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220화
“으하! 이거, 몸 상태가 진짜 거짓말 같네!”
“그냥 완전 홀가분해! 이대로 당장 챔스 뛰러 나가도 상관이 없겠는데?”
그날 밤, 에버튼 FC 선수들이 머무르고 있는 숙소.
낮때와 마찬가지로 한자리에 모여 있는 선수들은, 그야말로 극명하게 갈라지는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한쪽은 홀가분하면서도 잔뜩 들떠 있는 표정.
다른 한쪽은 시기와 부러움으로 가득 차 있는 표정.
두 부류가 갈라지는 기준은 단순했다.
전자는 바트 포스터를 비롯하여 오늘 천마안마에서 안마를 받고 온 사람들. 그리고 후자는… 그 외의 다른 선수들이었다.
“와… 근데 저번에도 느꼈던 거지만, 진짜 몸이 새것이 되는 느낌이네. 몸에 피곤한 기색이 없어.”
그들은 이제 시즌을 마치고 휴식기에 접어든 상황이었지만, 달리 말하자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치열하게 리그에서 뛰고 있던 선수들이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축구의 천재들이 모여드는 프리미어리그. 그곳에서 경기를 뛰고 승리를 쟁취한다는 것은, 매 경기마다 전력을 다해 몸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안마 의자의 도움을 받아 컨디션 관리를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단지 그것만으로 손쉽게 승리를 따낼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곳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전력을 다해 매 경기를 뛰고, 리그 3위라는 걸출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한 상태다. 덕분에 기분은 역대급으로 들떠 있었지만, 당연히 신체 곳곳에는 그동안의 피로가 쌓여 있을 수밖에 없다.
하나 오늘 안마를 받고 온 선수들은 그런 느낌을 하나도 받을 수가 없었다.
마치 몸을 새로 교체받고 나온 기분이라고나 할까. 무릎의 욱신거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은근 거슬리게 뻐근하던 근육들은 새것처럼 말끔하다.
“살짝 과장을 보태자면, 그냥 이대로 리버풀에 있는 집까지 뛰어서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야!”
신체가 새것처럼 건강하니 머리도 맑아지고 자신감도 넘쳐난다. 바트 포스터가 호기롭게 입에 담은 말은 마냥 빈말로 꺼낸 말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의 기세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무슨 영국까지 뛰어가. 북한도 건너가게?”
“중국까지는 헤엄쳐서 가면 되지.”
“철인 삼종 경기가 따로 없구만…….”
“하하, 그런가?”
그런 바트의 말꼬투리를 하나 잡고서 괜히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다른 선수들.
하나 그것은 결국 가지지 못한 자들의 시샘일 뿐이다. 아랑곳하지 않고 환하게 웃는 바트의 모습에 그들은 부러움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아! 그때 가위만 안 냈어도!”
그중에서 가장 표정이 안 좋은 것은 다름 아닌 고드윈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는 여기서 가장 마지막으로 안마를 받는 사람이었으니까.
“가위가 아니라 보자기를 냈으면 내가 일등인데!”
고드윈은 오늘 낮에 있었던 가위바위보를 생각하며 탄식을 터트렸다. 모두가 주먹을 내고, 자기 혼자만 가위를 냈었던 거짓말 같은 상황.
그 말도 안 되는 상황 때문에 첫 판 한 번에 꼴찌가 되어 버린 고드윈이었으나, 달리 생각하면 거기서 보자기만 냈다면 자기가 일등이지 않은가.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
하필 꼴찌라는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그렇게 생각이 한번 이어져 버리니까 왠지 더 억울하고 서러운 기분이 드는 고드윈이었다.
“하지만 넌 가위를 냈잖아?”
“그러니까 꼴찌인 거고.”
“아오! 지금 불난 데에다 기름 붓고 있는 거야?”
그 모습에 히죽 웃으며 놀리는 다른 선수들. 발끈하는 고드윈의 모습이 꽤나 우스웠던 탓인지, 테이블 위로 소소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애초에 예약을 왜 하루에 네 명씩만 잡은 거야? 그냥 하루에 스트레이트로 다 받는 게 좋지 않나?”
“그게 좋기는 하지. 근데 안 되는 걸 어쩌냐?”
고드윈의 말에 강주완이 어깨를 으쓱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예약은 일정이 비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설령 거의 세 달 전부터 잡아 놓은 일정이라고 할지라도, 그때부터 이미 예약이 차 있다면 원하는 시간에 예약을 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오늘 예약이 차 있었다고?”
“그렇다니까? 내가 잡아 놓은 오후 시간대 빼고는 힘들더라고. 그나마도 두 자리인가는 취소된 걸 새로 잡아 놓은 거고.”
특히나 직장인들이 퇴근을 한 이후에 찾아오는 시간, 가장 사람이 몰리는 다섯 시 이후의 시간들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이 없는 수준이었다.
“생각해 봐. 우리도 영국에서 안마받으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당연히 그 정도로 사람이 오지 않겠냐?”
“…그것도 그렇네.”
순간 흠칫 놀라던 고드윈이었으나, 강주완의 설명에 곧바로 납득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태한의 솜씨를 생각하면 그러고도 남을 만했던 것이다.
오히려 강주완이 예약을 잡았을 때는 아직 페르모 가이드에 이름이 실리기 전이었으니,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고나 할까.
실제로 지금 예약을 잡으려면, 사실상 취소가 된 자리를 찾는 편이 더 빠를 정도로 빡빡하게 예약이 채워져 있는 수준이었다.
“잠깐… 그럼, 시즌 시작할 때쯤에 받을 안마도 예약 못 하게 된 거 아니야……?”
고드윈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입에 담았다. 보다 정확히는 걱정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은 다음 시즌이 개막할 쯤에 한 번 더 강태한에게 안마를 받으러 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즌의 시작.
이때만큼 컨디션 관리가 중요한 순간도 거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선수들 모두가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라고 은연중에 의견을 맞춰 놓고 있던 부분이다.
그걸 받을 수 없게 된다니… 생각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한탄이 절로 나올 만하다. 비단 고드윈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던 다른 선수들 또한 흠칫 놀라며 강주완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뭐… 지금 바로 예약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어깨를 으쓱이며 당연하지 않냐는 말투로 대꾸하는 강주완.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선수들의 얼굴에 좌절의 기색이 나타났다.
다만, 강주완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손을 좌우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미리 다 예약해 놨어. 리그 개막 일주일 전에, 여기 있는 멤버 그대로.”
“우악! 진짜로? 언제?”
“이번 예약 잡을 때, 같이. 원래 중복 예약은 안 된다고 하는데, 내가 원장님한테 따로 부탁해서 허락을 받아 왔지.”
탄성을 터트리는 고드윈과 빙긋 미소를 지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강주완.
“최고다! 미스터 강!”
“역시 팀 최고 득점왕!”
“강주완이야말로 우리 팀의 주장감이다!”
그와 동시에 선수들이 환호와 찬사를 보내왔고, 강주완은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선 그 찬사를 만끽했다.
“…어라, 근데 진짜 주장은 어디 갔어?”
그러던 와중, 강주완은 문득 자리에 이보르의 모습이 없다는 걸 깨닫고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고드윈이 문이 닫혀 있는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보르는 아까 전부터 저기 들어가 있는데?”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나?”
“잘은 모르겠는데… 뭔가 실마리가 보인다고 했었나? 잠깐 혼자서 좀 명상을 하고 싶대. 어지간한 일 아니면 방으로 들어오지 말아 달라고 했어.”
고드윈은 그에게 부탁하던 이보르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신신당부하듯이 말하던 그의 모습.
오늘 안마를 받고 온 사람들은 모두 어느 정도 들떠 있는 모습이기는 했지만, 이보르는 특히나 그 정도가 큰 편이었다. 평소 무뚝뚝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걸 생각하면, 더욱 인상 깊은 모습이었다.
“명상? 갑자기?”
“갑자기는 아니지. 원래 주기적으로 했었잖아.”
그 말대로, 이보르는 강태한과 처음 만났던 이후로 꾸준히 명상의 시간을 가져 왔다. 훈련이 끝난 뒤는 물론이고, 경기를 마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는 하네.”
이제 와선 크게 이상할 것도 없는 부분이다. 고드윈의 말에 납득한 강주완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문 쪽에서 시선을 돌렸다.
“뭐 이보르는 명상에 꽤 진심이었으니, 오리엔탈 마스터를 만나고 뭔가 새로운 자극이라도 받았나 보지.”
“오, 그거 꽤 흥미로운 전개인데? 이제 그럼 이보르도 새로운 능력에 눈을 뜨게 되는 건가? 하하하!”
선수들 사이에서 장난스러운 말투로 오가는 이야기.
하나 그들은 몰랐다. 불과 며칠 후, 이보르의 기감이 실제로 트이고 새로운 영역에 발을 디디게 된다는 것을.
* * *
“음, 일단 순두부찌개 하나 주시고요. 김밥도 참치김밥으로 한 줄 그리고 치즈돈까스랑…….”
여의도 방송국촌 인근에 위치한 한 분식집.
그곳에서 신중하게 메뉴를 살펴보고 있던 여성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맞은편을 쳐다보며 말했다.
“혹시 라볶이 같이 나눠 먹지 않을래?”
“네? 저는 상관없어요.”
“그럼 라볶이도 하나 주세요.”
후배의 대답에 싱긋 미소를 짓는 그녀.
그녀는 다름이 아니라 요 근래 손에 꼽히는 유명 여배우 중의 한 명, 유세아였다. 주문을 마친 그녀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컵에 물을 따르기 시작했다.
“아, 선배님! 제가 따를게요.”
“됐어. 어차피 물통도 내 앞에 있었는데.”
그러면서 방금 따른 물컵을 후배에게 건네는 유세아.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후배, 김세후는 머쓱한 표정으로 컵을 받아 들었다.
“저… 근데 선배님.”
“왜 그래?”
“혹시 다른 분도 오시기로 하셨나요?”
“음… 아니? 딱히 그런 약속은 없었는데.”
유세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근데 왜?”
“아니에요. 그냥… 음식을 좀 많이 시키셔서, 다른 분 것까지 미리 시켜 두신 건가, 그렇게 생각했죠.”
김세후는 옆에 체크되어 있는 계산서를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순두부찌개 하나, 참치김밥 하나, 치즈돈까스 하나, 라볶이 하나, 갈비탕 하나.
이중에서 그녀가 시킨 것은 갈비탕 하나뿐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네 개는 모두 유세아가 주문한 것.
물론 라볶이는 같이 나눠 먹자고 물어보고 주문한 것이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다른 것들은 그런 질문도 없이 주문한 것이었다.
그 주문량을 보면, 다른 사람이 올 것이라 생각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성인 남자가 주문해도 감당하기 꽤 벅찰 것 같은 양인데, 그걸 여자 한 명이, 그것도 관리가 필수적인 배우가 주문했으니 말이다.
“하하… 그게, 요즘 한참 식욕이 돌아서 말이야.”
그 말에 유세아가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리딩 작업 때문에 점심도 좀 부실했구!”
“그렇기는 했죠. 샌드위치로 퉁쳤으니까요.”
“맞아, 맞아.”
서로 공감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두 배우.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한 끼를 대충 때운 상태인 걸 감안하더라도, 이 주문은 상당히 많은 양이었으니까.
“사실, 요즘 체질이 좀 바뀐 것 같아.”
아직 의문이 남은 시선을 느낀 것일까, 유세아는 뺨을 긁적이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에 김세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체질이요?”
“응. 뭐라고 해야 되나… 먹어도 잘 안 찌는 체질?”
“그것참… 전설 같은 체질인데요?”
먹어도 잘 안 찌는 체질.
누구나 한 번씩은 들어 봤지만 본인이 체험해 볼 수는 없는, 그런 마법 같은 단어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인간이 존재하기는 한다.
같은 양을 먹고 같은 운동을 하는데 누구는 5kg가 빠지고 누구는 현상 유지가 고작인, 그런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기는 한다.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선천적인 영역이며,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고 바뀌고 싶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와, 부럽다. 그럼 요즘 삶의 만족도가 좀 많이 높아지셨겠는데요?”
그런데 갑자기 그런 체질로 바뀌었다?
솔직히 김세후로서는 그녀가 농담을 꺼내는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고, 그렇기에 그녀도 농담조로 대꾸했다.
“그렇지? 덕분에 요즘 식단 조절도 널널해지고 좋다니까. 잘 먹고 다녀서 그런가 안색도 좋아졌고, 운동할 때도 활력이 좀 넘치는 것 같고.”
하나 이어지는 유세아의 말은 김세후가 생각한 반응과 조금 달랐다. 뭐랄까… 묘하게 리얼리티가 느껴진다고 할까?
단순히 농담을 맞추는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그녀가 경험하고 느끼고 있는 바를 입에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제는 너무 배고파서 새벽에 보쌈에 맥주도 한 캔 했는데… 크흐! 난 몰라. 몇 년 만에 먹는 거라서 그런지 진짜 각별하더라.”
‘이 사람이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건가?’
거짓말 같은 소리를 너무나도 생생하게 말하고 있는 모습에, 김세후는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매일같이 만나는 것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친분이 있고 이번에 같은 작품을 맡게 되면서 요 근래 유세아와 자주 만나고 있는 김세후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유세아 선배는 살이 찌기는커녕, 오히려 빠진 상황이라고. 그런 상황까지 알고 있었으니, 그녀로서는 유세아의 말을 도저히 믿기가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