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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11화 (211/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11화

“원래 본인은 피곤한지 모를 때도 있잖아요.”

“음… 그런가?”

강태한의 말에 유세아는 조금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직히 본인은 잘 모르겠는 부분이었다. 대부분의 해외 일정이 빡빡하고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촬영은 열악한 환경이면서도 크루즈 덕분에 최고의 대접을 받으며 진행되었으니까 말이다.

‘말 그대로 살이 쪄서 돌아왔을 정도로…….’

힘들었다기보다는 그냥 촬영도 할 겸 크루즈 바캉스를 다녀왔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

물론 여행의 피로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곤 할 수 없겠으나, 그렇다고 따로 문제가 될 정도의 수준인 것도 아니었다.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하나 유세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강태한 쪽으로 등을 내밀었다. 본인의 몸이기는 하다만, 이쪽 분야에서는 강태한이 더 전문가이지 않은가.

강태한의 말이라면 없는 말이라도 일단은 믿어 볼 유세아인데, 다른 것도 아니고 몸과 건강에 관련된 말이라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아니면 혹시… 그냥 스킨십이 하고 싶었을 수도?’

그러면서 은근하게 귀여운 상상을 떠올리는 유세아.

식사 중에 갑작스러운 스킨십이라.

다소 엉뚱하게 보일 수도 있는 상상이었으나, 개인적으로는 가슴이 설레는 전개이기도 했기에 생각한 것만으로도 그녀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그럼 잠깐만 좀 볼게요.”

다만, 당연하게도 강태한에게 그런 의도는 없었다.

단지 그녀의 고민거리를 해결해 주려고 일어났을 뿐.

강태한은 그녀의 양쪽 어깨에 손을 얹고는, 평범하게 어깨를 주무르듯이 가벼운 안마를 시작했다.

“음… 시원하네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냥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어깨 안마일 뿐이다. 시원하긴 하지만 그 이상의 뭔가는 없는 느낌이라고 할까. 실제로 유세아의 반응도 평소보다는 확실히 담담한 느낌이었다.

하나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깨를 주무르는 것은 단순히 본래의 목적을 가리기 위한 수단일 뿐, 실제의 조치는 내부에서 이뤄지고 있었으니까.

‘역시 생기의 순환이 억제되어 있는 상태인가.’

체내에 열량이 들어왔을 때, 사람의 몸은 이걸 전부 다 써 버리기보단 되도록 축적해 놓으려고 한다.

위기 상황을 대비하여 최대한 힘을 비축해 놓으려 하는 성질이라고 할까. 이는 인간이라는 생물이 오랜 세월 야생을 떠돌며 생긴 생존기이자, 본능 깊숙이 뿌리 박힌 공통된 체질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나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요소 중의 하나다. 먹을 것이 풍부하여 체내에 에너지는 잔뜩 축적되는데, 정작 위기 상황이 닥치지 않아 쌓이기만 하는 것이다.

본래는 생존에 큰 도움을 줬겠으나, 이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간, 돈, 노력을 들여 가며 운동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이야기.

만약에 본인이 기를 다뤄 낼 수만 있다면야.

‘그럼 시작해 볼까.’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물론, 사람의 체질이라는 것을 그렇게 쉽게 바꿔 낼 수는 없다. 이미 축적되어 있는 살을 단번에 떼어 낼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단지 그냥, 혈도의 순환을 통해 본능을 속일 뿐이다.

위기 상황을 인식하게 되면, 사람의 몸은 최대한의 힘을 끌어내기 위해 모든 것이 활성화된다. 근육도, 혈류도, 기의 순환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려진다.

다만 사람의 본능이란 것은 생각보다 단순한 것인지라, 저 셋 중의 하나를 활성화시켜 놓으면 스스로 위기 상황이라 인식하고 태세를 전환하게 된다.

원인과 결과가 서로 바뀌어도 상관없다고 할까.

위기라고 인식을 하니, 체내에 에너지를 축적하는 일도 멈추게 되고, 어떤 식으로든 간에 되도록 소모하는 방향으로 열량을 사용하게 된다.

몸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면 힘을 쓰기가 더 쉬워지고, 머리를 써야 하는 상황이라면 집중력이 올라간다. 설령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몸을 강화시켜 면역력이라도 강해진다.

어떤 방식으로든 최대한 신체 능력을 끌어 올리고, 적극적으로 열량을 소모하는 상태로 들어서는 것.

그리고 이렇게 태세를 전환시키는 데에 가장 효율적인 것은 다름이 아니라 체내의 활력, 즉 생기의 순환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근육을 자극시키려면 결국 실제로 몸을 움직여야 하고, 혈류를 급격히 활성화시키는 건 여러모로 장기에 부담이 될 수 있으며, 특히 심장에 악영향이 간다.

하나 반면에, 혈도의 생기를 활성화시키는 건?

그저 몸에 활력을 맴돌게 만들 뿐, 어딘가 막혀 있는 혈도가 있거나 몇몇 혈 자리에 문제가 있는 것만 아니라면, 별다른 부작용이 없다.

유세아의 몸에 이상이 없다는 건 이미 확인한 내용.

강태한은 어깨를 주무르고 있던 손을 통해 그녀의 내부로 기감을 펼쳐 내어, 하나둘씩 혈도를 자극하고 활성화시키기 시작했다.

‘…으음?’

처음에는 어깨부터 시작하여 가슴, 배, 허리, 하체까지. 자극을 받은 혈도들은 조금씩 확장되어 가고, 넓어진 길로 고여 있던 생기들이 흐르기 시작한다.

마치 저수지의 수로가 하나둘씩 열리는 듯한 감각.

갑자기 몸 안에 통로가 네다섯 개씩 뚫리고 맑은 기운이 맴도는 듯한 느낌과 뭐라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개운함이 그녀의 몸을 관통하듯이 타고 흘렀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시원하다?

아니, 단순히 시원한 느낌만은 아니다.

안에서 뭔가가 타오르는 듯한 느낌도 있다고 할까.

갑자기 몸에 힘이 솟구치는 느낌이 드는 한편, 뱃속에서 갑작스레 느껴지는 허기와 함께 식욕이 돌기 시작했다.

“…하아.”

잠시 후 그녀의 몸에서 터져 나온 짤막한 탄성.

어딘가 한숨처럼 들리면서도 감탄처럼 들리기도 하는 것이, 그녀의 복잡한 감각이 한데 뒤엉켜 나온 것만 같은 묘한 탄성이었다.

뭔가 가슴 한편이 고양되면서도 굉장히 편안한, 그런 신비한 느낌. 약간 기분이 묘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불쾌한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이대로 계속 이 상태로 몰입해 있고 싶은 느낌이다.

하나 막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을 쯤.

“자, 다 됐습니다.”

한참 주무르고 있던 강태한의 손이 멈추더니, 끝을 알리듯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탁, 탁 두드렸다. 안마를 받는 동안 눈을 감고 있었던 유세아의 얼굴에는 당황한 수준으로 놀란 기색이 나타났다.

“에, 벌써 끝난 거예요?”

“네. 이걸로 마무리예요.”

필요한 조치는 이미 다 취해 둔 상태다.

생기의 순환은 당분간 이 상태로 유지될 것이고, 열량의 축적은 자연스레 억제되어 대부분의 열량이 바로바로 소모될 것이다.

물론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니고 머지않아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겠지만, 유세아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번이 특이한 경우였을 뿐, 원래는 나름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었으니까.

‘애초에 그렇게 많이 살이 붙었던 것도 아니고.’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이 정도 수준이라면 강태한의 도움이 없었더라도 유세아 스스로 금방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식사 중에 먹고 싶은 걸 참아 가며 식사량을 조절하는 모습이… 특히 쌈 채소에 고기를 두 개씩 올려 먹던 사람이 한 점씩만 올려 먹던 게 너무 안쓰럽게 보였을 뿐이다.

“아까 잠깐만 해 드린다고 했었잖아요.”

“그렇긴… 했었죠.”

싱긋 미소를 짓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강태한.

확실히 필요한 조치는 모두 끝마친 상태다.

하나 그것과는 별개로 도중에 몰입이 끊어진 것 때문일까.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유세아의 눈빛에는 깊은 아쉬움이 나타났다.

하나, 그 아쉬움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자, 그럼 다시 고기 좀 올려 볼까요.”

아직 열기가 남아 있어 뜨거운 불판.

강태한은 여기에 다시 불을 올리고, 불판이 적당히 달궈지자마자 큼지막한 삼겹살을 그대로 올려 냈다.

치이이이이……!

그와 동시에 격하게 울려 퍼지는 고기 익는 소리.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사람이 식욕을 자극받고 입맛을 다실 만한 울림이다. 한데…….

‘…어라, 왜 이러지?’

유세아는 유독 격렬한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

물론, 그녀는 요 근래 식단 조절을 하느라 되도록 고기를, 특히 삼겹살같이 기름기 있는 고기를 피하고 있었다. 당연히 먹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데, 설령 그렇더라도 지금은 슬슬 허기가 가셔야 할 타이밍이지 않은가. 조금만 먹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어느 정도 식사를 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녀는 오히려 처음 식탁에 앉았을 때보다도 더욱 강한 허기를 그리고 강한 식욕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방금 먹었던 음식은 이미 전부 소화해서 에너지로 써 버린 것처럼 말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물론, 이는 강태한이 취해 놓은 조치 때문이다.

하나 유세아가 그걸 알 리가 없다. 그녀로서는 이 식욕에 질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며, 계속해서 식단을 조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참아야 한다.

그녀는 강렬한 의지를 다지며, 옆에 놓여 있는 파채를 덜어 다시금 허기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불판 위에 올려놓은 분홍빛 삼겹살이 노르스름하게 구워져, 딱 봐도 먹음직스럽게 익어 가고 있었을 즈음.

“…태한 씨, 이거 슬슬 먹어도 되지 않아요?”

그녀는 앞장서서 고기의 굽기 상태를 물어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날, 그녀는 다시 상추에 고기를 두 개씩 올려 먹으며 만족스럽게 식사를 끝마쳤다.

* * *

“…내가 미쳤지.”

다음 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유세아는 침대에 몸을 눕힌 채 길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전날 먹은 식사량과 그 칼로리들이 맴돌고 있었다.

‘…이건 따져 볼 필요도 없네.’

다이어트는 지극히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영역.

식단 조절의 기본은 칼로리의 계산이다.

하나 전날의 식사는 굳이 이것저것 계산해 볼 필요도 없었다. 그냥 멀리 갈 것도 없이, 고기만 먹었다고 쳐도 이미 칼로리는 아웃이었으니까.

“…에휴. 그래도 맛있었다.”

하나 후회는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태한 씨가 직접 구워 준 고기는 맛있었고, 그만큼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으니까. 오히려 태한 씨가 열심히 구워 준 고기를 남겼다면, 지금 이상으로 찝찝한 기분이 되었을 게 뻔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시원하게 풀어 준 다음에 다시 마음을 다잡는 것이, 어중간한 각오로 이어 가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는 일이지 않은가.

“그럼… 이제 재판을 한번 받아 볼까.”

그렇다면, 이제 그 마음을 다잡을 시간이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몸을 일으키더니, 책상 아래에 발을 밀어 넣어 무언가를 밖으로 끌어냈다.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체중계.

배려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이 기계는, 그녀가 올라서는 순간 그녀가 전날 지은 죗값을 1g도 빠짐없이 숫자로 보여 줄 터였다.

그야말로 재판의 시간.

그녀는 조그맣게 한숨을 푹 내쉬고는, 조심스레 한 발, 한 발씩 체중계 위로 올려놓았다.

“으으…….”

삐, 하고 울리는 소리.

측정이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소리다.

유세아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린 걸로는 모자라다는 듯, 안쪽의 눈까지 감은 상태로 천천히 아래쪽으로 고개를 향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실눈을 뜬 채 손가락 사이의 틈으로 확인해 보는 숫자.

“…응?”

하나 거기에 나와 있는 숫자는 그녀의 예상을 깨트리는 숫자였다. 그녀는 눈을 가린 손을 치웠다가, 눈을 완전히 떠서 수차례 숫자를 확인했다.

“몸무게가 왜 줄었지?”

많이 먹었으면 몸무게가 늘어나는 게 정상이다.

만약 원상태가 유지되었다면 고마울 뿐이다.

한데, 몸무게가 줄어들었다?

이건… 그녀의 상식선에선, 적어도 전날 그만큼의 고기와 식사를 한 상황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체중계는… 정상인 것 같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3kg짜리 아령을 하나 올려놓아 보니, 체중계에는 정확히 3.0이라는 숫자가 나와 있었다. 아령의 숫자를 늘려 봐도 정확한 수치가 나온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맛있게 먹어서 0칼로리인 건가?”

그냥 맛있게 먹었으면 후회하지 말고 칼로리도 신경 쓰지 말라는, 향간에 떠도는 장난스러운 이야기.

당연히 그 말이 사실일 리는 없고, 유세아도 장난스레 말했을 뿐이다. 하나 그렇다면 이건 어찌 된 일인가. 유세아는 입가를 감싸 쥔 채로 한동안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중.

문득 뭔가가 생각난 것일까.

그녀는 애매모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어머니, 한주아가 있는 거실로 향했다.

“엄마, 우리 집에 기생충 약 있었지?”

“있지. 근데 왜?”

“그냥… 슬슬 먹을 때가 된 것 같아서?”

그럴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얼마 전에 해외에 다녀온 참이기도 했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구충제 한 알을 복용하는 유세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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