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209화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주고받은 뒤.
안내하던 직원이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자, 덴버정은 침대에 앉아 가볍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솔직히 복도를 걸을 때는 방이 좀 좁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넓습니다. 그렇지 않아?”
방을 둘러보던 덴버정은 뒤쪽을 쳐다보며 넌지시 물었다. 그곳에는 액션 카메라를 들고 이쪽을 촬영하고 있는 스태프 한 명이 서 있었다.
“그러게요. 둘이 들어와 있어도 그렇게 좁다는 느낌이 들진 않네.”
당연한 말이지만, 안마를 받고 있는 모습을 스스로 촬영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본래는 방마다 한 명씩만 들어가는 것이 원칙이지만, 촬영을 위해 따로 양해를 구해 둔 덴버정이다. 그는 계속 주변을 둘러보며 리뷰라도 하듯 감상을 입에 담고 있었다.
“제가 안마원을 많이 다녀본 건 아닌데… 엄청 깔끔하고 시설도 좋네요. 인테리어도 세련된 느낌이고, 이런 구석구석에도 먼지 하나가 없어요.”
“혹시 공기청정기 때문인가?”
“공기청정기? 와… 그러네. 여러분, 이거 아실 만한 분들은 다 아실 텐데, 이거 공기청정기 중에서는 꽤 비싼 놈이거든요. 신경 많이 쓰셨네.”
그리고 그 감상의 대부분은 칭찬 일색이었다.
물론 굳이 양해를 구하고 촬영을 하러 온 입장에선, 아무래도 안 좋은 소리보단 듣기 좋은 소리들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아까 보니까 복도에 방들이 되게 많던데… 다 이런 식으로 꾸며 놓으신 건가.”
하나 적어도 오늘은 과장이나 빈말이 섞여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예상외, 기대 이상의 모습에 순수하게 감탄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혹시 프리미엄 코스들만 이렇게 해 놨나?”
“제가 SNS에 올라온 사진들 몇 개 찾아봤는데, 전체적으로 이런 느낌이더라고요.”
“그래? 이야… 여기서 잠만 자도 꽤 좋겠는데? 이따가 말씀 좀 드려 볼까? 자고 가도 되냐고.”
한편, 그런 이야기들이 한참 이어지고 있었을 즈음.
“잘됐네요.”
어느새 방문을 열고 나타난 누군가가 두 사람의 대화에 슬쩍 끼어들었다.
“안 그래도 조금 있다가 잠도 주무실 테니까요.”
다름 아닌 강태한이었다.
* * *
“아, 선생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와 주셔서 고맙죠.”
살짝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건네는 덴버정.
강태한은 그 인사를 받으며, 평소와 같이 덴버정의 몸 상태를 슬쩍 살펴보았다.
‘흐음… 역시 큰 문제는 없나.’
사우나에서 쓰러진 걸 도와주면서 알게 된 인연.
다만 당시에도 뭔가 몸에 큰 이상이 있어서 쓰러졌던 것은 아니었고, 단순히 사우나에서 너무 오래 버티고 있었던 탓에 탈수와 탈진 현상을 겪었을 뿐이었다.
오히려 신체 자체는 건장한 편에 속했다고 할까.
그리고 그건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이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뭔가 사고라도 겪지 않은 이상 당연히 큰 이상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당장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거나, 강태한이 아니라면 어떻게 조치를 취할 방법이 없는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뜻이었다.
‘뭐, 그렇다고 문제가 될 건 없지만.’
다만 상관은 없는 이야기다.
애당초 그런 사람들만 찾아왔다면, 여기는 천마안마가 아니라 천마 응급실이 되었을 테니까.
안마는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는 행위.
몸이 아파서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그냥 그동안 몸에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일단 등을 한번 좀 볼까요?”
‘아, 네. 선생님.“
강태한이 가까이 다가가며 말하자, 덴버정은 곧바로 몸을 뒤집으며 대답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을 몇 발자국 뒤에서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 그 앞에서, 강태한은 덴버정의 등 위에 천천히 손을 올렸다.
‘흐음…….’
전반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은 이미 확인했다.
하나, 그렇다고 그걸로 완전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직접 접촉하여 기감을 흘려 보내고 확인을 해 봐야 알 수 있는 내용도 있는 법이니까.
“어떻습니까, 선생님?”
그러던 와중, 엎드려 있던 덴버정이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로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 왠지 모르게 기대감이 묻어 나오는 그런 목소리였다.
그야 기대감이 묻어 나올 만도 했다.
SNS에서 본 이야기에 따르면, 천마안마의 원장은 몸에 손만 슬쩍 얹어 보고는 상대방의 증상과 평소 습관까지 전부 맞춰 낸다는 모양이었으니까.
어떤 사람의 말에 따르면 안마원이 아니라 점집에 온 게 아닌지 착각을 할 정도라고. 물론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아니었으나, 아무래도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큰 문제는 없네요.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시나.”
“음. 그야 그렇죠. 아무래도 헬스 왓튜버다 보니.”
대답하는 덴버정의 목소리에 약간 실망한 기색이 드러났다. 그의 기대감에 비하면 너무나도 무난한, 그의 직업만 들어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을 법한 그런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다.
하나 그 실망은 너무나도 이른 결론이었다.
“다만… 왼쪽 허리에 큰 부상을 입은 적이 있군. 부상은 극복한 모양이지만, 정신적인 공포는 오래가는 법이지. 이것 때문에 운동 습관이 잘못 잡혔구만?”
어느 순간, 강태한의 목소리가 슬며시 바뀌더니 자연스럽게 말투까지 바뀌었다. 뭐라 설명하기 힘든 중후한 압박감이 분위기를 사로잡았다.
“…예?”
“같은 운동을 하더라도 왼쪽, 오른쪽의 운동량이 조금씩 다르지 않나. 어쩔 수 없지. 왼쪽 허리에 힘이 들어가면, 아무래도 몸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으니.”
“어… 예. 그렇기는 한데…….”
하나 덴버정은 강태한의 바뀐 말투에 별다른 리액션을 보이지 못했다. 그저 벙찐 표정으로 당황한 목소리를 입에 담았을 뿐.
‘어떻게 알지, 그걸?’
그 말대로 덴버정은 허리에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 한국에 막 돌아와 특전병 생활을 하던 시절, 산행 중 절벽에서 굴러 크게 다친 적이 한번 있었던 것이다.
절벽 아래쪽에는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하필이면 거기에 왼쪽 허리가 그대로 찍혀 버렸던 것.
의사의 말로는 조금만 더 우측이었다면 척추가 박살이 났을 거라고 했던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거의 일 년 동안은 허리의 고통과 후유증 때문에 왼쪽 몸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그 뒤로 흐른 시간이 어언 십 년.
부상은 꾸준한 재활 훈련과 운동을 통해 진즉에 극복해 냈지만, 아직도 그 당시의 고통들이 기억에 남아 있어 신체 활동에 미묘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되도록이면 몸의 균형을 오른쪽에 둔다든가, 왼쪽 다리를 쓰는 게 편리한 상황에서도 굳이 오른쪽 다리를 쓴다든가, 벤치프레스를 하더라도 오른손에 좀 더 힘이 들어간다든가…….
다만, 그건 본인만 알고 있는 미묘한 차이다.
정말 자세히 관찰하거나 의학적 촬영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알기 힘든, 말하자면 어디까지나 생활 습관에 불과한 수준.
애당초 어디에서 말하고 다닌 적도 없는 이야기다.
굳이 아는 사람을 꼽자면 같이 군 생활을 했던 사람들과 정말 친한 친구 몇 명 정도뿐이며, 그나마도 후자 쪽은 모두 미국에 있는 친구들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그걸 어떻게 알아냈단 말인가.
심지어 그의 손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등 위를 지그시 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허리 쪽을 살펴보기는커녕 짚어 본 적도 없다는 뜻이다.
‘진짜 점쟁이라도 된단 말인가…….’
기대가 충족되면 만족이 찾아오는 법이고, 기대를 넘어가면 감탄이 나오는 법이다. 하나 그게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오히려 당황하게 되기 마련이다.
하나 그러거나 말거나, 그러는 와중에도 강태한의 진단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잠도 좀 부족한 것 같군. 이 정도면 기껏해야… 하루에 네 시간 정도? 그마저도 불규칙적이고 말이야.”
“마, 맞습니다. 요즘 영상 편집이 좀 오래 걸려서…….”
“그래도 휴식도 충분히 취해 줘야 하지 않겠나. 안 그래도 운동을 밤늦게 해서 몸을 혹사시키는 일이 많은 것 같은데 말이야.”
자잘하면서도 어딘가 구체적인 내용들.
그리고 하나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들이다. 덴버정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뒤쪽에 서 있는 스태프를 쳐다보았다. 자기 몰래 미리 뭔가 귀띔이라도 해 줬냐고 물어보는 눈짓이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스태프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
보아하니 지금 상황에 놀란 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였다. 이쯤 되면 생방송이라도 조작 의혹이 나올 만한 수준이었다.
“뭐 생활 습관까지는 내가 바꿔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좌우 균형 정도는 도움을 좀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겠나?”
“…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넌지시 물어보는 강태한.
덴버정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등에 올려 뒀던 손을 떼어 양쪽 허리로 가져갔다.
“아, 살살하는 게 좋나, 좀 제대로 가는 게 좋나?”
“그야, 물론…….”
순간 덴버정의 머릿속에 방금 전에 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어차피 기왕 받는 거, 확실하고 세게.’
그 말은 결코 빈말도 허세도 아니었다. 평소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후자를 골랐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쪽이 효과도 더 좋지 않겠는가.
한데 왜일까.
본능적인 두려움이 그의 혀를 멈춰 세웠다. 싸한 느낌이 그의 등골을 붙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기왕 받는 거 제대로 받는 게 낫죠.”
뒤에 있는 카메라를 본 순간, 그의 이성이 본능을 이겼다. 지금 그는 그냥 안마를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촬영을 하려고 온 것이지 않은가.
아무래도 자신의 이미지도 있고, 살살하는 것보다는 세게 받는 편이 영상이 더 재미있게 나올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도 그런 걸 기대할 것이고 말이다.
“좋아. 그렇게 나와야지.”
강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허리를 붙잡고 있던 손을 곧바로 움직였다.
그다음으로 이어진 동작은 뭐랄까.
사람의 몸을 주무른다기보다는, 뒤틀린 뭔가를 다시 짜 맞춘다는 개념에 가까워 보이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걸 지켜보는 카메라 스태프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우드드드득.
그리고 그 정적 속에 뼛소리가 울려 퍼졌다.
통나무처럼 굵직한 허리에서 울리는 그 소리는, 가느다란 손가락뼈에서 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하고 큰 소리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일 초 후.
베개에 가만히 얼굴을 묻고 있던 남자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목청이 터질 것만 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 * *
“오, 끝났어?”
안마를 마친 강태한이 휴게실로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있던 황 실장이 손을 흔들며 그를 반겼다. 강태한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예. 일단은요.”
“그 왓튜버 양반은?”
“그야 방에서 주무시고 계시죠.”
강태한은 복도 쪽을 가리키며 당연하지 않냐는 목소리로 말했다. 황 실장은 보고 있던 노트북을 슬쩍 덮더니, 호기심 어린 얼굴로 슬쩍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어땠어?”
“뭐가요?”
“촬영 말이야. 오늘 촬영도 한다고 하지 않았나?”
“했죠?”
약간 신이 난 걸로 보일 정도로 흥미를 보이는 황 실장의 모습. 하나 정작 촬영을 하고 나온 강태한은 평소와 다를 것 하나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황 실장은 피식 실소를 흘리고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사람이 처음 카메라 앞에 서면 긴장도 좀 하고 흥분도 한다던데, 태한 씨는 뭐 한결같구만.”
“저야 뭐… 촬영은 그쪽 분들의 일이고, 저는 그냥 안마를 하러 간 거였으니까요.”
안마사는 그저 안마를 하는 것이 일이다.
그저 그뿐. 그 담백한 대답에 황 실장은 조그맣게 한숨을 쉬면서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역시, 이 녀석은 겉보기만 이십 대지 어디서 몇십 년은 살다가 온 게 분명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황 실장은 팔짱을 꼈다.
“근데 좀 감탄을 하긴 했어요.”
“감탄? 어떤 걸.”
“그 왓튜버요.”
강태한은 방금 전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뭐냐, 리액션? 아무튼 그걸 굉장히 리얼하게 잘하시더라고요. 역시 프로는 다른 건가, 했죠.”
“리액션? 무슨 리액션을 했는데.”
“안마를 할 때마다 막 엄살을 피우면서 몸을 움직이시는데, 진짜 아픈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영상의 재미를 위해 그렇게 하신 것 같은데.”
이곳저곳 누를 때마다 튀어나오던 생생한 반응들. 강태한의 입장에선 그리 아플 리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저 재미를 위한 연기로 보일 뿐이었다.
“…그거 리액션 아니었을 것 같은데.”
한편 그 이야기를 듣고 잠시 동안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황 실장.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안타까운 진실을 입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