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188화
한편, 대청그룹 계열사인 바디케어 본사의 회의실.
이곳에서는 현재, 개발 팀 인원들의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평소보다 진지해 보이는 느낌.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회의 때와는 다르게, 다들 표정부터가 다른 느낌이다. 그 때문일까,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개발 팀장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허허, 중요한 프로젝트라 그런가,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느낌이네?”
“…그럴 수밖에 없죠, 뭐.”
팀장의 말에 맞은편의 직원이 머쓱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사실상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니까요. 다른 것도 아니고, 더 마이스터의 후속 개발이니까.”
요 근래, 바디케어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 내고 있는 중이었다. 각종 기업 지표들은 거의 두 배가량 솟아오르고, 그에 따라 회사의 주가 역시 그에 어울리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으니까.
몇 분기 전만 해도 미래가 불투명할 정도로 암울했던 회사 분위기와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났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극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기적 같은 변화의 중심에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가장 최근에 개발된 안마 의자, 더 마이스터의 영향력이었다.
이제는 신제품이라 말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생산량도 첫 출시 때보다 두 배가량 끌어올려진 상태였지만…….
어찌된 것이 아직까지도 불티나게 팔려 나가는 게, 여전히 재고가 부족할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국내시장의 품귀 현상은 어느 정도 진정되었지만, 갑작스레 해외 곳곳에서 오더가 들어오고 새로운 수출 시장이 열리게 된 탓이었다.
원래는 수출을 한다고 하더라도 동아시아의 일부 국가에만 시장이 한정된, 그런 제품이었는데…….
갑자기 인도라는 거대 시장에서 수요가 폭발하더니, 대량 수출을 하다못해 도저히 물량을 감당할 수 없어 현지에도 공장이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다 강주완 선수의 인터뷰라는 호재까지.
그 영향으로 스포츠 클럽이나 리그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유럽, 북미 쪽에서도 큼직한 오더들이 들어오면서, 어느 부서라 할 것 없이 회사 직원들 모두가 쉴 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과장 하나 없이, 말 그대로 거의 쓰러져 가고 있던 회사를 혼자서 일으켜 세운 제품이라고 할까.
그리고 현재 이 팀에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는, 다름이 아니라 그 ‘더 마이스터’의 후속 제품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많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고, 바디케어 회사 전체의, 아니 대청그룹의 기대가 쏠려 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긴 하지…….”
팀장도 그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회사 생활을 오랫동안 해 왔고, 더 마이스터의 개발도 총괄했었던 그였지만, 이 정도로 많은 기대와 중압감을 느껴 본 적은 없었으니까.
‘이번에는 처음부터 강 원장님의 협조를 받지만… 그것만으로 제품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니까.’
더 마이스터가 이렇게까지 성공을 거둔 비결은, 기존 제품들보다 훨씬 뛰어난 안마 기술 덕분이다.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을 때, 고문 역할로 참가한 강태한의 도움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었던 부분.
그리고 강태한은 이번 개발에도 고문으로서 참가할 예정이었고, 지난번 회의에 참가하여 상당히 핵심적인 기술들과 개선 방안들을 제시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개선 방안이라 할지라도, 그걸 기술로 구현시킬 수 없다면 말짱 꽝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잠시 조용히 입을 닫고 있던 개발 팀장, 권태수는 방금 생각났다는 듯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근데 지난번에 나왔던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나?”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기기랑 연동되는 휴대용 센서 말이야. 그 왜, 강 선생님 찾아오셨을 때 나왔던 이야기 있잖아.”
안마 의자 기능의 척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전문 안마사의 지압 솜씨를 기계로 얼마나 구체적이고 효과적으로 구현해 낼 수 있는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안마 의자를 이용하는 사용자의 몸 구조와 현재 상태를 얼마나 세밀하게 파악해 낼 수 있느냐의 문제다.
안마라는 것이 원래 애꿎은 곳을 누르면 그냥 물리적으로 아프기만 할 뿐 아무런 효과가 없지 않은가.
안마 의자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리 뛰어난 안마 기술을 재현한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엄한 곳만 지압한다면 그냥 참을 만한 고문 기구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의 몸은 키랑 몸무게에서부터 세밀하게는 근육의 양과 구조, 혈 자리의 위치까지 전부 다 다를 수밖에 없다.
항상 똑같은 곳만 누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에 맞춰 지압의 위치, 강도 등을 매번 새롭게 파악하고 갱신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은 센서를 통해 사용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안마 의자의 가장 핵심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
물론, 기존 제품 더 마이스터는 이미 업계 최고 수준의 센서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안마 만족도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지난 회의 때, 강 선생님이 말한 개선점이나 기술들을 구현시키기 위해서는 한발 더 나아간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거기서 구체적으로 언급된 안건이, 휴대용 센서.
안마 의자를 이용하는 동안 수집하는 데이터에는 한계가 있으니, 평소 일상생활 중의 데이터를 얻을 수 있도록 휴대용 단말기를 도입해 보자는 이야기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단순히 겉의 물리적인 구조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 자세하고 세밀한 분석이 가능해질 테니까.
그리고 그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강태한의 노하우와 안마 기술을, 현재의 더 마이스터보다 훨씬 더 뛰어나게 구현할 수 있게 될 터였다.
“으음… 일단 알아보기는 했는데 말이죠.”
“좀 힘들 것 같습니다. 만들 수야 있겠지만, 그때 말한 기능들을 다 넣으면 아무래도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크게 나올 것 같아요.”
하나 발상만으로 모든 걸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직원들은 난색이 담긴 목소리로 권 팀장의 말에 답했다.
“흠. 대충 어느 정도인데?”
“외부 업체랑 협력을 한다면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대충 이 정도 크기는 나올 겁니다.”
직원은 양손의 엄지와 검지로 직사각형을 만들며 말했다. 대략 작은 스마트폰 정도 되는 크기. 원래 만보기 정도 크기를 생각했었기에, 권 팀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침음을 삼켰다.
“그 정도면 평소에 달고 다니기는 힘들겠네.”
“그렇죠. 뭐 건강 매니아분들이시라면 그러실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반대로 말하자면,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면 굳이 챙기고 다닐 만한 크기는 아니라는 뜻이다. 만보기조차도 며칠 챙기고 다니다가 두고 다니기 십상인데, 이 정도 크기라면 보나 마나 한 수준 아니겠는가.
“…그 뭐야, 에이플 워치처럼 만드는 건 힘든가?”
“하하. 팀장님, 에이플 정도의 기술력이 있었으면 저희가 고민도 안 했겠죠.”
“하긴, 그것도 그렇네.”
웃음기 어린 직원의 대답에 권 팀장도 피식 웃음을 흘렸다. 딱히 회사의 기술력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에이플. 정확한 이름은 에이플러스.
미국의 대표적인 IT 기업 중의 하나이며, 특히나 스마트폰인 에이폰으로 널리 알려진, 비교할 만한 기업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의 대기업이다.
그런 기업의 제품과 기술력을 비교하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것 아니겠는가. 권 팀장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턱을 괴며 말했다.
“일단 다른 업체들이랑 좀 더 이야기라도 해 봐. 그냥 못 한다고 덮어 버리기엔 좀 아쉽잖아?”
“그렇기는 하죠.”
“그냥 에이플이랑 협업을 하면 참 좋을 텐데요.”
“오오, 그것 참 좋은 생각인데?”
장난기 섞인 목소리에 권 팀장이 손가락까지 튕기며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의 농담 섞인 말에 맞장구를 치는 것이었다.
그때쯤이었다.
“저, 팀장님, 회의 중에 죄송합니다만…….”
갑자기 스윽, 열리는 회의실 문.
문틈 사이로 빼꼼 머리를 내민 직원이, 권 팀장을 쳐다보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전화를 좀 받아 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문틈 사이로 빼꼼히 머리를 내민 직원이 권 팀장을 쳐다보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참 회의를 하고 있는 사람을 굳이 호출을 하는 건 그리 상식적이지 못한 일이다.
그렇다는 건, 둘 중의 하나인 것이다. 저 직원이 다소 상식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그만큼 중요한 일이거나.
“무슨 일인데?”
일단은 후자 쪽일 것이라 생각한 권 팀장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진 말에, 권 팀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영업 팀을 거쳐서 이쪽으로 넘어온 전화인데… 에이플러스 개발 팀에서 걸려 왔다고 합니다.”
“…에이플러스?”
많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그 이름. 멀리 갈 것도 없이, 방금 회의에서도 언급되었던 이름이다.
하나 그곳에서 전화가 왔다는 말은 참으로 낯설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권 팀장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내가 아는 그 에이플러스가 맞나?”
“아마 맞지 않을까요?”
“…거기서 왜 전화를 하는데?”
“저도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겠는데… 신제품 개발이랑 관련해서 협업을 제안해도 되겠냐, 뭐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
그의 대답에, 권 팀장은 이미 갸웃거렸던 고개를 다시 반대편으로 기울였다. 어찌 된 것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다.
* * *
“아휴, 쏟아지네, 쏟아져.”
천마안마의 휴게실.
방금 막 뒷문으로 들어온 안마사가, 머리를 털어 내며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비바람이 꽤 강한지 우산이 있음에도 곳곳이 꽤 젖어 있는 모습이었다.
“밖에 비가 많이 오나 봐?”
“예? 아, 네. 이게 위에서만 내리는 게 아니라, 바람을 타고 옆에서도 들어와서요.”
“이런 날 출근하느라 고생했어. 찝찝하면 위에 찜질방이라도 먼저 다녀와. 아직 시간 좀 있으니까.”
“그래도 될까요?”
“안 될 게 뭐 있나.”
“아유, 그럼 좀 다녀오겠습니다.”
남자의 말에 황 실장이 싱긋 웃으며 답하자, 그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짐만 내려놓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황 실장은 그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다가, 문득 의아하다는 듯이 앞을 보며 말했다.
“…태한 씨도 아까 밖에 나갔다 오지 않았나?”
“그랬죠?”
“근데 태한 씨는 왜 이렇게 멀쩡해?”
황 실장의 말에 강태한은 보고 있던 신문을 접으며 고개를 들었다. 어딘가 젖어 있기는커녕 건조한 느낌마저 드는 모습.
그가 알기로는 여기서 꽤 거리가 있는 은행에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방금 전 쫄딱 젖은 남자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저는 우산 쓰고 다녀왔잖아요.”
“방금 걔도 우산은 있었는데?”
“…비싼 우산이라 성능이 좋았나?”
호신강기를 응용하면 빗물마저도 막아 낼 수 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런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며, 자기가 생각해도 어색한 말로 적당히 둘러댔다.
“거참, 신기하네.”
“그러게요.”
다만 황 실장도 그냥 신기해서 물어봤을 뿐, 굳이 캐물을 이유는 없었다. 적당히 넘어가는 반응에, 강태한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일은 잘 되어 가나?”
“일이요?”
“안마 의자 말이야. 저번에 회의도 갔다 왔다면서.”
“아아, 그거요?”
강태한은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듯 턱 부근에 손을 올리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야 뭐 기술 고문일 뿐이니까 잘은 모르겠는데, 잘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에요.”
“그래?”
“어제도 연락이 왔었는데, 어디라더라… 에이플러스? 거기랑 협업이 진행되고 있다던가, 그랬었어요.”
“…에이플러스?”
황 실장은 앞에 내려놓은 자신의 스마트폰, 에이폰을 자기도 모르게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뒤에 박혀 있는 회사 로고를 가리키며 확인하듯 물었다.
“이 회사?”
“다른 회사가 또 있는 게 아니면, 맞지 않을까요?”
“…안마 의자 개발에 왜 에이플이랑 협업을 해?”
“그것까진 저도 모르죠?”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황 실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으나, 모르는 건 강태한도 마찬가지였기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황 실장은 순간 뭔가가 떠오른 듯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더니, 중얼거리듯이 입을 열었다.
“…혹시, 방금 엄청난 고급 정보를 들은 건가?”
국내 기업이 에이플과 협업 예정에 있다는 정보!
대청그룹 관련 주식들은 이미 올라갈 대로 올라가 슬슬 조정에 들어가고 있었지만, 이런 호재가 있다면야 이야기는 또 달라지는 것이다.
황 실장이 한참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무렵.
“뭐… 둘이 지금 중요한 이야기 중인가?”
누군가가 황 실장의 옆자리에 앉으며 넌지시 물었다. 다름 아닌 최성현. 뭔가 볼일이 있어 보이는 모습에, 강태한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왜?”
“너한테 부탁을 좀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아니나 다를까, 최성현은 곧바로 강태한에게 용건이 있음을 밝혔다. 강태한은 편하게 자세를 고쳐 앉으며 그에게 되물었다.
“뭔데?”
“그… 다른 게 아니고.”
크흠, 흠.
괜스레 헛기침을 내뱉는 최성현. 뭔가 쉽게 말을 꺼내기 어려운지 그 뒤로도 한동안 뜸을 들이더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음 주에 가인 씨가 한 번 더 찾아오기로 되어 있다고 들었거든.”
“정가인 씨? 그렇지.”
강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에 찾아왔었던 양궁 선수.
그 후유증은 이미 거의 사라졌으나, 그래도 재활 및 컨디션 관리를 위해 한 번 더 찾아오라고 했었다.
본인의 말로는 이미 부상 이전의 실력이 나온다고 하는데… 강태한이 보기엔 아직 회복되어야 할 부분이 조금 더 남아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왜?”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혹시라도 내가 그 정도 실력이 된다면 말이야.”
강태한이 되묻자, 최성현은 왠지 쑥스러워하는, 그러면서도 어딘가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내가 대신 가인 씨한테 안마를 해 드려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