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214화
“너 왜 사람을 그런 눈으로 쳐다보냐?”
그렇게 강태한이 빤히 쳐다보고 있던 와중.
조용히 묵무침을 집어먹고 있던 최성현이 뒤늦게 그의 시선을 인지하고는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강태한이 태연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내 눈이 뭐 어땠다고?”
“그걸 뭐라고 해야 되나. 뿌듯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꿍꿍이가 있는 듯한… 설명하기 어려운데.”
“흠. 음흉하다?”
“아, 그런 느낌도 좀 있었고요.”
한마디 슬쩍 끼어든 황 실장의 말에 최성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보냈다. 딱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비슷한 맥락의 표현이었다.
“이제는 모함까지 하는 거야?”
“모함받기 싫으면 빌미를 주지 말았어야지.”
“내 참.”
강태한은 피식 웃으며 좌우로 살살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그저 근거 없는 모함이 아니라는 건 강태한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개인적인 욕심이 있기는 했었으니까 말이다.
“됐고, 고기나 먹자.”
때문에 강태한은 이야기의 방향을 돌리듯 옆에 놓인 집게를 집어 들었다. 테이블 구석에는 마침 타이밍 좋게 나온 두툼한 삼겹살이 놓여 있었다.
“아, 오늘은 내가 구울게.”
“실장님이요?”
“맨날 태한 씨가 구워 주는 것도 좀 그렇잖아.”
그때 황 실장이 강태한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집게를 건네 달라는 제스처이자, 오늘은 자기가 고기를 굽겠다는 표현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 그러지 말지.”
옆에서 자그마한 탄식과 함께 만류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다름 아닌 최성현의 목소리였다. 그는 황 실장을 나무라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고기는 잘 굽는 사람이 굽는 게 맞지 않나… 그런 생각을 좀 해 보는데, 어떻습니까.”
평소라면 최성현도 만류할 이유가 없다.
솔직히 바베큐에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기 굽기의 달인이 아니라면 고기 정도야 뭐 누가 굽든 간에 얼추 비슷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강태한이 구운 고기는 달라도 뭔가가 달랐다.
약간 일반인의 영역에서 달인의 영역에 반 발자국 정도 들어가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걸쳐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같은 고기라 해도 육즙과 육질에서부터 다른 뭔가가 있었다.
“에이, 야 그래도…….”
“아뇨, 괜찮아요. 제가 구우려고 했거든요.”
그런 최성현을 나무라듯 한마디 하는 황 실장.
다만 강태한은 덤덤한 반응으로 그를 만류하고는, 집게로 고기를 집어 곧바로 불판 위에 올려놓았다.
치이이익- 하고 울리는 불판의 소리.
강태한이 구운 고기의 맛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것조차도 괜스레 비범하게 느껴졌다.
“확실히… 태한 씨가 고기를 잘 굽기는 해.”
“저 오늘 이거 먹으려고 퇴근도 늦게 했다고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 노릇노릇 구워 갈 무렵.
방금 전 자기가 굽겠다고 했던 황 실장도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말했고, 최성현도 십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천마안마의 휴게실 테이블에서는 강태한과 황 실장 그리고 최성현이 나란히 앉아 노트북을 쳐다보고 있었다. 노트북의 화면에는 요 근래 한참 화제가 되고 있는 영상 하나가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으가아아아악! 선생님, 좀만 살살, 살살요!]
[자네가 제대로 해 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 영상은 덴버정 채널에 업로드된 최신 동영상.
다름이 아니라 덴버정이 얼마 전 천마안마에 직접 방문해서 촬영을 해 갔던 바로 그 영상이었다. 조작 의혹이 나오진 않을까 걱정을 했으나, 조회 수만큼은 확실하게 잘 나올 것이라 덴버정이 장담했던 촬영.
그 예상대로 영상은 상당히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켜 곧바로 실시간 인기 급상승 영상에 이름을 올리더니, 아직까지도 순위권에서 내려오질 않고 있는 중이었다.
“생각한 것보다… 반응이 폭발적이네.”
“반응이 좋은 거야?”
“좋지. 덴버정이 원래 영상 조회 수가 잘 나오는 채널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이례적인 수준이라고. 손에 꼽히지 않을까?”
왓튜브를 보긴 하지만 조회 수나 채널의 인기 같은 부분에는 별 관심 없었던 강태한. 그런 그가 넌지시 물어보자, 최성현이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렇구만.”
“영상도 꽤 잘 뽑혔고. 솔직히 그냥 안마만 받는 게 뭐가 재밌을까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까 꽤 재밌네. 역시 아무나 왓튜버 하는 게 아니라니까.”
“실제로 가게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확 늘은 것 같더라고, 예약 어플 접속량이 장난 아니야.”
황 실장은 넌지시 말하며 구석에다 서버 관련 관리 창을 띄워 놓았다. 확실히, 영상이 올라온 순간을 기점으로 서버 트래픽이 급증하고 있었다.
“흠… 그럼 그만큼 예약도 쌓이는 건가?”
“그건 아냐. 들어온 사람에 비해 실제 예약은 얼마 안 늘었거든. 아마 꽉꽉 채워져 있는 달력을 보고 뒤로 가기를 누른 게 아닐까?”
충분히 그럴 만하다.
천마안마는 처음엔 천마 코스를 제외하면 그렇게 예약이 많이 밀리던 곳은 아니었으나, 요즘에는 일반 코스의 예약을 잡는 것도 어려운 수준이었으니까.
장인 코스 같은 경우에는 예전의 천마 코스처럼 적어도 한 달 전에는 예약을 잡아 놔야 하는 수준.
일반 코스는 안마사마다 달랐지만, 이쪽도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신입급을 제외하면 일주일에서 이 주일 정도는 기다려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강태한이 직접 관리하는 천마 코스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수준. 이쪽은 페르모 가이드에 이름이 올라간 시점에서부터 세 달 이내의 예약 스케줄에 빈자리가 남아 있지를 않았다.
그마저도 예약을 최대 세 달 뒤까지로 한정해 놨으니 그 정도지, 아마 무한대로 받았으면 그 뒤까지 빽빽하게 일정이 채워져 있었으리라.
어쨌거나 그런 상황이다 보니, 그냥 가볍게 ‘오랜만에 마사지나 한번 받아 볼까’라는 생각으로 들어왔다면 기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 어쨌거나,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는 사람이 많을 뿐, 그래도 사람이 늘기는 하겠지.”
“손님이 더 늘어나는 건가… 솔직히 이젠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애매하네요, 개인적으로.”
황 실장의 말에 최성현이 팔짱을 끼며 앓는 소리를 내듯이 입을 열었다.
물론 본인의 직업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 만큼 기쁜 일이기는 했으나, 한편으로는 새삼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
공급은 한정적인데 수요가 계속 늘어난다고 할까…….
그에 맞춰 안마비도 세 차례에 걸쳐 높여 놓았는데, 그럼에도 손님의 숫자가 줄어들 기미는 없었다.
“원래 가격이 올라가면 손님이 좀 줄어들어야 정상이지 않나? 이게 상식적이잖아요.”
“그렇긴 한데, 여기는 거의 유지될 만도 하지.”
“그래요? 왜요?”
최성현의 말에 황 실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태한 씨야 말 그대로 유일무이한 수준이니까 그렇고… 너랑 성훈 씨, 태진 씨를 비롯한 다른 안마사들도 계속 실력이 올라가잖아.”
사람이 어느 가게의 단골이 되는 과정은 단순하다.
매번 방문할 때마다 자기가 지불하는 비용보다 더 큰 만족을 얻고서 돌아가면, 그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가게의 단골이 되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만약 비용만 더 높아지게 되면?
상대적으로 만족도는 떨어지게 되고, 원래부터 만족도가 애매했던 단골들이 하나둘씩 발길을 끊게 된다.
하나 만족도만 더 올라가게 된다면?
예를 들어 음식이 더 맛있어졌다거나 서비스가 좋아졌다거나, 안마사의 솜씨가 더 좋아졌다면?
그렇게 되면 어느 정도의 비용 상승 정도는 충분히 용인해 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황 실장은 최성현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잘은 몰라도… 장인 코스랑 천마 코스는 여기서 두 배로 가격을 올려도 지금 수준의 예약은 계속 유지될걸?”
황 실장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천마 코스에 한해서는 굉장히 낮게 잡은 기준이다. 천마 코스라면 열 배 넘게 올린다고 해도 받을 사람이 줄을 설 테니까.
그럼에도 굳이 그렇게까지 가격을 올리지 않는 이유는 단순했다. 강태한이 그걸 바라지 않았으니까.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말은 저도 공감하지만… 그래도 기존에 찾아오시던 손님들에게 장벽처럼 느껴질 액수는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지난번 강태한이 담담한 목소리로 꺼냈었던 말.
가게 전체의 이미지를 생각한 가격 정책일까, 아니면 단순한 선의, 의리에서 비롯된 마음일까.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다.
하나 어느 쪽이건 간에, 강태한의 그릇이 굉장히 넓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황 실장은 새삼 감명을 받은 표정으로 강태한을 슬쩍 쳐다보았다.
“으음…….”
한편 강태한은 방금 전부터 유심히 모니터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처음 영상을 틀 때만 해도 세 명 중 가장 관심이 적었으나, 지금은 특정 부분을 되감기까지 하며 살펴보는 중이었다.
“뭘 그렇게 집중해서 보고 있어?”
“…실장님, 이제 알았는데.”
모니터 쪽으로 슬쩍 고개를 내밀며 물어보는 황 실장. 그러자 강태한은 다시 영상을 살짝 뒤로 돌리며,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마할 때 제가 좀 차갑게 말하는 감이 있네요.”
그가 돌려놓은 부분은 강태한이 한참 덴버정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을 때였다.
아니, 주무른다기보다는 짜 맞추는 것에 더 가깝다고 할까? 그 격한 과정 속에서 덴버정은 이번에도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좀 참아 보게.]
그다음으로 이어진 강태한의 짧은 한마디.
안마를 받다 보면 으레 들을 만한 그런 부류의 말이었으나, 그 말에 담긴 무게감이나 분위기가 굉장히 중압적인 느낌이 있다.
아무래도 친근한 서비스와는 거리가 먼 느낌.
다만 새삼스러운, 정말 새삼스러운 강태한의 말에 황 실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냥 평소의 태한 씨인데?”
물론 황 실장이 강태한에게 손님으로서 안마를 받아 본 적은 없다. 그렇기에 평소에 강태한이 어떤 식으로 손님에게 말하는지도 자세히는 모른다.
하나 그런 그도 어렴풋이 알고 있던 부분이다.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들은 이야기들도 있고, 일상에서 은연중에 느껴지는 분위기, 압박감 같은 것들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으음… 그래요?”
“뭐 태한 씨가 신경이 쓰인다면 그럴 만한 부분이 있어서겠지만… 그냥 녹음된 자기 목소리는 막 이상하게 들리고, 그런 거 아냐?”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나?’ 싶은 강태한이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앞으론 의식을 좀 해 봐야겠네요.”
“뭐 나는 그냥 이대로 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황 실장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강태한이 찜질방에 찾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진상으로 소문난 손님들이 강태한과 만나고 나면 하나같이 얌전해져서 나왔던 일들을 말이다.
그건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진상이라 할 만한 손님이 아니어도, 강태한에게 안마만 받고 나오면 매너가 주입이라도 된 것처럼 하나같이 공손하고 친절한 태도가 되었던 것이다.
당연히, 클레임이 들어온 적도 없다.
문의가 있다고 하면 ‘팁을 드리지 못했으니 대신 좀 전해 달라’, ‘조금 더 자고 가도 되냐’ 정도. 불만을 꺼내 놓거나 항의하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야말로 강태한 매직이라고나 할까. 뭐 서비스에서 친절은 가장 근본적인 기초이자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라 할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불편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야, 그게 최고의 서비스가 아닐까. 지극히 결과론적인 이야기였으나, 황 실장은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 * *
“아, 너 그러고 보니까 내일 가게 나올 거야?”
“내일? 내가 가게를 왜 나와. 나 쉬는 날이잖아.”
그렇게 조촐하게 모였던 왓튜브 감상회가 끝이 나고, 각자 알아서 할 일을 하려고 흩어지려던 무렵.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갑작스레 물어보는 강태한의 질문에 최성현은 당연하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 말대로, 내일은 최성현이 쉬는 날이었다.
“어떻게 하고 자시고, 놀아야지.”
쉬는 날이 왜 쉬는 날이겠는가. 노동으로 지친 몸과 정신에 휴식을 주는 시간이기 때문에 쉬는 날이다. 최성현에게는 오히려 강태한의 말이 뜬금없게 들리는 것이었다.
하나 강태한은 기억을 더듬듯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음. 내가 너한테는 말을 안 했던가?”
“왜? 뭐를.”
“이번 주부터 가게에 에버튼 선수들 온다고. 내일부터 오기로 되어 있는데.”
강태한은 의문이 섞여 있기는 하나 담담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마치 있는 그대로의 정보를 나열할 뿐인 듯한, 그런 말투였다. 하지만.
“…에?”
최성현은 순간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멈춰 서 버렸다. 한동안 미동조차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던 그는, 딱 봐도 잔뜩 동요하는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내일 가인 씨랑 만나기로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