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228화
‘포스(Force)라…….’
이보르의 말을 들은 강태한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포스. 직역하자면 단순한 힘이지만, 아마 그가 말한 것은 그런 사전적인 의미가 아닐 것이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느낌이긴 하지.’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친 어느 영화에서 나오는 개념. 정확하게 따지고 들어가자면 기(氣)와는 명백히 다른 개념이지만, 그래도 얼추 비슷하게 보이는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사람은 생전 겪어 보지 못한 낯선 경험을 할 때, 본인이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 중 가장 비슷한 개념에 빗대어 이해를 하려고 한다. 그래야 어떻게든 어설프게나마 판단을 내릴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보르가 지금 포스라는 개념을 떠올린 것은, 어찌 보면 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온 것은 별개의 일이지만 말이다.
“오오……!”
한편, 이보르 본인은 그저 연신 감탄만을 터트릴 뿐이었다. 놀란 기색이 역력한 표정. 그는 뒤에 있는 강태한에게는 신경도 쓰지 못하는 듯, 본인의 손발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선생님, 이건… 대체?”
“이보르 씨가 저번에 부탁할 때 말씀하신 게 있지 않습니까. 조금만 더 가면 뭔가에 닿을 것만 같은데, 좀처럼 닿질 않아서 답답했다고.”
“…예. 그랬었죠.”
이보르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감각에 정신이 없는 와중이었지만 그 정도는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 느껴지고 계신 게 바로 그겁니다.”
“…하하. 그렇군요.”
이보르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다시 본인의 손바닥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새삼 신기하다는 듯이 팔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냥 느낌부터가 달라.’
몸 안에서부터 뭔가가 흐르고 순환하는 기분.
이 감각이 바로 자기가 닿고자 했던 바로 그 영역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허나, 이렇게 아예 새로운 감각이 열려 버리니, 당황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상상을 훨씬 웃돈다고 해야 할까.
이보르가 떠올렸던 것은 어떤 영적인 깨달음, 혹은 보다 세밀한 감각… 명확하게 짚어 말할 순 없지만, 대강 이런 느낌이었다. 허나 이건 그런 것과는 궤를 달리했다.
말하자면, 기존의 오감과는 다른 별개의 여섯 번째 감각이라고 할까.
후각과 청각이 서로 다른 개념이고 청각과 미각이 다른 개념이듯, 이 새로운 느낌은 기존에 그가 느끼던 감각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그나마 촉감과 비슷하다.
본래 감각이 없던 곳으로 촉감이 뻗어져 나가고 펼쳐지는 듯한 느낌. 이는 몸 내부는 물론이거니와, 1cm 정도에 불과하지만 몸 바깥쪽으로도 감각의 층이 펼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엄청나군요…….”
아직은 이 방 안에서 팔다리를 조금씩 움직여 봤을 뿐이다. 애초에 그의 기감이 그렇게 뛰어난 것은 아니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에 불과한 수준이다.
허나 지금의 이 상태만으로도 어렴풋이 추측할 수는 있었다. 이 감각에 적응하고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신체 활동에서 얼마나 큰 이점을 가져올 수 있을지를 말이다.
“이미 기감이 한번 트였으니, 앞으로도 집중만 하신다면 다시 이 느낌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평소처럼 명상을 하다 보면 적응도 금방 될 거고요.”
“그렇군요… 선생님,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별말씀을. 그리 대단한 걸 하진 않았는걸요.”
자신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여전히 신기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던 이보르는, 강태한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꾸벅 머리를 숙였다.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강태한의 말은 겸손의 말이 아니었고, 실제로 그리 대단한 조치를 해 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기감을 느끼기 좀 더 쉬워지도록, 이보르의 혈도 내부에 본인의 기를 흘려보내고 몇몇 혈도에 자극을 줬을 뿐이다.
거기에 이보르의 내력(內力)이 반응하고, 자극을 느끼게 되면서 기감이 트이게 된 것.
강태한의 도움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허나 그렇다고 그게 대단한 도움인가?
하면 그건 또 애매하다. 그가 한 행동은 그저 벽을 뚫고 나오기 직전인 상태에서 벽에 작은 구멍을 하나 뚫어 준 수준에 불과했다.
결국 이보르가 이렇게까지 강한 자극을 느끼고 단숨에 기감까지 트이게 된 것은, 본인 스스로 기감을 뚫기 직전의 상태까지 다다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본인의 경지로 효과가 극대화된 경우라고 할까.
굳이 비유를 들자면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밖에서 부리로 한번 쳐 준 느낌이고, 우물을 파고 있을 때 수맥이 흐르는 곳 위에서 삽 한번 떠 준 느낌이다.
“…저, 선생님. 여쭤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예. 말씀하시죠.”
한편, 그동안 다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앉아 있던 이보르는, 강태한을 쳐다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사뭇 진지한 느낌이었다.
“혹시 좀 더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이라 하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오늘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좀 더 머무르며 선생님한테 가르침을 받아도 되겠냐는 말입니다.”
처음으로 기감을 느낀 감상은 그야말로 경악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갑갑한 기분도 있었다.
이보르는 이제 막 기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으나, 그걸 어떻게 해야 활용할 수 있는지, 어떻게 다뤄야 할지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니까.
말하자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두 다리로 서려면 어떻게 힘을 줘야 하며, 어떻게 발을 내밀어야 넘어지지 않는지, 조금도 갈피가 잡히지 않는 느낌이다.
어찌 보면 아기보다도 더 심각한 상황이다.
아기는 그동안 다른 어른들이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기라도 했지, 그는 정말로 아무런 갈피도 잡을 수가 없었으니까.
“이미 도움을 받은 상태에서 거듭 부탁을 드리는, 염치가 없는 상황입니다만…….”
이보르는 자세까지 고쳐 잡고는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뭔가 어려운 부탁을 하는 듯한 분위기.
허나 강태한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그의 부탁을 듣자마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될 것 없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어… 정말이십니까?”
“예. 대신 제 일정에 맞춰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그야 물론입니다! 제가 부탁을 드리는 입장이지 않습니까. 그건 당연한 부분이죠.”
그 말에 곧바로 화색을 짓는 이보르. 그 반응에 강태한은 별다른 말없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곽 지배인이 좋아하시겠네.’
안 그래도 캘리버 선수가 장기간 머무르고 에버튼 FC 선수들이 왔다 가서 아주 기분이 좋은 듯한 반응이었는데, 여기서 이보르 선수까지 장기 투숙을 한다면 더욱 기뻐하지 않겠는가.
딱히 그런 걸 염두에 두고 답한 것은 아니었으나, 문득 떠오른 곽상영 지배인과 관련된 생각에 강태한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혹시 선생님은 그런 것도 가능하신가요.”
“어떤 거 말입니까.”
“그 왜, 영화에 나오는 광선검 같은 것 말입니다.”
앞서 언급된 영화에서 나오는 상징적인 무기의 이야기다. 안 그래도 얼핏 무뚝뚝해 보이는 외견으로 저런 이야기를 진중하게 꺼내고 있으니, 강태한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하하, 갑자기 광선검이요?”
“예. 포스를 다룬다면, 역시 광선검 아니겠습니까. 뭐 말이 안 되는 소리이긴 하지만… 기감이라고 하신 이 감각도, 사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니까요.”
허나 그런 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보르는 꿋꿋이 본인의 말을 이어 나갔다. 그 말에 강태한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시늉을 했다.
광선검이라.
광선검은 아니지만, 그것과 비슷한 개념은 있다. 내공을 압축시켜 강기를 뽑아내고, 그 강기를 검의 형태로 자아내는 검강(劍罡)이 바로 그것이다.
“아쉽겠지만, 어렵겠는데요.”
딱히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검강은 무림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에 해당되는, 고수의 반열에 들었다는 증표와도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그 대답은… 불가능한 걸 돌려서 표현하신 건가요, 아니면 말 그대로 그냥 어렵다는 뜻인가요.”
“후자 쪽입니다.”
하지만 이보르는 강태한에게 한 번 더 질문을 던졌고, 그의 대답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오랫동안 축구 외길만 살아온 그에게, 챔피언스리그 우승 외 새로운 인생 목표가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 * *
대한민국에서 방송계에 종사하는 사람의 숫자는 꽤 많은 편이지만, 스태프들이나 관계자가 아닌, 소위 연예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숫자는 꽤 적은 편이다.
거기서 일정 수준의 인지도가 있는 사람으로 범위를 좁히면 그 숫자는 더욱 줄어들게 되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현역으로 좁히면 다시 줄어들게 된다.
결국, 이쪽 업계의 바닥은 굉장히 좁을 수밖에 없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어도 몇 다리만 건너가면 연락이 닿을 수 있고, 뭔가 소문이 퍼지게 되면 금방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그렇기에 요 근래, 유세아는 정말 많은 동료 연예인에게서 문자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동료 여자 연예인들에게 말이다.
“카톡이 또 왔네요.”
라이너 빌딩 인근에 위치해 있는 한 카페.
그곳에 앉아 있던 유세아는, 스마트폰을 확인하고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탄식을 내뱉듯이 말했다.
요즘 그녀는 얼마 전 개봉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을 때보다도 더 많은 사람의 연락을 받고 있었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지인, 예전에 같이 일을 한 적이 있는 사람, 이름은 들어 봤지만 직접 얼굴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사람…….
내용들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일단은 본론과 상관없는 안부, 거기에 최근 개봉한 영화에 대한 내용 그리고… 똑같은 본론. 다름이 아니라 체중 조절의 비법 좀 알려 달라는 내용들이다.
뭐, 그걸 물어보는 것 정도까지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들어오는 문자의 숫자가 너무 많지 않은가. 이쯤 되면 차라리 안부와 일상적인 대화는 생략하고 바로 본론을 꺼내 줬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흐음. 혹시 그 후배분이 뭔가 하신 걸까요?”
맞은편에서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남자, 강태한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저번 주 쯤에 가게에 다녀갔던 김세후. 그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얼추 타이밍이 맞아떨어지니, 충분히 떠올릴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세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세후가 그랬을 것 같지는 않아요. 저번에 보니까 걔도 저랑 비슷한 상황이더라고요.”
저번에 촬영 대기실에서 같이 있었을 때, 그녀 또한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토로했었다. 유세아는 팔짱을 끼며 의자의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사실 짚이는 부분이 있기는 한데…….”
“그래요?”
“네. 뭐,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까, 자업자득… 인 부분도 있다고 할까.”
유세아는 살짝 머쓱해하는 표정으로 아메리카노의 빨대를 입에 물고,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녀는 특유의 모난 곳 없는 성격 때문일까, 식사를 하거나 술자리가 있을 때는 이곳저곳 권유를 받는 일이 잦은 편이다.
특히 요즘처럼 영화 촬영이 마무리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가 막 시작될 때에는 그런 자리들이 더욱 많기 마련이고, 그만큼 많이 돌아다닌 유세아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녀는 먹고 싶은 만큼 먹었다.
밥도, 술도, 안주도, 디저트도…….
말 그대로 마음껏.
그렇다고 무슨 먹방처럼 엄청난 양을 먹어 재낀 것은 아니었지만, 체중 관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에는 충분한, 여배우의 기준에선 따져 볼 필요도 없이 아웃인 수준의 양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외견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팔다리에 근육이 잡혀 가는 것이, 점점 건강해진다는 것이 눈으로도 보일 지경이었다.
‘세아 씨, 뭐 새로 먹는 약이라도 있어?’
‘뭐 운동 시작한 거라도 있어? 나도 좀 알려 줘!’
그렇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겠지.
그렇게 되면 소문이 되어 사방팔방 퍼져 나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아마 본인이었어도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설령 초면이라 할지라도 연락을 해 볼지 말지 한참을 고민했을 테니까.
‘흐음… 실장님이 그래서 그랬구나.’
한편, 강태한은 그녀의 이야기에 따로 떠오르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어제 황 실장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꺼내 놓았던 이야기다.
요즘 들어 여자 연예인들이 가게에 자주 보인다나.
예전부터 유명인들이 자주 찾아오기는 했지만 운동선수들을 비롯해 대부분 남자였는데, 요즘에는 마냥 그렇지도 않다는 모양이다.
일단 그런 줄은 알고 있었으나, 왜 그런 변화가 생겼는지는 알 수 없었는데… 유세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제 그 원인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찾아오는 손님의 폭이 더 넓어진 셈인가…….’
그야말로 탁월한 홍보 효과를 거둔 셈.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의도와 계산을 가지고 유세아의 몸을 풀어 줬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냥 그렇게 상황이 돌아갔을 뿐.
‘좀 더 계획을 빨리 굴려야겠는걸.’
다만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손님이 늘어난다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소화가 가능할 때의 이야기였으니까. 강태한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앞에 놓인 음료를 집어 한 모금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