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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40화 (240/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40화

“어… 음, 어.”

강태한의 대답이 돌아오고, 잠시 동안 흐른 침묵.

베네릭은 뭐라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으나, 제대로 된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마치 옹알이 같은 소리만 낼 뿐이었다.

아직도 신뢰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직접 만나 보기 전이었다면 모를까,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도 좀 나눠 본 지금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쓸데없이 빈말을 꺼낼 사람이 아니라고.

허나 그에게 있어 자신의 문제는 이미 마음속 한편에서 포기를 하고 있었던 문제다.

지금의 그는 나름 큰 성공을 거둔 영화배우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에게는 적지 않은 재산이 있다.

재벌까진 아니더라도 원하는 것 정도는 금방 구할 수 있는, 예를 들어 최고의 의료 시설들을 갖춘 병원에서 진찰 정도는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는 부부간의 불임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들였고, 그렇게 찾아낸 결과는 불가능이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경과를 지켜보자’라는 의사의 말은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라는 말과 사실상 같은 의미였다.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일어날 수 없는 일.

헌데,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지금 그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도 당연하다는 듯이, 건조할 정도로 담담한 말투로 말이다.

“…하하.”

그렇다 보니 이렇게 벙쪄 버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본인이 기적이라 생각하는 정도의 일을, 황당할 정도로 담담하게 말하는 모습에 베네릭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혹시 곤란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신기해서 말이죠.”

그 반응을 지켜보고 있던 강태한이 넌지시 묻자, 베네릭은 머쓱한 웃음을 흘리며 솔직하게 답했다. 그러고는 다소 진정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와 안마를 받으시면 됩니다. 정확한 기한은… 딱 잘라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진행 상황을 봐야 해서요.”

“…오우.”

베네릭의 얼굴에 황당한 기색이 다시 한번 짙어졌다.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도 믿기 어려운 일인데, 그냥 정기적으로 안마만 받으면 된다?

마치 사기라도 치는 것 같은… 아니, 그것도 아니다. 사기도 이런 식으로 치면 어설프다는 말을 들을 테니까 말이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이 정도는 해 주셔야 합니다.”

“아뇨! 번거롭기는 무슨, 매일 오라고 하셔도, 아니 아침저녁으로 찾아오라 해도 와야죠.”

번거로운 일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강태한의 말에 베네릭은 기겁을 하듯 손을 저었다. 그 반응에 강태한은 피식 미소를 짓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뭘 말씀하시는 거죠?”

“안마받는 것 말입니다. 별다른 일정이 없으시다면, 바로 안마를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아.”

베네릭은 그제야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보르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그러고 보니 이보르도 앞서 비슷한 말을 했었다.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비워 두라고.

“그렇게 해 주시죠. 저도 그게 좋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베네릭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강태한 또한 곧바로 그의 양쪽 어깨에 손을 얹었다. 순간 베네릭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나타났다.

“이 자리에서 바로 시작하시는 겁니까?”

“네. 상관없습니다.”

지금 그가 앉아 있는 곳은 사무실의 소파였다.

비록 등받이에 기대고 있지는 않으나 등도 거의 가려져 있는 상태고, 여러모로 안마를 하기에 적합한 자세라고 할 수는 없는 모습이다.

“여기 엎드리는 편이 좋을까요?”

그냥 가볍게 어깨를 주물러 주는 정도라면 모르겠으나, 본격적인 안마를 받기에 적합한 자세는 아니다.

안마에 대해 그다지 아는 게 없는 베네릭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 베네릭은 널찍한 옆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뭐 그게 편하긴 한데… 괜찮습니다.”

“음… 그런가요.”

“네. 필요하면 제가 이따가 눕히면 되니까요.”

눕힌다?

그 말을 들은 베네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그때가 되면 자기가 마음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할 거라는 듯한, 그런 뉘앙스가 담겨 있었던 탓이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허나 그다음 순간.

강태한의 안마가 시작되자마자, 베네릭의 의문들은 곧바로 해결되었다. 굳이 눕지 않아도 됐던 것도, 그가 그런 뉘앙스의 말을 한 이유도.

“허으으윽!”

보다 정확히는 강태한의 두 엄지손가락이 어깨 안쪽을 깊숙이 찌른 순간부터다.

그와 동시에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강렬한 자극. 마치 엄지손가락을 통해 뭔가를 주사라도 한 것처럼, 그 자극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허나 이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당연히, 엄지손가락으로 혈 한번 누르는 걸로 안마가 끝날 리는 없다. 이건 오랫동안 굳어 있던 혈도들을 깨워 내기 위한 준비 과정일 뿐. 말하자면 몸을 깨우는 경보음에 불과한 것이다.

“어흐으윽… 으그윽!”

본격적으로 강태한의 손이 인근의 혈들을 지압하기 시작하고, 방금 전보다 더욱 강렬한 자극들이 연이어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해일.

가느다란 실로 이어져 있는 신경망 사이로, 그야말로 해일과도 같은 거대한 자극이 사방팔방에서 밀려들어 오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거기에는 고통도 있고, 쾌감도 있고, 왠지 모를 해방감과 상쾌함도 있다. 마구잡이로 해일이 몰아치고 있는데 그 해일이 무지개색인 느낌이다.

조금 이상한 비유일까.

허나 이걸 제대로 비유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제정신이 아닐뿐더러, 이런 자극은 생전 처음 겪어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엎드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었구나!

베네릭은 자연스레 깨달았다.

어깨를 주무르는 것만으로도 온몸으로 자극이 흘러 들어간다. 그렇다면야, 상대방이 반드시 누워 있어야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저는 자리를 좀 비킬까요?”

“편하신 대로 하시죠. 휴게실에 계셔도 되고요.”

한편,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보르.

그는 안마를 받는 친구의 모습을 봐 뒀다가 나중에 놀릴 생각이었으나, 중간에 생각을 바꾸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극, 우흐… 오호호, 아힉!”

십 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의 괴상한 신음 소리.

거기에다 잠깐 사이에도 희로애락이 오가는 얼굴의 표정은… 영화에서 등장하던 배우로서의 근엄한 이미지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굳이 말하자면 약간 추한 느낌이 담겨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이보르는 말없이 자리를 뜨기로 했다.

마냥 놀리기엔 너무 좀 그런 느낌이 있다고 할까… 원래 놀리는 것도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서면 놀릴 수 없게 되는 법이었으니까.

‘나도 안마받을 땐 저런 표정이었나…….’

본인도 강태한에겐 두어 번 안마를 받아 보았으나, 막상 다른 사람이 안마를 받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보르는 혹시 본인도 저런 모습을 했었던 것인지 본인의 경우를 되짚어 보며, 친구의 비명 소리를 뒤로한 채 조용히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 * *

“아휴. 느닷없이 야근이라니…….”

라이너 빌딩의 엘리베이터.

천마안마가 위치한 20층을 누르며, 황 실장은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출근이라기엔 너무 늦은 시간. 그의 표정도 그리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오늘은 모처럼 업무를 마치고 조기 퇴근을 한 참이었는데, 중요한 업무 몇 개가 누락되어 다시 이렇게 밤에 출근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깜빡한 내가 죽일 놈이지만, 뭐…….”

다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업무를 누락한 게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이었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도 애매한 작업이었던 지라, 결국 어쩔 수 없이 다시 가게로 들어가고 있는 황 실장이었다.

“실장님? 퇴근한 거 아니었어요?”

“어, 할 일이 좀 남아 있어서…….”

뒷문을 통해 휴게실 안으로 들어온 황 실장. 평소 밝고 가벼운 모습을 보이던 그였으나,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 침울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던 와중, 그는 문득 눈에 들어온 광경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한마디도 한참 뜸을 들이다 겨우 입 밖으로 낸 소리였다.

“저건 지금 무슨 상황이야?”

그는 휴게실의 중앙에 위치한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기에 앉아 있는 최성현과… 이보르 깁슨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갑자기 뭔데?”

“이보르 선수, 모르세요? 에버튼 FC의…….”

“아니, 저분이 누구인지는 나도 잘 알지. 근데… 왜 성현이랑 같이 여기서 명상을 하고 계시냐, 이 말이야.”

황 실장의 목소리에는 의아함이 듬뿍 담겨 있었다.

사실 누구라도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세계적인 유명인이, 본인의 일상적인 부분에 이토록 자연스레 침투해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말이다.

“글쎄요…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당사자도 아니고 다른 안마사라고 해서 자세한 내용을 알 리는 없다. 그 또한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그냥 아까 여기 좀 있어도 되겠냐면서 이보르 선수가 들어왔었는데, 성현이가 팬이라면서 달라붙었었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조용하더니…….”

“상황이 저렇게 바뀌어져 있었다?”

“예.”

분명 상황을 전해 듣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황 실장은 애매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어라?”

그러던 중, 가게 쪽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실장님, 퇴근하신 거 아니었어요?”

“아아, 그렇긴 한데. 다른 게 아니고 내일 곽상영 지배인한테 보내 줘야 하는 서류, 그걸 마무리 안 해 놨지 뭐야. 집에서 빈둥대다 기억이 나더라고.”

“흐음. 난감하시겠네요.”

그는 다름 아닌 강태한.

강태한은 방금 막 안마를 마치고 온 것인지, 가볍게 손부터 씻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게 손을 씻고 뒤로 돌아섰을 때.

주변을 둘러보던 강태한의 시선이 어느 곳에 멈춰 섰다. 황 실장과 마찬가지로, 최성현과 이보르가 서로 마주 앉아 명상을 하고 있는 소파였다.

“흐음…….”

“묘한 광경이지? 나도 놀랐다니까.”

슬그머니 강태한에게 다가가며 말하는 황 실장.

왠지 모르게 방해가 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어, 소파가 있는 쪽은 최대한 피해서 걸어온 황 실장이다.

“그러게요. 좀 뿌듯하네.”

“…엉?”

다만 강태한의 반응은 황 실장이 생각한 것과는 어딘가 다른 느낌이었다. 약간 핀트가 어긋나 있다고 할까. 좀 다른 관점에서 보는 듯한 감상이었다.

“하긴, 둘 다 감이 꽤 트여 있는 상태고 상성도 얼추 맞는 편이니.”

그러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스스로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가 흐뭇한 기색이 담긴 표정은 덤이었다.

‘…기감이 있어야 느낄 수 있는, 뭐 그런 건가?’

그리고 그 반응을 지켜보고 있던 황 실장.

그는 아직도 영문이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소외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 *

“어허억!”

베네릭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본래 사람은 기억이 끊겨 있으면 불안감을 느끼는 법. 허나 이내 대강적인 내용들을 떠올리곤, 한결 안정된 표정으로 큰 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언제 잠이 든 지도 모르겠네.”

떠올린 기억은, 이곳에서 안마를 받았었다는 것. 그리고 안마를 받던 도중에 거짓말처럼 잠이 들었었다는 것이다.

자극에 지쳐 잠이 든 건가, 고통에 기절을 한 건가.

둘 중 어느 쪽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기절했을 때의 특유의 불쾌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전자 쪽에 가깝지 않을까 추측했다.

“…음?”

그렇게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정신을 차리고 있던 와중. 천천히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려던 그는, 뒤늦게 뭔가를 느끼고는 아래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거짓말이지?”

어렸을 때는 자고 일어날 때마다 겪었던 현상.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거짓말처럼 사라졌던 현상.

그사이에 회춘이라도 한 것일까.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그 힘을 뽐내고 있는 하반신의 모습에, 베네릭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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