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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74화 (174/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174화

지난 저녁, 준비실 직원을 대신해서 차를 들고 2번 방으로 들어갔던 최성현은, 손님과 한참 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밖으로 나왔었다.

처음에는 그냥 나갈 타이밍을 재고 있을 뿐이었으나, 중간부터는 본인이 좋아서 남아 있었다. 왠지 이야기가 잘 통하는 느낌이었기 때문.

‘근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호감을 느꼈던 건 비단 최성현뿐만이 아니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손님 쪽에서 먼저 이름을 물어왔다. 그때 최성현은 갖고 있던 명함을 건넸고… 자연스레 번호 교환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뭔데 말을 하려다가 얼버무리냐?”

괜히 잘못 말을 꺼냈다간 이런 자초지종까지 다 말하게 될 것 같아 말을 피한 최성현이었으나.

‘아, 실수했네.’

황 실장의 앞에서는 오히려 역효과였다. 평소답지 않은 모습이 도리어 황 실장의 관심을 자극한 것이다. 황 실장의 눈빛 속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호기심을 보았을 때, 최성현은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다.

“좀 수상한데? 어제도 곧바로 퇴근할 것처럼 말하고 들어갔다가 한참 뒤에 나오더니.”

“아이, 그건 어제 말했잖아요. 손님이 공기청정기가 이상하다고 해서 그것 좀 만지고 나오다 늦었다고.”

최성현은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거짓말이었다.

“흐음… 그래?”

그리고 그걸 못 알아볼 황 실장이 아니다. 황 실장은 팔짱을 낀 채 너구리 같은 얼굴을 하며 최성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요?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그러자, 옆에 있던 강태한도 관심을 보였다. 그 반응에 황 실장은 미소를 지은 채, 준비실과 붙어 있는 벽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어제 태한 씨가 퇴근하고 난 뒤에, 준비실 직원들이 다 자리를 비웠던 시간이 있었거든.”

“좀 일손이 부족했겠네요.”

“그래. 그래서 성현이한테 차 좀 대신 갖다줘라, 그렇게 말했었지. 퇴근한 줄 알았는데 사무실에서 나오더라고. 어쨌든, 그랬더니 손님 있는 방에 들어가서 한참 뒤에나 나오는 거야.”

황 실장은 그때 최성현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최성현은 공기청정기에 문제가 생겨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지만, 그게 거짓말이라는 건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정말 뭔가 문제가 생겨서 늦은 거라면, 표정이 그렇게 밝지는 못했을 테니까. 그때의 최성현은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미소를 머금은 채 실실 웃음을 흘리고 다녔었다.

“…아하.”

한편, 황 실장의 말을 들은 강태한은 잠시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짚이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둘이 뭐 잘 어울리기는 하지…….’

정가인은 오행의 적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체내에서 안정적으로 조화까지 이뤄 낼 수 있는 오행지체(五行肢體)의 재능을 타고난 몸이다.

강태한이 직접 모든 사람을 다 확인해 본 건 아니지만, 아마 이 시대에서 이 정도 재능을 지닌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무림에서도 꽤나 보기 드문 수준의 재능이었으니까.

그리고 최성현은 음양의 기운에 적성을 타고 났다.

물론 서로 상극인 두 기운을 자유자재로 다뤄 내는, 소위 음양지체(陰陽肢體)라 불리는 천재(天才)의 재목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선천적인 재능을 타고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음양과 오행.

얼핏 보기에는 별개의 분류로 나뉘어져 서로 상관이 없어 보일 수 있으나, 상호 간에 보완을 해 주거나 기세를 증폭시키는 등, 꽤나 밀접하게 이어져 있는 관계다.

예를 들자면 음(陰)의 기운이 강한 곳에서 수기(水氣)가 강해지고, 양(陽)의 기운이 짙은 곳에서 화기(火氣)가 강해지는 이치라던가.

음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는 곳에선 오행 또한 조화를 이뤄 평온하고 온화한 상태가 이어지는 것이, 이러한 맥락의 일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음양과 오행은 서로 간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자연스레 서로를 끌어당길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해당 성질들을 품고 있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

실제로 무림에서도 고수들끼리 인연을 맺는 걸 보면, 이런 식으로 선천적인 재능이 맞물리는 경우가 많았다. 검존과 검후 부부 또한 서로 음양과 오행의 기운을 타고난 사례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한눈에 반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첫 인상부터 어느 정도의 호감을 기본적으로 깔고 시작하는, 그 정도 수준은 되고도 남는다.

게다가 최성현은 아직 미숙하긴 해도 기감이 트여 있는 상태였으니, 정가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오행의 기운을 분명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근데 공기청정기가 고장 났었던 게 맞나~? 진짜라면 다른 것도 한 번씩 살펴봐야겠는데?”

한편, 그러는 사이에도 황 실장은 계속해서 최성현을 떠보고 있었다. 결국 듣고 있던 최성현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아, 진짜. 그냥 서로 이야기도 잘 맞고 재미도 있어서 손님이랑 같이 좀 있었어요. 됐어요?”

“흐흐흐. 그야 이미 알고 있지.”

사실대로 털어놓는 최성현. 그 말에 황 실장은 그야말로 아저씨 같은 웃음을 흘리며 미소를 지었다. 굉장히 흐뭇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냥 네가 직접 말하는 게 보고 싶더라고.”

“아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는 최성현. 어쩌면 그냥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하는 편이 더 깔끔했을 지도 모른다. 최성현은 괜스레 심술 난 표정으로, 황 실장의 찻잔을 뺏어 한 모금 들이켰다.

“이야, 이거 성현이한테도 봄날이 오는 건가?”

“아, 그런 오버 좀 하지 마요. 아직 그냥 카톡이나 좀 나누는 사이구만.”

“에이, 잠도 줄여 가면서 카톡을 하는 건, 그냥 카톡이나 좀 나누는 거라고 표현하지 않지.”

늦게 잤다고는 말했지만 그 이유까진 말한 적이 없는데, 그냥 곧바로 알아맞히는 황 실장이었다. 다만 그 말에 최성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저도 마음이 있기는 한데.”

“그런데?”

“…시기적으로 좋지가 않잖아요.”

정가인은 올림픽 국가 대표 선수다. 그리고 올림픽까지 남은 기간은 그리 많지 않다. 일반인들에겐 몇 달이나 남아 있는 일이지만, 출전하는 선수들에겐 준비에 박차를 가하기에도 촉박한 시간인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

그게 무슨 말인가 싶던 황 실장도 뒤늦게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손님이 올림픽 국가 대표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뭐 올림픽 국가 대표면 연애도 하면 안 된다냐?”

“안 되는 건 없겠죠. 근데 혹시라도 발목을 잡게 되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하는 거죠.”

최성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단순히 호감만 느끼는 정도였다면, 평소처럼 자기 쪽에서 계속 대시를 했을 것이다. 자기는 호감을 표현하고, 선택은 상대방에게 맡기면 그만이니까.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그동안 최성현의 연애는 모두 그런 느낌으로 시작해 왔었다. 어느 쪽이냐 하면, 상당히 가벼운 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뭐랄까, 좀 더… 신중해지는 느낌이다. 불과 어제 잠깐 만나 본 사람이었지만, 좋은 인연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하나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된다.

“성현이가 그새 많이 컸네.”

“…왜요.”

“예전이었으면 그런 고민 없이 일단 들이밀고 봤을 텐데.”

그런 예전의 최성현을 잘 알고 있었기에, 황 실장이 피식 웃으면서 한마디 건넸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최성현은 머쓱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거렸다.

‘만난다고 나쁠 건 없을 것 같은데…….’

한편,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강태한.

‘오히려 도움이 되는 편일 것이고.’

음양지체와 오행지체가 서로 끌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기에 호감이 생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서로의 발전에 기여를 한다고 할까.

더군다나 정가인은 아직 혈도가 완전히 안정을 되찾진 못한 상황이었으니, 최성현과의 만남이 더욱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애당초 툭하면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는 무림에서도 연애를 하는데, 강태한의 입장에서는 딱히 연애를 못 할 이유처럼 생각되지는 않았다.

‘…뭐 성현이가 알아서 하겠지.’

다만.

원래 옆에서 끼어들면 알아서 잘 굴러갈 연애도 막히는 법이다. 강태한은 조용히 찻잔을 집어 들고, 안에 담긴 차를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셨다.

* * *

“저번 달만 해도 ‘공급이 안정되고 재고도 확보되고 있다’라는 보고서를 받았던 것 같은데 말이지.”

대청그룹 본사의 회장실.

그곳의 널찍한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던 장태현은, 고개를 옆으로 반쯤 기울인 상태로 의아함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왜 이번에는 ‘재고는 소진되었고 공급도 부족하다’라고 올라와 있는 거지?”

그는 그러면서 보고 있던 보고서를 책상에 툭, 던져 놓았다. 다소 기분이 언짢은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행동. 하지만 그 행동과는 반대로, 장태현의 양쪽 입 꼬리는 슬쩍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그야, 뭐…….”

최 비서는 굳이 답을 내놓지 않았다.

장태현 또한 답을 알고 물어보는 것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장태현은 웃음을 터트리며 의자의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하하하! 이거 이렇게 잘 팔려도 되는 건가 싶네!”

그가 살펴본 보고서의 내용은 다름 아닌 안마 의자, 더 마이스터에 대한 내용이었다.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안마 의자 열풍을 만들어 놓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인도에서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바로 그 제품.

한국에서의 판매량은 업계 기록을 매일 갱신하고 있는 중이며, 기존 기록과는 이미 두 배 가량의 차이가 벌어져 있을 정도로 폭발적인 수준이다.

한데, 인도에서의 판매량이 얼마 전 한국의 판매량을 뛰어넘었다.

아무리 인구수 차이가 많이 나는 걸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원래 인도에 안마 의자 시장 자체가 거의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대기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단순히 대박만 터트린 것이 아니라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시장까지 개척해 놨으니, 그야말로 대박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성과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인도에서 대박이 터지니 주변국에도 자연스럽게 인지도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관련이 있는 기업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덕분에 지금에 와선 정말 다양한 국가의 기업들에서 오퍼가 들어오고 있는 판국이었다.

대부분은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쪽이지만, 개중에는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기업들에서 들어온 오퍼들도 종종 보이는 편.

아시아권은 그렇다 쳐도 유럽권에선 왜 그런지 조사를 한번 해 보니, 에버튼 FC의 컨디션 관리 비결이라며 안마 의자에 대한 소문이 리그 관계자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그 결과…….

얼추 안정되어 가던 공급량은 다시 부족해진 상황이고, 기존에 다른 제품을 생산하던 라인도 이쪽으로 돌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문제가 생겼으니 난감한 상황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기업가의 입장에서 이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말하자면 행복한 고민이라 할 수 있었다.

원래는 ‘어디서 거래처를 구할 수 있을까’가 수출 기업의 가장 큰 고민이라 할 수 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야 수량을 맞출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정말, 강 선생님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나…….”

회사 입장에서는 안마 의자 사업을 포기하네 마네 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이 일은 그야말로 극적인 성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을 생각하면 반드시 빼놓을 수 없는 공로자, 강태한을 떠올리며, 장태현은 저도 모르게 정수리 부분을 매만졌다. 이곳 또한 강태한의 수혜를 본 곳 중의 하나였으니까.

“그건 그렇고, 요즘 바디케어 쪽에서 신제품 개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만.”

“아… 슬슬 그럴 때이기는 하지.”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은 말 그대로 물이 한참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다. 연못이 호수로 바뀌어 버린 수준이라고 할까.

이럴 때일수록 더욱 박차를 가하는 게 바람직한 상황이기는 했다. 장태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강 선생님에게 좀 여쭤볼까.”

다만, 다른 제품은 몰라도 더 마이스터 시리즈의 경우에는 마음대로 신제품을 개발하기가 어려웠다. 어찌 됐거나, 핵심적인 기술은 강태한에게 있었으니까.

“일정을 좀 잡아 둘까요?”

“흐음… 그렇게 해 줘.”

곧바로 다음 보고서를 집어들고 훑어보던 장태현은, 최비서의 말에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라이너 호텔의 로비에 위치해 있는 카페.

그곳에 앉은 곽상영은, 강태한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저희 회사 쪽에서도 예약 어플을 따로 운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가요?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분명 저희가 인터넷 예약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기는 하죠. 별개의 어플도 있고요. 다만… 그걸 따로 관리해 주는 업체들에 외주를 맡기고 있습니다.”

지난번 황 실장과 이야기했던 예약 시스템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꺼낸 강태한. 하나 곽상영의 대답은 강태한이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호텔 예약 서비스는 꽤 예전부터 존재하던 인터넷 서비스다. 말하자면, 이미 외부에 확고하게 갖춰진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

이런 경우에는 어지간하면 독자적으로 개발을 진행하는 것보단 기존 업체와 협력하는 편이 수지타산이 맞는다. 고객들도 접근성이 좋은 그쪽을 더 선호하고 말이다.

“흐음… 그렇군요.”

“그래도 한번 알아봐 드릴까요?”

“일단은 생각을 좀 해 보겠습니다.”

중간에 외부업체를 끼고 진행을 한다라.

이것도 생각을 해 본 적은 있지만, 아무래도 절차가 복잡해질 수 있었다. 어찌 됐거나 중간에 한 다리를 걸쳐야 하니까 말이다.

‘따로 외주 제작을 맡겨야 하나…….’

그러면 또 솜씨 좋은 사람을 찾는 것이 문제.

몸이나 무공으로 하는 일이야 뭐든지 할 수 있지만, 이런 최첨단 기술 쪽에는 아무래도 뒤처질 수밖에 없는 강태한이다.

‘…음?’

그렇게 있을 때쯤.

강태한이 스마트폰이 울렸다. 다름이 아니라, 장태현 회장의 비서에게 걸려 온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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