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 안마하신다-250화 (250/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50화

한편, 서울 내 어느 백화점의 전자 제품 코너.

그것은 그곳에 소리 소문 없이 생겨났다.

“뭐지, 저건?”

“안마 의자 같은데? 신제품이라도 홍보하나 보네.”

바디케어의 매장 인근에 마련되어 있는 이벤트 코너.

나름 백화점 쪽에서도 기대를 하고 있는 기획인지, 이벤트장의 규모가 그리 작지는 않은 편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새로 나온 제품으로 추측되는 안마 의자들이 두 줄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바디케어면, 거기잖아? 더 마이스터 만들었던 곳.”

“아, 예전에 사람들 막 줄 서고 그랬었던?”

한때 바디케어 매장 앞에 사람들이 잔뜩 줄을 서 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더 마이스터가 이제 막 출시되고 안마 의자 열풍을 일으키기 시작했을 무렵, 그때 더 마이스터를 체험해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어 줄을 섰었던 것이다.

물론 출시되고 시간이 좀 지난 지금은 그 열풍도 많이 잠잠해진 상태였으나, 그래도 사람들은 당시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행사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관심이 몰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번에 나올 저희 바디케어의 신제품, ‘더 마스터’ 한번 체험해 보시겠습니까?”

그렇게 사람들이 기웃거리기 시작할 타이밍에, 그걸 놓치지 않고 직원들이 호객을 하기 시작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다가오는 프로의 접객. 그 덕분인지 하나둘씩 관심을 보이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더 마스터면, 더 마이스터 후속 제품인가?”

“그런 것 같은데… 근데 더 마이스터도 나온 지 아직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잖아.”

“그렇지. 할부 좀 길게 끊었으면 아직 할부도 안 끝났을 것 같은데.”

요 근래 안마 의자의 열풍을 일으킨 제품의 후속작.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적지 않게 모을 수 있었으나, 반대로 이를 불안한 부분으로 보는 시선들도 있었다.

“그러면 그냥 대박 제품 하나 나왔으니까 급하게 후속 제품 내놓은 거 아니야?”

“그런 느낌이겠지. 뻔하지 않겠어?”

딱히 기존 제품이랑 크게 달라진 것도 없으면서 가격만 살짝 올려서 내놓는 신제품들. 이런 경우는 심심찮게 볼 수 있으며, 특히 대박 제품의 후속작들은 이런 경우가 꽤나 많은 편이다.

여기에 개발 기간까지 그리 길지 않아 보였으니, 이런 말들이 나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거, 바로 이용할 수 있는 건가요?”

“물론이죠, 고객님! 앉으시기만 하면 저희가 바로 이용해 보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다만 그런 것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애초에 체험은 공짜이기도 하고 말이다.

몇몇 사람은 호기심이 어린 표정을 지으며 직원에게 다가왔고, 직원들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환대했다.

“혹시 고객님, 스마트폰으로 어떤 모델을 사용하고 계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스마트폰이요? 어… 에이폰 15 쓰고 있는데요.”

“어머, 너무 잘됐다. 사실 이번 제품 기능 중에 에이플러스랑 같이 협업해서 개발한 게 있거든요.

“안마 의자가… 에이플러스랑요?”

직원의 말에 남자는 짐짓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플러스와 안마 의자의 기술 협업이라니. 얼핏 듣기에는 조합이 좀 어색한… 마치 이태리의 파스타 회사에서 잔치국수를 새로 출시했다고 말하는 듯한, 그런 어색한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예. 고객님. 혹시 괜찮으시면 블루투스 연결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다만 직원은 자연스레 미소를 지으며 안내를 이어 나갔고, 남자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블루투스를 켰다.

“연결은 했는데… 이게 어떤 기능을 하죠?”

“아, 다른 게 아니라 선생님 스마트폰에 있는 헬스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안마 의자가 선생님에게 맞는 전용 안마프로그램을 따로 설계해 줍니다.”

“아… 그래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자에 머리를 기댔다. 직원의 말에 납득했다기보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적당히 흘려 넘길 때의 반응이었다.

‘또 그놈의 개인 맞춤 기능이야?’

전문가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남자는 비단 안마 의자뿐만 아니라 각종 건강 관련 전자 제품들에 나름 관심이 있고 구매도 많이 해 본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개인의 몸에 맞춰 기능이 달라진다, 맞춤형 설계다, 이런 이야기들은 딱히 신선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흔한 편에 속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결과는 대충 비슷했다.

그냥 있어도 없어도 별 차이가 없는 수준.

차이점이 조금이라도 체감이 된다면 그나마 선방을 했다고 볼 수 있고, 대부분은 이게 기능이 탑재되어 있기는 한지, 제대로 작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쓸모없는 수준에 불과했다.

‘벌써부터 김이 팍 새네.’

그런 의미에서, 이런 기능들을 언급하는 것은 오히려 기대감을 떨어트리는 일이었다. 적어도 이런 제품들에 몇 번 실망해 본 사람에게는 그러했다.

체험을 시작하기도 전에 기대가 빠져 버린 상황.

다만, 그 실망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으음?”

작동이 시작되고 등줄기를 타고 지압이 들어오는 순간, 그 첫 느낌에서부터 차이점이 느껴졌다.

‘이야, 힘 조절이 딱 적절한데?’

딱히 아프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무르지도 않다.

시원하게 자극이 들어오는 딱 적당한 수준. 등을 타고 올라오는 시원한 느낌에 남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허나 당연히 이건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했다.

안마에 앞서 몸을 풀어 주는 느낌으로 등줄기를 훑어 냈을 뿐. 그 직후, 안마 의자의 손길은 곧바로 세밀한 영역으로 과감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어… 어어?”

요즘 들어 피곤했던 허리, 매일 밤늦게 운전을 하느라 뻐근했던 허벅지, 굳어 있던 어깨 안쪽까지!

본인 스스로가 좀 뻑적지근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을, 거짓말처럼 찾아내서 세심한 자극을 불어넣는다. 절묘한 힘 조절은 아직까지도 여전한 게 그러면서도 불쾌감은 조금도 들지를 않았다.

“으하아…….”

곧이어 남자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탄성.

방금 전까지 미덥지 않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노곤하게 녹은 찹쌀떡 같은 얼굴로 늘어져 있었다.

‘더 마이스터도 엄청 좋았었는데…….’

이건 그 이상이다.

방금 전까지 그의 머릿속에 있었던 의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의 머릿속에는 그저 감탄과 쾌락만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어라?”

허나 그 즐거움이 최고조에 도달하려는 순간.

“네, 이십 분 체험이 종료되었습니다! 천천히 내려오셔서 여기, 다시 신발을 신어 주시면 되겠습니다.”

“…이십 분이 벌써 지나갔다고요?”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체감상으로는 길어 봤자 십 분 정도가 지났을 거라 생각했기에,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진짜네…….’

한창 기분이 좋아지고 있던 상황인데!

생각지 못한 타이밍에 안마가 툭 끊어져 버린 탓에, 남자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기에 그는 직원을 애절하게 쳐다보며 넌지시 물었다.

“혹시…‧ 한 번 더 받아도 괜찮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손님. 좀 어려울 것 같은데요.”

“왜요. 기다리는 사람도 없잖아요.”

남자는 주위를 손으로 훑듯이 손짓을 하며 말했다. 그가 안마 의자에 앉기 전만 해도,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는 했어도 선뜻 체험을 하려고 앉는 사람은 딱히 없었으니까.

“…엥?”

다만 직원의 대답이 돌아오기도 전, 주위를 한차례 둘러본 남자는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길게 늘어선 줄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 갑자기 대기자분들이 많아지셨거든요…….”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 체험장.

안마 의자에는 이미 사람들이 다 누워 있어 드문드문 탄성과 신음을 내고 있었고, 앞쪽에는 이 주변에 볼일이 있었던 사람들은 죄다 여기로 모여든 것처럼 인파가 형성되어 있었다.

“…혹시 이거 바로 구매 가능합니까?”

“아, 이게 아직 출시가 된 건 아니고요, 출시를 앞두고 홍보차 진행하고 있는 기획이라, 예약만 받고 있습니다.”

“예약하면, 혹시 좀 더 체험 가능할까요?”

남자는 직원과 눈을 마주하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적어도 농담을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어… 잠시만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책임자 쪽으로 시선을 보내는 직원. 그 또한 이쪽 상황을 보고 있었는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고 하시네요!”

더 마이스터의 후속 제품, 더 마스터의 홍보 기획.

어느 순간부터 안내 직원만 두 명이 붙어야 했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든 이 기획은, 비록 예약의 선입금이기는 해도 당일 백화점 내에서 최고의 매출을 기록했다.

* * *

“아, 미스터 강! 여깁니다, 여기!”

라이너 호텔 로비에 위치해 있는 카페.

강태한이 그곳에 들어서자, 한 외국인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멋들어지는 슈트가 잘 어울리는, 꽤나 비즈니스적인 분위기의 여성이었다.

“헤비나이츠에서 오신 분이시죠?”

“네, 맞습니다. 에이버리 그리먼이라고 합니다.”

강태한이 넌지시 묻자, 그녀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명함을 건넸다. 이런 업무의 프로인 듯, 상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정중한 동작이었다.

“음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는 길에 주문하고 왔습니다.”

“아하… 이런. 그러실 줄 알았으면,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리고 있을 걸 그랬네요.”

에이버리는 자리에 앉으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농을 건넸다. 그러고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조금 진지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듣기로는 에드윈 코치에게 한번 설명을 들으셨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예. 이틀 전에 통화를 했었죠.”

강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날 에드윈 코치가 전화를 걸어 갑자기 미국에 와 달라고 부탁을 했었던 때의 일을 말이다.

“미국으로 출장을 와 달라고 하시더군요.”

“네, 맞습니다. 저희 구단 내에서 선생님의 안마 솜씨에 대한 소문이 쫘악, 퍼져서 말이죠! 부디 한번 꼭 초청을 하고 싶습니다.”

에이버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강태한의 눈치를 살폈다가, 재차 정중한 말투로 덧붙이듯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물론, 그렇게 전화 한 통만으로 선생님을 모실 생각은 없습니다. 감독도 선생님을 VVIP로 최대한 정중하게 모셔 와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거든요.”

애초에 그래서 에이버리가 이곳에 온 것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전화상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보다 이렇게 직접 대면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비즈니스적으로 더 제대로 된 태도였으니 말이다.

“다만 이제, 선생님이 아실지 모르겠지만… 미식축구가 좀 과격한 편에 속하는 스포츠거든요.”

“예. 그렇더군요.”

강태한은 예전에 찾아봤던 미식축구 영상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캘리버가 찾아왔을 때 봤던 영상들이었다.

서로 달려들어 부딪치고, 들이받고, 날아가고…….

주먹으로 패지만 않았을 뿐이지, 누가 봐도 몸에 큰 충격이 가해질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었다.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몸이 성할 리가 없다.

“그렇다 보니 선수 중에는 몸에 이상이 있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매 경기마다 진통제를 맞아야 하는 선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제가 그분들을 한번 보고 안마를 해 줬으면 좋겠다, 이 말씀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이미 에드윈 코치와의 통화로 한차례 설명을 들은 이야기였기에, 이야기의 진행은 빨랐다. 강태한은 턱 부근을 긁적이며 넌지시 말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미리 말씀드리는 건데… 캘리버 선수의 상태가 호전된 건 어디까지나 제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증상이었기 때문이지, 무슨 병이든 다 고칠 수 있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강태한의 안마가 많은 걸 해낼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혈도의 문제가 원인이 되거나 재생력만으로 해결이 되는 문제라면 얼마든지 조치를 취해 줄 수 있지만, 그 외의 영역은 아무래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 부분은 확실히 해두고 넘어가려는 강태한.

“네, 저희도 그렇게 전해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 강태한의 말에 에이버리는 곧바로 답했다. 이미 에드윈 코치에게 전해 들었던 내용이다.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짓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개인적으로 몇 가지를 좀 더 여쭤보려고 하는데요.”

“네. 얼마든지요.”

의욕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그쪽 팀이 마이애미에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나는 걸로 해도 문제가 없나요?”

“네! 아무 문제없습니다. 여차하면 저희 선수들을 한국으로 보낼 생각까지 했었는데, 미국 서부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죠.”

영업용 멘트인가, 아니면 정말로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에이버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일행들을 동행해도 괜찮다고 들었는데.”

“물론입니다! 선생님은 VVIP로서 초대받는 거고, 이건 선생님의 일행분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쪽에서 모든 편의를 제공할 테니, 선생님과 일행분들은 편하게 몸만 오시면 됩니다.”

흐음.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어찌 보면 소박해 보일 수도 있는 질문을 입에 담았다.

“비행기 좌석은 어떻게 되죠?”

“전원 퍼스트 클래스.”

“좋습니다.”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내밀었다.

아무래도 그의 아버지, 강호연의 첫 해외여행은 초호화판 해외여행이 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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