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195화
‘쓸데없는 고집 부리기는.’
한편, 강태한은 그런 최성현의 모습을 곁눈질로 쳐다보고는 입가에 조그마한 실소를 머금었다.
사우나에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버텨 보겠다는, 그런 최성현의 생각을 강태한이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아무리 강태한이라고 해도 사람의 생각까지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 정도는 몸 상태만 살펴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까.
달아오른 몸을 식히기 위해 혈도 내부는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고, 얼마 되지 않는 내력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혈도까지 살펴볼 필요도 없다.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는 피부와 슬슬 꽤 힘겨워하는 듯한 호흡. 단순히 이것들만 봐도, 지금 최성현이 억지로 버티고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터였다.
‘…그래도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닌가.’
당연한 말이지만, 슬슬 초조해하는 최성현과 다르게 강태한은 아직까지도 그냥 평온할 뿐이었다.
딱히 시간을 끌며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체내의 내력이 꽤 심후(深厚)해진 탓에 안쪽까지 덥히는 데에 꽤나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강태한의 상황을 최성현도 얼추 짐작했을 것이다. 그저 단순히 얼굴 표정과 자세만 평온한 것이 아니라, 몸에 맺혀 있는 땀방울도 얼마 되지 않는 상황이었으니까.
이성적으로 생각을 한다면, 여기서 포기하는 것이 맞다.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고, 애초에 목표를 달성한다고 해서 뭔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내기로 뭘 건 것도 아니고, 승부를 하자고 말을 한 것도 아니다. 그냥 평소처럼 ‘먼저 나간다’ 하고 밖으로 나가면 그만이다.
하나 그럼에도 버티고 앉아 기다린다.
어찌 보면 쓸데없고 의미 없는 짓이겠지만.
그게 최성현의 장점 중의 하나이자,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비결 중의 하나라고 강태한은 생각했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뭐라도 얻어 가는 것은 있기 마련이니까.’
당장에 지금만 보더라도, 최성현의 호흡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개선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비록 사우나에 오래 앉아 있을 뿐이었지만, 어쨌거나 거의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그의 신체가 본능적으로 활로를 찾아내고 잠재력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눈에 띌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미미하게 개선되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어찌 됐거나 조금씩이나마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비단 지금 이 순간뿐만이 아니다.
강태한에게 안마를 배울 때도 그렇고, 새롭게 기감이 트이고 차근차근 수련을 쌓아갈 때도 그랬다.
사실, 이미 최성현은 강태한을 제외한 다른 안마사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상태다.
본래는 같이 장인 코스를 담당하는 김성훈, 황태진에게 전체적으로 살짝 떨어지는 수준이었으나, 서서히 쫓아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따라잡은 것이다.
하나 그럼에도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않는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강태한의 안마 강의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사람은 최성현이고, 기감을 깨우치고 난 뒤로도 틈이 날 때마다 질문을 던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짧게 표현하자면, 이 녀석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평소 생활하는 모습은 오히려 꽤나 느슨한 편이지만, 일단 한번 목표로 삼은 것이 있다면 어지간해서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는… 나인가.’
자기보다 뛰어난 놈을 따라잡는다.
어찌 보면 굉장히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동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걸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이것저것 핑계를 대거나 합리화를 하며, 적당한 선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이다. 상대방과의 격차가 아득히 벌어져 있다면 말할 것도 없다.
하나 그럼에도 최성현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갑자기 기감(氣感)이 열리게 되고, 강태한과의 차이를 예전보다 구체적으로 알게 된 상황에서도 아득바득 뒤를 따라오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강태한에겐 꽤나 흐뭇한 일이었다.
뭔가 가르쳐 주는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하나. 실제로 재능도 있어 꼬박꼬박 성장까지 이뤄 내고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럼 오늘 정도는 양보를 할까…….’
이제 꽤 많이 힘들어 보이는 최성현의 모습.
강태한이 한참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당연히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고, 최성현은 아까보다도 많은 땀을 흘린 모습이었다.
상태를 보아하니 이젠 정말 꽤 힘든 모양.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으나, 두 눈은 계속해서 흘깃흘깃 강태한의 동태를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강태한은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넌지시 입을 열었다.
“슬슬 그만 일어날까?”
“조, 좋은 생각이야!”
강태한이 그 말을 꺼내자마자 최성현은 얼굴을 활짝 피며 말했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큰 목소리. 거기에는 마치 강태한이 말을 바꾸기라도 할까 봐 보채는 듯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그래. 밥이나 먹으러 가자.”
원래 최성현의 성격이라면 ‘난 괜찮지만 나가도 상관은 없다’라는 식으로 한 번 더 허세를 부렸을 텐데…….
뜸을 좀 너무 들였던 것일까. 곧바로 튀어나오는 반응에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넌 안 일어나냐?”
“먼저 나가… 곧바로 따라서 갈게.”
하나 그러는 와중에도 먼저 나가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계에 다다른 건 또 아닌 모양. 강태한은 미소를 지은 채 사우나실의 문을 열었다. 그 순간이었다.
“해냈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힘이 빠진 목소리.
단, 그 목소리는 최성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힘이 빠지다 못해 탈진한 듯한 그 목소리에, 강태한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버텨 냈다…….”
뒤이어 이어지는 같은 사람의 목소리.
그와 동시에 남자의 몸은 실이 끊어진 목각 인형처럼 급격히 허물어지더니, 이내 퉁, 하는 소리가 사우나 안에 울려 퍼졌다.
“…뭐야, 아는 사람이야?”
“처음 보는 사람인데…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강태한은 놀란 기색이 담겨 있는 최성현의 말에 대답하며, 쓰러진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최성현이 강태한이 일방적으로 승부욕을 불태우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무래도 이 사우나 안에서 승부를 하고 있던 사람은, 최성현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 * *
“내가 도와줄 게 있나?”
“글쎄… 별일은 아닌 것 같아.”
지친 기색이 역력하게 묻어나는 최성현의 말에, 강태한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미 지쳐 있는 최성현을 배려한 것이기도 했지만, 실제로도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가볍게 남자의 맥을 짚어 본 강태한은, 두 손을 들어 목 아래 양옆의 혈 자리를 꾹 눌러 냈다.
과도하게 들어찬 열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출구를 뚫어 주는 역할. 혈의 개통(開通)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아래로 이어진 혈 자리들을 차례대로 뚫어 준다.
견중유(肩中腧), 대저(大杼), 곡원(曲垣).
그리고… 가장 중요한 풍문(風門).
안쪽 등에 자리를 잡고 있는 풍문혈은, 그 이름과 어울리게 외부의 기운이 활발하게 들락거리는 대표적인 혈 자리다.
그렇다 보니 찬바람이 자주 들어오는 곳이기도 하고, 그 때문에 ‘감기가 들어오는 곳’이라는 별칭을 가진 곳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내부의 열기를 빼내고 식히는 데에 탁월한 효과를 지닌 혈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혈 자리에 손가락을 올리고 약간 힘을 주는 순간, 마치 샴페인 뚜껑이 터지듯 혈이 뚫리고 열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건…….’
내부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도록, 순환을 살짝 조정하고 조율하는 것뿐. 그대로 시간이 좀 흐르자, 남자의 안색이 확연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근데… 이 사람은 누구지?”
“우리 앉아 있던 도중에 들어왔잖아. 못 봤어?”
“난 있는 줄도 몰랐지…….”
강태한의 말에 최성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떠오르는 건 없다. 자기한테 집중하느라 알아차리지도 못했던 모양이다.
‘근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기시감.
하나 어디서 봤었는지 명확하게 떠오르지는 않는다. 한동안 남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최성현이었으나, 그럼에도 딱히 생각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어헉!”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났을까.
사우나 근처 평상에 누워 있던 남자는, 어느 순간 격한 목소리와 함께 흠칫 놀라듯 몸을 일으켰다.
“여기는 어딥니까……?”
“사우나 밖에 목욕탕입니다.”
남자의 말에 강태한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을 파악하듯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던 남자. 그러더니, 강태한의 얼굴을 몇 초 동안 쳐다보다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했다.
“아! 아까 사우나에서 본 분이시구나!”
“…그렇죠?”
갑자기 텐션이 확 올라간 목소리.
강태한의 조치가 너무 큰 효과를 발휘한 것일까. 방금 전에 탈진으로 쓰러졌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이야, 진짜 대단하시더라고요.”
“뭐가요?”
“사우나에 그렇게 오래 있었는데 아무렇지 않은 모습! 한숨은커녕 미동도 안하시더라고요.”
남자는 다시 생각해 봐도 대단하다는 듯, 팔짱을 끼고는 혼자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강태한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럼 선생님께서 절 구해 주신 겁니까?”
“뭐 구해 주었다기보단… 임시 조치를 좀 해 드렸죠.”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으로 귀 아래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대로라면 또 한참 동안 쑥스러운 일이 생길 듯한 느낌. 그는 일부러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근데, 어쩌다가 쓰러질 때까지 계셨던 겁니까? 딱히 체력이 안 좋으신 분도 아니고, 컨디션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남자는 꽤나 우락부락한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보기 좋게 모양이 잡혀 있는, 체계적으로 의도해서 만들어 낸 듯한 그런 근육질의 몸을 말이다.
“아, 뭐 대단한 건 아니고요…….”
한편, 그런 강태한의 말에 남자는 콧잔등을 긁으며 괜스레 다른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러곤 머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사우나에 들어갈 때 룰이 하나 있어서…….”
“룰이요?”
“예. 무조건 먼저 들어와 있던 사람들보다는 늦게 나간다는, 그런 룰이요.”
사우나는 잠깐 있다 나오면 별 효과가 없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오래 있으면 진이 빠져 버린다.
때문에 사우나를 자주 즐기는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기준이 있다. 속으로 시간을 샌다든가,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고 기다린다든가…….
남자 같은 경우는 그런 식으로 최소한의 기준을 잡아 놨던 것. 하나 상대가 나빴다. 기준이 된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태한이었으니까 말이다.
“…그것참 유동적인 기준이네요.”
“원래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말이죠. 저도 이런 일을 겪는 건 처음이네요. 하하하.”
그는 머쓱해하는 기색을 떨쳐 내려는 듯, 뒤통수를 긁적이며 털털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허리를 좌우로 움직이며 말했다.
“근데, 신기하게 정신을 잃고 난 뒤가 몸이 더 개운하네요. 사우나를 하고 나와서 그런가?”
체내에 가득 차 있던 열기를 빼내는 과정에서, 혈도에 끼어 있던 탁기들도 함께 끄집어내진 상태였다.
온몸의 혈도를 한번 싹 환기하고 내부 청소도 해 놓은 상태라고나 할까. 몸 관리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 변화를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괜찮으시다니 다행이네요.”
하나 강태한은 굳이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싱긋 미소를 지을 뿐. 그 미소에 마주 미소를 지은 남자는,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어쨌거나, 도와주셨으니 보답을 하고 싶네요.”
딱히 감사를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악수까지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강태한은 그가 내민 손을 잡으며 자기 이름을 입에 담았다.
“강태한이라고 합니다.”
“저는 덴버 정이라고 합니다.”
“…덴 씨요?”
“아뇨. 이름이 덴버고 성이 정입니다.”
순간 의아한 목소리로 되묻는 강태한의 말에, 덴버는 정정하듯이 덧붙여 말했다.
“아! 덴버 정!”
그러자 옆에서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짤막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드디어 떠올렸음에 자축하는 목소리. 다름 아닌 최성현의 목소리였다.
“절 알고 계시나 보네.”
“알죠, 헬스 왓튜버!”
최성현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덴버 정.
생활 속 건강 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해, 각종 예능 콘텐츠로 큰 반응을 끌어모았던 유명 왓튜버 중의 한 명이다. 자길 알아보는 최성현의 말에 덴버는 머쓱해하면서도 내심 으쓱거리는 반응을 보였다.
“하하, 제 구독자이신가 보네.”
“그건 아니에요. 구독은 안 했거든요.”
“아… 그러셨구나.”
괜히 없는 이야기로 거짓말을 하기 보다는 솔직하게 말하는 걸 좀 더 선호하는 최성현이다.
그 딱 잘라 말하는 듯한 대답에, 덴버는 방금 전까지 으쓱거리던 모습이 무색할 정도로 풀이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