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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53화 (253/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53화

“정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한편 그렇게 슬슬 뒷정리까지 거의 끝나 갈 때쯤.

누군가 다가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가장 직급이 높아 보이는 승무원이었다.

“덕분에 큰 이상 없이 마무리가 되었네요.”

“아닙니다. 저 혼자 한 것도 아니었는데요.”

그녀의 말에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그저 빈말이 아니라는 듯, 방금 전 현장 쪽을 가리키며 덧붙이듯이 말했다.

“처음 그쪽에서 응급조치를 잘해 주고, 현장 분위기도 침착하게 잘 유지해 주신 덕분이죠.”

“후후… 아닙니다. 그거야말로 저희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인데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공을 나누는 강태한의 말. 그 말에 승무원은 손을 저으며 고개를 저었으나, 그러면서도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묻히기 쉬운 본인들의 노고를 알아주는 말이었으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뭐 제가 더 할 건 없나요?”

“예. 남은 절차가 좀 있기는 하지만, 이제 저희 쪽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강태한. 그녀는 그 반응에 마주 미소로 답하고는, 재차 확인하듯이 조심스레 질문을 덧붙였다.

“환자분의 식사는 죽으로 최대한 따뜻하게, 커피와 술은 되도록 삼갈 것. 이상이 선생님이 따로 말씀하셨던 주의 사항, 맞으실까요?”

“네, 맞습니다.”

몸의 기운이 허하니 차가운 것은 삼가는 것이 좋고, 아직 장기들이 회복을 하고 있는 중이니 소화가 어려운 음식은 삼가는 것이 좋다.

커피와 술도 매한가지.

커피는 기본적으로 몸을 차갑게 하는 성질이 있고, 술은 몸이 취기(醉氣)를 해독하는 데 집중하게 만들어 회복을 더디게 만든다.

“아마 그 정도만 해 주시면, 다시 상태가 악화되는 일은 딱히 없을 겁니다.”

사실 이미 거의 완치를 시켜 놓았기에 어지간해서는 그럴 일이 없겠으나, 그래도 만약의 경우라는 것이 있기에 굳이 당부를 해 놓는 강태한이었다.

“알겠습니다. 다른 승무원들에게도 다시 한번 강조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빈말이 아니라는 듯, 인근에 같이 서 있던 다른 승무원에게 곧바로 눈짓을 보냈다. 지금 바로 전달을 해 놓으라는 의미였다.

“그건 그렇고, 일행분도 계신데 제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것 같네요.”

“일행이요? 아하…….”

그 말에 강태한은 슬쩍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참이었다. 그의 아버지, 강호연은 서너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그만 돌아가서 쉬어도 될까요?”

“예. 물론입니다.”

강태한의 말에 그녀는 곧바로 답을 하고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마치 교과서에서 옮겨 놓은 듯한 깍듯하고 정중한 인사였다.

“선생님의 도움에 저희 항공사와 승무원을 대표하여,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쪽도 고생하셨습니다.”

거기에 마주 인사를 보내는 강태한. 인사는 짧고 간결했으나, 마찬가지로 정중함이 담겨 있는 태도였다. 마지막 인사를 마친 강태한은 계단 쪽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강호연 쪽으로 걸어갔다.

“다 끝났냐?”

“예. 이제 올라가서 쉬면 된대요. 근데… 아까부터 왜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고 계세요?”

강호연은 싱글벙글하면서도 뿌듯해하는, 그러면서도 얼핏 살짝 음흉한 느낌도 나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그 표정 그대로 입을 열었다.

“아니, 뭐. 네가 이렇게 막 깍듯하게 인사를 받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더라고. 우리 아들이 훌륭한 일을 했구나… 하는 그런 느낌도 들고.”

그 말에 강태한은 아버지를 잠시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고는 덧붙이듯이 말했다.

“그런 생각만 하신 게 아닌 것 같은데?”

“하하하… 그렇게 티가 났나?”

“제가 안목이 좋거든요.”

강태한의 말에 강호연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크흠… 아니, 뭐. 둘이 같이 서 있는 게 그림이 좀 된다, 어울린다, 그런 생각을 했었지.”

“…에휴.”

강태한은 짧은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럴 거라 예상하고 있기는 했는데, 예상한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기에 도리어 어이가 없었다.

“이건 네 잘못도 있어. 일은 똑 부러지게 해도 연애 쪽에는 관심도 없으니, 내가 오죽하면 그러겠냐?”

“누가요, 제가요?”

한참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던 강태한은 자기 가슴팍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황당해하는 목소리였다.

“그럼 내가 아들이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아니… 저 여자 친구 있는데요?”

“…어? 그래?”

강태한의 말에 강호연은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아버지한테 말을 안 했었나?’

…생각해 보니 안 하기는 했었다.

비밀로 했다기보다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어서 말을 안 했었다. 자연스레 말할 만한 상황도 없었고, 뭔가 머쓱하기도 했고 말이다.

“누구, 아니! 어느 분이시니?”

“그… 하,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허나 지금도 말하기 머쓱한 것은 여전하다. 강태한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멋쩍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흐렸다.

* * *

한편, 강태한이 떠나고 난 이후의 현장.

“하아… 이게 이럴 수가 있나?”

이미 상황은 정리가 끝나 가고 있었으나, 한 남자는 여전히 답답해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보다 정확히는, 본인의 의문이 해소가 되지 않아 느껴지는 답답함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회복될 수 있느냔 말이야.’

그는 의료 장비들에 나와 있는 수치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기에 나와 있는 숫자들은 이 환자가 정상으로 되돌아왔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는, 그야말로 반가운 소식이다. 더 이상 환자가 아프지 않다는 뜻이었으니까.

다만 의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일어난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무언가 약을 썼는가?

아니다.

뭔가 의료적인 시술이 행해졌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환자 스스로 회복이 진행될 정도로 충분한 시간이 흘렀는가?

아니다. 그냥 그 한국인 남자가 한 일은, 환자의 등 위에 손 하나를 얹고 있었을 뿐이다. 적어도 그가 눈으로 보고 확인한 내용은 그게 전부였다.

‘장비들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남자, 맷 레이먼은 옆에 놓여 있는 장비들을 한차례 훑어보았다. 솔직히 말해 대단한 물건들은 아니다. 그냥 긴급 상황에 대비하여 기내에 갖춰 놓은, 말 그대로 응급처치용 장비들에 불과하다.

이것들로 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인 체크들뿐.

허나 그렇다고 여기에 나와 있는 수치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갖춰진 기능은 적지만, 그 기능만큼은 확실하다고 할까.

아니, 애초에 기계를 의심할 필요도 없다.

그냥 당장 눈앞에 멀쩡해진 환자가 있었으니까. 그는 아직도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으로 옆에 앉아 있는 맷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 먹었다는 약의 약효가 그제야 돌았다든가… 아니, 그래 봤자 아세트아미노펜이랑 아세틸살리신이잖아. 그걸로 나을 일이었으면 발작도 없었지.’

각각 소위 타이레놀, 아스피린으로 불리는 약물들이다. 상황이 벌어지기 전, 환자가 승무원에게 따로 부탁하여 받아먹었었다고 했었다.

허나 반대로 말하면 그게 전부다.

그리고 그런 기초적인 상비약들이, 이렇게까지 기적적인 약효를 냈을 거라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적어도 본인이 직접 확인했던 대로는 그러했다.

‘안마사라고 했었나…….’

여기에는 자기가 모르는 뭔가가 작용을 했다.

웨일 코넬의 의과대학 교수, 맷 레이먼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몇 번이고 환자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으나, 그렇게밖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한번 진지하게 연구를 진행해 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머릿속에서 예전에 읽은 적이 있었던 논문 몇 개가 스쳐 지나갔다.

‘공항에 도착하면, 꼭 연락을 해 봐야겠어.’

그러면서 그는 품속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들었다.

상황이 막 끝났을 무렵, 그 동양인 안마사에게 받은 명함이다. 당연히 한글로 적혀 있었기에 내용을 제대로 읽을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숫자로 적혀 있는 전화번호 정도는 읽는 데 문제없다.

“저… 선생님.”

그러던 와중, 생각에 잠겨 있던 그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다름이 아니라 방금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오른쪽 팔뚝을 내밀고 있는 환자의 목소리였다.

“이거 언제까지 내놓고 있어야 합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한 번만 더 검사해 봅시다. 아직 확인해 볼 게 조금 남았어요.”

물론, 거짓말이다. 남자는 이미 완치가 된 상황이었고, 확인해 볼 내용 같은 건 이제 더 이상 없었다.

다만, 이렇게 해서라도 이 의문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고 싶은 것이 맷 레이먼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 * *

“이번 올림픽도 이제 다 끝나가는구만…….”

강가의 갈대밭 사이에 드러난 평평하고 마른땅.

그곳에 의자를 놓고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황 실장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한가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그의 앞에는 낚싯대 하나가 줄을 드리운 채 고정되어 있었다.

“이제 곧 폐막식이었지?”

“맞아. 며칠 안 남았어.”

“이번 올림픽은 확실히 좀 떠들썩했네. 다 같이 응원도 하고, 술집 같은 데서도 자주 틀어 주고.”

김성훈은 요 며칠간을 되돌아보듯 슬쩍 하늘을 쳐다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번 올림픽은 환호하고 열광하던 순간들이 다른 때보다 훨씬 많았다.

“완전 축제 분위기였으니까.”

“사실 그럴 만도 했지. 메달 상황을 한번 보라고. 매일같이 메달 결정전에 명경기들이 터져 나오는데, 안 들뜨게 생겼나.”

기사를 읽고 있던 황 실장의 화면에는 마침 지금까지의 메달 집계가 나오고 있었다.

“캬. 대한민국이 무려 3위다, 3위.”

1위와 2위는 언제나 그렇듯이 미국과 중국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란 글자와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비록 근소한 차이이기는 하지만, 이번 개최국인 호주보다도 높은 순위인 것이다.

88년 서울올림픽에서 기록했었던 4위.

여태 동안 그것이 대한민국의 역대 올림픽 최고 순위였었는데, 무려 3위를 달성하고 그 기록을 갱신해 냈던 것이다.

말하자면 홈그라운드에서 뛰었었던 때보다도 이번 올림픽에서 더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고나 할까.

이러니 사람들이 열광을 안 할 수가 없다.

뉴스에서는 역대 올림픽 최고 순위가 갱신될지도 모른다고 떠들고, 선수들의 경기력은 해당 종목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재밌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으니까 말이다.

“요 며칠간 진짜 재밌게 보긴 했는데.”

“넌 그거 때문에 손님 기다리게 한 적도 있잖아. 그, 뭐 할 때였더라. 태권도였었나?”

“아이, 누가 들으면 일부러 그런 줄 알겠네! 그냥… 탈의실에서 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시간이 훅 지나가 있었을 뿐이라고.”

옆에 앉아 있던 황태진이 한마디 던지자 김성훈이 발끈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황태진이 얕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누가 들어도 변명으로 들리는 말인걸.”

“그야 그렇지… 하지만 금메달 한일전, 그것도 태권도 한일전인데 그걸 어떻게 안 보냐고.”

“하하, 뭐 말하는 건지 알 것 같네. 그때 그 경기 재밌기는 했었지. 나도 카운터에서… 어어!”

투정을 부리듯이 툴툴거리는 김성훈.

그 모습에 황 실장은 피식 웃음을 흘리다, 갑자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낚싯대를 붙잡았다.

“야, 이거 크다, 꽤 크다!”

“뭐 어떻게, 도와줘? 같이 당겨 줘?”

“아냐아냐, 뜰채! 뜰채나 가져와 봐!”

꽤나 묵직한 손맛이 범상치가 않다.

한동안 끙끙거리며 낚싯대를 당기는 황 실장. 그 모습에 김성훈과 황태진도 옆에서 덩달아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올라왔다, 올라왔어!”

그리고 마침내 물 위로 올라온 물고기.

난리법석을 피운 만큼 기대를 하고 뜰채를 내민 김성훈이었으나.

“…이거 잡으려고 그 법석을 떤 거야?”

“아니… 손맛은 꽤 묵직했는데 말이지.”

정작 뜰채에 담긴 것은, 빈말로도 월척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만한 크기였다. 황 실장은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고는 괜히 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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