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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29화 (229/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29화

“뭐 어쨌거나, 덕분에 요즘 참 많은 연락을 받고 살고 있네요. 태한 씨 덕분에 없던 인맥까지 만들어지게 생겼어요.”

유세아는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바꾼 후, 화면이 보이지 않게 뒤집어 놓으며 장난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강태한도 싱긋 웃으며 농담으로 받아쳤다.

“그럼 이참에 아예 세아 씨를 가게 홍보 모델로 쓸까요? 그렇게 하면 굳이 일일이 말하고 다닐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하하, 그거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유세아는 강태한의 말에 조그맣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조심스레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러다 문득 뭔가 생각이 난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생각일지도?”

“…농담을 진지하게 받으면 좀 곤란한데요?”

“아뇨, 홍보 모델을 한다는 게 아니라.”

유세아는 강태한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강태한이 홍보 모델을 운운한 것은 단순한 농담이었고, 유세아 또한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단지 그 말을 발단으로 다른 생각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그냥 저도 천마안마 인증 SNS를 올리면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에요. 그럼 주변 사람들도 그걸 보고 대강 추측할 테니까요.”

확실히 그럴듯한 이야기다. 다만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었기에, 강태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음. 근데 세아 씨는 SNS 잘 안 하시잖아요?”

“마냥 그렇지도 않아요. 예전에는 여기저기 자주 들락거리면서 이것저것 많이 올리기도 했었거든요.”

좀 더 정확히는, 강태한과 만나기 이전까지는 SNS에 사용하는 시간의 비중이 꽤 큰 편이었다.

그때는 뭐라고 해야 할까, 가끔 인간적인 쓸쓸함이 있었다고 할까, 종종 허무한 느낌이 있었다고 할까…….

연예인은 대중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사적이거나 인간적인 관계를 맺기가 힘들다.

거기서 오는 뭐라 딱 잘라 말하기 힘든 공허함.

헌데 그런 부분들을 조금이나마 채워 주는 느낌이 있어, 유세아는 한때 SNS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구나. 저는 세아 씨가 스마트폰 만지고 있는 모습도 그렇게 많이 못 본 것 같은데.”

“후후. 요새는 좀 손이 잘 안 가긴 하더라고요.”

“그래요? 하다 보니 좀 질리신 건가.”

“그것도 그렇긴 한데, 그보단…….”

유세아는 말을 흐리면서 강태한을 빤히 쳐다보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떤 행동에는 항상 원인이 있는 법.

반대로 말하면, 그 원인이 해결되었다면 그 행동이 이어질 이유도 없다. 그와 만나게 된 이후, 종종 느껴지던 공허함은 진즉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자리를 대신 메우고 있는 것은 두근거림과 설렘.

그냥 이렇게 보고만 있어도 종종 웃음이 나온다.

주변에서 말하길 일반인과 만나 봤자 서로 간의 간극만 느끼게 될 뿐 실망스럽게 끝나기 쉽다는데, 적어도 그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그런 느낌을 받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보단?”

“아니다, 말 안 할래요.”

다만, 이런 말을 곧이곧대로 입에 담기는 아무래도 좀 부끄러운 일이다. 그녀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는, 천천히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흠… 말하다가 끊는 건 반칙인데.”

“저 같은 여자 친구는 가끔 반칙 좀 해도 돼요.”

유세아는 그렇게 말하곤 일부러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옆으로 보이는 그녀의 입꼬리는 아직 장난스럽게 올라가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도 말할 게 있었는데.”

“왜요, 태한 씨도 말하다가 끊으려고요?”

유세아는 말하지 않아도 훤히 보인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태한은 음료의 빨대를 입가로 가져가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다른 게 아니라, 이번에 안마 의자 하나 더 개발에 들어갔다고 했었잖아요.”

“…그랬었죠?”

“그게 이번에 에이플이랑 협업을 한다더라고요.”

“엑, 에이플이면 제가 아는 그 에이플이요?”

별 관심이 없는 척 경계하며 듣고 있던 유세아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예상치 못한 키워드가 등판을 하면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다.

안마 의자와 에이플의 협업이라니.

게다가 그 안마 의자는 연인이 개발에 참가하고 있는 제품이다. 이건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화젯거리였다.

“아마 세아 씨가 아는 에이플이 맞겠죠.”

그런 유세아의 반응에, 강태한은 히죽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유세아가 재촉하듯이 거듭 질문을 던졌다.

“에이플이랑 어떻게 협업을 하는데요?”

“그게 제가 듣기로는… 아, 이거 아직 기밀이었나?”

강태한은 잠시 말을 멈추고 뜸을 들이더니,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유세아는 아랫입술을 안으로 집어넣고는 조금 삐진 표정을 지었다.

“말하다가 끊으면 궁금해서 어떻게 해요.”

“그러게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거짓말.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꺼냈으면서.”

유세아의 발끈하는 목소리에 강태한은 웃음을 터트렸다. 생각한 대로 반응하는 유세아의 모습은 새삼 귀여운 것이었다.

* * *

천마안마의 휴게실 안쪽에 위치한 다목적 수면실.

원래는 그저 피곤한 직원들이 낮잠을 잘 수 있도록 따로 마련해 놓은 복지 공간, 말 그대로 수면실일 뿐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다른 용도로 더 자주 쓰이고 있는 공간이었다.

그 용도는 다름 아닌 안마의 연습. 강태한이 안마 강습을 시작한 이후로, 따로 연습을 할 만한 공간을 찾던 안마사들은 자연스레 이곳으로 모였었다.

커튼으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데다 침대도 있으니 딱 적당한 공간이라고나 할까. 그렇다 보니 지금은 다목적 수면실이란 말이 무색한, 사실상 안마 연습실처럼 사용되고 있는 곳이다.

“흐음…….”

한편, 그 이름만 수면실인 이곳 앞에는 꽤 많은 안마사가 모여 있었다. 정확히는 뭔가 구경거리라도 있는 것처럼 군중이 둥글게 원을 그리고 모여 있는 상태였다.

“지압 솜씨가 정말 많이 느셨네요, 종화 씨.”

그리고 수면실 안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강태한. 그는 방금 전까지 황 실장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던 안마사를 쳐다보고는, 담담한 말투로 짧은 칭찬을 입에 담았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중간에 허리 쪽에서 실수를 좀 하시긴 했지만, 그렇게 큰 실수는 아니었고요.”

강태한의 말에 남자, 이종화는 순간 흠칫 놀랐다.

그가 어떤 걸 실수라고 말하고 있는지는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실제로 허리춤을 지압하고 있을 때, 기준을 잘못 잡은 탓에 두어 번 정도 혈 바로 옆의 다른 자리를 눌렀던 것이다.

다만, 반대로 말하면 딱 그 정도의 실수다. 그마저도 곧바로 수정하여 다시 제대로 안마를 시작했다.

누르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아차리기 힘든 수준. 심지어 안마를 받고 있는 사람조차도 정말 예민하지 않고서는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런데 그걸, 당사자들도 아니고 몇 발자국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제삼자가 파악해 낸다? 솔직히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원장님은 진짜 대단하시네…….’

허나 그 말을 꺼낸 것이 강태한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인 것은 여전했지만, 그 말을 말이 되지 않는 사람이 꺼낸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는 법이다.

“사족이 길었네요. 어쨌거나 심사 결론은…….”

강태한은 슬쩍 옆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양손에 클립보드와 볼펜을 각각 쥐고 있는 최성현의 모습이 있었다.

“장인 코스를 맡으셔도 괜찮으실 것 같네요.”

“정말입니까!”

“네. 충분하십니다.”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강태한과 그 말을 듣자마자 클립보드의 종이에 동그라미를 치는 최성현. 그에 안마사 이종화는 잔뜩 들뜬 반응을 보였으며, 주변의 다른 안마사들도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야, 종화가 다섯 번째로 올라가는구만.”

“종화 쟤는 원래 잘했으니까. 찾는 손님도 많고.”

“솔직히 인정할 만하다.”

이 행사는 다름 아닌 장인 코스 심사.

심사라고 해도 그냥 수면실에서 이뤄지는,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천마안마의 일반 안마사들 사이에선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일이었다.

‘이제부터 안마사분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승급 심사를 신청하실 수 있으십니다. 일반 안마사분 중에서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말씀해 주세요.’

저번 주쯤에 강태한은 그렇게 발표를 했고, 그 이후 이런 식으로 간간이 심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해당 심사를 진행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일반 안마사들도 강습을 받으며 이제는 실력이 많이 올랐고, 개개인 사이에서도 꽤 많은 격차가 벌어져 있었기 때문.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같은 일반 안마사라고 해도 얼마 전에 막 들어온 신입 안마사가 있는 한편, 찾는 손님이 많아 쉬는 시간이 거의 없는 안마사도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안마사들 수입의 대부분은 성과금이고, 실력 차이와 찾는 손님 숫자의 차이만큼 가져가는 돈에도 그만큼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의욕의 문제라고 할까.

실제로, 장인 코스 심사를 보겠다고 말을 꺼낸 이후로 안마사들 사이에서 기존보다 한층 더 의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만 일어나시죠, 실장님.”

“아, 오늘은 종화 한 명이었나?”

“네. 고생하셨어요.”

“나야 뭐, 항상 하던 거 하는 건데, 뭐.”

시범용 마네킹처럼 침대 위에 누워 있던 황 실장.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가볍게 허리를 좌우로 비틀며 어깨를 돌렸다. 그는 새삼스레 감탄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아, 확실히 느낌이 좀 괜찮긴 하네.”

“그렇죠?”

“응. 뭐 태한 씨처럼 분석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몇 명은 이렇게 안마 후에 몸을 조금만 움직여 봐도 느낌이 다르단 말이지.”

여태 동안 강태한이 장인 코스로 올린 사람은 두 명.

강태한은 나름 엄격한 기준으로 그들을 선별했고, 마네킹처럼 매번 안마를 받는 황 실장도 그들을 인정하고 있었다. 콕 집어서 말하기는 힘들지만, 받는 입장에서도 느껴지는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근데 이렇게 장인 코스로 올려도 되나?”

“왜요? 안 될 건 없을 것 같은데.”

“그렇긴 한데… 좀 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거지. 아무래도 성현이나 태진 씨 같은, 기존 장인 코스 담당자들이랑은 실력이 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니까.”

황 실장의 말에 강태한은 팔짱을 꼈다. 그러고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뭐…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일반 안마사들 사이에 격차가 있듯, 장인 안마사들 사이에 격차가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기존의 세 사람 사이에서도 최성현과 두 사람 사이에는 적지 않은 격차가 벌어져 있었으니까.

만약 그 격차를 전부 따라잡아야 장인이 될 수 있다, 라고 한다면, 적어도 몇 년은 흘러야 네 번째 장인 코스 담당자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장인 코스라 해도, 저희 처음에 올라왔을 때보단 종화 아저씨가 더 잘하시는 것 같긴 해요.”

그런 강태한의 말에 최성현이 거들듯이 말했다.

그 말대로, 예전 장인 코스를 맡았을 무렵의 세 사람보다 더 뛰어난 일반 안마사도 적지 않은 편이었다. 만약 당시의 기준으로 본다면, 거의 절반가량의 안마사들은 장인 코스의 자격이 있다고 볼 수 있으리라.

“그리고 언제까지 세 명이서 장인 코스를 맡을 수는 없잖아요. 나중에 성훈 씨나 태진 씨는 분점장으로 빠지실 수 있고, 성현이도 왔다 갔다 해야 할 텐데.”

“…하긴, 그것도 그렇네.”

애초에 그것 때문에 진행하고 있는 일이었다.

사업을 확장한다 하더라도, 기존 사업의 서비스에는 차질이 없어야 한다. 그야말로 기초 중의 기초이지만, 생각보다 잘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천마안마에서 이를 지키기 위해선, 그동안의 구조로는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다.

물론 천마안마의 명성은 강태한이 만들어 낸 것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손님이 천마 코스만을 위해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러는 게 좀 더 다른 안마사분들한테도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고요.”

“맞는 말이기는 해.”

강태한의 말에 황 실장은 거듭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으로 시선을 돌려 휴게실 쪽의 모습을 보았다.

평소에도 자발적으로 강습에 참가하고 연습을 하던 안마사들이지만, 확실히 요 근래에는 거기서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중이었다.

* * *

충청북도 진천군에 위치해 있는 대규모 체육 시설.

소위 진천 선수촌이라 불리는 이곳은, 각 스포츠 종목의 국가 대표 선수들을 모아 훈련을 시키는 합숙 시설이자 종합 트레이닝 센터이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뛰어난 스포츠 선수들을 모아 놨다고도 할 수 있는, 스포츠 업계에서 가장 치열한 현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곳.

“자… 오늘은 이 정도만 할까?”

“그래도 되나요?”

“몸 좀 풀렸으면, 여기까지만 해도 될 것 같아.”

다만 근래 훈련장의 분위기는 치열함보다는 살짝 여유가 있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다고 느슨한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훈련 일정 자체는 좀 여유가 있게 잡혀 있는 것 같았지만, 선수들 사이의 분위기는 팽팽하게 당겨진 줄처럼 항상 긴장감이 맺혀 있었으니까.

이런 상반된 분위기가 나타난 이유는 단순했다.

올림픽까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들에게 있어선 사 년간의, 아니 어쩌면 평생 동안 노력한 성과를 거둬들이는 순간이다.

그렇기에 이 짧은 기간이라도 좀 더 훈련을 해서 기량을 올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다 부상을 입거나 컨디션을 망치면 끝장이다.

때문에 훈련 일정은 실력을 높이기보단, 당일까지 감을 놓치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이뤄진다.

허나 그렇다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그 결과, 얼핏 보기엔 느슨해 보이지만 잔뜩 긴장감이 서려 있는, 그런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가 흐르는 선수촌에.

“우 팀장님이셨죠?”

“아, 네. 맞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원장님.”

“아뇨. 버스도 보내 주신 덕분에 편하게 왔는걸요.”

한 남자가 막 도착하여, 주차장으로 마중을 나온 인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우 팀장은 남자의 말에 그런 말씀 말라는 듯 두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유, 원장님이 저희 선수들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내주신 건데, 그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마음 같아선 제가 직접 업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거, 과장이 심하시네요.”

과장된 몸짓으로 빈말이 아니라는 듯이 등을 내보이는 우대석 팀장의 모습에 그 남자, 강태한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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