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251화
그로부터 며칠 뒤.
“저 왔어요.”
“응, 성현이 왔구나!”
최성현이 신발을 벗으며 인사를 건네자, 주방 안쪽에서 그를 반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듣는 듯한 어머니의 목소리. 그리고 집안 가득히 퍼져 있는 음식 냄새에 최성현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왜 또 힘들게 아침부터 요리를 하고 있으신가?”
“너 온다는데 맨밥 먹일 수는 없잖니! 그렇게 자주 오는 것도 아닌데, 이럴 때라도 해 먹어야지.”
“저번 달에도 왔었잖아. 내 참, 누가 들으면 어디 무슨 군대라도 갔다가 돌아온 줄 알겠네.”
최성현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으나,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부모님이 반겨 주는 것을 진심으로 싫어할 자식은 없지 않겠는가.
“음… 갈비찜이랑, 생태탕인가?”
“어머, 어떻게 그렇게 딱 맞추니?”
냄새를 맡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요리를 맞춰 보자, 이제 막 거실로 나온 어머니가 손뼉까지 치며 신기해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 반응에 최성현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엄마 요리 냄새 정도야 당연히 맞추지.”
사실 냄새를 맡지 않았더라도 저 두 메뉴는 맞췄을 것이다. 어머니의 요리 중에서 최성현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는 저 두 개였고, 그 때문인지 최성현이 밥을 먹으러 올 때마다 저 두 요리는 거의 항상 밥상에 올라왔으니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언제쯤 돌아갈 거니?”
“아냐, 이번에는 좀 오래 있을 거야.”
최성현은 자기 방의 불을 켜면서 대답했다. 정말 가끔씩만 들르는 방이었지만, 방에 있는 책상에도 먼지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분명 매일같이 청소를 하고 있는 것이리라. 사실상 아무도 쓰지 않고 있는 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말이니?”
한편, 최성현의 어머니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짙은 화색을 띠며 되물었다.
“얼마나 있을 건데?”
“한 일주일 정도?”
“정말? 웬일로 그렇게 오래 있니!”
아들의 말에 그녀는 대놓고 기쁜 반응을 보였다. 최성현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심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자기가 집에 오래 있었던 적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아버지, 저 왔어요.”
“음, 그래.”
한편, 짐을 내려놓은 최성현은 거실로 나와 아버지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그의 아버지, 최주헌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오는 길은 안 막히더냐?”
“예. 뭐… 막힐 이유가 없죠. 기차 타고 왔거든요.”
“그건 그렇구나.”
최주헌은 최성현 쪽으로 고개를 슬쩍 돌리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만큼의 눈에 띄는 반응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의 환영이었다.
“그래… 하고 있는 일은 계속 잘하고 있고?”
“네. 다행히도요.”
최성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어머니와의 대화와 비교하면 좀 딱딱한 느낌이었지만, 이것도 예전에 비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때는 아버지와 같이 있어 봤자 침묵, 꾸중 혹은 잔소리,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있었으니 말이다.
“그 뭐냐, 학원장인가 맡은 건 잘하고 있고?”
“솔직히 잘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못하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막상 해 보니 나름 보람도 느끼고 있고요.”
“그러냐.”
최주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자리를 잡아 가는 모양이구나.”
“그런 셈이죠. 실력도 많이 늘었고요.”
사실 집에 되도록 오래 머무르지 않았던 것도 아버지와의 대화를 피하려고 했던 탓이 컸다. 대화를 해 봤자 서로 마음만 상하고 이해를 못 할 테니, 애초에 대화를 피하는 게 상책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흐음…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하는 거냐?”
“그럼요. 이따 한번 보실래요? 오랜만에 아버지 허리도 한번 봐 드릴 테니까.”
다만 그것도 이제는 예전의 이야기다.
아직 조금 딱딱한 대화이긴 했으나, 그래도 할 말도 하고 가벼운 농담도 꺼내는 최성현이다. 대화가 어려워서 피했던 것이 아니라, 대화를 피하다 보니 어려운 관계가 되었었다는 걸 깨달은 덕분이다.
“허허… 그럼 이따가 아들한테 안마 좀 받아 볼까?”
그런 최성현의 말에 최주헌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보다도 감정의 기색이 더 짙은, 입가의 주름이 선명하게 박히는 함박웃음이었다.
“근데, 학원까지 따로 차릴 정도면 앞으로 가게를 더 늘린다는 뜻인 거냐?”
“그렇죠. 사업적인 이야기는 잘 모르는데, 이미 다 계획이 굴러가고 있는 중인 모양이더라고요. 이번에 안마사들만 뽑으면 바로 시작할 거라나.”
“사실상 계획은 다 잡혀 있는 모양이네.”
“듣기로는 호텔 쪽이랑 협업을 한다고 했었나. 내주기만 한다면 돈이나 가게 자리나 다 알아서 해 준다고 했대요. 뭐, 저는 잘 모르는 이야기지만요.”
“오호… 그건 대단하구나.”
최성현의 말에 최주헌은 짧게 감탄을 터트렸다. 그 또한 사업체를 굴리는 사람이다. 사업을 한다는 게 얼마나, 특히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할 무렵에 얼마나 많은 힘이 드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자세한 내용은 모르고, 아직 성공했다고도 보기 힘든 상황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전해 들은 내용만 봐도 꽤 제법이라 할 수 있는 수준인 것이다.
“태한이가 예전부터 똑 부러진 애 같기는 했지.”
최주헌은 기억을 더듬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것저것 바쁘게 살기도 하고.”
“그건 맞죠. 오늘도 미국으로 가던데.”
“미국? 미국은 왜?”
아버지의 되물음에 최성현은 손을 저으며, 별일 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대단한 일은 아니고, 그쪽에서 초청이 왔거든요.”
“미국에서 초청을?”
“네. 미식축구 프로 팀인데, 곧 시즌이 시작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전에 꼭 안마 좀 받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미식축구 프로 팀에서 말이지…….”
최주헌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으음, 생각보다 글로벌하게 다니는 모양이구나.”
뭔가,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커다란 스케일이다.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 했으나 그럼에도 그의 목소리에서는 당황한 기색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 * *
“이야… 이게, 이게 다 뭐냐?”
한편, 인천공항에 위치해 있는 프리미엄 라운지.
이제 막 안으로 들어온 강태한의 아버지, 강호연은 끌고 다니던 캐리어마저 손에서 놓아 버린 채 깜짝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감탄이라는 감정을 최대한 표현해 내면 이런 얼굴이 되지 않을까, 싶은 표정이었다.
“공항 안에 호텔이 있네…….”
안에는 두꺼운 칸막이로 분리되어 있는 공간이 열댓 개쯤 있었고, 그 안쪽에는 안락해 보이는 침대와 간단한 가구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공간도 널찍하고, 실내 인테리어는 물론 가구들까지 하나같이 고급스럽고 세련된 것이 얼핏 부담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그러게요. 잘되어 있네요.”
곧이어 아버지의 뒤를 따라 들어온 강태한도 솔직한 감상을 입에 담았다. 퍼스트 클래스 승객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 하여 나름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그 기대보다 훨씬 훌륭한 공간이었다.
“아까 여기까지 오면서 보니까 게이트 쪽에는 의자에도 자리가 없던데 말이야.”
강호연은 좀 멀리 떨어진 구석으로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거기에는 음료들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꽤 값이 나가는 코냑이나 위스키들도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었다.
“여기선 침대에 누워서, 그것도 술 한 잔까지 걸치면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거구만…….”
“왜요. 사치스러워서 싫으세요?”
강태한이 넌지시 묻자, 강호연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사치 싫어하는 사람도 있냐? 그것도 다른 사람이 자기 돈으로 해 준다는 건데.”
그는 껄껄 웃으며 덧붙이듯이 말했다.
이번 비행기 티켓은 강태한을 초청한 마이애미 헤비나이츠에서 준비한 것이다. 강태한이 찾았을 땐 하나도 보이지 않던 티켓이 거짓말처럼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잘난 아들을 둔 덕분에 들어온 선물인데, 그걸 내가 싫어할 이유가 없지.”
게다가 티켓의 등급은 사전에 이야기가 됐었던 대로 퍼스트 클래스. 솔직히 말해, 그냥 뿌듯할 뿐이다. 적어도 강호연에게는 그러했다.
“근데, 그건 그렇고 우리는 어디로 들어가야 되나?”
한편 그것과 별개로 강호연은 조금 머쓱해하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칸막이로 나뉘어져 있는 공간들은 각각의 내부 구조들도 달랐다. 어디는 침대가 두 개였고, 어디는 스타일러가 놓여 있었다. 널찍한 곳에는 대가족이 식사를 해도 좋을 정도로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아무데나 앉으면 되지 않을까요?”
다만 따로 공간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각자 마음에 들거나 필요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조성해 놓은 느낌일 뿐이다.
“그런가… 이것 참, 영 어색하기는 하네.”
“뭐,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 하잖아요.”
강태한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어디에 앉으실래요?”
“음… 그냥 가까운 곳에 앉을까? 침대도 두 개고.”
“좋아요.”
강태한은 강호연이 가리킨 곳으로 걸어가 짐을 내려놓았다. 강호연은 그 뒤를 따라 걷더니,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침대 위에 몸부터 던지듯이 눕혔다.
“우하.”
그리고 곧바로 그의 입에서는 만족감이 가득 실린 탄성이 터져 나왔다. 침대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편안했던 탓이다.
“아들 덕분에 호강을 하는구만.”
“뭐, 호강이기는 하네요.”
강태한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담담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딱히 생색을 낸다기보다는, 본인도 이런 서비스가 꽤나 마음에 들은 탓이다.
“이러다 버릇 잘못 들어 가지고 퍼스트 클래스 아니면 못 타게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하하하!”
비행기가 이륙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꽤 남았다.
허나, 이곳 프리미엄 라운지는 오히려 그 사실이 반갑게 느껴질 정도로 편안했다. 강호연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농담을 입에 담았고, 강태한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 * *
퍼스트 클래스 티켓의 서비스는 라운지 이용뿐만이 아니다. 사소한 부분까지, 예를 들어 비행기에 탑승하는 시간마저도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빠르다.
“…허허. 아까는 공항에 호텔이 있더니.”
그렇게 비행기에 올라선 두 사람.
스튜어디스의 친절한 안내와 함께 자리에 도착한 강호연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감탄을 터트렸다. 비행기 좌석이 방금 전까지 있었던 라운지 수준, 아니 그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비행기 안에 호텔이 있네.”
예전에 한번 제주도에 갔을 때 비행기를 탄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좌석이다.
그때는 무릎이 앞자리에 닿지 않을까를 걱정했지만, 지금은 자리에 누워서 두 다리를 쭉 펴고 있어도 끝에 닿을 수가 없는 수준이다.
“마음에 드세요, 아버지?”
“그래… 하하, 이거 오늘은 계속 놀라기만 하네.”
강호연은 머쓱한 표정을 짓다가도 함박웃음을 흘렸다. 이놈의 입꼬리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경험들이었다.
“그럼, 이따가 봐요. 바로 뒷자리니까 무슨 일 있으면 말씀하시고요.”
“그래, 알았다.”
아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이것저것을 살펴보는 아버지의 모습.
굉장히 만족스러워하는 그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강태한은 본인의 자리로 향했다. 아직 비행기는 출발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번 여행의 보람은 모두 만끽한 느낌이었다.
* * *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고.
“어어, 뜬다, 떠!”
비행기가 이륙할 때 앞자리에 계신 아버지의 목소리가 살짝 들려오는 헤프닝이 지나간 이후.
‘오래 걸리기는 하네…….’
코냑 한 모금을 마신 강태한은, 살짝 지루한 표정을 지으며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다.
서비스는 흠잡을 곳이 없다.
굉장히 희귀하고 만족스러운 경험이다.
특히 비행기에서 라면이, 그것도 갓 끓여져 꼬들꼬들한 라면이 그릇에 담겨 나오는 것은 지극히 서민적이면서도 지극히 사치스러운 경험이었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비행 자체는 지루하다.
지난번에 전용기를 타고 영국까지 갔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비행기에 있는 시간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딱히 운기조식을 할 만한 상황도 아니고 말이지.’
평소라면 지루할 틈이 없는 게 강태한이다.
일 자체도 바쁘게 돌아가지만, 시간이 남으면 남는 대로 내공을 가다듬는 데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설령 하루 종일 시간이 빈다고 해도, 내공을 정련(精鍊)하고 운용하는 데에는 오히려 시간이 부족하다. 수련이라는 것에 끝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이곳에서는 아무래도 여의치가 않다.
가만히 앉아 있다고는 하지만 기계에 몸을 실은 상태고, 그 기계는 하늘 높이 상공에서 비행하고 있는 상태다.
공기마저 희박한 성층권의 높이.
이런 곳에 영기가 풍부할 리는 당연히 없다. 애초에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만큼 불안정한 상태다.
물론 강태한의 경지라면 이런 곳에서도 운기조식을 행할 수는 있겠으나. 그건 하수구에서 수영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와 비슷한 이야기다. 가능은 하지만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음?”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와중.
문득 복도를 걷는 스튜어디스의 발걸음에 신경이 쏠렸다. 물론, 단순히 오고 가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 건 당연히 있는 일이니까.
다만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하나.
상대의 상태가 상당한 긴장 상태였기 때문이다.
“휴식을 취하고 계신 중에 죄송합니다만, 혹시 여기 계신 승객 분 중에 의료업에 종사하고 계신 분이 계실까요?”
아니나 다를까, 해당 스튜어디스의 목소리가 고요했던 퍼스트 클래스 기내 안에 울려 퍼졌다. 애써 침착하게 말하고 있기는 했으나,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숨길 수 없는 다급함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