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225화
“으음…….”
그로부터 한 시간가량의 시간이 지난 후.
김세후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눈을 비비고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언제 잠들었던 거지?”
안마를 받고 난 후부터 자기가 잠에 들 때까지, 그사이의 기억이 없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성인이 되면 흔히 한 번쯤 겪어 본다는 소위 ‘필름이 끊어진다’라는 현상도 겪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조금은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기분.
하지만 그녀의 그런 당혹감이 오랫동안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 이상으로 신기한 느낌이 몸 전체에서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라? 몸이…….’
몸에서 활기가 넘쳐흐른다.
애매한 감각이라 뭐라 정확하게 짚어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내부에 있는 뭔가의 흐름이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회전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함께 차오르는 고양감.
정확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운동을 했을 때 몸에 살살 열이 올라오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허나 그 느낌이 불쾌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의 상태가 좀 더 건강에 이상적인 상황이라고.
그녀는 저도 모르게 침대에서 내려와 제자리에 일어섰다. 그러고는 손발을 흔들며 제자리에서 슬쩍 두어 차례 뜀박질을 했다.
“와… 뭐야, 이거.”
몸이 엄청나게 가벼운 데다, 근육과 관절마저도 너무나도 부드럽게 움직인다. 체감상으로는 그동안 달고 다녔던 족쇄라도 푼 듯한 기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본래 그녀는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면 평소보다도 관리에 힘이 들어가기에 해당 기간 동안 만성적인 현기증을 달고 살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느낌 하나 없이, 머릿속이 맑았다.
머리가 맑다는 표현은 너무 두루뭉술한 표현일까.
허나 김세후는 자신이 느낀 바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그 이상의 표현을 알지 못했다.
똑똑.
“아, 어… 크흠! 들어오세요!”
그때쯤에 다시금 울리는 노크 소리.
한동안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던 김세후는 순간 당황을 금치 못했으나, 헛기침을 내뱉으며 애써 기분을 가라앉히곤 침대에 얌전히 걸터앉았다.
“일어나셨군요.”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은 천마안마의 직원.
그는 조명등을 켜고 침대 앞까지 다가와선, 들고 온 쟁반을 옆에 있는 테이블 위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혹시 불편하신 곳은 없으세요?”
“아, 네. 너무 좋은데요.”
가감 없이 즉각 나오는 김세후의 대답.
그 대답에 직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사실, 다른 손님들에게라면 몰라도 천마 코스를 받은 손님에겐 그냥 절차상으로 건네는 형식적인 질문에 불과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같은 질문을 백 번이 넘게 해 왔지만, 천마 코스를 받은 손님들의 답변은 항상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대답하는 사람들의 표정 또한 비슷하다.
얼굴만 봐도 그 개운함이 전해진다고나 할까. 뭔가를 훌훌 털어 내 버린 듯한 홀가분함이 얼굴 한편에 남아 있다.
“만족스러우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강태한이 한 일이지, 직원 본인이 한 일은 아니다.
다만 그런 손님들의 반응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일하는 보람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테이블에는 따뜻한 차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준비해 뒀습니다. 느긋하게 좀 더 쉬시다가, 천천히 나와 주시면 되겠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럼 마저 쉬십시오.”
그 말을 남기고 뒷걸음질로 나가는 직원.
방 안에 남은 김세후는 닫힌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쟁반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챙겨 준 것에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녀는 이런 간식을 어지간한 자리가 아니면 입에 대지 않는 편이었다.
그 이유는 물론 철저한 식단 관리 때문.
상대방을 의심하거나 위생 상태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순전히 그 때문이다. 이런 걸 넙죽넙죽 받아먹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상당한 양의 칼로리를 섭취하게 되어 버리기 때문.
그리고 이런 생활 습관을 오랫동안 유지해 와서 그런가, 이제는 이런 걸 봐도 딱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애초에 커피를 선호하는 편이지, 차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헌데 왜일까.
‘…왜 이렇게 맛있어 보이지?’
어째서인지,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강렬한 식욕을 느끼고 있었다. 쌉쌀하게 느껴지는 차의 향기마저도 지금은 그녀의 군침을 돌게 할 뿐이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고작 따뜻한 차 한 잔에 비스킷 몇 조각일 뿐이다.
야심한 밤에 먹는 치킨, 치즈 토핑을 듬뿍 얹은 피자, 야들야들한 족발… 뭐 이런 거면 이해를 할 수 있겠지만, 이건 말 그대로 간단한 다과일 뿐이다.
‘아.’
그러다 문득, 그녀는 깨달았다.
그 빌미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 때문이었다.
꼬르르륵…….
그녀의 배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경고음.
비록 소리가 우렁차지는 않았다만, 이 방 안에 사람이 있었다면 그 누구라도 들을 수 있었을 정도의 소리였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였다.
“배가 엄청 고프구나, 지금…….”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의 배를 문질렀다.
다만 원인을 알았다고 해서 납득까지 가는 것은 아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가 천마안마에 찾아온 것은 점심시간 이후의 시간. 그리고 그녀는 점심을 먹고서 이곳에 찾아왔었다.
즉, 식사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물론 식단 관리 때문에 평소 일 인분도 절반가량을 남길 정도로 소식을 하는 편이긴 했으나, 아무리 그래도 벌써 배가 꺼질 리는 없었다.
‘…차 정도는 그래도 괜찮겠지.’
허나 무턱대고 간식을 먹을 순 없다. 잠깐의 식욕에 지게 되면, 식단 관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더욱 고생을 하게 될 뿐이다.
그녀는 잠시 고민을 하다, 옆에 있는 찻잔을 집어 입가로 가져갔다. 과자는 먹을 수 없겠지만, 따뜻한 차로 허기라도 달래려는 심정이었다.
“…어?”
하지만 입안에 차를 머금는 순간.
그윽한 차향과 함께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더니, 이윽고 몸 안쪽까지 온기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모금, 두 모금.
몸에 스며든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것일까? 차를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온기가 더해지고, 그 온기는 이윽고 활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이, 모르겠다.”
그리고 몸에서 활력이 솟아난 덕분일까.
그녀는 애써 외면하고 있던 비스킷에도 손을 뻗더니, 순식간에 쟁반을 비워 냈다. 그러곤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빈 쟁반을 쳐다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디서 뭐라도 좀 먹어야겠네.”
당연한 말이지만, 고작 차 한 잔과 비스킷 몇 조각이 허기를 완전히 채워 줄 수는 없다. 기껏해야 조금 달래 주는 정도일까.
결국 이 정도는 그녀의 식욕을 자극하는 에피타이저에 불과했기에, 그녀는 당장 먹고 싶은 메뉴들을 떠올리며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끄흐으음… 흣!”
한동안 끙끙거리다가 짧게 터져 나오는 기합.
그 순간, 양쪽에 큼직한 플레이트들을 달고 있는 바벨이 밑에서부터 훌쩍 위로 솟아올랐다.
그것을 들어 올린 것은 한 근육질의 외국인 남성.
바벨 양쪽에 플레이트가 매달린 부분이 살짝 휘어져 있는 것만 봐도, 그가 들고 있는 무게가 꽤나 무겁다는 사실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으하! 후우우!”
그렇게 잠시 있었을까.
그 상태로 버티고 있던 그 남자, 캘리버는 거치대 위에 바벨을 올려놓자마자 깊은 탄성을 터트리며 큰 숨을 몰아쉬었다. 그와 동시에 옆에서 보조를 해 주고 있던 덴버킴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박수를 쳐 냈다.
“와… 이게 진짜로 되네.”
NFL의 프로 선수인 캘리버 스미스는, 작년 한 경기에서 심각한 뇌진탕으로 사실상 은퇴밖에 답이 없는 수준의 부상을 입었었다.
다행히 해당 부상은 기적적으로 회복되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까지 왔다. 여기까지는 덴버킴도 전해 들은 내용이었다.
헌데… 그 이후의 회복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덴버킴은 손가락으로 개수를 세어 가며 바벨 양쪽에 매달아 놓은 무게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본인이 직접 확인하며 올려놓은 무게였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무게를 덜 단 것도 아닌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캘리버가 엄두도 낼 수 없었던 무게다. 물론 현역 시절에는 얼마든지 들어 올릴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직 재활 훈련에 집중해야 하는, 아직 완전하지 못한 몸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재활이라는 것은 그렇게 빨리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부르는 게 값인 선수들이 괜히 재활 치료에 연 단위의 세월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부상이 심하면 심할수록, 몸이 원래대로 되돌아가기까지는 상당히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헌데 지금의 캘리버는?
며칠 전까지 들지 못했던 무게는 물론이요, 방금 전에는 거기에 10kg를 더한 무게까지 성공시켜 냈다.
덴버킴의 직업은 왓튜버이며, 그중에서도 운동과 건강에 관련된 내용들을 주로 다루는 헬스 왓튜버다.
그렇기에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몸이 성한 사람이어도 이렇게 단기간에 몇 단계씩 올리는 건 어려운 일인데, 재활 훈련을 하고 있는 사람이 해낸 것이니까.
“캘리버, 진짜 대단한데?”
“후우… 하하. 내가 될 것 같다고 했잖아.”
누워 있던 벤치에서 일어나 걸터앉은 캘리버. 마저 한숨을 쉬어 낸 그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난 네가 허세부리는 줄 알았는데.”
“허세는 무슨. 10kg 올리는 거 가지고.”
“그 10kg 올리려다가 병원 신세지러 가는 인간이 얼마나 많은지, 너도 알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캘리버는 웃음을 흘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새 꽤나 사이가 가까워진 것인지, 두 사람 사이에선 격식 없이 대화가 오가고 있었고 친밀감도 느껴지고 있었다.
“어쨌거나 뭐… 이 정도 수준이면, 고등학교 경기 정도는 당장에라도 나갈 수 있겠네. 역시 프로 선수는 회복 속도도 다른 건가?”
선수 시절의 피지컬이 되돌아왔다고 하기엔 아직 많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상당한 수준이다.
비단 이 벤치프레스뿐만이 아니라, 오늘 캘리버의 운동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내린 결론이다. 한편 그 말에 캘리버는 머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뭐, 원래 체력이 좋았던 만큼 다시 되돌아오는 속도도 빠르긴 하겠지. 하지만… 사실상 강 원장님의 덕분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어?”
얼마 전에 같은 무게의 벤치프레스를 들지 못했을 때와 지금, 물론 그사이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거기서 가장 영향력이 큰 부분은 따로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어제, 천마안마의 강태한 원장에게 안마를 받고 왔었던 것.
그는 이미 그에게 안마를 받고 신체가 자유로워지는 기적과도 같은 효과를 체험한 바가 있었지만, 기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에게 안마를 받을 때마다 재활 훈련에서 눈에 띄는 수준의 진전이 있었던 것.
아마 누군가 그의 재활 훈련 성과를 그래프로 옮겨 놓는다면, 꾸준히 우상향을 하다가 특정 순간마다 수직 상승을 해 버리는 계단식 그래프가 나올 것이다.
그 특정 순간은, 당연히 강태한에게 안마를 받은 날이다. 어제로 세 번째 받는 안마였지만, 어찌 된 게 받을 때마다 몸 상태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맞네. 어제 다녀왔었구나? 천마안마.”
그리고 캘리버의 말에 덴버킴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회복 속도에 아직 의문을 품고 있었으나, 그 대답을 듣고 납득하는 덴버킴이었다.
그 또한 강태한 덕분에 오랫동안 안고 있던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있었다. 툭 까놓고 말하자면, 강 원장님이라면 앉은뱅이를 손짓 한 번으로 일으켜 세웠다고 해도 믿을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지금 몇 시쯤인가?”
“지금? 왜.”
“슬슬 배가 고파서 말이지.”
캘리버가 자기 배를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오랜 휴식으로 느슨해져 있던 배에는 다시금 탄탄한 근육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늘 엄청 큰 소갈비를 먹으러 간다고 했잖아.”
“맞아. 원시인처럼 손으로 들고 먹을 수도 있어.”
캘리버의 말에 덴버킴이 히죽 미소를 지었다.
결국 그의 본업은 왓튜버. 함께 운동을 하기도 하지만, 캘리버와 이곳저곳 특색 있는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왓튜브용 영상도 촬영하고 있는 덴버킴이다.
물이 들어왔을 때 노도 좀 젓는다고나 할까.
실제로 그의 채널에 미국 시청자들의 구독이 잔뜩 늘어나고 있었고, 조회 수도 연일 상승하고 있는 중이었다.
“원시인 고기라! 말만 들어도 설레는데? 하하하!”
다만 그걸 즐기는 것은 덴버킴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오늘의 메뉴를 들은 캘리버는 자리에서 손을 털더니, 방긋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