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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18화 (218/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18화

한편, 천마안마가 있는 라이너 호텔의 스위트룸.

그곳의 거실에서는, 열댓 명의 신체 건장한 외국인들이 널찍한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 조용히 서로의 눈치를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에버튼 FC의 1군 선수들.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그야말로 역대급의 실력을 뽐내고, 하위권에서부터 파죽지세의 기세로 챔스 진출권까지 확보해 낸, 그야말로 올해 최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축구 팀의 선수들이었다.

팀 자체의 역사에서는 물론이고, 리그 전체의 역사에서도 한 줄 남겼다고 할 만한 위업이다.

그만큼의 위업을 거둔 직후인 데다 애초부터 선수들끼리 굉장히 사이가 좋은 편이었기에, 요 근래 항상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모이기만 하면 시끌벅적했던 선수들이다.

하나 지금.

테이블 위로 고요하게 적막이 깔려 있는 지금은, 주위에 냉기가 흐른다고 표현을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긴장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좋아… 그럼 결정했어, 다들?”

그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강주완이었다.

그는 이번 여행을 기획하고 팀원들은 인솔하는 역할. 하나 그렇다고 이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 또한 내심 긴장한 기색으로 주변을 살폈다.

“물론이지.”

그 말에 옆에 앉아 있던 고드윈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목소리로 덧붙이듯이 말했다.

“오히려 이렇게 기다릴 필요가 있나? 난 좀 빨리 시작해서 결정을 했으면 좋겠는데.”

“허세로군, 고드윈.”

“허세? 무슨 놈의 허세?”

“초조해서 입술까지 말라붙은 게 훤히 보인다고.”

“하하, 이보르, 그러는 너야말로 아까부터 다리를 떨고 있으면서 뭘 그래? 꼭 부산스러운 중학생처럼.”

고드윈의 대꾸에 이보르는 굳이 답하는 대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은근하게 오가는 신경전. 거기서 누군가 손뼉을 쳐서 주위를 환기시켰다. 다름 아닌 강주완이었다.

“자, 자. 서로 그럴 것 없이, 빨리 시작하자고. 사실 이것도 한 번에 끝내기가 어렵잖아?”

그 말에 선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무엇을 선택할지 속으로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단판에 승부가 나리라는 보장이 없다.

아니, 오히려 사람의 숫자가 열 명이 넘어간다는 걸 생각하면 확률적으로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이다.

“자, 그럼… 가위, 바위…….”

보!

터져 나오는 외침과 동시에 테이블 가운데로 모인 손. 각자의 선택이 한곳에 모이고… 이윽고 누군가의 당황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너희들, 나 빼고 다 짠 거 아니야?”

“푸하하, 얘 혼자 졌어!”

“미쳤다, 미쳤어! 이게 왜 진짜냐?”

나지막한 목소리로 고드윈이 한마디를 열자,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테이블에 모인 손은 모두 주먹이었다. 단 한 명, 고드윈이 내민 가위를 빼고 말이다. 거짓말처럼 깔끔하게 한 명만 떨어진 상황에, 고드윈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거듭 외쳤다.

“너희들 짠 거 아니냐고!”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가위바위보로 결정하자고 한 것도 너였잖아? 고드윈.”

“으아아아!”

고드윈은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격한 움직임으로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강주완은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상황을 정리하듯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맨 마지막 순서는 고드윈으로 확정이고.”

“잠깐! 그건 좀 아니지 않나?”

“누가 먼저 안마를 받을지 결정하는 가위바위보에서 꼴등을 했으니, 당연히 네가 마지막이지.”

뭐라 궤변이라도 늘어 보려 하는 고드윈이었으나, 강주완은 어림도 없다는 듯이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필드 위에서는 그토록 환상의 호흡을 보여 준 두 사람이었으나,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었으니까. 강주완은 안타까움보다는 ‘한 명 제쳤다’라는 느낌에 가까운, 약간의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 가위바위보로 정하고 있는 순서는, 다름이 아니라 천마안마에서 안마를 받는 순서였으니까.

이번 기획은 몇 달 전에 강주완이 천마 코스의 예약부터 잡아 놓으면서 시작된 일정이다.

참가 인원의 숫자만큼 예약을 잡아 놨고, 그렇기에 자리가 없어서 몇 명은 안마를 받지 못한다거나 하는 불상사는 일어날 리가 없었다.

하나, 그렇게 되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남는다.

누가 먼저 안마를 받을 것이냐.

그들이 신청한 것은 천마 코스고, 천마 코스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강태한 한 명뿐이다. 그 말은 곧, 몇 명이 다른 코스를 선택하지 않는 한 한 번에 딱 한 명만 안마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물론 예약은 사람의 숫자만큼 잡아 뒀다. 늦게 받는다고 해서 안마를 받지 못하게 된다거나, 다른 코스로 받게 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순서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달리 생각하면 가장 마지막에 안마를 받을 수 있으니, 늦게 받으면 늦게 받을수록 효과가 더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나 사람이 그렇게 이성적인 판단만 내릴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새치기가 왜 존재하겠는가?

좋은 게 있다면 되도록 다른 사람보다 먼저 차지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더군다나 그 순간을 오랫동안 갈망해 온 사람이라면, 그 마음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 안마를 받으면 과연 얼마나 성장하게 될까.

그 순간을 상상하면, 되도록 일분일초라도 빠르게 안마를 받고 싶은 것이 선수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만큼 빨리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하하, 고드윈! 승부에는 깔끔하게 굴복해야지!”

“그게 스포츠맨십 아니겠어?”

그런 상황이다 보니, 여기에 임하고 있는 선수들의 반응 또한 상당히 진지할 수밖에.

옆에서 한마디씩 던지는 선수들은 마음에서 우러난 안도의 기색을 띄고 있었고, 고드윈 또한 어지간한 경기에서 졌을 때보다도 더 분해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자, 그럼 한 명은 떨어트렸고…….”

“다시 가야겠지?”

“간다,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으아아악!”

“하하하! 한 명 또 제쳤고!”

방 안에 지속적으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

몇 번이고 무승부가 이어지다 방심하는 순간 승자와 패자가 나뉘었으며, 그 순간마다 비명과 환호가 교차되었다.

“후흐흐흐.”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지막에 남은 최후의 승자.

“그럼 먼저 갔다 온다.”

바트 포스터는 여유가 넘치는 표정으로 씨익 미소를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 좋겠다. 괜히 부럽네.”

“네가 부러워하면 안 되지. 넌 3등이잖아.”

“3등이면 뭐 해. 지금 안마를 받는 건 일등뿐인데.”

앞서가는 승자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선수들. 그 시선을 등으로 받아 내며, 바트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현관을 나섰다.

* * *

“스으… 후우우…….”

“후으읍… 스으으…….”

천마안마의 사무실. 그곳의 널찍한 소파에는 두 중년 남성이 나란히 앉아, 눈을 감은 채로 저마다의 박자에 맞춰 깊은 호흡을 반복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편한 자세로 앉아 심호흡을 하고 있는 모습. 눈을 감은 채 등을 꼿꼿이 세우고 있기는 하나, 그것 외에는 굉장히 편해 보이는 자세였다.

하나 겉보기와는 달리 꽤나 힘이 들고 있는 상황인 걸까. 두 사람의 몸 곳곳에는 아침의 나뭇잎처럼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만.”

그 순간 짝! 하고 울려 퍼지는 박수 소리.

강태한이 박수와 함께 명상의 끝을 알리자 두 사람, 김성훈과 황태진은 눈을 뜸과 동시에 허물어지듯이 소파의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으하아…….”

“후. 중간에 기절하는 줄 알았네.”

그러자마자 두 사람의 입에선 자연스레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마치 기나긴 노동에서 간신히 풀려난 듯한 반응이었다고 할까.

얼핏 보기에는 신체 건장한 두 아저씨가 엄살을 부리는 것처럼도 보였으나, 전신에 맺혀 있는 땀과 그 표정은 거짓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이었다.

“두 분 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강태한은 그런 두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며 넌지시 한마디를 건넸다. 별말은 아니었으나,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듯한 따뜻한 한마디였다.

“아이, 이거… 생각보다 힘들구만.”

“힘들만도 하죠. 아직 명상에 익숙한 것도 아니고.”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눈을 감고 앉아 있을 뿐이다.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겉보기일 뿐이다.

그들이 한 것은 명상.

그것도 단순히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 깊숙이 집중하여 스스로의 혈도를 감지하고 내부의 기운을 느끼기 위한 명상.

이쯤 되면 깊이가 얕을 뿐, 일반적인 명상보단 운기조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행위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감이라는 것은 태생부터 재능을 타고난 경우가 아니라면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감각이다. 살면서 한 번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말이다.

그걸 겨우겨우 더듬어 가며 적응해 가는 과정은… 자연스레 엄청난 집중력과 정신력을 소모하게 된다. 몸 하나 움직이지 않아도, 온몸이 땀으로 젖을 정도로.

물론 그렇다고 명상이 그렇게 고통스럽기만 한 과정은 아니다. 단지, 익숙해지는 데 어려움이 있을 뿐.

걷는 행위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이제 막 걸음마가 진행 중인 아이에게 벅찬 과제인 것처럼 말이다.

“나름 적응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어지럽네.”

“한동안은 그 상태가 계속될 겁니다. 진취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적응을 하면 할수록 그만큼 내면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게 되니까요.”

강태한은 피식 웃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미리 준비해 둔 찻주전자를 들어 잔에다 찻물을 따라 냈다.

그와 함께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

쌉쌀한 향을 머금은 습기가 서서히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데… 왜일까. 이제 막 명상을 마친 두 사람에게는 입맛을 돋우는 자극적인 향기처럼 느껴졌다.

“따뜻한 차라도 한잔하시겠어요?”

“아… 그래도 되려나?”

“그럼요.”

화색을 지으며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는 두 사람.

따뜻한 차를 봤을 때 나올 법한 일반적인 반응은 아니었으나,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에게 찻잔을 내밀었다.

그런 반응이 나올 만도 했다.

애초에 이건 강태한이 반쯤 유도한 상황이었으니까.

‘명상이 어색할 때에는 내면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정신력이 소모되니까.’

몸에 힘은 남아 있으나, 내면은 반쯤 고갈된 상태가 되어 버린다고 할까. 이에 깊은 연관이 있는 혈도 또한 자연스레 메말라 붙는 상황이 된다.

거기서 그가 내놓은 것은 다름 아닌 도라지차.

산에서 캐낸 걸 따로 말려 보관해 놓은 것으로, 담겨진 영기의 양도 제법 될뿐더러 방금 전에 두 사람에게 맞춰 영기의 성질을 조절해 놓은 물건이다.

그야말로 상황에 딱 맞춰 놓은 보양식이라고 할까.

그렇다 보니 두 사람이 입맛을 다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겠지만, 본능적으로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음?”

그렇게 조심스레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신 김성훈.

한참 김이 피어오르는 와중이었기에 조심스레 홀짝인 그였으나, 이내 한 모금을 마시더니, 뜨거운 것도 잊어버린 것처럼 순식간에 찻잔을 비워 냈다.

“크하아아……!”

“스며든다, 스며들어……!”

허해진 내부에 스며드는 강렬한 온기!

빠져나갔던 정신도 순식간에 채워지는 기분이고, 몸 내부에서부터 뭔가가 채워져 가는 느낌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기분이었다.

‘역시 보조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군.’

한편, 강태한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조용히 살펴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다시금 영기가 채워지고 있는 그들 내면의 모습을 말이다.

명상에 들어가기 전과 그 후. 그리고 차를 마신 이후가 극명하게 달라지는 모습.

김성훈과 황태진은 안마의 경력이 오래되긴 했으나, 그렇다고 최성현처럼 무공에 재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단순한 일반인의 체질이다.

그런 그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모습.

물론 최성현 때에 비하면 꽤나 느린 편이었으나, 그래도 이 정도면 계획에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 강태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근데 태한 씨.”

“…예. 말씀하시죠.”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가 한 박자 늦게 대답한 강태한. 김성훈은 그의 눈치를 살짝 살피다가, 앞에 놓인 주전자를 가리키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혹시… 차 좀 더 마셔도 되나?”

“그럼요. 얼마든지.”

“하하, 이거 왠지 입맛에 너무 잘 맞아서 말이야.”

당연히 상관없는 부분이다.

아니, 오히려 남기면 곤란했다. 애초에 두 사람이 마시라고 만든 특제품이었으니까 말이다. 강태한은 두 사람 쪽으로 찻주전자를 밀어 놓았다.

“그럼 다 드시고, 정리만 좀 부탁드릴게요.”

“그야 당연하지. 근데, 어디 가나?”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태한에게 넌지시 물어보는 김성훈. 그런 그에게, 강태한은 담담한 말투로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다시 일할 시간이잖아요.”

점심시간이 이제 끝나고 찾아오는 첫 손님.

다름이 아니라 에버튼 FC의 선수들이 찾아오기로 한 시간이었다.

* * *

크허어어억! 푸우우…….

커거거헉! 후우우…….

“…저,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겁니다만, 선생님.”

등 위에 강태한의 손이 얹어진 상태로 가만히 침대 위에 엎드려 있던 이보르 깁슨.

그는 드디어 찾아온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려는 듯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으나,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혹시 옆방에 바트가 자고 있습니까?”

“맞습니다.”

“오우…….”

이보르 깁슨은 팀에서 두 번째 순서로 안마를 받으러 온 선수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바트 포스터는, 옆방에서 우렁찬 코골이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 녀석이 잠버릇이 안 좋아서.”

천마안마의 벽과 벽 사이에는 방음 처리가 되어 있다.

아무래도 옆방의 소리가 들리면 그리고 자기 목소리가 옆방에 들린다 생각하면 안마에 집중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헌데 그것까지 뚫어 내면서 코골이가 들려오는 것.

물론 본인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같은 팀 선수의 추태이다 보니 대신해서 사과를 건네는 이보르였다.

“흠… 방해가 되실까요?”

“그런 건 아닙니다만, 선생님한테 죄송해서.”

“그럼, 잠시만 기다려 보시죠.”

올려놨던 손을 떼고는 잠시 방문을 나서는 강태한.

케흑!

잠시 후, 계속되던 코골이가 짤막한 비명 소리로 끊어지더니, 곧이 거짓말처럼 조용한 정적만이 흘렀다. 그 뒤로 코골이 소리는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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