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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27화 (227/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27화

“아… 뭐, 딱히 별생각이 있는 건 아니고요.”

한편 유세아의 반응에 김세후는 순간 흠칫 놀랐으나, 이내 가볍게 고개를 젓고는 컵에 물을 따르기 시작했다. 마치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자연스레 연출된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냥 거기 사장님이 좀 훤칠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궁금했다고 할까, 호기심이 있었다고 할까… 그게 갑자기 생각이 나서요.”

다만, ‘연인이 있느냐’라는 질문 자체가 대놓고 특정 의도를 품은 질문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말은 다소 궁색한 변명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아마 평소의 그녀라면 굳이 이런 말은 하지 않았으리라. 사람이 이성한테 호감을 느끼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설령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라 하더라도, 질문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녀의 성격대로라면 아마 ‘내 스타일이라 호감이 간다’라고 솔직하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방금 전 유세아의 반응을 본 순간, 김세후는 저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말았다. 어딘가 싸늘했던 눈빛. 그 눈빛과 마주했을 때, 그녀는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었던 것이다.

‘왜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무래도 자기가 건드리면 안 되는 부분을 건드린 것 같았다. 물론 그냥 다른 일로 심기가 불편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고, 본인의 착각일 수도 있다.

허나 행여 잘못 건드렸다가는 뭔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아니, 이미 건드리기는 건드려 놓은 상황이고, 대처라도 잘해서 무마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흠… 그렇구나.”

다행히 그런 그녀의 대처는 헛되지 않았는지, 유세아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와 젓가락으로 집어 든 반찬을 마저 입으로 가져갔다.

뭔가 싸늘한 분위기도 한층 누그러지고, 왠지 모르게 느껴지던 날카로운 기색도 사라져 있었다. 김세후는 작은 숨을 내쉬며 물 한 모금을 마셨다.

“그건 그렇고, 역시 그런 사람은 다 임자가 있는 법이네요. 누군지는 몰라도 참 복받았다. 어지간한 모델보다 비율도 좋던데.”

그래도 못내 아쉬움이 남았는지, 그녀는 탄식을 흘려보내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유세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과 달리 어딘가 흐뭇해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하하… 에이, 좀 과찬이다, 야.”

“그런가요? 연예인 중에서는 몰라도, 일반인 중에서 그 정도면 진짜 잘생긴 거 아닌가?”

연달아 이어지는 강태한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

상당한 호평이 연달아 이어지고 있었지만, 딱히 그녀가 빈말을 꺼내거나 사심을 담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객관적인 평가를 말할 뿐이었다.

“하긴… 거기 원장님이 좀 훤칠하시긴 하지.”

“맞아요. 원래 그런 안마복 같은 걸 입고 멋있어 보이기가 쉽지가 않은데, 진짜 장난 아니더라고요.”

“그렇지, 그렇지. 네가 모델 경력이 있다 보니까 보는 눈이 좀 있구나?”

방금 전에는 강태한 원장에게 관심을 갖는 뉘앙스를 띄자마자 싸늘한 반응을 보였던 유세아였지만.

정작 계속해서 이어지는 칭찬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동조하는 기색이다. 왠지 모르게 뿌듯해하면서도 머쓱해하는 반응이었다.

‘어라……?’

이 잠깐 동안에 나온 정보들.

비록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짧았지만, 오고 간 대화의 내용을 생각하면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김세후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 하지만 그런 분이랑 사귀는 거니까, 아마 상대방도 엄청난 사람이겠죠? 어지간한 톱급 연예인도 뺨치는, 그런…….”

“에이, 에이! 그건 너무 갔다! 의외로 평범한 축에 속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역시나, 유세아는 그녀가 추측한 대로의 반응을 보였다. 강태한의 연인에 대한 칭찬을 하니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 언니, 한참 연애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

연애에 대해서는 굳이 서로 물어보지 않는다.

가수나 예능인, 배우와 같은 연예인들 사이에선, 일종의 불문율처럼 여겨지는 부분이다. 말하는 입장에서도 듣는 입장에서도 나중에 불편한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애초에 언급을 피하는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고 딱히 제한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일종의 기본적인 매너라고나 할까.

다만 본래 연애를 한다는 것은 굳이 입으로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지 않더라도 티가 나는 것이다.

평소 스마트폰을 잘 보지도 않던 사람이 대기실에서 스마트폰만 보고 있다든가, 요 근처 맛집들에 갑자기 관심이 생긴다든가, 꾸미는 데에 좀 더 신경을 쓴 게 대놓고 보인다든가…….

이는 유세아 또한 마찬가지였고, 때문에 안 그래도 어렴풋이 그런 추측을 하고 있었던 김세후다.

‘그래서 그런 반응을 보였었구나.’

그리고 방금 오고 갔던 일련의 대화를 보았을 때, 그 대상이 누군지는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고 방금 전의 반응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납득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 친구 본인 앞에서 ‘그 사람 여자 친구 있나요?’라고 물어본다면, 아무래도 동요를 할 수밖에 없으리라. 알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실례가 될 수 있는 말을 꺼낸 것이다.

‘뭐… 세아 언니면 어쩔 수 없지.’

본래 임자가 있는 사람은 건드리지 않기도 하지만, 그 사람이 유세아 정도나 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승부를 걸어 볼 만한 생각도 들지 않는다. 김세후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거기 원장님도 상당하시기는 하네…….”

“응? 뭐라고 했어?”

“염통은 슬슬 먹어도 될 것 같다고요.”

김세후는 고개를 저으며 시치미를 떼고는, 얼추 거의 다 익은 염통 한 조각을 유세아 쪽으로 옮겨 놓으며 말했다.

* * *

“스으으읍…….”

적막이 흐를 정도로 조용한 방 안.

그 안에선 누군가가 숨을 들이쉬는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다만, 그렇다고 남자의 숨소리가 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주변이 그만큼 조용할 뿐

“후우우…….”

이윽고 들이쉴 때와 마찬가지로 긴 숨이 이어졌다.

남자는 그 뒤로도 깊은 호흡을 수차례 반복했다.

누군가 본다면 중간마다 숨이 끊어진 게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로 느릿한 호흡이었으나, 그 간격만큼은 일정하여 굉장히 안정적인 느낌이 있었다.

“흐음…….”

심호흡에 집중을 하고 있는 남자, 이보르 깁슨.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강태한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침음을 흘렸다. 턱을 매만지고 있는 그의 표정은 꽤나 흥미로워 보이는 것이었다.

“일단 이 정도면 됐습니다.”

강태한은 그렇게 말하고는 허공에서 짝, 하고 손뼉을 두드렸다. 가벼운 손짓이었음에도 그 소리는 방 전체에 닿을 정도로 큼직하게 울렸다.

“…이것 참. 괜히 머쓱한 기분입니다.”

그와 동시에 눈을 뜬 이보르.

명상에서 빠져나와 잠시 조용히 침묵하고 있던 그는, 강태한 쪽을 쳐다보면서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강태한이 웃으며 답했다.

“머쓱할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럴 만도 하죠. 통달한 달인 앞에서 초보자가 시범을 보이고 있는 느낌이지 않습니까.”

이보르 깁슨은 마저 답하며 천천히 고개를 젓다가, 테이블에 놓인 찻잔을 발견하고 강태한을 쳐다봤다. 강태한은 그에게 차를 권하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드시죠. 아마 도움이 될 겁니다.”

“이거 저번에 안마 마치고 마셨던 그 차인가요?”

“맞습니다. 따로 챙겨 왔거든요.”

“흠, 그럼 잘 마시겠습니다.”

강태한의 말에 이보르는 조심스레 찻잔을 집어 들었다. 담담한 말투였으나, 정작 그의 얼굴에는 반가운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안 그래도 꽤 마음에 들어, 안마를 받고 나왔을 때 ‘따로 구할 수는 없냐’라고 직원에게 물어봤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음… 곽상영 지배인이 다시 한번 손을 좀 댔다더니, 확실히 예전보다 좀 더 좋아진 느낌이 있네.’

한편, 강태한은 자신의 찻잔에도 차 한 잔을 따르고는 가볍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둘이 있기에는 살짝 낭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꽤 넓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띠고 있는 공간. 이곳은 천마안마가 아니라 이보르가 머무르고 있는 라이너 호텔의 스위트룸 객실이었다.

예전에 아버지를 초대했을 때 한번 들른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때보다도 더 좋아진 느낌. 이번에 호텔의 퀼리티를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더니, 확실히 티가 나는 모습이었다.

‘뭐 그건 그렇고…….’

다만 그가 여기에 온 것은 객실의 리모델링을 확인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보르의 모습을 슬쩍 보았다.

그가 이 자리에 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지난번에 이보르와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자신에게 좀 더 제대로 된 명상법을 알려 달라고 했던 이보르의 부탁. 강태한은 거기에 동의했고, 약속을 지켜 이곳에 찾아온 것이었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확실히 제법이야.’

지금은 그렇게 그의 명상을 한차례 지켜본 상황.

그리고 그는 솔직한 감탄을 느끼고 있었다. 별다른 도움 없이 혼자서 독학을 한 것치고는 제법 상당한 경지에 도달해 있었던 탓이다.

툭 까놓고 말하자면 이대로 계속 혼자서만 연습을 하더라도 스스로 머지않아 기감을 터득할 정도.

누군가 기초를 알려 준 것도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강태한이 ‘심호흡을 좀 해 봐라’라는 조언만으로 여기까지 도달한 것은 충분히 감탄할 만한 일이었다.

“저, 그건 그렇고, 어땠습니까? 제 상태는.”

한편, 찻잔을 비워 낸 이보르는 조심스레 강태한의 반응을 살피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어딘가 살짝 긴장한 기색이 보이는 그런 얼굴이었다.

“잘하시던데요.”

그리고 강태한은 느낀바 그대로를 입에 담았다. 그는 싱긋 미소를 짓고는 흥미로워하는 표정으로 넌지시 입을 열었다.

“특히 집중력이 어마어마하시더군요. 어떤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셔도 크게 성공을 거두셨겠습니다.”

강태한은 마냥 없는 말을 지어 낸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자연 속에서 기(氣)를 거의 느끼기가 어려워진 시대이고, 그렇다 보니 영기나 무공에 대한 적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이보르 또한 마찬가지다.

신체 능력은 상당히 뛰어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재능은 거의 없다. 그냥 일반인의 수준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이보르 깁슨이라는 남자에게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도움이 되는 재능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집중력.

본래 사람의 정신이라는 것은 중요한 순간에도 딴생각을 떠올릴 정도로 산만하다. 한참 피곤한 퇴근길에 운전을 하면서도 저녁 메뉴를 떠올리곤 하니까.

그러나 사람에게는 본인의 의식을 의도적으로 한 곳에 몰두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일반적으로 집중력이라고 불리는 개념. 사람은 이 능력에 따라 본인 역량의 절반밖에 활용을 못 할 수도, 혹은 그 이상으로 활용할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이보르 깁슨이라는 선수는 그 집중력이 뛰어난 수준을 넘어 엄청난 수준이었다.

‘실제로 선수 평가도 그런 느낌이었었지.’

피지컬이 부족해 활약 빈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탁월한 현장 분석 능력과 후반 마지막까지 무너지지 않는 정신력을 갖고 있다고 했었던가.

강태한은 지난번 인터넷의 위키에서 찾아봤던 이보르 깁슨의 항목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집중력이라면 그런 평가를 받고도 남을 만했다.

“…과찬이십니다.”

이보르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더니, 그렇게 한마디를 입에 담았다. 여전히 담담한 말투였으나, 방금 전보다 조금 부끄러워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근데, 그럼 고칠 부분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흠… 예. 사실 명상은 본인에게 맞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최고거든요.”

명상이란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다.

물론 운기조식(運氣調息)처럼 직접 내공을 운용하거나 혈도를 조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깊이 들어가면 깊이 들어갈수록 꽤나 복잡해지는 행동이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최대한 본인에게 맞는 자세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약간의 고통이나 자극에도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기껏 깊이 몰두하고 있던 명상이 흐트러지게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애초에 본인에게 맞는 방식을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어느 정도 기초적인 부분들은 갖출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보르 깁슨은 이미 그런 부분이 해결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스스로 깨우친 것일까.

아니면 그냥 그가 가진 상당한 집중력으로 그냥 극복하고 적응을 한 것일 수도 있다. 허나 어느 쪽이건 간에 굳이 고칠 필요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렇습니까…….”

다만 이보르는 조금 아쉬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게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어찌 됐거나 그가 벽에 부딪힌 것은 사실이고, 그걸 해결하고자 강태한에게 부탁을 했었던 것이니까.

“그럼 제가 느낀 벽은, 스스로의 힘으로 뚫을 수밖에 없군요.”

헌데 강태한도 딱히 고칠 부분이 없다고 말하면.

그건 자신에 대한 칭찬이기도 했겠지만, 달리 생각하면 달리 조치를 취해 줄 수도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적어도 이보르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다만 강태한의 말이 그런 의미인 것은 아니었다.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뇨. 이보르 씨의 명상법은 고쳐 드릴 게 없다는 거고… 그 부분은 충분히 도와드릴 수 있죠.”

그는 그러곤 자연스레 그의 뒤로 걸어갔다.

이보르는 그런 강태한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 도착한 강태한은, 이보르의 목덜미 쪽에 자신의 왼손을 슬쩍 올려놓았다.

단지 그뿐이었다.

“…허읏?!”

그러나 다음 순간.

마치 전기와도 같은 뭔가가 이보르의 전신을 타고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강렬한 자극에 이보르는 저도 모르게 제자리에서 펄떡 뛰어올랐다.

아니, 아니다.

이건 전기 충격 같은 감각이 아니다. 자극의 정도는 그와 비슷하지만, 조금 방향성이 다르다고나 할까.

그보다는 마치… 새까맣게 덮여 있던 렌즈의 얼룩을 지워 낸 느낌이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눈을 겨우 떠 내는 듯한 느낌이다.

“이, 이것은……!”

전혀 새로운 뭔가가 온몸에서 느껴지는, 그런 감각.

그 감각에 이보르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포… 포스(Force)!”

그것이 당장 그가 떠올릴 수 있었던, 적어도 그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는 이 감각과 가장 유사한 개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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