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192화
[천마안마 여기 미쳤네…….]
[뭔 놈의 안마를 거의 이십만 원가량을 주고, 그것도 두 달 기다려서 받나 싶었는데, 오늘 받고 나오자마자 바로 명함 챙기고 다음 예약 잡음.]
[거기 많이 유명하죠. 페르모 가이드에서도 강력 추천 할 정도인데, 두말할 필요가 있나 ㅎㅎ]
[원래 SNS 리뷰 같은 거 잘 안 믿는데, 여기는 진짜 중의 진짜배기임. 저도 꾸준히 다니는 중.]
[야근이 좀 잦아서 안마 자주 받으러 다니는데, 천마안마가 진짜 여태 동안 받아 본 곳 중에 최고인 듯. 유일한 단점은 예약 잡기가 빡세다는 것뿐. ㅜㅜㅜㅜㅜ 요즘은 전화 연결도 힘든 수준이더라고요.]
“천마안마? 여기는 뭐 하는 곳이길래 인스타에서 이렇게나 자주 언급이 되나?”
“거기? 여의도 근처에 있는 안마 숍이라는데, 몇 달 전부터 자주 보이더니 점점 늘어나더라. 듣자 하니 유명 연예인들도 자주 찾아오는 모양이더라고.”
“와, ‘더 마이스터’ 설계자가 직접 안마를 해 주는 곳이 있다고? 안마 의자의 성능도 그렇게 끝내주는데, 직접 받으면 얼마나 시원한 거냐?”
“설계자는 아니고 기술 고문으로 참가하신 건데… 끝내주기는 하지. 안마 의자로 받는 버전이랑은 비교도 안 되는 수준으로.”
“그걸 왜 지금 말해 줘? 지금 바로 예약부터 건다.”
천마안마가 개업을 하고 몇 달의 시간이 지난 지금.
처음부터 꽤 많은 숫자의 단골을 확보해 둔 채 시작을 했고, 그때도 적지 않은 숫자의 손님들이 찾아왔었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말 그대로 천객만래(千客萬來)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유명해져 있었다.
원래 입소문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효과가 훨씬 더 커지는 법. 한 명이 두 명에게 말하면 두 명이 네 명에게 말하고, 네 명은 여덟 명에게 말하고… 나중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마련이다.
거기에다 운동선수에서부터 연예인까지, 온갖 유명인들의 인증 숏과 방문 후기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지금에 와선 전국에서 손님들이 찾아오는 수준.
아니, 전국뿐이겠는가.
널리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페르모 가이드에 이름을 싣고 난 이후, 손님들이 찾아오는 범위는 비단 국내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전 세계로 넓혀진 상태였다.
“으으으음…….”
한편, 천마안마의 로비.
아직 가게 문을 열지 않아 한적한 그곳에서, 한 남자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침음을 흘리고 있었다. 마치 머릿속의 고뇌가 그대로 새어 나오는 듯한 신음 소리였다.
“그래서 실장님, 어떻게 하실 거예요?”
그렇게 있었던 시간이 벌써 한참이다.
옆에 같이 서 있던 직원이 넌지시 물어보자, 오랫동안 고뇌에 빠져 있던 남자, 황 실장은 마침내 앞을 가리키고는 힘겹게 쥐어짜 내듯이 입을 열었다.
“…그래, 그냥 때자.”
“역시 그게 낫죠?”
그가 가리킨 곳은 로비 소파 뒤쪽의 벽면.
그곳에는 수십, 아니 어쩌면 백 개도 가뿐히 넘어갈 것 같은 양의 액자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그 액자에 담겨 있는 것들은, 다름이 아니라 그동안 천마안마에 찾아왔던 유명 인사들의 사인이었다.
개업 초기에 받은 조찬혁 씨의 사인이라든가, 국민MC 이한건 씨의 사인이라든가…….
그동안 찾아온 연예인들의 사인은 물론이며, 특히 프로야구 선수들이 자주 찾아오는 만큼, 야구 선수들의 사인은 거의 컬렉션 수준으로 갖춰져 있었다.
그렇기에 황 실장이 그토록 힘겨워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들은 하나같이 전부 다 황 실장이 따로 부탁해 가며 모아 온 것이었으니까.
다만 과유불급이라고 했었던가.
초반에는 인테리어용으로도 꽤 적절하고, 가게 홍보에도 도움이 되었지만… 백여 개에 달하는 지금에 와선 오히려 가게의 미관을 해치는 요소에 가까웠다.
물론 지금도 로비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의 기대감을 끌어올린다든가, 나름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는 있겠으나, 그보다는 어딘가 난잡하면서도 어지러운 분위기가 더욱 컸다.
뭔가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는 상황.
하지만 이것 때문에 로비를 더 넓힐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예전처럼 몇 개만 남겨 놓고 빼자니, 기껏 부탁해서 받은 사인으로 사람 차별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럼, 이쪽 가장자리에서부터 땝니다?”
“…그래. 다 때라, 다 때.”
결국, 액자를 땐다면 전부 다 때는 것이 옳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망설이던 황 실장은, 이내 남은 미련을 떨쳐 내듯 손을 휘휘 저으며 일부러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야! 그래도 소중히 다뤄야 해!”
“아, 당연하죠. 저도 내심 아까워하고 있거든요?”
하나 그렇다고 어디에다 처분할 생각은 없다.
그저… 어딘가 창고에다 고이 옮겨 놓을 생각뿐.
그래서 그런 것일까, 직원이 액자를 하나씩 때 내어 바닥에 내려놓을 때마다 그의 두 눈도 액자를 따라서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 * *
“좋은 아침입니다, 실장님.”
“…아, 태한 씨 왔구나.”
액자를 떼어 내는 과정이 한참 진행되고 있을 무렵.
어느새 다가온 강태한이 인사를 건네자, 황 실장은 조금 힘이 빠진 목소리로 답했다. 강태한은 조금 의아해하는 듯하더니, 이내 로비 쪽을 슬쩍 쳐다보고는 납득했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결국 떼기로 결심하신 거예요?”
“응… 그렇지 뭐.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일이면, 빨리 하는 편이 좋잖아.”
쇠뿔도 단 김에 빼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원래 한 번 생각이 나고, 한 번 그럴 마음이 들었을 때 바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미련이 남아 있다면 더더욱. 황 실장은 짙은 아쉬움이 맺힌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아쉬우시면 내버려 두시지.”
“아니야. 이게 맞아.”
가게 로비에 사인을 걸어 두기 시작한 건 어디까지나 황 실장의 제안이었고, 여기엔 황 실장의 취미 욕심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 그게 오히려 가게에 방해가 된다면야…….
곧바로 쳐 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고, 황 실장은 적어도 이런 부분에선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건 그렇고, 잠깐 보여 드릴 게 있는데요.”
“뭔데? 아… 혹시 어제 카톡했었던 거?”
“맞아요.”
강태한은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그러고 전원 버튼을 누르자, 꺼져 있던 화면에 불이 들어오며 어느 애플리케이션 화면이 나왔다.
“저희 쪽에서 데이터만 옮겨 넣으면, 곧바로 사용해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며칠 전, 장태현 회장과 만나 예약 애플리케이션의 견본을 확인했었을 때, 사실상 거의 완성이 되어 마무리 단계에 도달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의뢰인의 확인 절차까지 거치고 나니, 곧바로 마무리를 짓고 완성본이 나오게 된 것.
“오……! 생각보다 본격적인데?”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잘 나왔다고.”
“한번 살펴봐도 되나?”
“그럼요.”
강태한은 흔쾌히 앞으로 스마트폰을 내밀었고, 황 실장은 스마트폰을 건네받자마자 애플리케이션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얼굴에는 감탄의 기색만이 짙어졌다.
“이야… 진짜 잘 나왔네.”
단순하면서도, 기능적이다.
어찌 보면 서로 양립될 수 없는 두 가지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 디자인이었고, 그렇기에 지극히 실용적인 구조라 할 수 있었다.
뭔가… 대기업의 기술력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솔직히 말해 어지간한 소규모 업체에 맡겨서는 나올 수 없는 퀼리티라 할 수 있었다.
“혹시 지금 다운받을 수도 있나?”
“그쪽 팀에서 ‘연락을 주면 어플 마켓 등록까지 해 드리겠다’라고 했어요. 일정만 말해 달라 하더라고요.”
“그런 부분까지 서비스가 확실하네…….”
황 실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이내 결론을 내린 듯 한차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오늘부터 바로 진행하자고.”
“곧바로요?”
“최대한 빨리하는 게 좋지.”
가게에 들어오는 문의는 지금도 끊이질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과장 하나 없이, 말 그대로 쉴 새 없이 수화기가 계속 울리고 있는 지경.
물론 그동안 직원들도 이런 상황에 나름 익숙해진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이걸 계속해서 방치해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불편한 건 직원들뿐만 아니라, 손님들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곧바로 전화 문의를 없앨 수는 없으니까, 찾아오는 손님들한테 안내하면서 천천히 바꿔 가야지. 그러려면 아무래도 하루라도 빨리 하는 편이 좋을 테고.”
확실히 맞는 말이다. 사실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도 금방 내릴 수 있는 당연한 결론이다.
하나 단순히 생각만 하거나 말만 꺼내 놓는 게 아니라 실제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결단력도, 그만한 능력도 필요하니까.
그리고 황 실장은 나름 그 두 가지 모두를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곧바로 로비의 컴퓨터로 걸어가 필요한 자료들을 확인하는 황 실장의 모습에,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제가 실장님 하나는 잘 데려왔다니까요.”
“하하하. 내가 할 말을 태한 씨가 하네. 솔직히 나만큼 사장 잘 둔 실장도 없을 텐데.”
황 실장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담담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났을까.
“…노트북을 어디다 뒀더라?”
“휴게실에는 없었는데요.”
“그럼 사무실인가…….”
찾는 자료가 없었던 것일까, 황 실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강태한은 살짝 거리를 두고 말없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사무실의 문을 여는 순간.
“…뭐야? 성현이, 너 언제 왔었어?”
황 실장은 이미 안에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그 누군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최성현. 하나 황 실장이 아는 척을 하며 안으로 발을 내미려는 순간…….
“황 실장님, 죄송한데…….”
어느새 나타난 강태한의 손이 그의 앞을 막았다.
“노트북은 제가 갖다드릴 테니, 사무실에는 조금 이따가 들어와 주실 수 있나요?”
평소와 다름없는 강태한의 표정.
하나 왜일까, 그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다른 느낌이 섞여 있었다. 사뭇 진지하면서도 약간 놀란 듯한… 그러면서도 내심 기뻐하는 목소리.
“…뭐 그래도 상관은 없지. 근데, 뭔 일인데?”
황 실장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강태한은 미소를 머금은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이 나름 중요한 타이밍이거든요.”
눈을 감은 채로 소파에 앉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는 최성현의 모습.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저 그뿐이었으나, 강태한의 눈에는 잘 보이고 있었다.
다음 경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그리고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있는 그의 모습을.
* * *
황 실장은 최성현에게 ‘언제 왔냐’라고 물었으나.
그건 조금 적절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그보다는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냐’라는 질문이 더 어울렸다.
그는 전날부터 계속 이곳에 있었으니까.
‘…뭔가.’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냥 운동하러 가기 전에 잠깐 여기서 수련이나 좀 해 볼까, 그런 생각을 떠올렸을 뿐이다. 어쨌거나 여기는 그에게 꽤 익숙한 수련 장소였으니까.
그런 가벼운 생각이었는데.
‘뭔가… 느낌이 와.’
평소처럼 자세를 잡고 내면에 빠져들었던 그는, 그 상태로 밤을 지새우며 지금까지 이곳에 앉아 있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깊이 빠져들었을 뿐이었다.
평소대로였다면, 진즉에 기를 끌어모으고 움직이려 시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흩어지는 기의 여파를 느끼며,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섰으리라.
하나 지금은 달랐다.
무엇이 계기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나 최성현은 문득 어떤 발상을 떠올렸고, 이를 위해 평소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 보기로 했다.
목적은 체내의 기를 다뤄 내는 것이지만.
그것을 다뤄 내려고 하지 않는다.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최성현의 의지가 개입된 부분은, 그저 조용히 반복되고 있는 호흡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고여 있던 기운에 서서히 변화가 생겼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침전물이 가라앉은 흙탕물.
하나 차이가 있다면 오히려 맑은 기운일수록 단전 안쪽으로 향하고, 탁한 기운일수록 체내로 퍼져 나가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한 번 더 가만히 지켜본다.
탁기가 체내에 퍼져 나가는 것이 느껴지지만, 그것조차도 방관한다. 지금의 능력으로는 그것까지 해결할 수 없다. 그저 목표에만 집중할 뿐.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윽고, 단전 안쪽에 모인 기운은 이내 덩어리를 이루기 시작했다. 굉장히 조잡한 느낌이기는 했으나, 어쨌거나 그것들은 분명 덩어리를 이뤄 내고 있었다.
“확실히 축기(畜氣)의 과정을 거치면, 아무래도 다루기 쉬워지기는 하지.”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강태한은, 나지막하게 한마디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약간의 감탄이 섞여 있는 목소리였다.
축기라는 것은, 단어 그대로 체내의 기(氣)를 모아 특정한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 단순하게는 체내의 기를 응축시키는 것부터 강기(罡氣)를 만들어 내는 것까지 그 범주에 속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공기보단 물을 퍼내는 것이 쉽고, 물보다는 돌맹이를 집는 것이 쉽다. 형태가 분명할수록 조작은 단순해진다.
체내에 흐르고 있는 기(氣) 또한 마찬가지.
본인이 감당할 수만 있다면야, 그 농도가 짙으면 짙을수록 내공을 운용하고 다루기도 간편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축기의 경지까지 말한 건 아니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강태한이 말했던 목표, 그다음에 있는 보다 높은 경지다. 비록 그 차이가 미미한 수준에 불과한 것이긴 하나,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건… 어찌 보면 예습이라고 할 수 있나.’
주어진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한 단계 높은 경지의 이치를 끌어오는 최성현의 모습. 그 모습에, 강태한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