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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87화 (187/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187화

‘잘 풀린 모양이네.’

지난번 마르케시를 통해 가게로 찾아왔던 아르힌.

잘은 모르겠으나, 인도에서 꽤 인지도가 있는 영화감독이라는 말에, 강태한은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유세아의 촬영 스케줄 이야기를 꺼내 봤었다.

그냥 유명한 사람이라니까 혹시 연줄이나 영향력이 닿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꺼내 봤던 말.

물론 강태한이 직접적인 관계자도 아닌 만큼 구체적인 이야기는 할 수 없었고, 그저 간략한 상황 설명과 함께 관계자의 명함을 건넸을 뿐이었는데…….

아무래도 뭔가 잘 맞아떨어져 해결이 된 모양.

큰 기대 없이 막연하게 부탁을 한 상황이긴 했으나, 그래도 유세아의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진심이었기에, 강태한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흐으음.”

한편,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뻐하고 있던 유세아는, 그런 강태한의 반응에 뭔가 수상한 부분이 있다는 것처럼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왜 그래요? 세아 씨.”

“태한 씨, 이번 일에 뭔가 있죠?”

“뭔가 있다니요?”

의외의 반응에 내심 감탄한 강태한이었으나, 그는 방금 전과 같이 별다른 내색이 없는 표정과 목소리로 답했다.

“태한 씨가 남들 모르게 도움을 줬다거나, 뒤에서 기여를 한 부분이 있다거나… 뭐 그런 무언가요.”

하지만 그런 강태한의 담담한 반응에도 유세아의 생각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본인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턱 부근에 손을 올린 채로 넌지시 입을 열었다.

“흐음…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데요?”

“약간 뭐랄까, 아까 촬영에 대해서 콕 집어 물어본 것도 그렇고… 약간 결과를 확인하고 싶어서 물어보는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딱히 근거라고 말할 만한 것은 없다.

다만 직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할까.

물론 평소에도 그녀에게 힘든 일이 있거나 막히는 부분이 있을 경우, 그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같이 고민을 해 주는 강태한이다. 하지만 그런 평소의 느낌과는 미묘하게 다른 뭔가가 있었다.

연인에 대한 걱정이나 위로를 한다기보단,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해 놓고 결과를 기다리는 느낌에 가깝다고 할까…….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기대한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봐 봐요. 지금 표정도 뭔가 있을 때의 표정이잖아요.”

그러면서 결정적인 증거라는 듯, 유세아는 강태한의 얼굴을 가리키면서 피식, 하는 웃음을 흘렸다.

표정 자체는 얼핏 평소와 크게 다를 게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동안 강태한의 얼굴을 매번, 유심히 관찰해 온 유세아는 그 미세한 차이를 알 수 있었다.

평소 같은 미소에 살짝 장난기가 더해져 있는 모습.

어딘가 만족스러워하는 기색까지 섞여 있는 것이, 확실히 평소랑은 뭔가 다른 느낌이다. 그런 유세아의 말에 강태한은 머쓱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 그렇다고 대단한 일을 한 것까진 아니고요.”

“이것 봐.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유세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조그맣게 손뼉을 치며 미소를 짓자, 강태한은 살짝 어깨를 으쓱였다.

자기 입으로 말하면 괜히 쑥스러운 상황만 나올 것 같아 말을 돌려서 꺼냈었던 것이지만, 굳이 비밀로 할 필요도 없었다. 딱히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타르빈 마르케시라고, 지난번에 신세를 한번 졌던 사업가가 한 분 계신데요.”

“아… 그 가게분들이랑 영국에 다녀왔을 때요?”

“맞아요.”

기억을 더듬어 말하는 유세아의 말에 강태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어쨌거나 그분이 지인 한 분이랑 같이 가게에 찾아오신 일이 있었는데, 듣자 하니 발리우드 쪽 관계자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머, 신기하네요.”

“근데 마침 세아 씨가 곤란을 겪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이야기를 한번 해 봤었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정도의 이야기다. 말을 마친 강태한은 머쓱한 기분이 들었는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관계자가 아니신 모양인데요?”

반면, 그걸 들은 유세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순한 관계자한테 이야기를 꺼내 놓은 정도로 이 정도 영향력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그녀의 반응에 강태한은 머리를 긁적이며 침음을 삼켰다.

“으음… 꽤 유명한 분이신 것 같기는 했어요.”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그게 아마… 아르힌 두르였던 것 같네요.”

“…아르힌 감독님이요?”

기억을 더듬으며 가벼운 목소리로 툭 내뱉듯이 말하는 강태한. 하지만 그 말에, 유세아는 조금 놀란 듯 벙찐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시는 분이에요?”

“아니, 당연히 직접 알고 있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요.”

솔직히 말해, 유세아는 평소 발리우드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가 그만큼의 명성을 지닌 거물인 것이다.

한국 대중들 사이에서 인지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작품성도, 대중성도 인정받은 대표작들을 통해 세계적으로도 꽤나 널리 이름이 알려져 있는 감독이다.

게다가 작은 상이기는 해도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적도 여러 차례 있으니… 잘 알지는 못하지만, 발리우드 내에서는 그야말로 손에 꼽히는 수준으로 유명한 감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와… 그럼 그 아르힌 감독님이 태한 씨한테 안마를 받으려고 한국까지 왔던 거예요?”

“예. 그렇죠.”

“그리고 태한 씨가 그 사람한테 직접, 우리 팀 촬영 스케줄이 밀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거고요.”

“정확히는, 저번에 세아 씨가 보내 줬던 명함을 그분한테 전해 줬었죠.”

강태한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걸 듣는 유세아의 표정엔 놀란 기색이 점점 뚜렷해졌다.

강태한이 뭔가 영향을 줬을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식을 넘어섰다고 할까, 너무 의외의 인물이 나왔다고 할까.

마치 시청에 볼일이 있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시장님이 직접 찾아와 문제를 직접 해결해 준 듯한 느낌이다.

“…저는 이미 태한 씨가 엄청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한동안 벙쪄 있었던 유세아.

그녀는 불현듯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강태한을 바라보며 넌지시 말했다.

“알고 보니,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일 수도 있겠네요.”

“…누가 들으면 대단한 일이라도 한 줄 알겠네요.”

“대단한 일이죠. 그래도 나름 업계에서 잔뼈 좀 굵은 스태프들이 한참 낑낑거리던 일인데, 그걸 한 번에 뚫어 낸 거잖아요. 그리고…….”

강태한이 여느 때와 같은 머쓱한 목소리로 말하자, 유세아가 그의 말을 정정하듯이 말하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고는 두 팔을 쫙 벌리더니, 강태한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제 남자 친구라서 더 좋네요.”

우후후. 유세아는 강태한의 가슴팍에다 볼을 댄 채로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수줍음과 기쁨이 한데 섞여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와줘서 그리고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태한 씨.”

그러던 와중, 그녀는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로 고개를 들어 강태한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갑작스레 그녀와 눈을 마주친 강태한은…….

“…별말씀을요.”

저도 모르게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답했다. 갑자기 쑥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하고, 품 안에 폭 들어온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탓이었다.

‘과한 참견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괜한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짓고는, 왼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쓸어 만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시선은 피하고 있는 상태였다.

* * *

“…으아아아.”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의 샌프란시스코만을 둘러싸고 있는 도심지. 이른바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이곳은, 갖가지 IT 기업들이 모여 있어 최신 기술 산업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뭔가 희망찬 느낌이 들기도 하고, 항상 쾌청한 캘리포니아 특유의 날씨가 더해지며 꿈의 직장과도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만…….

“진짜 못 해 먹겠네, 이거.”

결국은 이곳에 있는 회사도 회사에 불과하다.

늦은 저녁, 어두운 방 안에서 한참 동안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던 남자는, 의자에 등을 기대더니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팔다리를 축 늘어트렸다.

“…당이 좀 떨어졌나.”

남자는 테이블에 놓인 에너지 드링크 캔을 집어 들었다가, 가볍게 찰랑거려 보고는 구석으로 밀어 놓았다. 이미 나란히 놓여 있는 서너 개의 빈 캔들이 남자의 고뇌와 번민을 보여 주는 듯했다.

그의 이름은 켈빈 클라스너.

그리고 이곳은 스마트폰으로도 유명한 세계 최고 수준의 IT 기업, 에이플이었다.

그런 그가 현재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다름 아닌 신규 모델의 공식 애플리케이션 개발 프로젝트.

그는 그중에서도 건강 지원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좀처럼 진척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 삶의 질이 훅훅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새로운 뭔가가 필요하다고 해도 말이지…….’

솔직히 말해, 다른 건 몰라도 에이폰의 건강 지원 애플리케이션은 이미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 기존 스마트폰들과 비교해 봐도 그렇고, 다른 건강 관련 전자 제품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하나 위에서 바라는 건 신제품에 새롭게 내세울 수 있는, 기존과 다른 ‘차별점’이었다. 그게 뭔지는 그들도 모르고, 자기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팀은 굴러가야 하고, 보고서와 기획서도 계속 오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기존과 확연하게 다른 뭔가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캘빈, 아직도 여기 있었어?”

“있으면 있는 거지, 뭘 그렇게 호들갑이야?”

“호들갑 떨 만하지. 시계나 한번 봐라.”

동료 직원의 말에 캘빈은 시선을 내려 모니터 하단에 나와 있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생각한 것보다 훨씬 늦은 시간이었다.

“…그럴 만하네.”

“그래. 몰랐어?”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으면 아무래도 시간 감각이 둔해지잖아.”

캘빈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이미 퇴근을 하거나 쉬러 간 지 오래였다.

“그래서 뭐, 답은 나왔나?”

“나왔겠어?”

“아니.”

캘빈이 되묻자 남자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리에 앉아 머리를 쥐어짠다고 나올 만한 기획이었으면, 진즉에 나왔을 것이다. 그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고는, 뒤쪽의 복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차피 안 나오는 거, 가서 좀 쉬어.”

“쉬면 아이디어가 나오나?”

“나올 수도 있지. 그 뭐냐, 간 김에 어제 새로 들여왔다는 안마 의자도 체험해 보고 말이야.”

“…안마 의자?”

남자의 말에 캘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안마 의자라.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지만, 이름 자체는 굉장히 직관적이었다. 말 그대로 안마를 해 주는 의자라는 뜻이리라.

“근데 갑자기 웬 안마 의자?”

“나도 잘은 모르는데, 이번에 직원들 몇 명이 건의해서 들여온 모양이야. 유럽 축구 리그에서 한 팀이 승리 비결로 꼽았다나? 뭐 나름 유명한가 봐.”

남자는 자기도 잘은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복도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뭐, 이참에 같이 쉬러 갈까?”

“나쁘지 않지. 솔직히 관심은 좀 가네.”

마사지에 대해서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 번 방문해 본 마사지 숍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캘빈이다. 그는 선뜻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앞장서는 동료를 따라 복도를 걸어갔다.

“…생각한 것보다 미래적인 디자인이네?”

그렇게 도착한 휴게실.

널찍하게 탁 트여 있는 공간의 구석에는, 의자라기보단 뭔가의 조종석에 더 가까워 보이는 전자 제품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뭔가 생각한 것과 다른 모습.

캘빈은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천천히 다가가더니, 조심스레 의자 위에 몸을 눕혔다.

“여기에 앉는 게 맞겠지?”

“그런 것 같네. 조작은… 여기 있는 리모컨으로 하는 것 같고.”

“한번 켜 줘 봐.”

“바로? 알았어.”

캘빈의 말에 남자는 잠시 리모컨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적당한 버튼 몇 개를 눌러보았다. 그러자 웅장한 진동음과 함께 의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오! 이야, 이거 제법 본격적인데?”

“일단 마트 앞에 놀이기구보단 좋아 보이네.”

생각보다 본격적인 느낌에 신이 난 캘빈의 목소리.

하나 그 목소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근데 확실히… 어헉?!”

뭔가 말을 하려다 도중에 끊어진 캘빈.

그 순간부터, 스캔을 마친 안마 의자가 그의 몸을 고정시키고는 본격적인 안마를 시작했다.

“어거거거거……!”

허리춤에서부터 시작해 목 아래까지.

곳곳의 혈들을 누르며 차례대로 들어오는 압박!

안 그래도 피곤한 상태라 더욱 민감해서 그런지, 캘빈은 숨조차도 가쁘게 쉬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캘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걸 지켜보던 남자로서는 그저 걱정이 될 뿐.

하나 그가 리모컨을 다시 집어 들려는 순간, 캘빈은 두 눈을 부릅뜨더니 고개를 저었다.

“끄지 마, 끄지 마!”

“…괜찮은 거야?”

“괜찮은 수준이 아니라……”

…너무 좋았다.

전문 마사지 숍에서도 이 정도의 시원함은 느껴 본 적이 없었을 정도로!

물론 처음 시작할 때 자기도 모르게 놀란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뒤이어 찾아오는 이 시원한 쾌감에 비하면 그 정도 놀라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아… 이거다, 이거야……!”

한편,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시원함에 대한 감상뿐만이 아니었다.

‘이걸 에이폰이랑 연동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새롭게 떠오르는 애플리케이션의 아이디어!

지압으로 풀어진 신경에 시원한 자극이 흐르고 있던 와중 갑작스레 팍! 하고 떠오른 그 생각에, 캘빈은 저도 모르게 싱글벙글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거야, 그래, 바로 이거라고!”

“…자네, 혹시 약이라도 했나?”

한편, 그런 머릿속 생각까지 알 턱이 없었기에, 옆에 서 있던 남자는 걱정 반, 두려움 반이 섞여 있는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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