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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34화 (234/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34화

“기부… 말입니까?”

“예.”

확인을 구하듯 되묻는 우대석 팀장의 말에 강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조금 머쓱해하는 목소리로 덧붙이듯이 말했다.

“뭐 어디에 기부를 해야 하는지, 절차는 어떻게 진행하는지 솔직히 아무것도 모릅니다만, 이런 것들은 체육회 쪽에서 잘 알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강태한의 말에 우 팀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이나 지원이 필요한 체육 단체는 항상 있을 수밖에 없다. 비인기 종목들은 항상 돈이 부족하고, 장애인체육회와 같은 소외 계층 쪽 단체들은 두말할 것도 없다.

단지 예산이 한정되어 있고 인력도 한정되어 있어 전부 지원할 수가 없을 뿐. 애당초 체육회도 여러 기업의 후원과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운영되는 곳인데, 어떻게 예산이 넉넉할 수 있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이 봉투에 담긴 금액 정도라면, 몇몇 소규모 단체에서는 정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수준이다.

뭐 그렇다고 억 단위의 큰 금액까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그렇게 적은 금액도 아니었으니까.

“정말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예. 그렇게 진행해 주세요.”

재차 확인을 구하는 우 팀장의 말에, 강태한은 방금 전과 같이 담담한 말투로 답했다. 우대석은 잠시 입을 다문 채 강태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 사람은… 그릇이 넓구나.’

기부라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돈을 양도하는 행위다.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재산을, 어쩌면 평생 동안 만날 일이 없을 수도 있는 사람에게 내준다는 뜻이다.

그런 행동이 쉬울 리가 없지 않겠는가.

특히나 이번 같은 경우는, 쉬는 날에 시간을 내서 하루 종일 안마를 하고 얻어 낸 보상이다.

물론 사전에 공지된 보상이 아니라 우 팀장이 따로 준비해 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마음도 넓고, 보는 시야도 넓어.’

다만 이렇게 기부를 하는 게 모두 순수한 선의에서만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 팀장도 그렇게 순수하게만 세상을 보는 인간은 아니다. 애초에 그런 인간이었으면 팀장을 맡지도 못했을 테니까.

허나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강태한이 보고 있는 것은 상당히 먼 훗날까지 계산하고 그리는 큰 그림이다. 그리고 그건 평범한 사람들은 쉽사리 보기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는 더더욱 말이다.

결국은, 그릇이 넓은 인간이다. 강태한을 쳐다보는 우 팀장의 눈빛에 감탄의 기색이 어른거렸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우 팀장은 곧이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직 아쉬움이 남은 듯 돈 봉투를 집어넣는 손이 다소 머쓱해 보였으나, 그래도 납득은 한 모양새였다.

“이번에 취약 계층 체육 활동 지원 행사가 있는데… 그곳에 태한 씨의 이름으로 후원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진행하면 될까요?”

“네. 감사합니다.”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하는 강태한. 우 팀장은 그 얼굴에 마주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머쓱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이거, 피곤하실 텐데 너무 이야기가 길어진 것 같군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아닙니다. 안 좋은 이야기도 아닌데요, 뭐.”

“후후,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우대석 팀장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방 안을 빠져나갔다.

다시 방 안에 덩그러니 남은 두 사람.

여태 동안 옆에서 조용히 우 팀장과 강태한의 대화를 듣고 있던 최성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강태한에게 물었다. 아까 전부터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돈은 안 받았어도 소고기는 사 주는 거지?”

“내가 설마 사 준다고 해 놓고 안 사 주겠냐… 전생에 소 못 잡아먹어서 굶어 죽기라도 했어?”

“아니, 아까 네가 소고기 사 준다고 했을 때부터 너무 입맛이 당기더라고. 오늘은 꼭 소고기를 먹어야 하는 날이다,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장난기가 반쯤 들어가 있는 최성현의 목소리. 그 말에 강태한은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마찬가지로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넌 누가 사 주면 맨날 소고기만 먹으라고 해도 먹을 수 있잖아.”

“으음… 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최성현은 짐짓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혹시 오늘부터 시험 삼아 시작해 볼까?”

“그걸로 네 월급을 대체한다면, 해 볼 만하지.”

“…제가 실언을 했네요, 사장님.”

사뭇 사죄라도 올리듯 과장된 몸짓으로 사과를 표하는 최성현. 그 모습에 강태한은 피식 웃음을 흘렸고, 최성현 또한 머지않아 웃음을 터트렸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강태한이 다녀가고 난 이후의 진천선수촌에서는, 전후 과정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한 차이가 느껴지고 있었다.

본래 올림픽이 점점 다가오면서 하루하루 긴장되고 경직된 분위기가 짙어져 가던 선수촌이었는데.

“후우, 후우… 방금 꺼, 기록 어떻게 나왔어?”

“어… 선배 최고 기록이신 거 같은데요?”

“진짜로?”

“야, 이거 진짜 장난 아니네.”

“그쵸? 몸이 가벼워도 너무 가볍다니까요.”

하루 종일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감탄과 탄성.

다름이 아니라, 강태한에게 안마를 받고 그 효과를 체감한 선수들의 감탄 소리였다. 그 덕분일까, 바로 이틀 전까지만 해도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는 자연스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굳이 비유를 들 만한 걸 찾자면, 마치 체육대회 날의 고등학교 운동장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쉴 새 없이 뛰어다녀도 체력이 넘쳐나는 모습이 딱 한창때의 고등학생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안마의 효과는 체력만이 아니었다.

“야, 이번 렐리 진짜 느낌 좋았는데?”

“그쵸? 저만 그렇게 생각한 거 아니죠?”

“코치님, 혹시 방금 렐리 찍었어요?”

“어… 아니, 영상 안 찍고 있었는데.”

“아, 왜요! 완전 좋았는데!”

“나도 멍하니 보고 있었어… 미안하다.”

선수들의 각종 신체 능력들도, 그에 따라 실력과 성과도 함께 확 올라온 느낌. 단순히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로 측정되는 결과값 또한 그러했다.

잠재력이 폭발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몸이 전성기 중에서도 최전성기 수준으로 끌어 올려진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묘한 충만감이 있었다.

덕분에 훈련에 몰두를 하다 못해 기존에 잡혀 있던 일정을 어겨 가며 오버 트레이닝을 하는 선수들이 속출하고 있기는 했으나…….

그마저도 이 한참 들뜬 분위기를 연출하는 일부분이었기에, 코치진 또한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고 못 말리겠다는 듯한 표정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모든 선수가 그렇게 들뜬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호들갑 떨 정도인가?”

“나는 잘 모르겠는데…….”

개중에는 몇몇, 이런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었기 때문.

똑같이 강태한에게 안마를 받았고, 그 효과도 보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 저렇게 난리를 떨 정도의 효과는 아니었다.

그냥 몸이 개운하다, 컨디션이 좋아졌다 정도.

기가 막히는 안마를 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방방 뛰어다닐 정도의 일은 아닌 게 사실이었다. 적어도 그들이 겪은 내용은 그러했다.

“흐음…….”

돌아다니며 그런 모습들을 둘러보고 있던 맹 부장.

시끌벅적한 훈련장을 멀리서 지켜보던 그는, 나지막하게 침음을 흘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우 팀장의 말대로, 마냥 만능인 건 아니고 선수 개인별로 효과 차이가 좀 나는 모양이구만.”

“예. 원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말하자면, 없는 실력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던 실력들을 전면으로 끌어 올려 준다는 뜻이리라.

다만 그 말인즉슨, 반대의 경우에는…….

“평소 나태했던 인원들이다, 뭐 이런 느낌인가.”

“성급하게 일반화시키는 건 위험한 생각이겠지만… 뭐, 마냥 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겠죠.”

맹 부장의 말에 우 팀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국가 대표를 모아 놓은 선수촌.

말 그대로 뛰어난 엘리트 체육인들을 육성하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들이 진지한 마음으로 임하는가 하면, 그건 또 애매하다.

외출을 나갔다가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고, 태도 자체가 불량한 사람도 있고, 선수들이 연애를 하다가 자잘한 사건 사고들을 일으키기도 하고…….

우대석 팀장은 선수들의 입장에서 공감을 해 주고 뭐라도 좀 더 챙겨 주려는 사람이었으나, 그래도 이런 부분들까지 감싸 주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그런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요.”

“뭐, 그것도 그렇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자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적은 것 같기는 해.”

맹 부장은 우 팀장의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생각하면 오히려 뿌듯하기도 한 결과였다. 소수의 몇몇을 제외하면, 다들 그동안 열심히 실력을 쌓아 왔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이번 기회에 성장한 선수들이 훨씬 많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저기 김찬수 선수라든가.”

우 팀장은 마침 도착한 태권도 훈련장의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선 한참 김찬수 선수와 다른 선수의 대련이 이뤄지고 있는 참이었다.

“와… 찬수 저거, 왜 이렇게 실력이 올라갔지?”

“원래도 잘하던 놈인데, 더 잘하니까 그냥 손을 댈 수가 없는 수준이네.”

멀찍이서 들려오는 다른 선수들의 대화 소리.

그 말이 딱히 과장은 아닌 것이, 태권도를 그리 잘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이 봐도 김찬수의 몸동작은 비범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안쪽에 남아 있던 의심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최선을 다하기 시작한 김찬수의 진짜 실력.

원래부터 성적이 좋았기에 유망주 같은 기대를 받던 선수였으나… 지금은 유망주를 넘어서 대놓고 대표 팀의 정점에 올라선 듯한 느낌이었다.

“김찬수 선수도 요즘 이야기가 많이 나오긴 하지. 물론, 좋은 방향 쪽으로 말이야.”

“그러니까요.”

맹 부장이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우 팀장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허나 맹 부장은 이내 의문 섞인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근데, 김찬수 선수는 이번에 안마를 안 받지 않았나? 기존에 후유증으로 안마원에 다녔던 인원들은, 열외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건… 음.”

그건 사실이었다.

뭐라 말을 하려던 우 팀장은 잠시 입을 다물고 침음을 흘리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잘 알지 못하는 내용에 대답하기 좋은, 적당한 문장이었다.

* * *

“어이, 이보르.”

“…음?”

라이너 호텔의 로비 옆에 위치해 있는 카페.

그곳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던 이보르 깁슨은, 자길 부르는 목소리에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사람 불러 놓고 자고 있는 거야?”

“뭐야, 베네릭. 벌써 올 줄은 몰랐지.”

가볍게 명상을 하고 있던 도중 방해를 받은 참이었으나, 그렇다고 불청객은 아니다.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한 깁슨은 이내 반가운 기색을 내비치며 말을 건넸다.

“나는 또 팬들한테 사인해 주다가 이십 분, 삼십 분 정도씩은 늦을 줄 알았거든.”

“팬들은 무슨. 미국이나 영국에서면 몰라도, 이렇게 머나먼 타국에서까지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래? 헐리웃 무비 스타면서.”

베네릭 브라운.

헐리우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국 출신의 배우로서, 몇 년 전부터 계속 전성기를 갱신해 가고 있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꽤나 유명한 배우였다.

원래는 동양권보단 서양권 쪽에서만 유명하다는 평가를 받았었고, 실제로 그런 성향이 있었으나…….

“그럼 지금 이렇게 십 분 늦게 온 건, 그냥 친구와의 약속을 가볍게 여겨서 늦은 건가.”

“…아니.”

“그러면 왜 늦은 건데?”

“…팬들이 있어서 사인을 해 주다가.”

그것도 지금에 와서는 옛말이다.

최근 작품들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글로벌적인 히트를 치면서 그냥 어딜 가든 대접을 받는, 말 그대로 무비 스타가 되어 버린 탓이다.

“그래도 네가 아까 말한 것처럼 십 분, 이십 분 늦은 건 아니잖아.”

“말은 잘하네.”

이보르 깁슨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평소 딱딱하고 굳은 인상으로 알려진 그였으나, 고향 친구를 만났기 때문인지 지금은 퍽 정겹고 장난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라일리는 잘 지내고 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부인의 안부를 물어보는 이보르.

두 사람 정도의 사이라면 얼마든지 물어볼 수 있는, 아니 오히려 물어보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질문이었으나.

“라일리라…….”

그 말을 들은 베네릭의 표정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그는 자기 얼굴을 감추려는 듯 물 한 모금을 마시더니, 애써 담담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좀 안 좋아.”

“…싸웠어?”

“별거 중이거든.”

그 말을 들은 이보르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꺼낸 이야기가, 딱 봐도 무거운 이야기로 돌아온 탓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다만 그의 얼굴에 나타난 건 당혹감이나 호기심 같은 것이 아니라, 친구에 대한 걱정이었다. 베네릭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조그맣게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나랑 라일리 사이에 아직 자식이 없잖아.”

“그랬었지.”

정확히 말하자면, 자식을 갖고 싶은데도 좀처럼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기에 제대로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그게 당사자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이보르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 때문이라더라. 사실상 불임이래.”

“…어?”

“근데 여기 술은 안 파나?”

나름 무거운 이야기일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당황해 버린 깁슨.

그것과 별개로, 베네릭은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술을 찾기 시작했다. 비록 담담한 말투로 말하긴 했으나 그로서도 착잡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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