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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84화 (184/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184화

“잘 풀린 모양이네.”

한편,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고 있던 강태한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화면에는 방금 전 최성현과 나눈 카톡이 띄워져 있었다.

‘혹시나 일이 꼬일까 하는 걱정도 있긴 했는데…….’

최성현이 정가인에게 마음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리고 대충 상황을 보아하니, 정가인도 나름 마음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다만 원래라면 지속적으로 만남의 횟수를 더해 가며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 가야 할 시기인데…….

최성현은 요즘 들어 특히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며, 국가 대표로서 올림픽 준비가 한창인 정가인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었다.

이대로라면 자연스레 흐지부지될 수도 있는 상황.

원래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미 한껏 달궈졌던 사이도 장거리 연애도 시들해지기 십상인데,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한 사이라면 훨씬 영향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름 신경을 써서 자리를 만들어 줬던 것.

물론 오히려 이렇게 신경을 써 준 것이 방해가 될 수도 있고, 애초에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서로 마주치지도 못하고 그냥 엇갈릴 수도 있겠으나…….

강태한은 그래도 두 사람의 인연에 기대를 걸어 보기로 했고, 카톡의 내용으로 보아 적어도 아직까지는 성공적으로 작용한 모양이었다.

‘이 뒤부터는 뭐, 성현이가 알아서 잘하겠지.’

최성현은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부터 주변 사람들과 교류가 원만하고 사교적인 인간이었다.

그렇다 보니 연애 경험도 꽤나 많은 편.

인생 경험이야 이미 환갑을 넘게 살아 본 강태한이 당연히 더 많겠으나, 연애와 관련된 일이라면 최성현 쪽이 더 숙련자일 수도 있다.

자신의 역할은 그냥 적당한 판을 깔아 주는 것뿐.

그 뒤의 일은 친구에게 맡길 뿐이다. 강태한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성현이 카톡인가?”

“네, 맞아요.”

한편, 맞은편에 앉아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던 황 실장이 넌지시 물었다. 별 신경을 안 쓰는 척하면서도 내심 관심을 보이고 있었는지, 강태한의 대답에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어떻게, 잘되어 간데?”

“잘 모르겠는데, 고맙대요.”

“하하하! 잘된 모양이네.”

강태한의 말에 황 실장은 손뼉까지 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무엇을 숨기랴, 이번 계획에는 강태한뿐만 아니라 황 실장 또한 참여하고 있었다. 그는 작업하고 있던 노트북을 앞으로 살짝 밀어내며 말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이게 서로 안 될 사이면 어떻게 이어 주려고 해도 안 되는데, 될 사이면 그냥 적당히 판만 깔아 줘도 알아서 착착 진행된다니까.”

“될 사이라…….”

황 실장의 말에 강태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음양에 적성을 지니고 있는 최성현과 아예 오행지체를 타고난 정가인.

뭐 하늘이 내려 준 천생연분까지는 좀 과장이겠지만, 그래도 서로가 서로에게 자연스레 끌리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굳이 표현하자면 궁합이라고 할까.

“좀 그런 면이 있기는 하죠.”

사실은 그런 부분을 믿고 이 계획을 추진한 부분도 있다. 일이 꼬인다면 안하느니만 못하는 짓이지만, 어지간한 사건이 있지 않고서야 알아서 잘 풀릴 만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근데, 그건 그렇고 말이야.”

한참 신이 난 반응을 보이고 있던 황 실장.

그러던 그는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관심의 방향을 눈앞의 강태한에게로 돌렸다.

“태한 씨 연애 사업은 어떻게, 잘되어 가고 있나?”

“저요?”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강태한이 자신을 가리키며 되묻자, 황 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거듭 물었다.

“그래, 태한 씨 말이야. 연애를 하고 있다는 건 확실한데… 뭐 자세히 들은 내용은 하나도 없네.”

물론, 직장에서 만나는 사이에 서로 연애 진행 상황까지 알아 둬야 할 이유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황 실장은 원래부터 직원들과도 비즈니스적인 관계 이상으로 친근하게 지내는 편이었고, 특히 강태한과 최성현 같은 경우엔 만난 기간은 짧을지언정 꽤나 가까운 사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뭐, 이런 부분에도 관심과 흥미가 생길 수밖에. 하나 강태한은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글쎄요. 말씀드리기 좀 애매할 것 같은데.”

“왜, 무슨 일 있어?”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제가 쑥스러워서요.”

“…음, 그렇구만.”

당연한 말이지만, 강태한은 쑥스러움과는 꽤나 거리가 먼 사람이다. 물론 ‘사장님’이란 표현이 머쓱해서 ‘원장님’이란 표현을 더 좋아한다든가, 그런 부분은 있지만…….

그래도 쑥스러워서 말을 못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뭔가 말하기 힘든 상황이 있다는 것. 대충 눈치로 분위기를 읽어 낸 황 실장은 대충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한다고 해서 뭔가 큰일이 나진 않겠지만…….’

그래도 비밀이라는 것은 확실히 해야 하는 것이다.

지킬 생각이라면 예외 없이 지키고, 지킬 생각이 없다면 처음부터 지키지 않는다. 애매하게 예외를 두거나 시간이 오래 지났다고 말을 꺼내는 순간, 언제 밝혀지더라도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평생 비밀로 감추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그걸 공개하는 순간은, 자기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유세아가 결정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게 도리가 아닐까.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뭐,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청첩장으로?”

“하하, 그렇게 큰일로 말고요.”

훨씬 앞을 넘겨짚는 황 실장의 말에, 강태한은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내저었다.

* * *

“어때요, 아르힌. 나쁘지 않죠?”

“그래, 좋구나.”

휠체어에 탄 채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남자.

아르힌이라고 불린 노년의 남자는 제법 감명을 받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은 엄청 옛날에 한번 와 봤었는데…….”

그는 공원의 나무들을 둘러보다, 살짝 시선을 들어 한 번 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딜 봐도 고층 빌딩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랑은 느낌이 완전히 다르구나.”

“언제 와 봤었는데요?”

“이제 막 배우 생활을 시작하던 시절에.”

“하하, 그러면 그럴 만도 하네요.”

국민배우로서 이름을 떨치다 은퇴를 한 것도 거의 삼십 년 전의 일이다. 하물며 배우를 시작하던 때쯤의 일이라면,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의 일일 것이다.

대충 세월을 가늠해 본 마르케시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땐 아직 소련도 있던 시절 아니에요?”

“그야 그렇지.”

“간디 선생님도 살아 계시고.”

“임마, 내가 그 정도는 아니야.”

“하하하, 당연히 농담이죠.”

짐짓 발끈한 목소리를 내는 아르힌의 말에 마르케시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때마침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제법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걸었을까.

“…솔직히 말이다.”

조용히 앉아 있던 아르힌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마사지 한번 받으려고 멀찍이 떨어진 이 나라까지 오는 게 맞나 싶었거든. 네가 보내 준 것도 제법 효과가 좋았고. 그 뭐냐, 안마 의자 말이다.”

“음… 그래서요?”

“근데 뭐 마사지를 받으러 오는 것과는 별개로…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구나, 마르케시. 너랑 이렇게 같이 여행을 오는 것 자체가 말이다.”

평소처럼 적당한 농담이 나올 거라 생각하고 있었던 마르케시는, 순간 벙찐 표정을 지으며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괜스레 가슴 한편이 찌르르, 해 오는 느낌이 있었다.

“마르케시?”

“…예?”

“뭔 일 있냐?”

미는 사람이 발걸음을 멈추니 당연히 휠체어도 멈춘다. 아르힌이 뒤쪽을 쳐다보며 넌지시 물어보자, 마르케시는 다시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뇨, 그냥… 아르힌이랑 같이 어딜 온 게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당연하게도, 마르케시는 그동안 수차례 해외를 돌아다녔다. 비즈니스를 위해, 사교 활동을 위해,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직관하러 가기 위해.

뭐 인도에 전용기를 갖고 있는 사람은 꽤 많겠지만, 그중에서 자기만큼 전용기를 적극적으로 탑승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그렇게 뻔질나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도.

아르힌과는 같이 어딜 가본 지가 꽤 오래되었다. 그나마 떠오르는 것이 십 년도 더 전의 기억이다.

물론 그를 피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고, 아르힌 또한 감독으로서 활동하기 바빴던 탓에 여러모로 일정이 안 맞은 탓도 있었다.

하지만 못내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좀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아직 아르힌이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때 같이 좀 더 시간을 보냈더라면.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다.

“앞으로도 같이 종종 다니면 좋겠구나.”

“그러게요. 저도 마침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아르힌도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 것일까.

어딘가 진중한 기색이 담겨 있는 그의 말에, 마르케시는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서, 그… 첨마암바였었나?”

“천마안마요, 아르힌.”

“그래. 거기는 아직이냐?”

한동안 걸었던 공원도 어느새 빠져나오고, 두 사람은 이제 시가지를 걷고 있는 중이었다. 아르힌의 말에 마르케시는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별로 안 멀어요. 저기, 저 빌딩이에요.”

“그렇게 가리키며 말해도 빌딩이 워낙 많아서 말이지. 뭘 가리키는 건지 모르겠네.”

그 말에 마르케시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자기가 방금 전에 가리켰던 라이너 빌딩을 빤히 쳐다보았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옛날의 건강했던 아르힌과 같이 나란히 서서 두 발로 여행을 다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어쩌면.

어쩌면 그게 가능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마르케시는 여러모로 복잡한 심정을 담아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흐음.”

다만 그 한숨을 지친 기색으로 해석한 것일까.

“이것도 꽤 비싼 놈이기는 한데… 탑승감이 좀 별로여도 전동 휠체어로 살 걸 그랬나?”

슬쩍 마르케시를 쳐다본 아르힌은 괜히 눈치가 보이는지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 말에 마르케시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전동 휠체어가 더 좋았을 것 같기는 하네요.”

“그래? 안 그래도 그때 고민했던 모델이 있는데, 그냥 지금 미리 주문을 넣어 놓을까?”

“음… 아뇨.”

그의 말에 마르케시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안마부터 받고 나와서 생각해 보죠.”

무조건이라고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쓸데없는 구매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휠체어에 탈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마르케시의 그런 기대감들이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머지않아 금방 밝혀졌다.

“젊었을 적 몸을 좀 혹사시켰다더니, 확실히 딱 봐도 그런 티가 좀 나는군.”

시간이 지나 천마안마에 도착하여 안마실에 누워 있던 아르힌. 그의 몸 상태를 한차례 훑어본 강태한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손보는 게 어렵지는 않겠어.”

그의 말투는 마치, 작은 기계 장치에서 대단치 않은 문제를 발견한 엔지니어처럼 가벼운 느낌이었다.

* * *

“…어렵지는 않겠다고?”

한편, 침대에 누워 있던 아르힌은 강태한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되물었다. 자기가 알고 있던 내용과 너무나 괴리감이 느껴지는 반응이었던 탓이다.

“그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뒤이어 넌지시 물어보는 아르힌의 말에는 기대보단 불신과 의심이 섞여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또한 나름대로 몸 상태를 고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본 바가 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고칠 수 없다는 것.

그냥 악화되어 가는 속도를 줄일 수 있을 뿐이지, 이미 쇠약해진 몸을 되돌리기는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어려운 일을 ‘쉬운 일이다’라고 말하는 건, 둘 중의 하나다.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천재이거나, 사기꾼이거나.

하지만 아르힌은 그동안 후자의 경우밖에 못 봤다. 그의 앞에서 저런 말을 한 놈들은 모조리 사기꾼들이었던 것이다.

“흐음… 어디 보자.”

다만 강태한은 그의 의심에 굳이 반발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의 몸을, 정확히는 그의 혈도를 한차례 더 훑어보며 입을 열 뿐이었다.

“가장 먼저 느낌이 왔던 건, 여기 왼쪽 무릎이겠군. 아마 높은 곳에서 무리하게 착지를 한 모양이지?”

“……!”

그 말대로다.

지금에 비하면 한참 젊을 때지만, 그래도 슬슬 몸에 무리가 가는 걸 느끼고 있었을 즈음의 일이었다.

촬영했던 장면은 계단으로 내려가는 상대를 앞지르기 위해 3층 높이에서 뛰어내려, 입구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는 장면.

애써 멀쩡한 척하며 촬영 자체는 성공적으로 끝마쳤으나, 낙법이 불안정했었는지 한동안 절름발이 신세를 져야만 했다.

“그다음에는 반대편 무릎… 한쪽이 불안하니 이건 뭐 자연스러운 일인가. 그리고 발목, 어깨, 목, 상단전도 한 번 크게 흔들렸고…….”

강태한은 그 뒤로 어디에 적혀 있는 걸 읽기라도 하는 것처럼 줄줄이 부위들을 나열했다.

그 말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놀랍게도 아르힌 본인이 촬영을 하며 큰 부상을 입었던 곳들을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나열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이었던 건… 허리 쪽이로구만. 이건 큰 사고는 아니었는데, 그동안 쌓여 있던 게 문제가 되어 버렸군.”

“자, 잠깐!”

결국 듣다 못한 아르힌이 그의 말을 잘라 냈다.

자신마저 반쯤 잊어버리고 있던 과거들을 이렇게까지 속속들이 맞춰 내는 일은, 신기함을 넘어서 두려움마저 느껴지는 일이었다.

게다가 허리에 대한 이야기는… 지극히 사적인 일이었다. 촬영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거실에서 누워 있던 그의 허리를 조카가 실수로 밟고 지나갔을 뿐이었으니까!

“선생님의 신통함은 이제 알겠으니… 그만하시오.”

아르힌은 차분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했다.

방금 전까지 강태함을 의심하고 있었던 아르힌이었으나, 이제 그의 눈빛에는 경외감마저 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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