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 안마하신다-245화 (245/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45화

[왕좌는 변함없이 견고했다. 대한민국 양궁, 이번 올림픽에서도 압도적인 승리 행진]

[파죽지세의 뒤돌려 차기! 승부를 결정지은 김찬수 선수의 한 방, 상대 선수 ‘알았는데도 막지 못했다’]

[대한민국, 새로운 펜싱 강호로 떠오르나? 여성 개인전에 이어 단체전까지 메달 결정전 진입!]

[선수들의 맹활약과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승전보… 서울 올림픽 이후 역대급 올림픽 성적 나오나]

[역대급 올림픽 성적에 시청률도 대박! ‘역시 이겨야 볼맛이 난다’ 나날이 증가하는 올림픽 시청률!]

“하하하, 대박이구만, 대박이야!”

진천 선수촌의 행정동에 위치한 한 사무실.

가장 안쪽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는, 박수까지 쳐 가면서 그야말로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이 기쁨을 나누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듯 앞에 있는 다른 직원에게 이것 좀 보라는 손짓을 했다.

“우 팀장, 잠깐 이리 좀 와 봐. 오늘 기사들 봤어?”

“그럼요. 저도 이미 다 봤죠.”

호들갑을 떨고 있는 남자는 다름 아닌 선수촌 기획부의 맹 부장. 그런 그의 반응에, 우 팀장 또한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야기만 먼저 꺼내지 않았을 뿐이지, 그 또한 한참 신이 난 상태였다.

“솔직히 이 정도면 못 볼 수가 없는 수준이죠. 스포츠 뉴스 창만 켜도 우리 선수들 이야기로 도배가 되어 있는 수준이니까요.”

“흐흐흐, 그것도 그렇구만!”

우 팀장의 대답에 맹 부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였다. 스포츠 뉴스 창은 사실상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올림픽 기사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오늘은 누가 이겼고, 누가 어떤 활약을 했고, 벌써 메달이 몇 개고, 오늘은 어떤 경기들이 있고…….

물론,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가 열리면 으레 벌어지는 일이기는 하다. 올림픽이 열리면 올림픽 기사들이 주로 올라오고, 월드컵이 열리면 월드컵 위주의 기사들이 올라온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이번 분위기는 여러모로 달랐다.

먼저 선수들이 보여 주는 경기력과 성적들이 달라졌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기대감과 관심도도 점점 올라가더니, 자연스레 언론들도 더욱 신나서 적극적으로 긍정적인 기사들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기사들만 몇 개 올라오고 몇몇 인기 종목에만 관심이 쏠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다 같이 열광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사실 몇 개 종목을 제외하면 시청률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로 올림픽에 대한 관심 자체가 많이 식어 가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번 올림픽은 그야말로 그 흐름에서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올림픽에 관심이 쏠린 게 얼마 만인지.”

맹 부장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나름 선수촌에서 밥을 먹는 입장이라 그런가, 이렇게나 성공적이니 괜히 나도 어깨가 으쓱거리네.”

“그러실 만하죠. 적어도 우리 부서가 굴러가고 있는 건 다 맹 부장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에헤이,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인수인계 받느라 정신도 없었는데,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옆에서 다른 직원이 가볍게 아부 한마디를 넣어 보았으나, 맹 부장은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러고는 우 팀장 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번 올림픽에 우리 기획부의 공로가 있다면, 그건 다 우리 우 팀장 덕분인 거지. 안 그래?”

얼핏 듣기엔 겸손의 말처럼 들릴 수도 있었으나, 딱히 없는 말을 입에 담은 것은 아니었다.

기존에 있던 나 부장이 다른 곳으로 인사이동이 되었을 때, ‘아무리 그래도 한창 바쁜 시기에 이렇게 사람을 바꾸면 어떻게 하나’ 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충분히 그런 목소리가 나올 만했다.

비록 나대원 부장이 업무보다 인맥 관리를 더 열심히 하던 인간이기는 했어도, 어쨌거나 이곳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 온 사람이었으니까.

진행되고 있는 일들도 있고, 일이 돌아가는 상황도 파악은 하고 있다. 어쨌거나 부장으로서의 역할은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금 못 미덥기는 했어도 엄연히 이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톱니바퀴 중의 하나였다고 할까.

그런데 올림픽 개최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부장급 인사가 교체되었으니, 아무래도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인수인계가 원활히 이뤄진다고 해도 한동안 부장 자리가 반쯤 비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리니까.

그럼에도 별 이상이 없었던 이유는 하나다.

누군가 기존에 나 부장이 하던 몫까지 일을 해냈기 때문. 그리고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우 팀장이었다.

“이번 올림픽 열풍은 다 선수들이 열심히 뛰어 준 덕분이지만, 그 외의 사람 중에서는 역시 우 팀장이 가장 큰 공로자가 아니겠냐고.”

“아이고,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우 팀장은 맹 부장의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와 손을 함께 저었다. 그러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뭐 한 게 있겠습니까. 솔직히 선수들 외에 공로자가 있다면… 아마 강태한 선생님이겠죠.”

올림픽에서 성적을 낸 것은 엄연히 당사자들, 선수 본인의 힘이다. 다만 그 힘에 누군가 기여를 했다면 그리고 그 기여도의 순위를 따진다면…….

천마안마의 강태한이 최고 공로자가 아닐까. 우대석 팀장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선수 중 대다수도 이에 동의할 것이고 말이다.

“뭐…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

그 말에 맹 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덧붙이듯이 뒷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강 선생님을 찾아온 것도, 선수들한테 소개를 한 것도 다 우리 우 팀장이잖아? 우 팀장이 가장 바쁘게 뛰어다닌 건 행정동의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너무 겸손하면 그것도 병이라고.”

“…하하. 뭐, 그야…….”

우 팀장의 얼굴에 순간 당황한 기색이 나타났다.

쑥스러운 탓일까, 아니면 상사가 자기를 인정해 주는 상황이 어색했던 걸까. 그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 몇 박자 늦게 뒷말을 이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뭐, 저는 맹 부장님이 믿고 맡겨 주신 덕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뭐? 허, 흐하하! 이 사람 말을 해도 참! 그게 또 그렇게 되나?”

우 팀장의 말에 맹 부장은 쑥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이다가도, 마냥 듣기 싫은 말은 아닌 듯 히죽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좋아, 오늘 점심은 나가서 먹자고. 좀 나가면 풍천장어 괜찮게 하는 곳이 있던데, 장어 어때?”

“괜찮겠어요? 요즘 법카 좀 많이 쓰신 것 같은데.”

“내 카드 쓰면 되지. 뭐 문제 있나?”

“오오… 역시 부장님, 멋지십니다!”

“시원시원하시네요!”

맹 부장의 호탕한 발언에 감탄을 터트리는 직원들.

올림픽 분위기에 들뜨는 것은 진천 선수촌의 직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 * *

“지금인가? 지금 장작 넣으면 되나요?”

“아뇨. 아직 불씨도 안 살아났잖아요.”

“연기가 나길래… 하하.”

가평에 위치한 조그마한 캠핑장.

그곳에 쪼그려 앉아 있는 유세아는 머쓱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였다. 그녀의 앞에는 아직 불이 붙지 않은 모닥불용 화로가 놓여 있었다.

불쏘시개가 소복하게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제 막 불을 피우고 있는 모양. 그녀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강태한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아뇨! 오늘은 꼭! 제가 붙일 거예요. 꼭!”

그녀는 중요한 이야기인 것처럼 강조해서 말하더니, 다시 불 지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강태한은 그 모습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짓고는, 옆에 있는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라이터를 쓰면 편할 텐데.”

“태한 씨도 라이터 안 쓰잖아요.”

“뭐, 그건 그렇긴 한데…….”

강태한에겐 굳이 라이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이미 몸에 배어 있는 기술 중의 하나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여행은 곧 야숙을 의미하는 무림의 환경에서, 불을 지피는 것 정도는 기초 중의 기초적인 기술이었으니까.

다만 그런 걸 다 떠나서, 라이터로 휙 붙이는 것보다는 살짝 고전적인 방식으로 불을 붙이는 편이 재미가 있다. 나름의 콘텐츠 중의 하나라고나 할까.

“그리고 저도 해 보고 싶었단 말예요. 약간 이러는 게 더 로망이 있다고 해야 하나.”

“흠. 뭐를 좀 아시네.”

마침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참이었기에, 강태한은 유세아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실제로 야숙을 하는 상황이었다면, 진즉에 자기가 직접 불을 피웠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캠핑을 나온 상황. 어디까지나 놀러 나온 입장이다. 불을 지피는 것 또한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콘텐츠일 뿐. 그렇다면야, 진득하게 지켜보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은 일이다.

“오, 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났을까.

“붙었어요, 불! 불!”

덧없이 연기만 피어오르던 불쏘시개에서, 조그맣게 불씨가 일어나더니 이내 불꽃이 되었다.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준비해 놨던 장작들을 건넸다.

“이제 장작들을 주변에 살살 놔 봐요. 불 위에 직접 넣지는 말고, 불을 둘러싸는 것처럼요.”

“어… 이렇게요?”

유세아는 강태한의 눈치를 살피며 화로 안에 장작을 하나씩 집어넣었다. 확실히 그동안 옆에서 지켜본 게 있는 듯, 제법 그럴듯한 모양으로 장작을 올리고 있었다.

“됐다, 된 것 같은데요?”

“잘하셨네. 이 정도면 훌륭하죠.”

“헤헤… 그래요?”

유세아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뺨을 긁적였다. 그러고는 슬쩍 주변을 쳐다보고 하늘을 쳐다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벌써 꽤 어두워졌네요.”

“그러게요.”

“불 피우는 게 그렇게 오래 걸렸나?”

“…좀 늦게 오기는 했죠, 우리가.”

실제로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굳이 그 사실을 입에 담지 않는 강태한이다. 애초에 그리 나쁜 일도 아니다. 저녁이 돼서야 즐길 수 있는 모닥불 특유의 분위기도 있으니까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태한 씨.”

그렇게 둘이서 한동안 모닥불을 쳐다보고 있었을까.

문득 생각이 났는지, 유세아가 강태한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번에 진천 간다고 하셨었죠? 선수촌으로.”

“네. 그랬었죠.”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비밀스러운 일도 아니었기에 담담한 반응이었다. 반면, 유세아는 살짝 들뜬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그럼, 지금 기사에서 나오는 안마사 K 선생님이 태한 씨에요?”

“…안마사 K요?”

그, 굉장히 수상해 보이는 이름은 무엇이란 말인가.

강태한은 저도 모르게 황당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니다. 강 씨면 G인가?”

“아뇨, 저도 K를 쓰긴 하는데.”

Gang이 좀 더 발음에 맞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갱단으로 오해받기 십상이기에 Kang으로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여권에도 그렇게 적혀 있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뭔데요?”

“잠깐만요.”

다만 중요한 건 G냐 K냐가 아니라, 그 안마사 K가 대체 뭐냐는 것이다. 여전히 당황의 기색이 남아 있는 강태한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유세아는 뭔가를 찾는 듯 조용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이윽고 강태한에게 인터넷 기사 몇 개를 보여 줬다.

“요즘 올림픽 선수들 인터뷰가 많이 나오잖아요.”

“그렇죠.”

올림픽 시즌이기도 한데다, 종목을 가리지 않고 선수들이 역대급 활약을 보이고 있는 덕분이다.

강태한 또한 어떤 기사들이 올라오는지는 대강 훑어보고 있었기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인터뷰에서도 나오지만, ‘안마사 K모 씨’가 언급되고 있잖아요?”

“…그러네요.”

화면에 나와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김찬수 선수의 인터뷰였다. 개인전 금메달에다가 단체전에서도 독보적인 활약을 펼치며 화제가 된 선수.

그리고 마침 화면에는, ‘개인적으로 큰 깨달음을 주신 안마사 선생님이 계시다. 그분에게 정말 큰 감사를 드리고 싶다…….’라고 적힌 부분이 나오고 있었다.

“…아하.”

방금 막 그 부분을 읽은 강태한은 머쓱하게 웃음을 흘렸다. 뭔가 고마우면서도 쑥스럽고, 뿌듯하면서도 난감한, 그런 미묘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이 인터뷰 말고, 다른 선수들 인터뷰에서도 계속 언급이 되거든요. 안마의 도움이 컸다, 안마사 선생님에게 감사하고 싶다… 뭐 이런 것들이요.”

“예… 대충 알겠네요.”

강태한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본인의 스마트폰으로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굳이 인터뷰를 일일이 찾아볼 필요도 없었다. 아예 별개의 기사까지 나와 있었으니 말이다.

[올림픽의 숨겨진 주역? 선수단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고 있는 안마사 K, 그는 대체 누구인가.]

대충 이런 느낌의 제목.

강태한은 기사의 내용을 좀 읽다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스마트폰을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정황상으로 봤을 때, 저일 것 같네요.”

“그렇죠? 내가 태한 씨일 줄 알았다니까요!”

본인의 추측이 들어맞은 것에 기뻐하는 유세아.

다만 딱히 맞추기 어려운 비밀까진 아닌 느낌이었다. 이미 해당 기사의 댓글에도 천마안마를 추측하고 있는 댓글들도 종종 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야 물론 의도한 부분이기는 한데…….’

국가 대표 선수들을 중심으로 평판을 쌓아 두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전문적인 업계인들 사이에 인지도를 쌓아 두려고 했던 강태한의 계획.

이 또한 그 계획의 결과라 볼 수 있는, 그것도 굉장히 성공적인 결과물이라 볼 수 있는 부분이었으나… 막상 이렇게 화제가 되는 걸 보니, 괜히 머쓱해지는 기분이 드는 강태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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