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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19화 (219/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19화

‘…뭐지?’

바트 포스터의 코골이는 예전부터 동료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냐 하면, 호텔에서 다른 방을 써도 인근 방에 소리가 전해질 정도.

단순히 소리만 크면 상관이 없는데, 한번 잠이 들면 쉽사리 깨어나지도 않는 탓에, 코를 골기 시작하면 좀처럼 멈출 수 없는 것이 바트의 코골이였다.

한 번은 다른 손님에게 클레임이 들어왔던 적도 있어, 어지간하면 구단에서 빌린 방 중 되도록 가운데 방에서만 잠들게 하고 있을 정도.

물론 그렇다고 항상 코를 고는 것은 아니고, 가볍게 낮잠을 잘 때에는 어지간하면 코를 고는 일이 없지만… 반대로 일단 골기 시작하면 답이 없는 것이다.

혹시라도 같은 방에서 잠을 자게 된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일단 오늘 밤은 코를 골지 않기를 기도해야 하고, 기도에 정성이 부족하여 바트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면, 조용히 귀마개를 끼고 잠을 청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한데 이걸 단번에 멈춰 버리다니?

적어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막말로 바트의 목구멍이라도 막아 놓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쯤 문을 열고 돌아온 강태한.

이보르는 강태한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젓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기다렸다고 해 봤자 일 분도 안 된 것 같은데요, 뭐. 게다가 조용히 집중할 수 있으니 더 좋고요.”

“그건 다행이군요.”

“근데, 바트 녀석을 어떻게 입 다물게 하신 겁니까? 목구멍이라도 틀어막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텐데.”

“네. 그렇게 했습니다.”

“…예?”

장난스럽게 던진 농담에 돌아온 대답.

강태한의 목소리는 담담했으나, 거기에 담겨 있는 내용은 순간 이보르를 멈칫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 * *

“저, 정말입니까?”

“당연히 농담이죠. 이런 말에 그렇게 진지하게 반응하시면, 오히려 제가 곤란합니다.”

한동안 멍하니 그를 쳐다보다 반신반의한 목소리로 되묻는 이보르. 그 반응에 강태한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곤 방금 전과 같이 담담한 목소리로 덧붙이듯이 말했다.

“그냥 편하게 숨 쉴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쳐 드렸을 뿐입니다. 코를 고는 건, 대부분 호흡이 안정적이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이니까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편하게 자세를 고쳐 놓은 다음 안쪽 숨구멍에 해당되는 기혈(氣穴)을 뚫어 준 것이지만, 그것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보르는 대충 ‘그런 게 있나 보다’ 하는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그동안 열심히 하신 모양이더군요.”

“무엇을 말입니까?”

“심호흡 말입니다, 제가 저번에 말씀드렸었던.”

강태한의 말에 이보르는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내심 기뻐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기억하고 계셨군요?”

“뭐…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선생님은 하루에도 수십 명씩 비슷한 조언을 해 주실 테니, 잊으셨을 거라 생각했죠.”

지난번 영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날 강태한은 이보르에게 ‘주기적으로 심호흡을 하는 습관을 들여라’라고 조언을 했었다.

이보르는 선천적으로 폐유혈(肺兪)의 기운이 흐리고 옅은 탓에 호흡기 인근에 탁기가 쌓이기 쉬운 체질.

일단 탁기로 막혀 있는 혈을 뚫고 대략적인 조치를 취해 놓기는 했다만, 그렇다고 그 한 번에 선천적인 체질까지 고쳐 놓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정기적으로 안마를 받으러 올 만한 상황도 되지 않고, 무책임하게 방치해 놓기도 좀 그렇고… 그래서 일단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는 대처법을 알려 주고 갔었던 것인데.

“저번에 문제가 되었던 부분들이 많이 완화되어 있네요. 그동안 정말 열심히 하셨던 모양입니다.”

이보르의 몸 상태는 그때에 비해 훨씬 양호한 편이었다. 그야말로 기대 이상의 효과라고 할까.

더군다나 대단한 뭔가를 알려 준 것도 아니었고, 그저 단순하게 ‘심호흡하는 습관을 가져라’라는 조언만 해 뒀던 것이기에 더욱 놀라운 결과였다.

“그렇습니까…….”

“네. 원래는 그쪽 부분을 위주로 조치를 취해 드릴까 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네요.”

베개에 이마를 댄 체로 엎드려 있던 이보르.

그는 그 상태로 빙긋 미소를 지었다. 뭔가 그동안 열심히 명상을 해 온 것에 대한 보답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나 할까.

물론 그동안 그가 꾸준히 심호흡과 명상을 해 온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경기 컨디션을 위한 것이다.

하나 그래도 이렇게 강태한이 바로 알아봐 주니, 왠지 모르게 각별하고 뭉클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권위자에게 인정을 받은 것과 같은 기분이라 할까.

“저… 그러면, 선생님.”

그리고 그 칭찬에 용기가 생긴 것일까.

이보르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아니, 영국에서 한참 리그를 뛰고 있었을 때부터 갖고 있었던 오랜 생각을 조심스럽게 입에 담았다.

“한 가지 부탁을 좀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말씀하시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강태한. 이보르는 그의 눈치를 살펴보다가, 그 모습을 보고 조금 안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 방금 말씀하셨던 대로, 그동안 저는 꾸준히 명상의 시간을 가져왔습니다. 운동을 막 마쳐서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상황에서도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차분하게 정리해 왔죠.”

강태한은 목소리로 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자신의 조언에 얼마나 진지하게 임했는지는, 방금 몸 상태를 살펴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니 정말 몸 상태가 좋아지더군요. 선생님이 지적하셨던 호흡 문제도 거의 사라졌고요.”

“좋은 현상이군요.”

“예. 덕분에 컨디션 관리도 수월해졌고, 경기에서의 활약으로도 이어지고, 명상 자체에도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말하는 동안 이보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곤 강태한과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요즘에는 뭔가에 막혀 있는 기분이 듭니다.”

“…막혀 있다?”

“여기서 좀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방법을 알 수 없다고 할까요. 매듭의 실마리가 보이는데 풀리지 않는 답답한 느낌입니다.”

그 느낌을 처음 받았던 것은 대략 한 달 전의 일.

그 이후로 깊이 명상에 빠져들어 가다 보면, 새로운 뭔가에 닿을 것 같다가도 중간에 몰입이 끊어져 버리는, 그런 굉장히 답답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마치 나뭇가지로 불을 붙이려 하는데, 연기는 피어오르지만 불씨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기분이랄까.

물론 그 너머에 있는 게 정확히 뭔지는 모른다. 무엇인지 모르니 정말 그런 게 존재하고 있는지도 확신할 수가 없다. 어쩌면 혼자만의 망상이자 과몰입에 불과할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어느 쪽이건 간에 이 남자, 오리엔탈 마스터인 강태한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그렇기에.

“그래서 그런데… 거기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이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제대로 된 명상법을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는 강태한에게 본론을 던지며,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읽은 ‘동양에서 부탁할 때의 기본’에서 읽은 자세였다.

“흐음…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당황스럽네요.”

그리고 그 말과 모습을 모두 지켜본 강태한.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본인의 말대로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던 탓이다.

“혹시라도 시간이 부족해 곤란하신 거라면… 안마를 받기로 되어 있는 지금, 지금 이 삼십 분 동안만 알려 주셔도 좋습니다!”

그런 강태한의 반응을 거절 의사로 해석한 것일까, 이보르는 추가 조건을 내세우며 한 번 더 부탁을 입에 담았다.

안마를 포기한다.

얼핏 보면 장난스럽게도 들리는 소리였으나, 강태한에게 한 번이라도 안마를 받아 본 이들이라면, 특히 몇 개월 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려 온 다른 에버튼 선수들이라면 비장함마저 느낄 각오였다.

“우선… 고개를 좀 드시죠.”

한편, 그 모습에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보르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 올렸고, 강태한은 그와 눈을 마주한 채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일단, 괜찮으시면 명상을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지금 바로 말씀입니까?”

“네. 여기서요.”

이보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갑작스럽긴 했지만, 운동을 마치고 맥박이 거친 상황에서도 명상을 해 오던 이보르다. 그는 자연스레 몸에서 힘을 빼더니 곧바로 명상 상태에 들어섰다.

‘흐음…….’

그리고 그 상태에서 상황을 살펴보는 강태한.

조용히 그의 혈도를 지켜보고 있던 그는, 좀 더 자세히 확인해 보려는 듯 오른쪽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곤 조그맣게 감탄을 터트렸다.

‘집중력이 어마어마하군.’

확실히, 생각한 것 이상이다.

아무리 그래도 기를 다루거나 운용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내면 깊숙이까지 몰입하고 혈도의 존재를 인지하는 수준까지 다다라 있었다.

본인 스스로의 노력으로 기감에 눈을 뜨게 되기 직전이라고나 할까. 최성현처럼 무공에 적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집중력 자체가 뛰어난 경우였다.

무조건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아마 천마안마의 안마사들처럼 꾸준히 영기를 섭취해 둔 상태였다면, 이미 기감을 터득하고도 남지 않았을까.

영기가 충만하게 흐르는 혈도와 그냥 평범한 혈도. 둘 중에 어느 쪽의 존재감이 더 크냐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전자 쪽이 압도적일 수밖에 없으니까.

‘답답한 기분이 든다는 것도 과장이 아니었어.’

사실상 문 앞까지 도달한 상황에서, 기감이 트이지 못하고 번번이 되돌아가 버리는 상황.

이런 상황이라면 갑갑한 심정이 되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지금 그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는 강태한도 안타까움을 느낄 정도였으니 말이다.

“됐습니다.”

짝! 하는 손뼉 소리와 함께 입을 여는 강태한.

“핫.”

그러자 감고 있던 이보르의 눈이 단번에 떠졌다. 강제로 몰입이 끊어진 것 같으면서도 불쾌하지 않고 깔끔한, 그런 묘한 기분이었다.

“저, 이걸로 된 겁니까?”

“네. 충분합니다.”

강태한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잠시 입가에 손을 올리곤 생각에 잠기더니, 가벼운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혹시 한국에는 얼마나 계실 예정입니까?”

“일단 잡혀 있는 일정은 닷새입니다.”

“그럼 사흘 뒤, 금요일 저녁에 시간이 되시나요?”

“예. 괜찮습니다만…….”

“그럼 그때 한번 따로 보시죠.”

그 말은 곧 허락이나 다름없는 말.

강태한의 말에 이보르는 잠시 굳은 표정을 하더니, 한 박자 늦게 화색을 지으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이십니까!”

“예.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뭔가 대단한 무공을 전수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기감을 익힐 수 있도록 보조해 주는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금 이보르의 수준이라면, 말 그대로 살짝 등을 떠밀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상황이다. 그냥 혈도에 기만 좀 불어 넣어 줘도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강태한에게 뭔가 이득이 주어지지는 않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런다고 손해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감사합니다, 마스터 강.”

한편, 그런 강태한의 말에 이보르는 정말 환한 미소를 지었다. 평소 냉정하고 무뚝뚝한 그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상당히 보기 드문 얼굴이었다.

“어쨌거나 이 일은 금요일 날 뵙는 걸로 하고… 일단, 다시 엎드리시죠.”

“예?”

“안마받으셔야죠.”

안마를 받지 않는 대신 가르침을 달라 했던 이보르였지만, 따로 날짜를 잡았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어진 이야기다.

“아… 네! 그래야죠.”

이미 마음속에서 둘 중 하나를 포기하고 있었지만,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 된 이보르.

그는 아직도 입가에 남아 있는 환한 미소와 함께, 혹시라도 강태한의 마음이 바뀔까 봐 걱정된다는 듯이 곧바로 침대 위에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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