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208화
“학원이라… 있으면 좋지, 좋은데…….”
황 실장은 진중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별도의 교육 및 훈련 시설을 만들겠다. 그것 자체는 나쁜 생각이 아니다. 실제로 규모 있는 프랜차이즈는 대부분 이런 시설들을 운영하고 있고, 애당초 연수원이라는 개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니까.
“갑자기 스케일이 커지는 느낌이 좀 있네. 아무래도 무리가 좀 있지 않을까? 그게 만들고 싶다고 해서 그냥 뚝딱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잖아.”
하나 모든 일에는 비용이 따르는 법.
별개의 시설을 만든다는 것은, 사실상 하나의 가게를 추가로 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단은 공간을 확보해야 하고, 그만큼의 인력도 새롭게 확보해야 한다. 그것도 아무나 뽑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교육을 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나름 실력이 쌓인 전문 인력을 모아야 한다.
더군다나 인재 양성 같은 부분은, 당장 수익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구조다.
원래 인재라는 게 며칠 만에 뚝딱 완성되는 게 아니고, 실전에 투입되어 제 몫을 해내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으니까.
지금 천마안마에서 새로 안마사를 뽑을 경우, 이들이 손님에게 따로 지명을 받을 정도의 실력이 되기까진 평균적으로 서너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다만 이건 이쪽 업계에서 이미 오랫동안 일을 해 온 사람이나 재능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엄선해서 뽑은 경우의 일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말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빠질 거라는 거지.”
장소를 임대하고 관리하는 것도 비용, 가르칠 사람을 뽑는 것도 비용, 실전에 투입될 때까지 사람을 키우는 것도 비용, 비용… 결국 전부 다 돈이다.
인재를 직접 육성하겠다는 것은 한참 동안 돈이 줄줄 새어 나갈 구멍을 뻥 뚫어 놓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다.
“물론 요즘 가게 수익이 잘 나오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무리하게 일을 벌이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조금 들기도 하네. 비용적으로 말이야.”
황 실장은 나름 사업을 키우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는 사람이다. 애당초 그 때문에 예전에 있었던 찜질방을 나와 강태한과 같이 가기로 한 거였으니까.
하나 그렇다고 무리해서 일을 키우는 것은 또 별개의 이야기다.
사업이 한참 잘나가고 수중에 돈이 남아돌기 시작할 때, ‘돈은 투자하는 만큼 돌아오는 법’이라며 이곳저곳으로 크게 일을 벌이던 사람들.
그런 사람의 대부분은 그리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했다는 걸, 황 실장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강태한이 가벼운 생각으로 이런 말을 꺼낼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나 천마안마에서 그의 역할은 사업적인 부분을 관리하고 조언해 주는 것. 그리고 그의 기준에서, 지금 학원까지 확장하는 건 여러모로 무리가 있는 일이었다.
“…아. 제가 이걸 먼저 말씀드렸어야 했네.”
다만 그런 걱정 어린 황 실장의 모습과 달리, 강태한은 비교적 가벼운 반응을 보였다. 그는 깜빡했다는 듯이 덧붙여 말했다.
“사실 얼마 전에 장재연 씨랑 만났었거든요. 기억하시죠? 장재연 사장님.”
“장재연이라면… 그야 물론 기억하고 있지. 여기 건물주님이시잖아.”
“맞아요. 위아리치 사장님이기도 하고요.”
위아리치라 하면, 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숙박업을 하고 있는 호텔 브랜드이자 기업이다.
그리고 장재연은 그곳의 CEO.
뿐만 아니라 현재 천마안마가 있는 빌딩의 건물주이자 아래에 위치한 라이너 호텔의 오너이기도 하다. 황 실장은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분이랑은 언제 만났어?”
“얼마 전에 곽상영 씨랑 만날 일이 있어서 호텔에 내려갔었는데, 마침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차 한잔하면서 이야기 좀 했었죠. 어쨌거나…….”
중요한 건 언제 만났는지가 아니라 대화의 내용이다. 강태한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원래 꺼내려 했던 본론을 바로 입에 담았다.
“경매에 싸게 나와서 구해 둔 건물이 하나 있는데, 약간 용도가 애매하고 일정이 틀어져서 놀려 두고 있는 곳이 있다더라고요. 임대 주기도 좀 그렇고.”
“흐음… 그래서?”
“제가 쓸 생각만 있다면야, 거길 연수원으로 활용하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건물 관리만 해 준다는 조건으로 몇 년 정도는 내줄 수 있다고.”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카페에 도착한 두 사람.
강태한은 아무렇지 않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지만, 황 실장은 벙찐 표정으로 제자리에 서 있다가 뒤늦게 따라 들어왔다.
“관리만 하면 건물을 빌려준다고 했다고?”
“네. 그랬죠. 그보다 뭐 드실래요?”
당황한 황 실장. 반면, 강태한은 느긋한 표정으로 지갑을 꺼내고는 메뉴판을 가리키며 물었다.
* * *
“허, 참… 그게 그래도 되나?”
잠시 후.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 황 실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마디 입을 열었다.
앞서 이런저런 비용 이야기들을 했지만, 결국 그중에서 단연 비중이 큰 부분을 꼽으라면 공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의 문제다.
사업을 할 때, 특히 서울에서 뭔가 일을 벌이려면 항상 건물, 임대료가 가장 큰 문제였으니까.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던 인기 맛집마저도 문을 닫게 만드는 것이 임대료의 위력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임대료야말로 건물주들의 주된 수입원 중의 하나다. 한데 그걸 그냥 포기한다니.
“그게… 그래도 되는 이야기인가?”
음료가 나올 때까지 곰곰이 생각을 해 봤지만, 그래도 납득이 어려웠다. 차라리 사기를 치는 것이라 생각하는 편이 납득이 쉬울 정도로 말이다.
물론 강태한이 허투루 말을 꺼내는 사람은 아니고 어디서 사기를 당할 만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의 입장에선 이상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니야?”
“그야 당연히 있죠.”
강태한은 들고 있던 컵을 컵받침에 내려놓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황 실장 쪽이었다.
“…어? 그, 그래?”
“네. 대신 나중에 체인점 확장할 때, 위아리치 쪽 호텔들에 입점을 좀 부탁한다고 하더라고요. 최우선까진 아니어도, 우선적으로 고려해 달라고.”
…아하.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가 있었었다.
페르모 가이드 3성에 천마안마가 막 이름을 올렸을 무렵의 이야기. 물론 입으로만 나왔던 이야기고 정식으로 진행된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쪽에서 그런 의사를 드러낸 적이 있었다.
“정식으로 계약을 맺자, 뭐 이런 이야기까진 나오지 않았지만… 일종의 기반 공사 같은 느낌이 아닐까요. 미리미리 호감도 쌓고, 관계도 맺어 두려는.”
강태한은 슬쩍 오른손에 턱을 괴고선 싱긋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그런 생각으로 접근해 보자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상황이었다.
“…하하, 태한 씨는 이런 계산적인 부분은 잘 모르는 것 같다가도, 알고 보면 착실하단 말이지.”
얼핏 보면 사업적인 부분은 전부 황 실장에게 위임하는 것 같지만, 그러면서도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무슨 의도가 있는지 전부 파악하고 있는 강태한이다.
“으음… 그냥 감이 조금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새삼스레 그걸 느낀 황 실장의 말에,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황 실장은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물었다.
“그래서, 그건 어떤 건물인데?”
“일단 사진으로 외관만 봤는데… 3층짜리 상가였나. 그렇게 크진 않고 꽤 오래되기도 했는데, 전에 사람이 리모델링을 싹 해 놔서 내부는 깔끔하대요.”
“관리는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는데?”
“세세하게 물어보진 않았는데… 벽에 금만 안 가면 된다고 했었어요. 상식적인 수준만 해 달라는 거겠죠. 아, 그리고 위치는…….”
강태한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스마트폰을 꺼내 들더니, 이미지 하나를 띄워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화면에 나와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 부근 일대의 지도. 거기에는 해당 건물의 위치로 추정되는 빨간 점 하나가 찍혀 있었다.
“…장소도 좋네.”
차를 탄다면 가게에서 출발해도 금방 도착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차가 막힌다면, 그냥 걸어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정도의 위치다. 황 실장은 감명을 받은 눈빛으로 한동안 지도의 점을 바라보았다.
“어때요, 괜찮죠?”
“그러게… 임대료 없이 이런 곳을 빌릴 수 있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수준이야.”
물론 자세한 건 직접 가 봐야 할 것이다.
주변에 다른 요소가 있을 수도 있고, 건물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허나 반대로 말하자면, 그런 돌발 요소들을 배제하면 흠잡을 수가 없는 곳이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당장 착수하기에는 문제가 좀 있고… 성훈 씨랑 태진 씨가 성현이 실력 정도가 되면 슬슬 준비해서, 둘 중 한 분을 여기 원장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강태한의 말에 황 실장은 잠시 턱에 손을 올린 채 생각에 잠겼다. 뭔가를 검토하듯 곰곰이 생각에 빠졌던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건 뭐, 반대할 이유가 없구만.”
“그렇죠?”
본래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고들 하지만, 이 정도면 코끼리가 건너도 문제가 없을 것처럼 단단한 다리였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 * *
“자, 여러분… 이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라이너 빌딩 이십 층 복도의 정가운데.
살짝 멀리 천마안마의 입구가 보이는 이곳에서는, 한 남자가 액션 카메라를 바라보며 긴장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꺼내고 있었다.
“요즘 주변에서 그렇게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 천마안마! 실제로 페르모 가이드 3성에도 이름을 올리면서 세계적인 관심까지 받고 있는 곳인데요.”
그는 다름 아닌 헬스 왓튜버, 덴버정.
얼마 전에 사우나에서 강태한과 우연히 마주쳤었다가 도움을 받은 그는, 강태한의 배려로 따로 왓튜브 촬영의 기회를 얻어 냈었다.
그리고 약속했었던 날인 오늘이 찾아오자, 철저하게 촬영 준비를 마치고 이렇게 가게 앞에 나왔던 것.
“잘은 몰라도 지금 서울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핫한 안마원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저는 오늘 예약하기도 어렵다는, 그 천마코스를 받으러 왔습니다!”
본래 솔직한 리액션과 과장 없이 담백한 진행으로 알려진 그였으나, 오늘은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얼핏 보면 평소와 달리 텐션을 좀 올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오히려 이게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는 지금 실제로 살짝 설레고 있었으니까.
비단 천마안마의 유명세 때문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경험에서 우러난 기대감이라고 할까.
실제로 사우나에서 쓰러졌을 당시, 강태한의 기적 같은 솜씨를 살짝 맛보았기에 기대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 그리고 많은 분이 아직 모르시던데, 이번에 이곳, 천마안마 전용 예약 애플이 따로 나왔습니다. 예약하기 어려워서 꺼려하는 분들도 계시던데, 이걸로 예약하면 정말 편한 구조더라고요.”
그러면서 강태한과 약속했던 대로 애플리케이션의 언급도 잊지 않고 찍어 두는 모습. 그런 후 가게 안으로 들어선 그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옷을 갈아입고 안쪽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야… 대개는 커튼 막으로 분리만 시켜 놓는데, 여기는 확실하게 개별 방으로 나뉘어져 있네요.”
“아무래도 이 편이 좀 더 편안하니까요. 그리고…….”
“그리고?”
덴버정이 되묻자, 직원은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서로 시끄러우실 수가 있거든요.”
“아… 안마받다 나오는 비명 때문에요?”
“그렇죠. 특히 요쪽, 원장님이 직접 담당하시는 방들은 방음판을 하나씩 더 붙여 놨어요.”
“허어, 원장님이 지압을 좀 세게 하시나 보네요?”
“그게 손님마다 다르긴 한데…….”
“잘됐네요. 전 강도 높은 안마를 좋아하거든요! 어차피 기왕 받는 거, 확실하고 세게! 하하하.”
가볍게 인터뷰를 하듯 이야기를 나누며 복도를 걸어가는 덴버정. 잠시 후 자기 입에서도 비명이 튀어나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