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172화
“…확실히.”
천마안마의 안마실에 들어와 있는 정가인.
가게에서 나눠 준 찜질복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그녀는, 한번 주변을 훑어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선수촌이랑은 뭔가 다르기는 하네.”
좀 더 신경을 쓴 느낌이 난다고 할까.
인테리어도 그렇고 방 안의 공기청정기라든가, 설비들의 상태라든가, 여러모로 선수촌 내의 안마원보다는 깔끔하고 세련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그건 선수촌의 안마원 시설이 낙후되었다기보단 이쪽이 더 뛰어나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시선이리라. 그녀는 서울로 올라오는 도중에 찾아봤던 내용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가이드에서도 고평가를 받았다고 했었지…….’
페르모 가이드라고 했었던가.
어릴 때부터 훈련에만 집중해 온 인생이었기에 그게 뭔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게 상당히 공신력 있고 대단한 평론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대충 검색해 봐도 관련 기사들이 잔뜩 쏟아져 나왔으니까 말이다.
물론 선수촌에 있는 안마원도 상당히 좋은 시설이지만… 그래도 이런 대단한 평가를 받은 가게와 비교를 하면 밀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똑똑.
그때쯤, 문에서 두 차례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침대 아래에 놓인 공기청정기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던 정가인은, 마치 계속 이렇게 있어 온 듯 침대 위에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다소곳이 올려놓았다.
“네.”
그러고는 침착하게 노크에 답하는 목소리.
그러자 대답과 동시에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문을 두드렸던 남자가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다름 아닌 강태한이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눈을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는 강태한. 반면, 정가인은 내심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 한 박자 늦게 인사를 받았다.
‘생각한 느낌이랑 조금 다른데?’
그녀가 만나 왔던 안마사들은 거의 다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분들이셨다. 그리고 실력이 좋은 분들은 하나같이 모두 나이가 꽤 있으신 분들이셨다.
반대로 말하면, 비교적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받고 만족을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무래도 경험과 숙련도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분야라 그런 것일까. 적어도 여태 동안 그녀가 느껴 본 바로는 그랬다.
그리고 여기는 페르모인가 뭔가에서 고평가를 받았다는, 요 근래 안마원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싶은 곳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그녀는 당연히 꽤나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들어오실 줄 알았다. 다른 안마사도 아니고 이곳의 원장님이 직접 오신다고 들었으니까 말이다.
헌데, 방 안에 들어온 사람의 모습은 그녀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나이가 지긋하기는커녕, 그냥 대학생이라 해도 믿을 만한 청년이 들어온 것이다.
‘흐음.’
한편, 상대방을 유심히 쳐다보는 건 강태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를 살펴보던 강태한은 속으로 침음을 삼키며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행지체(五行之體)라.’
오랜만에 보는 재능의 모습에, 강태한은 저도 모르게 싱긋 미소를 지었다.
* * *
‘아무래도 국가 대표인만큼 기재들이 모이는 건가?’
오행지체란, 선천적으로 오행(五行)의 기운들에 대한 적성을 타고나는 몸이다.
그만큼 각 기운들에 대한 친화력도 높으며, 오행 내에서 서로 반발하는 기운도 함께 조화를 이뤄 낼 수 있는, 그런 천부적인 재능이다.
다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재능의 정도는 꽤나 미약한 수준이며, 더군다나 개화를 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기감도 없고 내공도 없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무림인으로서의 기준.
그런 부분을 생략하고 보더라도, 충분히 축복받은 재능인 것은 틀림이 없다. 일반인들에 비하면 신체 능력과 습득 능력 자체가 뛰어날 수밖에 없으니까. 실제로 그녀의 몸은 굉장히 단단하게 단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문제가 좀 있긴 하군.’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그 재능 때문에 문제가 생겨 있는 상태였다. 그녀의 기의 흐름을 살펴보던 강태한은 한차례 혀를 차며 앞으로 걸어갔다.
“일단 몸 상태부터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엎드리면 되나요?”
“네. 편하게 계시면 됩니다.”
정가인이 베개를 가리키면서 묻자, 강태한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솔직히 아직까지 아리송한 정가인이었으나… 그래도 면전에다 ‘원장님이 맞으신가요?’라고 묻는 건 다소 무례한 일이었기에, 일단은 얌전히 베개에 머리를 대고 엎드렸다.
‘…어라?’
헌데 강태한의 손이 가까워지는 순간.
닿은 것도 아니다. 그냥 단지 가까워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정가인은 몸에 반응이 오는 것을 느꼈다. 굉장히 이상한 표현이지만… 몸 자체가 환영을 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미약하긴 해도 오행지체라 이건가.’
그리고 그걸 느끼는 것은 강태한 또한 마찬가지다.
의도적으로 손에 오행 중의 하나, 불의 기운을 담아 냈던 강태한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끌어들이려 하는 반응에 히죽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나야 편리하지.’
적으로 상대하는 입장이라면 피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로운 상황이다. 강태한은 그대로 손바닥을 그녀의 등 위에 올렸고…….
“…으윽!”
손에 담겨져 있던 기운은,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그녀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스며들은 기운은 순식간에 그녀의 몸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퍼져 나간 기운들은 하나하나가 기감(氣感)이 되어, 강태한에게 상세한 정보들을 전달해 줬다.
‘뭐, 뭐지……?’
한편, 침대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던 정가인.
그녀는 난생처음 느껴 보는 감각에 당황을 느끼고 있었다. 굉장히 낯설고, 굉장히 어색하고, 그러면서도 굉장히… 편안하고 안락한.
마치 몸에 고갈되어 있었던 뭔가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그나마 비슷한 경험을 들어 보자면, 탈진으로 반쯤 기절했을 때 포도당 주사를 맞았을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역시.’
그리고 그 반응은, 강태한이 이미 짐작하고 의도한 부분이다. 그녀의 몸 상태를, 보다 정확히는 혈도의 상태를 살펴본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화기(火氣)가 흐르는 혈도가 어긋났는가.’
본래 사람은 오행의 기운을 체내에 담아 낼 수 없다.
그 기운을 다룰 수 있다 해도 그건 체내의 내공을 오형의 형태로 발현시킬 수 있는 것이지, 그 기운 자체를 체내에 담아 내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오행지체는 다르다.
자연에 머무르는 오행의 기운 자체를 체내에 받아들이고 순환시킬 수 있다. 심지어 오행 내에서 서로 반발을 일으키는 기운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다만… 그렇기에 내부의 혈도는, 일반인보다 훨씬 예민하고 복잡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리 심각하지 않은 부상에도 자칫하면 기혈이 뒤틀어질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다섯 개 중 하나가 무너진 꼴이니.’
그녀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중 추돌이 있었다고 했었나. 원래라면 그냥 근육이 놀라는 정도로 끝났을 것이고, 아마 일주일 정도 안에 회복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 그녀의 경우에는, 그 때문에 내부의 혈도가 살짝 어긋나고 막혀 버렸다. 그 결과 오행 중의 하나인 화기의 순환이 막히고 흐름이 부자연스러워졌다.
오행은 다섯 가지의 기운이 서로 맞물리며 균형을 이루는 형태다. 하나가 불안정해지면, 다른 요소들도 당연히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 문제가 가장 두드러지는 건… 여기, 오른쪽 다리로군.”
그리고 그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이 바로, 그녀의 오른쪽 다리다. 혈도 내 오행의 균형이 무너지고, 그 규모가 점차 커지다 근육과 신경에마저 영향을 미치는 중이었다.
“힘 조절은 제대로 안 되는데, 정작 오랫동안 힘을 주는 것도 힘들었겠어.”
“…네?”
확인한 결과를 넌지시 입에 담는 강태한.
멍하니 황홀감에 젖어 있다가 반사적으로 답하는 정가인. 그러거나 말거나, 강태한은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쓸데없이 힘이 많이 들어가고, 그러다가 느닷없이 갑자기 후들거리고. 그런 일이 종종 있지 않았나?”
“…맞아요.”
강태한의 말에, 멍하니 있던 정가인의 정신이 바짝 돌아왔다. 그가 말하는 내용이 너무나도 구체적으로 들어맞았던 것이다.
…우 팀장을 통해서 전해 들은 건가?
하지만 평소에는 ‘다리의 상태가 좋지 않다’라고만 말할 뿐, 이렇게까지 구체적인 내용을 말한 건 병원뿐이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전해졌을 가능성은 굉장히 낮았다.
“혹시…….”
그렇다는 것은, 본인이 직접 알아냈다는 쪽이 더 말이 된다. 만약 그렇다면, 어쩌면.
“치료가 가능할까요?”
어디에 가도 ‘교통사고 후유증’이라는 애매한 진단만 내리며, 별다른 조치도 받지 못했던 이 증상.
이 증상의 해결책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처음에 외모만 보고 내렸던 판단은, 방금 전의 신비한 경험으로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녀는 기대감이 담겨 있는 목소리로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사실상 접어 두고 있었던 희망을 조심스레 다시 품어 보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 질문. 반면에 돌아오는 대답은 굉장히 심플했다.
“어려울 건 없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입에 담은 한마디. 어찌 보면 성의가 없는 목소리라고도 할 수 있었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신뢰감이 갔다.
이 사람에겐 정말로 별게 아닐 수도 있겠다, 싶은.
그런 신뢰가.
‘어쩌면, 정말로…….’
정말로 고쳐질 수 있는 건가.
올림픽의 무대에, 직접 설 수 있는 건가.
평소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녀였으나, 지금은 가슴 한편이 먹먹해져 왔다. 단지 그 생각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말이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
그렇게 먹먹한 목소리로 강태한에게 부탁의 인사를 건네려던 찰나. 애써 담담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찢어질 듯 고음으로 치솟았다.
─히갸아아아악!
“…어우.”
“이 정도로 우렁찬 건 오랜만이네요.”
로비에서 카운터를 보고 있던 황 실장과 직원.
방음 시설까지 뚫고 복도에 울리는 그 비명 소리에, 두 사람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 * *
“아, 태한 씨.”
그로부터 잠시 후.
안마실에서 강태한이 밖으로 나오자, 마침 준비실에서 나오고 있던 황 실장이 말을 걸었다.
“방금 끝났어?”
“네. 마무리하고 나오는 길입니다.”
“아우, 아까는 뭐 사람 잡는 줄 알았어. 좀 살살하지, 얼마나 세게 했기에 사람 비명이 그렇게 나와?”
안마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복도까지 울렸던 비명 소리에 대한 이야기다. 그 말을 들은 강태한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뭐, 그럴 만한 상황이긴 했어요.”
혈도는 신경과 유사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로 굉장히 밀접한 위치에 있다. 그렇기에, 혈도에 자극을 가하면 높은 확률로 신경에도 자극이 간다.
그렇기에 혈도를 직접적으로 다룰 때에는… 근육을 주무르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렬한 자극이 전해지게 된다.
단순히 굳어 있는 근육만 지압해도 소리들을 치는데, 안쪽의 혈도까지 힘을 가해 교정하는 과정이었으니, 비명이 터져 나올 만했다.
“아플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뭐?”
그런 강태한의 말에 황 실장이 순간 기겁했다.
고통에 몸부림을 칠 것 같은 상황에서, 강태한은 ‘참아라’라고만 말한다. 정말 아파서 숨이 막힐 것 같으면, ‘좀 아플 수 있지만 참아라’ 정도로 말한다.
그런 강태한이 ‘아플 수 있다’도 아니고 ‘아플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면…….
그 고통은 대체 어느 정도인가?
아직 겪어 본 적이 없는 황 실장으로서는 가늠하는 것조차도 어려웠다.
“…그래서, 안마는 잘됐고?”
“예. 그야 뭐.”
강태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혈도가 뒤틀려 순환 구조에 이상이 생겼던 상황. 만약 그대로 방치해 뒀다면, 오행지체의 특성상 점점 균형이 어그러지며 더 큰 문제들을 야기했을 것이다.
다만, 그걸 고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기초적인 심공이라도 익힌 사람이라면 운기조식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었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고 곧바로 완치가 되기는 힘들겠지만…….
일주일 정도만 요양을 해도 금방 사라질 것이다. 이번에 주요 혈 자리들도 틔워 놨으니, 증상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몸의 상태도 훨씬 호전되리라.
‘그건 그렇고… 괜히 아쉽네.’
현대에서 만난 오행지체라.
마음 같아서는 가게의 안마사로 고용하고 싶은 인재다. 신체 능력과 습득 능력도 뛰어나지만, 결국 가장 뛰어난 부분은 심공(心功)에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국가 대표 양궁 선수에게 안마사를 권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여러모로 아쉬운 마음을, 일단은 접어 두는 강태한이었다.
* * *
“아으…….”
소파에 누워 있던 최성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잠시 멍하니 앉아 있던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아이, 나도 모르게 잠들었네.”
강태한이 떠나고 난 후.
그 뒤로 뭔가 기감에 깨달음을 얻은 최성현이었으나… 오랫동안 집중을 했던 반작용인지, 급작스레 피로감이 밀려 들어왔다.
그 상태로 잠깐 쉰다고 눈을 감았다가 뜬 게, 바로 지금의 상황. 그는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며 밖으로 나왔다.
“…뭐야, 성현이 너 퇴근한 거 아니었냐?”
“그러게요. 참 난감한 상황이네.”
로비 쪽에 얼굴을 내밀자마자 물어보는 황 실장의 말에, 최성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잘됐다. 안 그래도 일손이 모자랐는데.”
“…아니, 나만 보면 시킬 게 생각이 나나?”
“네가 바쁠 때만 나타나는 게 아닐까? 그러지 말고, 2번실에 있는 손님한테 차만 좀 갖다드려라.”
최성현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툴툴거리듯 말했다.
“준비실 직원분은 어디로 갔는데요?”
“배탈 나서 화장실에 있어.”
“허허, 참…….”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음을 흘리는 최성현.
하나 그러면서도 발걸음을 옮기기는 한다. 그냥 차 한잔 타서 쟁반만 나르면 되는 일이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으니까.
‘2번실이면… 태한이 손님인가 보네.’
아까 손님 받는다고 나가더니, 시간상으로 생각하면 아마 그 손님이리라. 최성현은 아직 남아 있는 졸음을 빼내듯 하품을 내뱉으며, 준비실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