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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83화 (183/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183화

“참 바쁘게 돌아가는구만.”

한편, 대한민국 서울에 위치해 있는 바디케어 본사.

이곳은 현재, 아침부터 한참 혼잡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참이었다. 자리에 앉아 사무실이 돌아가는 모습을 한차례 둘러본 박 차장은 애매한 표정으로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이메일을 한 통 보내 드릴 테니, 자세한 내용은 거기에 첨부한 자료를 확인해 주세요.”

“글쎄요… 저희 쪽에서도 당장은 재고가 없는 상황이라서요. 국내시장도 공급이 지연되는 판국이라, 확실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지금 바로 거래를 하고 싶으시다고요? 죄송한데 저희 쪽이 지금 오더가 많이 밀려 있는 상황이라서요. 아무래도 당분간은 좀 힘들지 않을까… 네, 네.”

사무실의 사방팔방에서 통화 소리가 들려오는 상황.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몇 초 뒤에 또 전화가 울리는 수준인지라, 따로 내용을 정리할 시간도 없어 어깨와 턱으로 수화기를 고정시킨 채 통화와 서류 정리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안 그래도 요즘 바쁜 상황이었는데 말이지.’

박 차장은 오늘 새벽, 생방송으로 봤던 한 선수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다름 아닌 에버튼 FC에서 대활약을 펼치고 있는 한국인 선수, 강주완의 인터뷰였다.

이번 시즌 초중반부터 포텐셜을 터트리더니, 그야말로 호쾌한 기세로 4위까지 올라선 에버튼 FC.

꽤 오랫동안 약팀에 속해 있던 에버튼이, 리그 중하위권에서부터 최상위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온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사건이었다.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일은 우연과 운이 겹쳐 종종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아예 시즌 순위까지 뒤집어 버리는 건 실력 자체가 뛰어난 게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약팀이었던 에버튼이, 시즌 도중에 갑자기 경기력을 확 뛰어 올린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많은 사람이 그걸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리그 내 다른 팀들은 물론이거니와 축구 외 스포츠 관계자들까지 여기에 많은 관심을 보냈었다.

‘근데 그게 우리 안마 의자 덕분이었다니… 이것참.’

그런데 그중 일부가 전날 갑자기 강주완의 인터뷰를 통해 공개되었던 것. 그리고 그걸 들은 박 차장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비록 구체적인 제품명을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그게 자기 회사의 제품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건 쉽게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이었으니까.

다른 걸 다 떠나서, 인터뷰 뒷부분에 이어진 ‘구단주님이 따로 구해다 주셨다’라는 말만으로도 사실상 확실해지는 부분이었다. 에버튼의 구단주는 다름 아닌 타르빈 마르케시였으니까 말이다.

다만 그 추측은 회사 사람이 아니어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모양이고… 그 덕분에, 바디케어의 영업 팀은 지금과 같은 혼돈의 시기를 보내는 중이었다.

원래도 인도에서 시작한 열풍이 동남아 쪽으로 슬슬 번져 가며 바빠지고 있던 참이었는데, 거기에 역대급 호재가 하나 툭, 하고 얹어진 것이다.

프리미어리그 내의 다른 팀들은 물론이고, 유럽 내 다른 리그들, 축구를 벗어나 야구, 크리켓, 미식축구 등등… 세계 각지의 각종 스포츠 업계에서 계속해서 문의와 오더가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듣자 하니 사장님은 싱글벙글이신 것 같고…….’

회사에는 그야말로 역대급 호재.

이런 스토리텔링까지 담겨 있는 홍보 효과를, 대체 어디서 얻을 수 있단 말인가. 툭 까놓고 말하면 원래 팀의 공식 스폰서도 얻을까 말까 한 막대한 광고효과를, 돈 한 푼 내지 않고 얻어 낸 셈이었다.

‘얘들도 신이 났구만.’

그리고 업무량이 늘어난 영업 팀은 죽을 맛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물론 다들 아침부터 밀린 업무량에 피곤한 모습이긴 했지만, 눈빛들만큼은 형형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영업 상여금 덕분.

요즘 영업 팀에 한참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피로를 호소하는 직원들도 많아지다 보니, 특단의 조치로 상여금의 기준을 거의 두 배 가량으로 늘려 줬다.

말하자면, 계약을 따낼 때마다 기존 상여금의 두 배 가까이 되는 금액을 개인적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원래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며 영업을 뛰어야 딸까 말까 한 수준의 굵직한 거래처들이 먼저 문의를 해 오고 있었으니…….

비록 이미 일정이 빡빡하게 밀려 있어 새로 계약을 추가시키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으나, 어떻게든 조율을 해 보고자 머리를 굴리는 직원들의 눈빛에는 그야말로 총기가 흐르고 있었다.

“일한 만큼 더 준다는 게 가장 동기부여가 확실하기는 하단 말이지…….”

그들을 지켜보던 박 차장은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슬쩍 스마트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다른 직원들의 상여금과 별개로 존재하는, 그의 개인적인 동기부여 그래프가 띄워져 있었다.

“이야, 이거 더 올라가겠는데?”

거기에 나와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바디케어의 주가.

전날 강주완 선수의 인터뷰를 보자마자 아침 일찍 알람을 맞춰 놓고, 장이 열리자마자 바디케어를 풀매수해 놓은 박 차장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꽤나 짭짤한 수준.

박 차장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스마트폰을 집어넣고는, 다시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요즘 참 회사 다닐 맛이 나는 기분이었다.

* * *

“…생각보다 본격적이네.”

대전 유성구에 위치해 있는 한 펜션의 온천.

샤워를 하고 탕 안으로 들어선 그녀, 정가인은 생각보다 큰 노천탕의 규모에 감탄을 흘렸다.

‘이런 곳은 처음이지 않나?’

실외에 설치되어 있는 큼지막한 온천.

비록 주변에는 높은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어 바깥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천장이 뻥 뚫려 있어 야외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곳이었다.

탕 가까이로 다가간 정가인은, 먼저 온도를 확인하듯 조심스레 발끝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순간적인 온도 변화에 움찔하는 그녀였으나, 이내 마음에 들었는지 천천히 발목까지 담가 보고는 곧이어 몸 전체를 탕 안에 담갔다.

“후으으으…….”

입에서 절로 나오는 탄성.

뜨끈하면서도 너무 뜨겁지는 않은 것이, 이제 막 몸을 담근 참인데도 피로가 싹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 기분이 워낙 좋았던 탓일까, 정가인은 자기도 모르게 빙긋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좋네.”

며칠 전.

정가인은 상태 확인 겸 마무리를 위해 한차례 더 천마안마에 방문했었고, 이번에도 그곳의 원장, 강태한에게 안마를 받았다.

다만 이전과는 다르게 안마가 끝난 이후 ‘일정이 된다면 주말에 한번 방문해 보라’라며 추천해 준 곳이 있었으니, 다름이 아닌 이 펜션이었다.

여기에 노천탕이 하나 있는데, 이곳의 탕이 자기한테 잘 맞을 거라나 뭐라나.

원래라면 그냥 흘려들었을 법한 말이었지만, 이미 강태한의 솜씨를 본 바도 있고 노천탕 자체에 호기심도 있고 해서 시간을 내서 방문한 것이다.

‘굳이 추천해 주신 이유가 있긴 하네.’

그리고 그렇게 방문해 본 소감은 대만족.

그냥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평소와는 다른 어떤 느낌이 있다. 단순히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과는 다른, 그 이상의 편안함과 안락함.

마치… 온천의 온기가 몸으로 직접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건 본인도 알고 있지만, 그녀가 떠올릴 수 있는 표현 중에 이것만큼 적절한 것이 없었다.

거기에 신축이라 그런지 펜션 시설도 굉장히 깔끔하고, 주변에 골프장에다 산책로도 마련되어 있어 기분 전환하기에도 좋고…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곳.

오늘은 일정이 맞지 않아 혼자 찾아왔지만, 다음에 시간이 된다면 다른 동료 선수들과도 함께 찾아와도 좋겠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정가인은 한참 동안 탕 안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어라?’

그렇게 몸을 씻고 밖으로 나온 정가인.

그녀는 시계를 쳐다보고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이 지나 있던 것이다.

그것 자체는 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인데… 문제는 그녀가 그 시간 동안 계속 뜨거운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는 것.

원래라면 현기증이 일어나거나 하다못해 머리가 핑, 돌기라도 해야 정상인 수준인데, 어지럽기는커녕 오히려 몸에 활력이 넘쳐 생생한 느낌이었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수기(水氣)의 형태로 영기가 머금어진 온천이라 일반 사람들도 효능을 볼 수 있는 곳인데, 오행지체(五行之體)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 머물렀으니 말이다.

그냥 탕에 몸을 담그고 숨만 쉬고 있어도 내부의 혈도가 정돈되는 수준이라고 할까. 그녀가 온천에서 평소 이상의 편안함을 느낀 것도, 자잘한 현기증 하나 느끼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인 것이다.

“으음… 잘 모르겠네.”

다만 정작 정가인 본인은 알 수가 없는 부분이다.

그냥 요즘 들어 컨디션이 좋은 덕분에 그런 건가, 하며 적당히 추측을 해 볼 뿐. 선풍기 앞에서 천천히 머리를 말린 그녀는,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는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하아, 어쨌거나 참 좋았다.”

그러고는 남들에게 들리지 않을 만한 조그마한 목소리로, 온천에 대한 총평을 입에 담았다. 그 말이 진심임을 증명하듯, 그녀의 얼굴에는 개운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어?”

그때쯤이었다.

복도 한쪽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의아한 목소리.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는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남탕으로 이어진 복도 쪽에서 들려왔다. 정가인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가인 씨가 왜 여기에 계세요?”

다름 아닌 최성현이 서 있었다.

* * *

“…그러는 성현 씨는 왜 여기에 계세요?”

“저는 오늘 쉬는 날이라. 제가 대전 사람이거든요.”

최성현은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 머리에는 아직 촉촉한 기운이 남아 있는 것이, 그녀와 마찬가지로 방금 목욕을 마치고 나온 모양새였다.

“저도 오늘은 훈련이 없는 날이어서요.”

두 사람은 서로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울에서 한 번 만났던 사이인데, 대전의 펜션에서 이렇게 갑자기 마주친다?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솔직히 믿기 힘든 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주기적으로 카톡을 주고받고 있기는 했으나, 여기에 온다는 말은 정가인도, 최성현도 말하지 않았었으니까.

“…혹시 태한이가 여길 소개시켜 줬나요?”

그러다 문득, 최성현은 짚이는 부분이 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자 정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원장님이 알려 주셨어요. 여기 온천이 제 몸에 잘 맞을 거라면서, 주말에 한번 가 보라고…….”

“아… 그렇군요.”

이 자식이 진짜.

최성현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올 법한 말을 애써 속으로 삼켜 냈다. 당연한 말이지만, 최성현에게 이곳을 알려 준 것도 강태한이었다.

그것도 이번 주말에 꼭 가 보라고.

자기가 예약이랑 계산까지 다 해 줄 테니까 가서 푹 쉬고 오라고. 그리고 웬만하면 혼자 가라고.

뭔가 너무 친절하고 ‘웬만하면 혼자 가라’라는 말이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도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하며 싱글벙글 이곳에 찾아온 최성현이었다.

그런데 이런 꿍꿍이가 있었다니. 이제야 굳이 그런 당부들을 했었던 의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면 오해받기 딱 좋잖아…….’

강태한의 성격상 나름대로 지원사격을 해 주려 했었던 모양이지만, 연애 경험이 꽤 있는 최성현의 시점에서 보면 이건 아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저 난감한 기분이 들 뿐!

친구에게 고마웠던 마음은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저도 모르게 한숨이 탁 터져 나올 것 같았던 순간.

“후후. 어찌됐거나, 이렇게 보니 참 좋네요.”

“…네? 아, 네. 저도요.”

뭔가 어색하다고 생각했던 정적 속에서, 정가인이 살포시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 한마디에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가 사르르 녹아내리고, 최성현은 자기도 모르게 솔직한 마음을 입에 담았다.

“사실 저번에 가게에 갔을 때, 성현 씨 말고 다른 분이 차를 내오셔서 조금 아쉬웠거든요.”

“아… 사실은 그날이 좀 특별한 경우여서. 원래는 제가 하는 일이 아니거든요. 하하.”

정가인의 말에 최성현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적극적인 그녀의 표현에 오히려 벙쪄 버리는 반응이었다.

“혹시 같이 온 일행분이 계신가요?”

“아뇨. 저 혼자 왔어요.”

“오, 저도 그런데. 그럼 이따가 같이 산책이라도 갔다올까요? 혼자서 갔다 오긴 좀 애매해서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담담한 말투로 성큼성큼, 순식간에 마음의 거리를 좁혀 오는 정가인.

본래 양궁에 집중하고 있었던 만큼 연애 쪽으로는 별 관심이 없었던 그녀이고, 당연히 경험도 없었다.

그렇기에 서로 간의 거리를 가늠하고, 한 번 당겼으면 밀어 보기도 하고, 이런 기본적인 연애의 상식들을 알지도 못했다.

“조… 좋아요.”

하나 때로는 이런 방식이 더욱 위력적인 법.

순수함에서 비롯된 그 과감함에, 최성현은 당황한 목소리로 자기도 모르게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정가인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 한 30분 정도 있다가… 펜션 본관 정문 앞에서 만날까요? 매점에서 음료수 하나만 사가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가 봐요.”

그 말을 남기곤 앞장서서 복도를 걸어가는 정가인.

그 뒤에 남겨진 최성현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혹시 무슨 일 없냐?]

다름 아닌 강태한에게서 온 카톡 메시지.

그 말을 본 최성현은 마침 하고 싶었던 말이라는 듯이, 빠른 속도로 답장을 보냈다.

[무슨 일 있다, 십새야.]

[혹시 괜한 참견을 했나?]

최성현의 말에 곧바로 돌아온 메시지.

그 메시지를 본 최성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머쓱하게 웃으며 다시 화면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니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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