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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55화 (255/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55화

“네. 헬리콥터요. 혹시 별로 안 좋아하시나요?”

“아니, 별로 안 좋아하고 자시고…….”

리겔의 말에 강호연은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무언가의 호불호에 대해서 알려면, 일단은 경험을 해 봐야 한다. 그래야 자기가 그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헬리콥터는 강호연에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비행기도 이번이 두 번째인데, 핼리콥터를 타 봤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애당초 헬리콥터를 타 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게 뭔지는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지만, 일반인이 직접 타 볼 일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근데 갑자기 헬기를 타고 이동하겠냐고 물어보니.

좀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고나 할까. 강호연이 저도 모르게 벙쪄 버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비교적 상식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흠. 아버지, 뭐로 가실래요?”

이전에 헬리콥터를 타 본 적이 없는 것은 강태한 또한 마찬가지. 다만, 그는 평소와 같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물어볼 뿐이었다.

“글쎄… 헬기라니까 좀 신기하기는 한데…….”

강호연은 슬쩍 앞에 서 있던 수행원, 리겔을 쳐다보며 말을 흐렸다. 그와 눈을 마주친 리겔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면서 입을 열었다.

“뭐, 빠르기는 헬기가 더 빠르겠습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리무진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승차감은 땅에 붙어 가는 편이 좋지요.”

“그렇다는데요?”

“…여, 역시 그렇겠지?”

강호연은 수긍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헬리콥터에 호기심과 미련이 남아 있기는 했으나, 그보다는 처음 겪어 보는 무언가에 대한 망설임이 조금 더 앞서는 상황이었다.

“그럼, 리무진으로 가자꾸나.”

“들으셨죠? 그렇게 진행해 주세요.”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옅은 미소를 짓는 강태한.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탑승하러 가시죠.”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리겔은 곧바로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앞장서듯이 앞으로 걸어갔다.

“퍼스트 클래스에… 헬리콥터에……”

그렇게 뒤를 따라 걷고 있던 와중.

한동안 말없이 벙쪄 있던 강호연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러고는 강태한을 쳐다보며 물었다.

“널 초대한 곳이 헤비나이트라고 했었나?”

“헤비나이츠요. 마이애미 헤비나이츠. 미국 동부 쪽에 있는 미식축구 팀이에요.”

“아아, 그래그래.”

강태한의 말에 강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감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거기가 생각보다 대단한 곳인가 보네. 그냥 손님 접대에 클래스부터가 다르고 말이야.”

“원래는 어느 정도로 생각했었는데요?”

강태한이 되묻자, 강호연은 손으로 턱을 짚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글쎄… 대충 KBO 야구 팀 정도……?”

“하하하. 말 그대로 기대 이상이셨겠네요.”

아버지의 말에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는 강태한.

그렇게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며 리무진에 올라 호텔까지 편안한 이동을 시작했다.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 거의 버스만 한 리무진 크기에 강호연이 놀라 벙찌는 일이 한차례 더 있었지만 말이다.

* * *

“…으음.”

한편, 한참 비행 중인 또 다른 비행기.

널찍한 좌석에 누워 있던 흑인 남자는, 방금 막 잠에서 깨어났는지 침음을 흘리며 눈가에 씌워 뒀던 안대를 벗었다.

“지금 얼마나 왔나?”

“꽤 많이 온 것 같은데. 대충 보니까… 음, 도착까지 이제 한 삼십 분?”

“아직도? 끄응.”

그는 앓는 소리를 내고는, 천천히 들어 올리던 머리를 다시 의자에 털썩, 하고 기댔다. 그의 목소리에는 대놓고 불만스러운 기색이 담겨 있었다.

“아, 진짜. 마사지 하나 받자고 우리가 단체로 미국을 횡단하는 거, 이게 맞는 거야?”

결국 그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한마디를 꺼내 놓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오늘만 벌써 열 번 넘게 한 소리였다.

“폴, 벌써 끝난 이야기잖아. 감독님이 따로 지시해 놓은 사항이니까 안 갈 수도 없는 거고.”

“그렇지. 그래서 더 마음에 안 들고!”

팀원의 말에 남자, 폴 레이즌은 좌석의 팔 받침대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한층 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마치 웅변이라도 하는 말투로 말했다.

“상식적으로 한 명이 마사지를 하러 오는 거랑, 스무 명 남짓이 마사지를 받으러 가는 거. 둘 중에 뭐가 더 합리적인 그림이야?”

그가 탑승하고 있는 비행기는 마이애미 헤비나이츠의 구단 전용 여객기였고, 내부에 타 있는 이들은 모두 헤비나이츠의 선수들이거나 스태프들뿐이었다.

비록 전용기를 활용한 이동이기는 했으나, 이 정도면 꽤나 대규모 이동이다.

그리고 폴은 이 부분이 불만이었다. 고작 마사지 하나 받자고 단체로 이렇게 이동을 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뭐 폴 말이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맞아. 좀 요란 떠는 느낌이 있기는 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폴 하나만은 아닌 듯, 그의 말에 동조의 목소리들이 하나둘씩 올라왔다. 그러자 폴의 앞좌석에 앉은 남자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우리 대머리 감독님이 요란을 떠실 만도 하지. 너희도 봤잖아? 캘리버가 멀쩡히 걸어 다니고 벤치프레스 하고 있는 영상.”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덴버정이었던가. 한국으로 떠난 이후로 볼 수 없었던 캘리버는,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처럼 멀쩡해진 모습으로 왓튜브 영상에 등장했다.

끔찍한 부상 이후 도통 말이 없었던 스포츠 스타의 새로운 소식. 사실 공식적으로 이야기가 나온 적은 없었으나, 그동안 그가 재기 불능의 상태였다는 것은 팬들 사이에도 퍼져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헌데, 그랬던 그가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영상에 나와 근황을 전하더니, 운동도 하고 관광도 하고 신난 얼굴로 먹방까지 한다.

그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에 미식축구 팬들은 환호와 응원을 보냈고, 헤비나이츠의 동료 선수들은 경악했다. 그의 몸 상태를 직접 지켜봤었던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말이다.

“듣자하니 캘리버를 치료해 준 게 그 안마사라고 하더만. 이러면 감독님이 기대를 품고 우릴 보낼 만도 하지. 그렇지 않겠어?”

꽤나 설득력이 있는 정론이다.

허나 그렇다고 모두가 납득을 하는 것은 아니다. 폴은 팔짱을 끼며 여전히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환자들만 따로 보내든가. 아무튼 나는 마음에 안 들어. 곧 시즌 오픈인데, 굳이 이런 중요한 시기에 이렇게 단체로 돌아다니는 게 맞냐고.”

“뭐…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고.”

“애초에 나는 그 안마사 놈이 어이가 없어. 자기가 뭔데 사람을 오라 가라야?”

계속해서 이어지는 투덜거림. 그 반복되는 상황에, 조용히 듣고 있던 다른 팀원이 참다못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헤이, 폴. 너 요즘 왜 이렇게 지랄 맞게 구냐?”

단번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요즘 틈만 나면 투덜거리기나 하고. 보고 있으면 네 살짜리 애새끼보다도 참을성이 없어 보인다고.”

“뭐? 지금 뭐라고 했어?”

폴은 그 말에 발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포지션은 쿼터백이었으나, 타고난 거구와 라인맨 못지않게 우락부락한 몸은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가하기에 충분한 수준이었다.

“좀 어른처럼 행동하라고, 인간아.”

허나 상대방도 한 근육질 하는 미식축구 선수다. 그 또한 그런 위압감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할 말을 이어 나갔다.

“이번에 캘리버 복귀 각 보여서 다시 엘리트 쿼터백 자리 뺏길까 봐 불안한 거 잘 알겠고, 그 안마사가 못마땅하게 보이는 것도 알겠는데, 주변 분위기까지 개판 만들어 놓지는 말라고. 알겠…….”

퍼억!

그다음 순간, 묵직한 타격음이 남자의 말을 잘라 냈다. 폴의 주먹은 예고도 없이 앞으로 뻗어져 나가 남자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허, 쳤어?”

다만 주먹을 맞은 것은 의자다. 주먹이 뻗어지는 순간, 잽싸게 몸을 일으켜 피한 덕분이다.

“너 이 새끼, 사람 치는 버릇 아직 못 버렸구나?”

“그러니까 누가 주둥이 함부로 놀리래?”

“그만! 왜 이래, 둘 다?”

“싸울 거면 내려서 싸워! 비행기 안에서 뭐 하는 짓이야? 이거 테러야, 테러!”

결국 팀원들 모두가 일어나 양쪽을 붙들어 말렸다.

근육질 우락부락한 두 남자의 살벌한 대립이었으나, 말리는 이들도 미식축구 선수들이다. 그들은 곧바로 찢어져 가장 멀리 떨어진 좌석으로 분리되었다.

“마이클! 네가 짜증난 것도 이해는 하지만, 말이 너무 심했어. 과장된 억측이나 하고, 같은 동료에게 할 말은 아니었잖아?”

“…하아. 그래, 그렇긴 했지.”

중재를 하는 남자의 말에 마이클은 고개를 끄덕였다. 발끈하기는 했으나, 본인의 행동이 그리 잘난 게 아니라는 것도 스스로 알고 있었던 탓이다.

“폴, 너도! 뭐 불만이 있으면 감독님한테 말하거나 거기 안마사한테 직접 말할 것이지, 팀원들에게 자꾸 툴툴거린다고 바뀌는 게 있어?”

“알았어, 알았다고…….”

폴은 머리를 쓸어 만지며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정말로 납득을 했다기보단, 그냥 대답을 해서 상황을 넘어가려 하는 반응이었다.

‘안마사한테 직접……?’

다만 그 순간.

폴은 방금 들었던 말에서 영감을 얻었다. 안마사와 직접. 그는 머릿속에서 그 부분을 수차례 곱씹었다.

‘맞아… 그러면 되지.’

캘리버의 복귀를 그리 탐탁찮게 생각하는 것.

중간에서 중재를 하던 동료는 그 말을 과장된 억측이라고 했으나, 그 말은 억측이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캘리버의 복귀를 경계하고 있었으니까.

미식축구에는 각자의 포지션들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고 눈에 띄는 포지션은, 두말할 것 없이 쿼터백이다. 미식축구의 알파이자 오메가라는 말이 과언이 아닌 것이다.

허나 경기장에 설 수 있는 쿼터백은 단 한 명뿐이다. 그렇기에, 그동안 캘리버가 활약하면 활약할수록 폴이 경기장에 설 기회는 눈에 띄게 줄어 갔다. 먼저 팀에 자리를 잡은 것은 폴이었음에도 말이다.

허나 지난번 시즌 막바지에서, 캘리버는 부상을 입고 사실상 재기불능의 판정을 받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심 기뻤다.

팀의 엘리트 쿼터백 자리가 비었으니, 그 자리는 자연스레 그의 차지가 될 터였으니 말이다. 실제로 이번 준비 기간 동안의 훈련들은 그가 메인 쿼터백이라는 전제하에 진행되었고 말이다.

헌데 그런 와중에 완치가 되었다?

그걸로 모자라 이번 시즌에 복귀까지 가능하다?

당연히 거슬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괜히 예민하게 굴던 것도, 아직 만나 보지도 못한 안마사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적어도 그의 작은 그릇에 있어서는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기회일 수도 있겠어.’

그가 알기로, 캘리버의 몸 상태는 아직 완치된 것이 아니다. 운동도 하고 관광도 할 정도로 회복은 되었으나 아직 예전의 몸 상태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물론 확실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아직도 미국에 돌아오지 않고 한국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회복에 있어 뭔가 진행이 덜된 부분이 있어 그런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 안마사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 안마사가 안마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자연스레 캘리버도 회복이 지연될 것이다. 지극히 쉽고 단순한 계산이었다.

“…그러니까 폴, 어차피 여기까지 온 거, 너도 좀 분위기 맞춰서 편안하게 좀 가자고. 알겠지?”

“알았어. 미안해. 내가 너무 예민했나 봐.”

“…어? 뭐라고?”

동료의 말에 곧바로 튀어나오는 사과.

그러자 오히려 동료가 벙찐 반응을 보였다. 까탈스럽던 놈이 순순히 사과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진 탓이었다.

“내가 예민했다고. 사과할게. 미안해 모두.”

“어… 어, 그래.”

가장 문제였던 놈이 사과를 하니, 상황은 순식간에 진정되었다. 다만, 다들 좀 어리둥절할 뿐. 그 어리둥절한 상황 속에서 폴은 혼자서 생각에 잠겼다.

‘팔 하나 정도 부러뜨려 놓으면 될까.’

사람을 패 본 적은 많다.

그리고 본인 정도의 힘이라면 성인 남자의 팔뚝도 마음만 먹으면 꽤나 쉽게 부러트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흐음.”

폴은 창가를 내다보며 옅은 침음을 흘렸다. 방금 전까지 불만이 가득했던 모습과 달리, 희미하게 미소가 드리워진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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