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 안마하신다-193화 (193/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193화

‘그래도 조금은 손을 보태 볼까.’

시간이 흐르면 흘러갈수록, 최성현의 단전 안에서는 계속해서 기(氣)가 응집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분명 지금 최성현의 경지에서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 하지만 한 단계를 건너뛴 만큼, 그 형태는 여러모로 어설플 수밖에 없다.

그중에 한 가지를 예로 들자면, 기의 응집은 이뤄지고 있으나 힘이 집중될 구심점이 정해지지 않아 굉장히 불안정한 형태로 모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과정들을 직접 경험하며 거쳐 가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래도 여기서 약간의, 아주 약간의 도움만 더해 줘도 훨씬 큰 성장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강태한은 최성현에게 조심스레 걸어갔다. 기척은 일부러 감추고 걷는다. 한참 내면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약간의 자극도 크게 느껴지기 마련이고, 자칫하면 여러모로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아직 경지가 낮아 주화입마가 찾아오는 일까지는 없겠으나… 그렇다고 좋은 영향이 될 리도 만무하다. 그렇게 천천히 다가간 강태한은, 그의 어깨 위에 오른손을 올려놓았다.

뭔가 대단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아주 살짝 응축해 놓은, 최성현 체내의 단전에 고여 있는 기(氣)보다 좀 더 농도가 짙은 기단(氣團)을 혈도에 실어 단전으로 흘려보낼 뿐이다.

혈도로 들어가는 순간, 시냇물에 띄워 올린 종이배처럼 흘러가기 시작하는 기단. 그 과정을 조용히 지켜본 강태한은, 이내 가벼운 미소를 띤 채로 어깨에 올려놓았던 손을 떼어 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도 빠르게 나타났다.

기단이 단전에 도달하여 자리를 잡는 순간, 곳곳에서 두루뭉술하게 형성되고 있던 덩어리들이 그곳을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반응이 빨리도 나오는구만.”

나름 소질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는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큰 성취를 보여 준 최성현.

거기에 약간의 도움을 보태자마자 곧바로 반응을 보이는 모습에, 그를 지켜보던 강태한은 저도 모르게 흐뭇해 보이는 미소를 입가에 드리웠다.

* * *

최성현의 시간 감각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

어느 때는 한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 때는 찰나의 순간처럼 지나간다.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는지는 알 수 없다. 아니, 관심도 없다.

그저 이 내면의 가능성을 끝까지 지켜볼 뿐.

이 시도가 성공으로 끝날까, 실패로 끝날까.

그건 확실하게 말할 수 없지만, 몇 가지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번 시도가 성공하게 된다면, 그동안 막혀 있던 문을 시원하게 열어젖힐 수 있다고. 그리고 이런 기회가 매일같이 오는 것은 아니라고.

하나, 뭔가가 결여되어 있다.

이 앞의 한 걸음을 더 내딛기 위해서는 그 뭔가가 필요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이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다시 새로운 해답을 찾아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단전에 그 무언가가 흘러 들어왔다.

진흙 속에서 빛을 발하는 진주처럼, 강렬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하나의 점.

‘…이거구나.’

그리고 최성현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결여되어 있었던 부분이라고.

그와 동시에 단전 내의 기운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으며, 갑자기 나타난 기단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응축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형성된 하나의 기단.

다소 어설프기는 하지만, 이전의 덩어리들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깨끗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거기서 최성현은 그 기단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스스로도 느낄 수 있는 어떤 부유감.

원래는 기를 움직이려는 시도만으로도 바스러지고 집중도 깨져 버렸으나, 지금 이 순간, 그 기의 덩어리는 분명 단전의 안에서 둥실 떠올라 있었다.

이제 그것을 조심스레 단전의 밖으로 빼낸다.

체내를 흐르고 있는 혈도의 순환의 힘을 빌려 목적지까지 옮기고, 다시 순환시켜 다음으로 향한다.

그렇게 상체의 주요 혈자리들을 한 바퀴 순회하고, 하단전에 기단이 다시 돌아온 순간.

“후우우우우…….”

최성현은 그제야 오랫동안 감고 있던 눈을 뜨고, 풍선이 바람이 새어 나오는 듯한 가늘고 긴 숨을 한참 동안이나 내쉬었다.

‘해냈다.’

호흡을 고르고 정신을 되찾고 나니, 뒤이어 가슴이 벅찰 정도의 성취감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이어 온몸에 느껴지는 싸늘한 한기에 최성현은 자기 몸을 둘러보았다.

“뭐야, 이거?”

온몸에 맺혀 있는 땀. 그것도 단순히 땀이 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푹 젖어 있는 수준이었다.

명상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그만큼의 열도 나고 외부의 감각에도 무뎌진 상태였기에 몰랐으나, 명상을 마치고 난 지금은 ‘이걸 어떻게 모르고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온몸이 축축했다.

“시간은… 뭐야, 그렇게 오래 있었던 것도 아닌데.”

문득 든 생각에 흠칫 놀라며 시계를 쳐다보는 최성현이었으나, 그는 이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시계의 시침이 가리키는 시간은 아홉 시.

퇴근하기 전에 잠깐 앉았을 때가 여덟 시 언저리의 일이었으니까, 기껏해야 한 시간가량 정도가 흐른 셈이다. 최성현은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그럼, 슬슬 퇴근이나 해 볼…….”

“퇴근은 무슨 놈의 퇴근이냐.”

“으아악!”

아무런 기척도 없다가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거의 경기를 일으키듯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웃음기 어린 표정을 하고 있는 강태한이 서 있었다.

“뭐야, 임마!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그랬으면 네 명상도 거기서 끝이었겠지.”

“그건… 그런가?”

강태한의 말에 최성현은 뭐라 반박을 하려다, 이내 말을 삼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누가 말이라도 걸었다면 집중력이 흐트러졌을 테니까.

“혹시 다 보고 있었어?”

“마지막쯤부터는 보고 있었지.”

그렇다면, 그가 성과를 거두는 순간도 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저도 모르게 기대감이 표정으로 나오는 최성현. 그 모습에, 강태한은 피식 웃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번 주 가인 씨는 네가 담당해도 되겠다.”

“오케이!”

최성현은 스스로를 자축하듯 한 차례 크게 손뼉을 치고는, 힘껏 쥔 주먹을 머리 높이로 치켜세웠다. 그만큼 열심히 해서 목표를 달성한 덕분일까, 그의 얼굴에는 짙은 만족감이 나타나 있었다.

아니, 단순히 목표를 달성한 것 때문만은 아니다.

내공에 있어 새로운 성취를 이뤄 냈다는 것.

그리고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존재에게 그 성취를 인정받았다는 것.

비록 본인은 아직 의식을 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무림인이라면 당연히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 욕구들이 충족됨으로써, 그의 성취감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하… 오늘은 기분 좋게 퇴근할 수 있겠구만.”

그 성취감에 흠뻑 젖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최성현. 그는 자기 목을 주무르며 느긋한 발걸음으로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려고 했다.

“그러니까, 퇴근하면 안 된다니까?”

그런 그의 발걸음을 막는 강태한의 목소리.

어딘가 실소를 머금은 듯한 그 목소리에, 최성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 섞인 말투로 되물었다.

“아홉 시가 넘었는데 왜 퇴근하면 안 된다는 거야? 갑자기 야근이라도 시키고 싶어진 거야?”

“그야 저녁 아홉 시면 퇴근해도 뭐라 안 하지. 하지만 지금은 아침 아홉 시라고, 이 자식아.”

“…뭐?”

순간 벙찐 반응을 보이는 최성현.

그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주머니에 넣어 놓은 스마트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한참 동안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보고 있던 그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목소리로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여기에 열두 시간 넘게 있었다고?”

“그런 거지.”

명상을 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는 일. 무협지에서는 클리셰나 마찬가지인 일이지만, 최성현에게는 낯설기 짝이 없는 경험이다.

그는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이마에 손을 얹더니, 이내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장님, 죄송한데 저 몸 좀 씻고 와도 됩니까.”

밤새 명상에 빠져 있었으니 당연히 씻지도 못했다.

첫 예약 손님이 오기까지 그렇게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땀 냄새가 나는 모습으로 손님을 받을 수도 없는 일. 그런 최성현의 말에 강태한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나가는 김에 밥도 좀 먹고 오고.”

“밥은…….”

꼬르르륵!

최성현이 괜찮다고 대답하려는 순간, 뱃속에서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때문일까. 방금 전까지 인지도 못 하고 있었던 엄청난 허기가, 그의 뱃속에 물밀듯이 찾아왔다.

하룻밤 내내 정신력을 소모하며 땀을 흘려 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최성현은 자기도 모르게 배를 움켜쥐었다가,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밥도 좀 먹고 올게…….”

“좀 늦어도 되니까, 든든한 걸로 먹어.”

“고맙다, 태한아…….”

이미 경험을 해 보았기에 그 허기를 이해하고도 남는 강태한이다. 그 인자한 목소리에, 최성현은 진심이 담긴 감사를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 * *

한편,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아 올리고 있는 것은 비단 천마안마뿐만이 아니었다.

“오, 마이 갓! 이거 진짜 환상적인데!”

“트레이닝의 피로가 싹 녹아내리는구만!”

“우리 팀 관리사한테는 미안하지만, 여기에 삼십 분 앉아 있다가 일어나는 편이 좀 더 컨디션이 개운해지는 것 같은데?”

에버튼FC 강주완 선수의 갑작스러운 인터뷰 이후, 안마 의자 ‘더 마이스터’의 존재는 각국의 스포츠 업계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처음부터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어느 정도 화제가 된 수준일 뿐이었고, ‘한번 써 보기나 할까’ 정도의 관심을 일으킨 정도에 불과했다.

하나 직접 구입하여 사용해 본 팀들의 숫자가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하고, 팀에 하나만 있던 안마 의자가 세 개, 다섯 개로 늘어나고…….

더 나아가 팀의 선수들의 경기 컨디션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객관적인 성과들까지 나타나기 시작하자 눈에 띌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뭔가 특별한 시설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사용법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냥 제품을 사서 전기만 연결하고, 간단한 조작만 하면 되는 간단한 구조.

단지 그것만으로 수준급의 안마와 컨디션 케어를 받을 수 있다는 소문에, ‘더 마이스터’는 그야말로 ‘경쟁’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제품에는 한계가 있는 법. 아무리 ‘더 마이스터’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들의 기대에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때, 좀 소용이 있나?”

걱정이 물씬 느껴지는 누군가의 목소리.

그 말에,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실망한 기색을 감추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확실히 뭔가 다른 느낌이 있는데… 그렇다고 눈에 띄는 효과가 있는 건 아니네요.”

남자는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 말을 증명하듯, 말을 하는 동안에도 그의 손발은 계속해서 떨리고 있었다. 그것도 격하게 말이다.

“미안합니다, 코치님.”

“캘리버, 그게 왜 자네가 사과할 일이야.”

“…그냥요.”

코치의 말에 남자, 캘리버 스미스는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것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아 꽤나 어설픈 모양새였다.

원래부터 캘리버의 몸이 이렇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도 온몸에 남아 있는, 앉아 있는 안마 의자가 조금 좁게 느껴질 정도의 근육만 봐도 그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직업은 프로 미식축구 선수.

공을 던지는 쿼터백이면서 여차하면 그대로 달릴 수도 있는, 러닝 쿼터백으로서 수많은 경기에서 활약을 펼치며 매우 높은 인지도를 쌓아 올린 선수다.

천만 단위의 달러를 연봉으로 받고, 그에 어울리는 퍼포먼스와 활약을 보여 주며 수많은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끌어안은, 그야말로 NFL의 스타.

하지만 지금은… 그냥 온몸을 저는 환자일 뿐이다.

몸이 마비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그 정도 수준의 증상. 마지막에 출전했던 슈퍼볼 경기에서 뇌진탕으로 의식을 잃은 이후, 줄곧 이런 상황이었다.

“그래도 시즌이 끝난 상태라 다행이네요.”

“…용케 그런 말이 나오네.”

“팬들한테는 비밀로 할 수 있잖아요.”

코치의 말에 캘리버는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농담으로 한 말 같았지만, 코치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다음 시즌이 열리는 것은 9월. 하나 그때까지도, 그의 상태가 호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으니까 말이다.

‘…나도 미식축구 코치이기는 하지만.’

이 미식축구라는 스포츠는 선수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스포츠다. 어딘가 부상을 입거나 부러지는 것 정도는 예삿일이며, 과격한 충돌로 인한 뇌 손상은 그야말로 직업병이라 불러도 좋은 수준이다.

설령 현역 시절 동안 부상 한 번 겪지 않은 선수라 해도, 나중에 후유증으로 고생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이쪽 업계인 것이다.

그나마 신체적인 부상은 고치면 그만이다.

하나 신경계나 뇌 자체에 생기는 문제들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냥 진통제 정도를 처방해 주는 것이 고작이다.

그의 앞에 있는 선수, 캘리버 또한 마찬가지.

단순히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서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뭔가 취해 줄 수 있는 조치는 없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냥 진통제나 갖다주며 스스로 회복되기를 기도하고, 매일 몸 상태를 체크하는 것. 그게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전부였다.

‘…후우.’

그런 자신의 무력함에, 코치는 천장을 쳐다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