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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52화 (252/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52화

‘응급환자가 발생한 건가.’

강태한은 잠시 눈을 감고 아래층의 좌석 쪽까지 기감을 확장시켰다. 확실히, 웅성거리는 소란이 있다. 자세한 내용까지 살펴볼 수는 없었으나 뭔가 이상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흐음…….’

상태가 심각한 것인가?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어지간한 상황이라면 승무원들이 자체적으로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열 시간이 넘는 비행 중에 몸이 불편해지는 사람이 한두 명은 아닐 것이고, 그에 상응하는 대비책들도 마련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의료업 종사자가 아니라 비슷한 업계에 종사하시는 분 혹은 어느 정도 응급조치가 가능하신 분이어도 괜찮습니다! 안 계실까요?”

그렇게 잠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승무원이 덧붙이듯이 재차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뭐라도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 모양이다.

어떻게 할까.

강태한의 생각은 그리 길지 않았다.

“괜찮다면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민할 바에는 먼저 몸을 움직이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에는 더 도움이 된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저… 실례지만, 승객님은 어느 일을 하시고 계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강태한이 복도로 나와 말하자, 앞쪽에 서 있던 승무원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강태한은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안마사입니다. 본격적인 의료 행위는 힘들겠지만, 근육통이나 경련 같은 물리적인 증상들은 어느 정도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겁니다.”

딱히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건 자격증이 있는 안마사들이라면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었으니까.

일종의 물리치료가 가능하다고 할까. 애초에 교육과정과 추구하는 방향이 다를 뿐이지, 물리치료사와 안마사는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안마사…….”

한편, 강태한의 말을 들은 승무원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만 그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고민은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것이고, 지금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이내 판단을 마치고, 스스로 결단을 내리듯 한차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현재 이코노미석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했는데, 일단 같이 내려가서 환자분의 상태를 좀 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그럴 마음이 아니었다면 나서지도 않았으리라. 그녀의 말에 강태한은 즉각 대답했고, 승무원은 앞장서서 계단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언니, 환자분 상황은 어때요?”

“그대로야. 너는? 조력자분은 계셨어?”

“네. 다행히요. 다른 곳은요?”

계단으로 내려가자, 승무원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있었다. 그들은 뒤쪽에서 나타난 강태한의 모습을 보더니 내심 안도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지금 비즈니스 쪽에서 의사 선생님 한 분이 와 주셔서 조치를 하고 계시기는 하셔.”

“정말이요?”

다른 승무원이 상황을 말해 주자, 그 말을 전해들은 승무원이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강태한의 호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의료인이 있는 쪽이 안심이 될 수밖에 없다.

“뭘 안심하고 있니? 상황은 그대로라고 했잖아.”

“아… 그러셨죠, 참.”

다만, 거기서 뭔가 진전이 있었다면 아직까지 분위기가 이렇게 분주했을 이유도 없다.

후배에게 짧게 한 소리 한 그녀는, 이내 강태한에게 다가와 인사와 함께 말을 건넸다. 공손하면서도 서두르는, 그런 묘한 말투였다.

“원래라면 좀 더 제대로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바로 이동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예.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강태한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짧은 감사 인사와 함께 앞장서서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승무원들이 머무르는 공간을 지나 커튼을 열고 복도로 나오니, 가장 먼저 복도에 대자로 누워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상태가… 안 좋기는 하군.’

일단, 안색부터가 하얗다. 이 창백한 얼굴을 보면 굳이 기감을 펼쳐 보지 않아도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말이다.

“다른 조력자분이십니까?”

강태한이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는 와중, 그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남자가 살짝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금발이 눈에 띄는 백인 남성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오, 신이시여, 정말 다행입니다! 환자 증상이 제 분야가 아니라서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상황이 워낙에 열악하기도 하고요!”

남자는 이제야 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듯, 반가움과 다급함이 섞여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마에 땀까지 맺혀 있는 것이 괜히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물론 비행기 내에서의 긴급 상황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설비가 아쉬울 수밖에 없네요.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는 정도가 고작이니까요. 제가 응급실 근무 경험이 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그동안 말을 쌓아 놓고 있었던 걸까, 그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해서 불안감을 덜어 내려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렇다고 그가 이 상황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환자의 땀을 닦아 내고, 이것저것 기구들을 다루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발작 증세는 진정이 된 것 같은데, 정작 바이탈 사인들은 아직 내려오질 않고 있어서요. 미세한 경련도 있고, 언제 다시 발작이 일어나도…….”

남자는 계속 손을 움직이는 동시에 이것저것 말을 하고 있었다.

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알아듣기 힘들다.

남자는 드문드문 의학적인 용어들을 섞어 말하고 있었다. 영어 실력이 상당히 늘어 자연스러운 회화에 무리가 없는 강태한이었으나, 아무리 그래도 이런 대화까지 전부 알아듣기에는 무리가 있다.

“저도 환자분 상태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아, 물론입니다.”

그렇기에 강태한은 어느 정도 선에서 그의 말을 잘라 내고는 슬쩍 앞으로 다가갔다. 본인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이미 다 취해 놓은 상태였기에, 남자는 흔쾌히 강태한에게 자리를 비켜 줬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얼마든지 말씀하시죠.”

“예. 감사합니다.”

남자의 친절에 강태한은 간단한 말로 대꾸를 한 뒤, 환자의 목덜미에 조용히 손을 짚었다. 그것만으로도 맥박, 호흡, 체온 같은 기초적인 부분들은 모두 파악할 수 있다.

‘흐음…….’

그다음에는 혈도를 통해 기감을 펼치고, 세부적인 사항을 확인한다. 이윽고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가 있는 부분을 확인한 것이다.

‘선천적으로 풍문(風門)혈이 허약하구만.’

안쪽 등에 자리하고 있는 풍문혈은, 바람의 문이라는 그 이름처럼 외부와 내부의 기운이 활발하게 오고 가는 대표적인 순환혈이다.

순환혈 자체는 몸 곳곳에 꽤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른바 정문 같은 느낌이랄까.

이곳의 기운이 강하고 억세면 어지간한 환경에서도 쉽게 적응하고, 반대로 이곳의 기운이 약하고 허하면 약간의 환경 변화에도 몸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전에도 좀 추워하지 않으셨나요?”

“네. 담요도 추가로 요구하시고, 음료도 따뜻한 걸로만 드시더라고요. 기내식도 다시 데워 달라고 하셨고요.”

강태한이 넌지시 묻자, 가까운 곳에 서 있던 승무원 한 명이 답했다.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식사를 하신 직후부터 몸 상태가 악화되신 것 같고요.”

“네, 맞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풍문혈은 외부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지만, 내부의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막아 주는 역할 또한 함께 수행한다.

헌데, 이 남자는 야근이라도 하고 왔는지 원래부터 허약한 풍문혈이 더욱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안 그래도 비행이라는 급격한 환경 변화를 맞이한 상황에서, 이렇게 풍문혈이 제 역할을 못 해 주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체내의 생기는 줄줄이 빠져나가고, 외부의 기운은 멋대로 들락거리는 것이다.

그러니 점점 몸은 허해지고, 혈도의 생기는 서서히 혼탁해지고, 몸은 갈수록 추워진다.

안 그래도 힘든 상황인데 음식까지 먹었으니, 소화가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아예 기혈이 막혀 버리기 시작한 것이리라.

“제가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 그게 정말입니까!”

문제를 알았으니, 해결도 가능하다.

강태한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고, 그 말에 다른 의사가 기도를 하듯 손을 모았다. 주변에서도 안도의 기색이 흐르기 시작했다.

“저희는 뭘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주변에 서 있다가 조용히 협조 의사를 표하는 승무원. 다만 강태한은 대수롭지 않아 하는 말투로 답하고는, 환자의 등 위에 슬쩍 오른손을 얹었다.

검지와 중지는 양쪽의 풍문혈에 그리고 엄지손가락은 그 위쪽에 위치한 대추(大推)혈에.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내용으로는 말이다.

“저… 미스터?”

그 상태로 약 1분가량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강태한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다른 의사가 넌지시 말을 걸었다. 약간의 당황과 의아함이 실려 있는 그런 목소리였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니,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금 치료가 진행되고 있는 건가요?”

“네.”

남자의 질문은 조심스러웠지만, 강태한의 대답은 짧고 간결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자신감이 느껴지는 답변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전공 분야가 어떻게 되실까요?”

다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눈앞의 광경이 너무나도 기이했다. 그가 보기에는 그냥 환자를 옆으로 뉘여 놓고 등에다가 손을 얹어 놓았을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실례를 무릅쓰고 재차 건네는 질문.

강태한은 이번에도 담담한 말투로 질문에 답했다.

“전 안마사입니다.”

“…안마사요?”

안마사.

말 그대로 전문적으로 안마를 해 주는 사람.

남자는 머릿속으로 단어의 정의를 몇 번이나 다시 떠올렸다. 그러고 난 후에야 반응을 할 수 있었다.

“선생님을 존중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적절한 조치는 아닌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상황에서는…….”

무례를 저지르고 싶지는 않다.

허나 지금은 환자의 상태가 더 중요하다. 남자는 더 이상 방치해 둘 수 없다는 듯이 강태한 쪽으로 다가가 제지를 하려고 했다. 다만.

‘…혈색이 돌아왔다?’

그러던 도중에 그의 손이 멈춰 섰다. 다른 게 아니라, 새하얗게 창백했던 환자의 얼굴에 다시 혈색이 돌기 시작한 것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으응……?”

바로 그 순간, 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나른한 소리. 마치 낮잠이라도 늘어지게 자고서 일어난 듯한 목소리였다.

“뭡… 니까? 무슨 일 있습니까?”

그 목소리를 낸 것은 다름이 아닌 환자 본인이었다. 방금 전까지 셔츠가 풀어헤쳐진 채 바닥에 누워 있던 그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뭐, 뭐야! 왜 바닥에서 자고 있어? 셔츠, 셔츠는 또 왜 이렇고!”

그러다 이내 화들짝 놀라더니, 몸을 돌리고는 다급하게 셔츠의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 급박했던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 있었다.

* * *

환자가 의식을 차리자,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애초에 아픈 사람이 멀쩡해졌으니 더 이상 급박한 분위기가 이어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현장의 뒷정리를 돕고 있던 사이, 어느새 강태한의 옆으로 다가온 강호연이 넌지시 물었다. 처음엔 혹여 방해가 될까 봐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괜스레 걱정이 되어 슬쩍 내려와 본 것이다.

“일은 잘 마무리됐냐?”

“네. 별일… 이기는 했는데, 해결은 했어요.”

아버지의 말에 강태한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마냥 그냥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었다. 아마 그대로 방치했으면 남자의 기혈은 점점 쇠약해졌을 것이고, 더 큰 증상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었으니까.

다만 조치를 취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그냥 풍문혈의 기운을 보강해 주고, 체내의 혈도가 원활히 순환될 수 있도록 약간의 생기만 불어넣어 주면 끝나는 일이었으니까.

실제로 남자는 건강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히려 이게 무슨 봉변인지 어리둥절해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비행기는 이번이 두 번째라 잘 모르겠는데… 원래 이런 일이 자주 있나?”

“글쎄요… 영화나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자주 나오기는 하던데.”

강호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강태한도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강태한 본인도 비행기를 타 본 적이 별로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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