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237화
“이야, 이거 완전 풍어네, 풍어야! 하하하!”
강태한이 도착하고 조금 시간이 지났을 무렵.
조원호는 옆에 놓아 둔 낚시통을 들어 올리며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낚아 올린 물고기를 넣어 두기 위해 준비한 큼지막한 크기의 플라스틱 통.
조금 전까지만 해도 통의 크기가 무색할 정도로 가벼웠었는데, 지금은 한 손으로는 들어 올리기 힘들 정도로 무거웠다.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안쪽은 그야말로 물 반 물고기 반으로 채워져 있는 상황이었다.
“후흐흐… 장난 아니게 묵직하구만.”
이 무게감 자체가 만족감을 주는 느낌이라고 할까.
게다가 통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들은, 그 양도 양이지만 크기들도 제법 큼직한 편이었다. 이놈들을 낚을 당시의 손맛을 떠올린 조원호는 저도 모르게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태한이가 확실히 뭐가 있단 말이지. 오자마자 이렇게 물고기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강태한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대충 이쯤하고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던 조원호다.
진짜 낚시꾼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그 시간, 그 자체를 즐긴다고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강태공의 일화가 왜 유명해졌겠는가?
그 일화 자체가 비범한 것이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다소 비현실적인 이야기라는 뜻이다.
결국 낚시의 본격적인 재미는 낚싯대 너머로 손맛이 느껴질 때 그리고 직접 잡아 올린 무게감을 손으로 느낄 때다.
그런 의미에서 조원호가 그만 돌아갈 생각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몇 시간 동안 입질 한번 오질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허나 지금은 전혀 다르다.
강태한이 오고 난 이후 거짓말처럼 입질이 계속 오기 시작한 것이다. 줄을 던지는 족족 물고기가 물리는 수준이었으니, 낚시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신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주 그냥 복덩어리야. 안 그렇습니까, 형님?”
“우리 아들 복덩어리인 거 이제 알았어? 하하하.”
조원호가 동의를 구하듯이 묻자, 옆에 앉아 낚싯줄을 감고 있던 강호연도 히죽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또한 잔뜩 들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 분 같이 계신 거 보기 좋네요.”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강태한도 싱긋 미소를 지었다. 특히 미소를 짓고 있는 아버지, 강호연의 모습을.
‘아버지도 많이 바뀌셨네.’
예전에 비하면 웃는 얼굴이 굉장히 자연스러워졌다.
오래전, 그러니까 강태한이 현대로 되돌아오기 전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모습이었다.
무뚝뚝하고, 말 걸기도 약간 어렵고, 단골손님들 앞에서도 좀처럼 미소 짓는 일이 없었던, 그런 모습들이 강태한이 기억하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미소를 짓는 것도 자연스러웠고, 너스레를 떨며 농담을 주고받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렇게 다른 사람 앞에서 장난스럽게 아들 자랑을 꺼내기도 하는 아버지다.
좀 더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모습이 되었다고 할까. 사람이 바뀌었다기보다는, 그동안 여유가 없어 나타나지 않았던 부분들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면모들을 발견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자기가 뿌듯한 기분이 되는 강태한이었다.
“슬슬 정리하고 점심 준비나 할까?”
“어, 벌써요, 형님?”
그러던 와중, 강호연이 빈 낚싯줄을 감으며 말했다. 옆에 있던 조원호가 의외라는 목소리로 묻자, 그는 스마트폰의 시계를 보여 주며 말했다.
“벌써는 무슨. 이제 세 시야.”
“엑, 시간이 그렇게 됐다고요?”
던지는 족족 입질이 오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낚싯줄을 던지고 있었던 조원호다. 뒤늦게 시간을 확인한 그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낚싯대를 내려놓고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와… 형님 요리 솜씨 좋은 줄은 알고 있었는데.”
잠시 후.
인근 공터에 앉은 조원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감탄 어린 목소리를 입에 담았다. 그의 앞에는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매운탕이 놓여 있었다.
“태한이도 이렇게 솜씨가 좋은 건 처음 알았네요.”
매운탕을 끓인 것은 다름 아닌 강태한.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잘 우러난 것이, 국물 한 숟가락만으로도 소주 한 잔은 거뜬히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기가 막히는 맛이었다.
“솔직히 민물고기로 뭐 만드는 게 진짜 어려운데.”
민물고기는 기본적으로 비린 맛이 강하다.
물론 생선이라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비린 것이긴 하지만, 민물고기는 흙맛 같은 특유의 맛이 깊이 배어 있어 훨씬 맛을 내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민물낚시를 꺼려 하는 사람도 있고, 민물에서 물고기는 잡더라도 먹지는 않고 전부 풀어 주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여기에 들어간 고기는 한 종류가 아니다.
한차례 선별을 거쳐 먹을 만한 녀석들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전부 방생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여러 종류를 섞어 끓인, 이른바 잡탕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헌데 그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맛을 내다니.
솔직하게 말해 이렇게 먹는 매운탕은 맛보단 그냥 기분으로 먹는 느낌에 가까운데, 이건 돈을 주고 먹는다고 해도 아깝지가 않을 맛이었다.
“우리 태한이가 못 하는 게 없지.”
“진짜 만능이네. 뭐 따로 비결 같은 게 있나?”
자연스레 아들 자랑을 끼워 넣는 강호연과 거듭 물어보는 조원호. 그런 두 사람의 반응에, 강태한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뺨을 긁적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민물고기 정도야 무림에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먹어 왔던 강태한이다.
중원이라는 건 어마어마하게 큰 땅이다.
그 말인즉슨, 큰마음을 먹고 여행을 떠나지 않는 한 바다를 볼 수가 없다는 뜻이다. 당연히 바닷물고기를 맛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저잣거리에서 구할 수 있는 신선한 생선은 전부 천이나 강에서 잡아 온 민물고기뿐. 특히 황하 인근에서 잡아 온 것들은 흙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수준이다.
물론 거기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오히려 그 특유의 비린내를 풍미로 여기며 즐기는 경우도 많다.
허나 강태한은 밥 한 끼가 아쉬운 떠돌이 생활을 오랫동안 해 오면서도, 그 비린내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늘어나는 것은 어떻게든 비린내를 잡아 내는 요리방법들뿐.
그 결과, 어지간한 민물고기는 기본적인 향신료만 있어도 맛깔나게 요리할 수 있게 된 강태한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연스레 터득하게 된, 일종의 생존법이라고나 할까.
그런 그에게 이런 상황에서 매운탕 하나 끓이는 것 정도야, 기초 중의 기초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야외 취사라고는 하지만 아버지가 따로 챙겨 온 향신료도 있고, 물고기도 비린내가 난다고 해 봤자 황하에서 잡힌 것에 비하면 밋밋한 수준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말이다.
“뭘요. 매운탕은 쑥갓이랑 양념이 다 하는 건데.”
허나 굳이 그런 내색은 하지 않는 강태한이다.
사실 마냥 없는 말을 지어낸 것도 아니다. 매운탕에 쑥갓은 말 그대로 치트 키였으니까.
“그리고 아버지가 도와주신 것도 있고요.”
“이야, 겸손한 데다 공로를 아버지와 나누기까지.”
그런 강태한의 말에, 조원호가 박수까지 치며 감탄을 터트렸다. 장난기가 섞여 있는 과장된 몸짓이긴 했으나 감탄 자체는 진심이었다.
“진짜 자식 농사 하나는 잘 지으셨습니다, 형님.”
“에이… 그냥 자기 혼자 잘 큰 거지 뭐.”
강호연은 멋쩍어하면서도 못내 웃음을 터트리더니, 깔끔하게 발려진 큼직한 생선 살을 강태한의 접시에 올려놓았다.
* * *
“오늘의 게스트로는 진짜 거물이 오셨습니다.”
“국내에서는 에이틴 솔져의 캡틴 호크로 유명하신 분이시죠? 헐리웃 스타, 베네릭 브라운 씨입니다!”
맞이하는 박수 소리와 함께 입장하는 건장한 체격의 백인. 주변을 둘러보며 간단하게 인사를 건넨 그는, 진행자들과도 악수를 나누고서 자리에 앉았다.
“오늘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베네릭 씨.”
“저야말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침 시장하던 참이었었거든요.”
그가 나온 프로그램은 ‘한끼토크’.
공중파 방영과 동시에 유튜브에도 동시 송출이 되는 프로그램으로, 국민MC 이한건이 게스트와 함께 먹방과 인터뷰를 같이 진행하는, 요 근래 꽤나 주목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자연스레 식사를 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느낌이 나서 좋다는 평판. 그 평판대로, 촬영 또한 세세한 지시 없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혹시 따로 드시고 싶은 한국의 음식이나, 눈여겨보고 있던 메뉴라든가, 그런 건 없으십니까?”
“음… 제가 말하면 바꿔 주십니까?”
“사실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게스트가 주문을 하면 그때부터 요리가 시작되는 시스템이라서요.”
“그게 진짜였네요? 그러다 제가 여기 없는 재료가 필요한 요리를 주문하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면 뭐… 저희야 좋은 일이죠. 재료 구하러 사 오는 만큼 인터뷰 시간 더 확보하고. 하하하!”
처음 만나는 사이인 데다 중간에 통역사도 끼고 있는데도 비교적 원활하게 오고 가는 소통.
베네릭은 잠시 메뉴를 고민하다 무난하게 갈비찜과 떡볶이를 골랐고, 요리가 시작됨과 동시에 본격적인 인터뷰도 시작되었다.
한국에 오게 된 이유,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의 내용과 같이 형식적인 질문들부터 시작하여 SNS에 언급되던 일상이야기, 예전의 가십거리 등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비교적 폭 넓은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새로운 소식이 하나 있었는데요.”
“뭐죠?”
“베네릭 씨께서 공식 일정을 마치신 뒤에도 한국에서 좀 더 머무르는 걸로 계획이 바뀌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사실입니까?”
“아… 진짜 제 SNS를 꼼꼼히 체크하셨군요?”
“아니 뭐, 듣자하니 어제 SNS에 대놓고 올리셨다고 들었습니다만.”
틀린 말은 아니기에 베네릭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감출 생각이었으면 SNS에 올리지도 않았을 테니까.
“뭔가 따로 예정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사실 저도 좀 놀란 부분인데, 한국에서도 저를 알아봐 주시는 팬 분들이 정말 많이 계시더라고요. 감사한 마음에, 즉석에서 팬 사인회 일정을 잡았습니다. 그때까지는 머무를 예정이고요.”
정확히는 머무르는 예정이 먼저 잡혔고, 그러면 기한이 늘어난 김에 행사도 하나 더 하고 와라, 라는 느낌으로 소속사에서 잡아 준 일정이다.
베네릭의 입장에서도 팬들과 만나는 것은 꺼릴 이유가 없는 일.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이를 홍보도 할 겸 SNS에 해당 일정을 업로드해 놓은 상태였다.
“아… 이거 팬들이 감동하겠는데요.”
“그러면 저야 고맙죠. 저는 항상 팬들에게 감동을 느끼는데, 그걸 조금이라도 돌려드릴 수 있다면요.”
베네릭은 적당히 훈훈한 말을 입에 담으며 가볍게 목을 축였다. 이한건은 그런 그를 기다렸다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럼, 혹시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이나 계획해 둔 다른 일정은 없으십니까?”
“흠… 사실, 기대하고 있는 게 하나 있긴 합니다. 지인에게 안마원을 하나 소개받았거든요.”
“안마원이요?”
그 말에 이한건은 순간 흠칫하더니, 혹시나 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본래 게스트의 말 도중에 끼어드는 일이 거의 없는 이한건이었으나, 지금은 입이 가려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혹시 그 안마원 이름이… ‘천’ 자로 시작합니까?”
“천. 예. 맞는 것 같네요. 그런 발음이었어요.”
“와, 베네릭 씨, 좋은 친구를 두셨네!
이한건은 박수까지 치며 미소를 짓더니, 방금 전보다 살짝 신이 난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저도 거기 안마원 자주 다니거든요! 이야, 거기 원장님 솜씨가 진짜 장난 아닙니다. 혹시 예약은 어떻게, 설마 친구분이 따로 양보를 하신 건가?”
“어… 잘은 모르겠는데, 맡겨 달라고 했어요.”
“크! 진짜 우정이다, 진짜 우정. 제가 매달 다니는데, 그것도 예약이 어려워서 매달 다니는 거지 마음 같아선 매일 다니고 싶거든요. 그 친구가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직접 받아 보시면 그게 얼마나…….”
계속해서 신이 난 목소리로 말하던 이한건.
그렇게 한동안 이야기를 늘어놓던 그는, 뒤늦게 눈에 들어온 뭔가를 보고 나서야 말을 멈췄다. ‘말 좀 멈춰요’라 적혀 있는, 스태프의 지시판이었다.
“…이거, 제 이야기만 너무 했네요. 죄송합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이한건은, 뒤늦게 진정하고는 머쓱한 목소리로 사과를 입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