로 천천히 손바닥을 뻗어 냈다.

상대의 주먹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

그 힘의 방향을 돌려, 상대방의 혈도로 직접 흘려보낸다. 비록 단순한 타격에 실린 힘이었을지라도, 섬세한 혈도를 안쪽에서 찢어 발기기에는 충분하다.

여기까지 지나간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

평소대로라면, 이대로 충격을 깊숙이 흘려보내 상대방을 폐인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혈도를 타고 하단전이나 상단전으로 보내는 걸로 충분하니까 말이다.

‘나도 사람이 많이 좋아졌단 말이지.’

강태한은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남자의 주먹을 감싸 쥐어 고정시켰다. 그리고 혈도를 타고 흘러가던 힘의 방향을 나선형으로 비틀어 그대로 흘려보냈다.

“어어……?”

찰나의 순간이다.

남자는 앞으로 휘둘렀던 자신의 팔이, 주먹에서부터 점점 회오리처럼 비틀려 가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 비틀림이 어깨까지 올라오는 순간.

그의 육중한 몸이 순간 부웅, 하고 떠오르더니 한 바퀴 돌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본인도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 폴은 엉거주춤하게 착지한 자세로, 한동안 멍하니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폴은 뒤늦게 상황을 이해하고는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 내 팔, 내 팔!”

몸이 붕 떠올라 한 바퀴 도는 동안, 강태한의 손에 잡혀 있던 그의 주먹과 팔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그대로 고정되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