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210화
“으허억!”
그로부터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난 후.
계속 깊은 잠에 빠져 있었던 덴버정은, 화들짝 놀라며 단번에 몸을 일으켰다. 그는 기억이 끊어지기라도 한 사람처럼 한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일어났어요?”
“…후우우. 어, 일어났어.”
그러다 구석에 있는 카메라를 보고는 상황을 떠올려 냈는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뱉고는 한차례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재구야, 지금 몇 시야?”
“지금 거의 열 시 정도 됐네요.”
“…뭐? 열 시?”
덴버정은 황당해하는 얼굴로 되물었고, 카메라 스태프는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이고는 턱짓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 보니, 벽에 걸려 있는 디지털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진짜네……?”
당연한 말이지만, 그에게는 이 한 시간 동안의 기억이 없었다. 그만큼의 시간 감각도 없었다. 그냥, 눈을 감았다가 떠 보니 열 시가 되어 있었다.
깊은 숙면을 취했다기보다는 아주 잠깐 기절했다가 다시 눈을 뜬 느낌이라고 할까. 적어도 그가 느끼고 있는 인식은 그쪽에 더 가까웠다.
한데 벌써 열 시라니.
‘여기 도착한 게 여덟 시 언저리였으니까…….’
그가 안마를 받기 시작한 게 여덟 시 반 정도의 일이었다. 거기서 안마 시간은 삼십 분 정도라고 했었으니… 자기가 잠을 자고 있었던 사이에 한 시간가량의 시간이 지났다는 말이 된다.
“이게 말이 되나… 음?”
아직도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를 긁적이던 덴버정. 그러다 문득 느껴진 이질감에, 그는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라?”
몸이 약간 이상하다.
물론 안 좋은 방향은 아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체의 균형이라고 할까, 골격의 밸런스라고 할까… 본래 왼쪽으로 살짝 쏠리듯 휘어져 있던 척추와 몸이, 지금은 본인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꼿꼿하게 세워져 있었다.
“설마… 진짜로?”
하나 변화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기지개를 피듯 두 손을 쭉 뻗어 올리더니, 오른쪽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기울였다.
왼쪽 허리가 쭉 펴지면서 큰 자극을 가하는 스트레칭 자세.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초적인 동작이지만, 덴버정은 부상을 입은 이후로 단 한 번도 제대로 취해 보지 못했던 자세였다.
초반에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그리고 지금은 머릿속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그동안 노력과 운동을 통해 부상의 후유증을 대부분 극복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해결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후유증 중의 하나였다.
한데 지금의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반대편으로도 몸을 기울여 좌우의 기지개를 끝마쳤다.
“…형, 괜찮아요?”
오히려 그를 걱정하는 건 카메라 스태프였다.
직원으로 고용된 입장이지만, 고용 관계 이전에 꽤 오랜 시간 알고 지내 온 선후배 관계이기도 하다. 그의 부상에 대해서는 당연히 알고 있었고, 후유증이 남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보고 있자니 당연히 걱정이 될 수밖에.
하나 그런 그에게 덴버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점점 더 과격한 동작들을 취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왼쪽 허리에 부담이 갈 수밖에 없는 동작들이었다.
“와하하! 야, 거짓말처럼 멀쩡해졌는데?”
“…진짜로요?”
“진짜로!”
일정 수준 이상의 힘이 들어가는 순간 찌릿, 하는 고통이 생기고, 설령 고통이 없다 하더라도 심리적인 압박감에 반사적으로 위축되는 느낌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그런 것이 전혀 없다.
그뿐인가. 몸은 또 어찌 가볍고 편안한지, 이 상태로 십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집까지 뛰어가더라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치 몸을 리셋이라도 시켜 놓은 것 같아.’
아직 아무 사고도 나지 않았던 때로, 부상을 입지 않았던 때로 몸을 되돌린 것만 같다. 심지어 그는 자기 왼쪽 허리를 두어 번 때려 보기까지 했다.
“이 사람, 그냥 영상 한 편 찍으려고 왔다가 진짜로 치료를 받고 가네…….”
“그러니까 내 말이. 하하하! 신기하네, 정말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카메라 스태프의 한마디. 약간 어안이 벙벙한 그 목소리에, 덴버정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터트렸다.
* * *
“근데, 이거 영상 올릴 수 있을까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감사 인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가고 있던 도중, 뒤쪽에서 걷고 있던 카메라 스태프, 정재구가 넌지시 물었다.
“안 될 이유가 있나? 왜, 이상하게 찍혔어?”
“아뇨. 영상 자체는 되게 잘 찍었는데…….”
어깨를 으쓱이며 되물어 보는 덴버정. 그 말에, 정재구는 손에 쥐어져 있는 액션 카메라를 슬쩍 내려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방금 전보다는 조금 더 진지해진 목소리였다.
“약간 조작 논란이 있지 않을까요?”
“…너 뭐 조작한 거 있어? 아까 한 거 없다며?”
“아, 그런 건 당연히 없죠. 근데… 그냥 이 상황 자체가 비현실적이라고 해야 하나?”
사람에게는 상식이라고 불리는 생각의 범위가 있다.
이건 당연히 일어날 만했던 일이고, 이건 운이 좋았거나 나빴을 뿐이고, 이 정도면 우연의 일치고. 사람들은 그 상식이라는 범주 내에서 상황을 판단한다.
그리고 그 범주를 넘어선 일과 맞닥뜨리게 되면…….
사람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믿지 않는다. 설령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일이라도 꿈을 꾸고 있거나 뭔가 허튼 수작이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게 영상물이라면?
굳이 길게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툭하면 조작 의혹이 생기고 광고 아니냐고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이 바닥의 일상이다.
“솔직히 저조차도 형이 따로 사장님이랑 이야기를 해 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믿기 힘들거든요.”
정재구는 오늘 촬영 중에 있었던 일들을 곰곰이 하나둘씩 떠올려 보며 입을 열었다.
등에다 손만 얹어 놓고 사람의 몸 상태, 심지어 알려지지 않았던 그 원인까지 파악해 내더니, 안마만으로 사람의 입에서 비명을 쫙쫙 터트려 냈다.
여기까지만 봐도 약간 조작의 느낌이 난다.
특히 안마를 받을 때 비명을 내지를 때의 모습은 누가 봐도 과장된 리액션으로 보일 정도였다.
히나 가관인 것은 그다음이다.
안마가 끝나고 이야기를 좀 나누는가 싶더니, 목덜미에 손을 얹으니까 사람이 픽 쓰러졌다. 그리고 그 상태로 한 시간 동안 숙면. 그러고는 스트레칭을 막 하더니, 지병이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졌다고 한다.
이걸 어떻게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물론 이 모든 상황은 현실이고, 당사자 둘뿐만 아니라 카메라로 이것들을 촬영한 자신이 증인이다.
하나 이건 자기가 봐도 의심이 갈 것 같은 영상이다. 누가 봐도 조작일 것 같고, 수상했으니까. 어쩌면 이상한 사이비와 엮여서 이러고 있는 거 아니냐며 의심할 수도 있을 만한 수준이었다.
“…좀 그런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
“없지 않아 있는 게 아니라, 대놓고 있죠.”
흐음. 덴버정은 침음을 흘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영상이 과연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될까. 그의 고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냥 평소처럼 올려도 될 것 같은데?”
“평소처럼요?”
“어. 늘어지는 부분이랑 쓸데없는 부분만 쳐 내고, 나머지는 그냥 그대로 살려 놓는 방식으로.”
그렇다는 건, 앞서 그가 떠올렸던 말도 안 되는 부분들을 전부 남겨 놓자는 이야기였다. 정재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렇게 가도 되겠어요?”
“솔직히 나라도 안 믿을 것 같기는 한데… 어쩌겠냐. 이게 진짜고, 실제로 일어난 일인데.”
의혹이 나올 만한 부분들을 따로 쳐 내는 방식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오히려 그게 조작이지 않은가.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무조건 리얼 그대로.
이 문장이 덴버정 채널 나름의 소신이자 아이덴티티였고, 수많은 헬스 왓튜버 사이에서 나름 규모 있는 채널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야, 설령 좀 더 의혹을 살 수 있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되도록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내보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천마안마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미 인터넷에 많이 알려졌잖아. 나도 몇 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거든.”
몇 년 동안 불면증을 앓았는데 그게 싹 사라졌다든가, 네 번 정도 방문했더니 거북 목이 거짓말처럼 나았다든가, 정력이 젊을 때로 회춘했다든가…….
단순히 안마의 효과라고 하기에는 너무 지나친 것들이 아닌가? 당연히 믿지 않았고,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거나 다른 요소와 우연히 겹친 탓에 착각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다 팩트였던 거지.”
하나 안마를 받고 나온 지금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던 그 수많은 거짓말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사실 그 자체였던 것이다.
“어쨌거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미 천마안마를 체험하고 그 효과를 본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 사람들이 우리의 증인이 되어 줄 거라는 거야.”
“아…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요.”
“그렇지?”
실제로 예전에, SNS에서 천마안마에 대한 이야기가 막 화제가 되었을 무렵에는 ‘거짓말하지 말라’라는 분위기가 좀 더 강했다.
하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분위기가 바뀌어 가더니, 지금에 와서는 대부분 ‘천마안마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어’ 정도의 반응이다. 정말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말이다.
“물론 조작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진 않겠지만, 영상을 보고 다녀와 볼 사람들도 생기겠지. 그렇게 경험자가 늘어나다 보면 알아서 사그라들지 않겠어?”
덴버정의 말에 정재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덴버정은 어느새 도착한 자동차의 문을 열고는, 운전석에 몸을 실으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곤 조수석 쪽을 쳐다보며 덧붙이듯이 말했다.
“그냥 날리거나 굳이 편집을 하기에는 영상 자체가 아깝기도 하잖아. 그렇지 않아?”
“하하,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해요.”
이건 조작 의혹이 생길 만하다.
그 말인즉슨, 그 정도로 신기하고 평소와 다른 포텐이 터지는 영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일단 업로드를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오건 간에 일단 조회 수는 대박이 터지지 않을까. 촬영을 하던 도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참이다.
“그러니까 그냥 평소처럼… 어?”
그렇게 이야기를 정리한 뒤, 차를 끌고 주차장을 나오고 있던 도중.
혹시라도 보행자가 있진 않나 주변을 둘러보던 덴버정은, 순간 발견한 누군가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멈칫해 버렸다. 그러곤 자기가 본 게 맞나 그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왜 그래요? 아는 사람이라도 봤어요?”
“나 혼자 아는 사람이기는 한데… 왜 저 사람이 여기에 있는 거지?”
덴버정은 어릴 적에 미국으로 넘어가 오랫동안 유학 생활을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케이스다.
그렇다 보니 미국 문화, 스포츠에 대해서는 나름 빠삭한 편이고, 특히 미식축구는 한때 경기 하나 빼놓지 않고 챙겨 봤을 정도로 열렬한 팬이었었다.
그렇기에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근처 편의점 테이블에서 컵라면에 소주 한 병을 놓고 시원하게 웃어 젖히고 있는 근육질의 백인 남성.
그는 다름 아닌 마이애미 헤비나이츠의 쿼터백이자, 현재 NFL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 중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선수, 캘리버 스미스였다.
* * *
“세아 씨, 혹시 입맛이 없으세요?”
한편, 덴버정과의 일정을 끝마치고 퇴근한 강태한.
일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향한 그는, 불판을 올린 식탁을 사이에 두고 유세아와 마주 앉아 있는 상태였다.
“뭔가 좀처럼 잘 드시질 못하는 것 같은데.”
살짝 걱정이 어려 있는 강태한의 목소리.
평소 강태한이 구운 고기라면 없어서 못 먹던 유세아였으나, 오늘은 유독 먹는 속도가 느린 편이었다. 강태한은 아직 굽지 않은 생고기를 슬쩍 살펴보며 말했다.
“아니면 고기가 별로인 건가?”
“어, 아뇨! 그럴 리가요! 그런 건 아닌데… 하하.”
그 말에 유세아는 두 손과 고개를 동시에 저으며 강한 부정을 표했다. 언제나 그렇듯, 강태한이 구운 고기는 신기할 정도로 맛이 좋았다. 육즙과 식감이 딱 절묘하게 어우러진다고나 할까.
당연히 문제는 고기에 있는 게 아니었다.
솔직히 그렇게 대단한 문제도 아니었다. 그냥… 굳이 입에 담고 싶지는 않은, 특히 좋아하는 사람에겐 알리고 싶지 않은 문제였을 뿐.
생각보다 살이 붙어서 체중 조절을 해야 한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니고 자연스러운 말이었지만, 사람은 때로 사소한 부분에도 얽매이는 법이지 않은가.
“흐음…….”
그렇게 말을 머뭇거리다 뒷말을 흐리더니, 상추 한 장을 집어 쌈을 싸기 시작하는 유세아. 강태한은 그런 그녀의 손을 슬쩍 살펴보고 있었다.
평소 쌈이라면 무조건 고기 두 개를 올리던 그녀였으나… 지금은 하나, 그것도 되도록 작은 걸 집어서 하나만 올리는 모습이었다.
‘그렇군.’
대강 내용은 인지하고 있었으나, 이걸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강태한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고기 한 점을 입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세요?”
“어디 가려는 건 아니고, 세아 씨가 좀 피곤해 보여서요. 간단하게 어깨라도 좀 주물러 드릴까 했죠.”
강태한은 자연스레 유세아의 뒤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 말에 유세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피곤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던 탓이다.
“그래요? 전 피곤한지 잘 모르겠는데.”
“아뇨. 많이 피곤한 것 같은데? 해외 촬영도 갔다 온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강태한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안마의 다른 목적을 감추기 위한 빈말.
그냥 사실대로 말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그건 아무래도 세련되지 않은 방법이었다. 유세아가 굳이 감추고 있는 부분을 언급하는 셈이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