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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82화 (182/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182화

“그게 정말이십니까?”

평소 보여 주던 모습과 달리, 사뭇 긴장한 기색까지 어려 있던 마르케시의 얼굴에 화색이 맺혔다. 마치 산타를 만난 어린아이처럼 환한 미소였다.

“예. 오히려 이렇게까지 무겁게 부탁하실 일인가 생각이 드네요. 저는 잠깐 시간만 내면 되니까요.”

강태한이 확신을 심어 주듯 거듭 말하자, 마르케시는 조그맣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가 보아 온 강태한이라는 사람은 허투루 말을 꺼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애당초 입에 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까.

“다만 저라고 해서 뭐든지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자세한 내용은, 그분이 직접 찾아오셨을 때 한번 확인을 해 봐야겠죠.”

“하하하, 물론입니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뒤이어 효과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강태한이었으나, 그런 건 당연히 감안하고 있던 마르케시다.

사실 그게 뭐 대수겠는가.

중요한 건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게 아니라,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르케시는 전자보다 후자 쪽 확률이 훨씬 더 높다고, 강태한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그만큼 제가 뭘 해 드려야 하는데…….”

일단 만족스러운 대답을 받아 낸 마르케시는, 슬쩍 이야기를 던지며 강태한의 눈치를 살폈다.

사람 관계의 기본은 기브 앤 테이크. 자기가 원하는 대답은 이미 받았으니, 이젠 강태한이 원하는 걸 말할 차례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서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조용히 차 한 모금을 마시고는 한강 쪽을 쳐다보는 강태한. 좀처럼 이야기가 나오질 않으니, 마르케시 쪽에서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혹시 말씀하실 게 있다면, 말씀하시죠. 요즘 필요하신 게 있다거나, 뭔가 계획이 있으시다거나.”

대놓고 뭔가를 요구하기에는 조금 꺼려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비교적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마르케시는 넌지시 운을 띄웠다.

하지만 강태한은 빙긋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어쩐지 제 눈치를 보시더라니, 기다리고 계시는 이야기가 있으셨군요.”

“하하… 원장님도 마냥 베풀기만 하시면 마음이 불편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부담 없이 말씀하시죠.”

멋쩍게 웃음을 흘리면서 말하는 마르케시. 그런 마르케시에게 강태한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없습니다.”

“…네?”

“딱히 바라는 건 없습니다. 그냥 호의라고 할까요.”

말을 마친 강태한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마르케시는 순간 벙찐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 그 표정 그대로 넌지시 입을 열었다.

“호의라…….”

호의. 꽤나 흔하고 사람들 입에도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지만, 정작 순수한 호의와 만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솔직히 말해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다른 노림수가 있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좋은 말로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욕심이 큰 사람인 법이다.

“…그렇군요.”

하나 왜일까.

강태한의 말은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갔다. 그냥 무심할 정도로 담담한 이 목소리가, 그냥 빈말인 것처럼 들리진 않는 것이다.

“애초에 지난번에 영국에서 신세진 것도 있으니, 제가 받은 만큼 돌려드리는 거라고 봐도 무방하죠.”

한편 잠시 벙쪄 있는 마르케시의 반응을 부담스러워서 그런 것이라고 해석한 걸까, 강태한이 별것 아니라는 것처럼 덧붙이듯 말했다.

“…그럼, 편한 마음으로 빚을 지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마르케시는 빙긋 미소를 짓고는, 방금 전보다 비교적 가벼워진 자세로 고쳐 앉았다.

“빚으로 생각할 필요 없다니까요.”

“후후후. 그럼, 제멋대로 마음에 담아 두도록 하겠습니다. 저 타르빈 마르케시, 받은 호의에 보답할 생각도 못 할 정도로 못되어 먹은 놈은 아닙니다.”

마르케시의 목소리는 방금 전보다 한결 편해진 말투였으나, 어딘가 감동이라도 받은 듯한 고양감이 담겨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반응을 의도한 건 아니었기에,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 * *

“…그보다, 그분에 대한 이야기나 더 해 보시죠.”

그렇기에, 강태한은 자연스럽게 스리슬쩍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놓았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일을 하시다가 어떤 증상을 앓고 계신지, 대강이나마 알고 있는 편이 나중에 만났을 때 도움이 될 테니까요.”

“아, 그것도 그렇군요.”

다행히 마르케시는 강태한의 생각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분의 이름은 아르힌 두르, 아르힌 두르라고 합니다. 예전엔 국민배우로 유명했었고, 지금은 발리우드에서 잘나가고 있는 감독 중의 한 명이죠.”

말을 꺼내 놓은 마르케시는 강태한의 반응을 슬쩍 살폈다. 아르힌의 작품 중 몇 개는 해외에서도 꽤 성공적인 반응을 끌어냈으니, 혹시나 알고 있진 않을까하는 기대가 생겼던 것이다.

다만 강태한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마르케시는 괜스레 아쉬워하는 기색을 얼굴에 드러냈다.

“그… ‘타이거 앤 라이언’, 보신 적 없습니까?”

“아, 그거 꽤 재밌었죠.”

마르케시가 살짝 꺼내 본 영화 제목에 강태한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강태한의 집에서 유세아가 ‘이거 볼만하다’라면서 틀었던 영화였다.

“무인도에서 만난 인도인이랑 영국인이 서로 싸우다 친구 먹고,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맞아요. 그러다 무인도에서 고대 유적을 발견하고, 거기에 있던 나치의 연구실을 파괴하고 탈출하죠!”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마르케시의 모습에 강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세아의 말마따나, 확실히 볼만한 영화였다. 전개를 가늠할 수가 없고 중간마다 뜬금없이 춤이 나오는 게 낯설긴 했지만, 그게 매력이었다고 할까.

“어쨌거나, 그게 가장 최근에 나온 아르힌의 작품들이에요. 발리우드의 거장이라 부를 만하죠.”

“흐음. 그렇군요.”

“하지만 그래도 감독보다는 배우로서 유명한데, 그때 나왔던 작품들이 하나같이 히트작이었거든요. 대표적인 작품이…….”

자기 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일까. 마르케시는 신이 난 모습으로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고, 강태한은 조용히 그 말을 들으며 조심스레 찻잔을 집어 들었다.

‘…그건 그렇고, 발리우드라.’

미국의 헐리우드처럼 대규모 영화 산업 기반이 갖춰져 있는 인도의 봄베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최근에 어디서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자… 금방 떠올랐다.

바로 전날 유세아와 나눴던 대화. 인도 쪽 섬에 해외 로케가 있었는데, 발리우드 쪽 관계자랑 조율이 안 된 부분이 있어 일정 자체가 엎어졌었다고.

일종의 텃세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촬영지 쪽에서도 발리우드 관계자의 말을 그냥 무시할 수도 없다고 그러고, 중개업체 쪽에서도 별다른 방도가 없어 일정 자체가 불투명해졌다고 했었다.

“으음… 그 아르힌이라는 분이 발리우드에서 상당한 인지도가 있는 거물이신 모양이네요.”

“그야 물론이죠. 발리우드뿐만 아니라 인도에서 영화관 좀 들락거려 본 사람이면 모를 수가 없죠.”

강태한의 말에 마르케시는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고 있던 강태한은 다시 한번 넌지시 물었다.

“아르힌이라는 분이 언제쯤 방문하실 예정이죠?”

“하하… 사실, 이미 한국에 와 계십니다. 저로선 당장이라도 조치를 취하고 싶은 심정이어서요. 물론 선생님을 보채려는 건 아니고, 그저…….”

“그럼 내일 저녁에 시간을 내도록 하죠.”

“…어, 어. 바로 내일 말씀이십니까?”

짧으면서도 단호한 강태한의 말.

그 말에 마르케시는 자기도 모르게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르케시의 입장에선 날이 빠를수록 좋다.

단지 이렇게 곧바로 즉답이, 그것도 바로 내일 약속이 생길 줄은 몰랐을 뿐.

“내일은 시간이 안 되나요?”

“아뇨!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안 돼도 되게 해야죠.”

마르케시는 행여나 강태한의 마음이 바뀔까 무섭다는 듯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 마르케시의 반응에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막혀 있는 유세아의 촬영 일정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발리우드의 유명인이라 해서 모든 일에 영향력을 행세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설령 가능하다 해도 자기 말을 다 들어줄 거란 보장도 없다.

다만, 그래도 상황을 봐서 한번 이야기해 볼 만한 가치는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런 일은 되도록 빨리 만나는 편이 좋은 법이다.

“그럼, 내일 8시 이후에 가게에서 뵙죠.”

“알겠습니다. 아르힌이랑 같이 찾아뵙겠습니다.”

마르케시의 부탁을 호의로 받아들인 것은 맞지만, 정작 그 손님에게 다른 사심이 생긴 상황.

어찌 보면 서로 윈윈인 상황에, 마르케시와 강태한은 서로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영국의 프리미어리그가 거의 끝나 가는 이 시점.

이 시점에서 팬들의 분위기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뭘 하더라도 이미 시즌 순위가 결정되어 있는 팀.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경기들의 결과에 따라 순위가 몇 단계 뒤집힐 수도 있는 팀.

아무래도 전자 쪽보다는 후자 쪽 팀의 응원 열기가 더 클 수밖에 없으며, 특히나 그 뒤집히는 순위에 뭔가 의미가 걸려 있다면, 시즌 경기 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과 열기가 쏟아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자면… 앞으로 한 팀만 더 앞지르면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할 수 있게 된다든가.

“으와아아아아아아!”

“에버튼! 에버튼!”

“위 고 챔스! 위 고 챔스!”

그런 의미에서, 방금 막 경기를 끝마친 경기장에선 그야말로 환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에버튼 FC의 홈구장인 구디슨 파크.

방금 4:3의 스코어로 에버튼이 승리를 거두는 순간, 경기장을 꽉 채우고 있던 팬들은 거의 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경기 시작 전, 에버튼의 리그 순위는 5위였고 상대 팀은 4위였다. 그리고 이 경기를 통해 양 팀의 순위가 서로 뒤집히게 된 것.

리그 4위에 들어간다는 것은, 유럽 리그 최상위권 팀들이 다시 모여 경기를 치르는 리그, 챔피언스리그의 출전권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한동안 지지부진했던 에버튼 FC가, 거의 이십 년 만에 챔피언스리그의 참가권을 따내는 순간인 것.

오랫동안 팀을 응원해 왔던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순간이었고, 각별한 순간이었다. 그들은 그 격한 감동을 몸으로 표현하듯 경기장이 떠나가도록 함성을 지르고, 뛰어다니고, 옆 사람을 부둥켜안았다.

[강주완 선수, 오늘 승리에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경기에 대한 소감, 한마디만 부탁드리겠습니다.]

한편, 한껏 달아올랐던 경기장의 열기가 살짝 누그러졌을 즈음, 경기장 한쪽에선 에버튼 선수들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 승리에 선수들도 관객들 못지않게 잔뜩 흥분해 있는 모습. 마찬가지로 잔뜩 흥분해 있던 강주완은 수차례 심호흡을 하고는, 그나마 진정된 목소리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아, 오늘 경기로 저희를 응원해 주신 팬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을 한 것 같아, 너무나도 기쁩니다.]

[오, 너무 겸손하시네요. 조금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큰 보답인 것 같습니다만!]

[흐하하! 아, 죄송합니다. 저도 지금 너무 들떠 있어서요. 오늘 큰 성과를 거둔 건 사실입니다만, 아직 시즌이 남아 있는 만큼,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순위를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애써 침착한 목소리와 억누를 수 없는 기쁨의 기색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인터뷰. 다만 오히려 그렇기에 승리의 열기가 더욱 진하게 담기는 느낌이다.

[이번 시즌 초반만 해도 에버튼은 완전 하위권에 머무르던 팀이었는데요. 강주완 선수의 복귀와 동시에 엄청난 기세로 올라왔었습니다.]

[예. 시기적으로 그렇게 맞물렸었죠.]

[강주완 선수 개인의 기량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그쯤부터 팀 전체의 실력이 몇 단계씩 올라온 분위기였는데, 뭔가 비결 같은 게 있었을까요?]

에버튼 FC가 리그 4위까지 올라선 것은 오랜 팬들에게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중하위권을 맴돌던 팀이 파죽지세로 올라와 마침내 4위에 도달한 일. 이것만으로도 전 세계 어지간한 스포츠 뉴스의 토픽에 오를 만한 일이었으며,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글쎄요… 제가 알기로 이게 이미 리그 내 많은 팀에게 알려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거기서 강주완은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서 뭔가 느낌을 받은 것인가, 뒤쪽에 있던 다른 선수, 바트 포스터가 손으로 X자를 그렸으나, 강주완은 당연히 보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제 나라, 대한민국에서 나온 안마 의자가 하나 있는데, 이게 성능이 기가 막혀서요. 아무래도 컨디션 관리에서부터 이기고 들어간 부분이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좀 해 봅니다.]

프리미어리그는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가장 유명한 축구 리그 중의 하나이며, 에버튼은 이번 시즌 리그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팀 중 하나였다.

어떻게 이런 폭발적인 성적을 낼 수 있었는가.

이는 에버튼과 관련된 의문점 중의 한 가지였고, 리그 관계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 스포츠 관계자들이 궁금해하고 있었던 부분이다.

그리고 방금 전.

그에 대한 해답 중의 일부분이 공개되었고.

그 결과, 더 마이스터의 열풍이 한국에서부터 시작해, 인도, 동남아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계기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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