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170화
“어… 페르모 가이드 3성이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게 대단히 받기 어려운 것이란 건 채은비도 대강 알고 있다.
숙박업계 종사자는 아니어도 프로 골퍼의 특성상 타지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다양한 호텔을 돌아다니게 되니까.
그녀가 알기로 페르모 3성이라면… 미슐랭 3성급 레스토랑처럼 항상 사람이 붐비고, 비성수기에도 예약이 없으면 숙박을 할 수 없는, 그런 수준의 호텔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근데 그거 호텔에만 주는 것 아니었나?’
평가를 의심하는 건 아니다. 태한 오빠의 솜씨라면 3성이 아니라 5성을 주더라도 부족할 정도였으니까.
다만 호텔들만 올라가는 가이드에 안마원이 이름을 올렸다고 하니, 살짝 의아한 생각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번에 프리미어 리그에 강주완 선수랑 고드윈 선수가 같이 올린 SNS가 화제가 되었었는데, 채은비 선수도 그곳의 단골이셨군요.”
“SNS요?”
“아, 혹시 모르고 계셨나요?”
“하하… 요즘 대회 준비에만 집중을 하다 보니.”
기자의 말에 채은비는 머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왠지 묘한 기분이었다.
페르모 가이드 이야기도 그렇긴 했지만…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의 입에서 천마안마의 이야기가, 그것도 자기보다 더 잘 아는 것처럼 나오니 굉장히 낯선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태한 오빠가 잘나간다니 기쁘기는 한데…….’
그래도 뭔가 생각했던 감동이 없어 복잡미묘하다.
‘에이, 그래도 한 일주일만 늦게 유명해지지!’
물론 누가 홍보를 부탁한 적도 없고, 그냥 자기 혼자서 떠올리고 있던 보답의 순간이었으나, 그래도 묘하게 아쉬운 느낌에 남모르게 발을 동동 구르는 채은비였다.
* * *
“흐으음…….”
이른 저녁의 천마안마.
안마실에서 침대에 누운 손님의 상태를 살펴보던 강태한은, 잠시 집중한 모습으로 침음을 흘리더니, 이내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많이 좋아졌네요.”
침대에 누워 있는 손님은 다름 아닌 최아람.
강태한의 미소 어린 목소리에, 그녀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뒤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별다른 문제는 없나요?”
“예. 확실히 노력하신 보람이 있네요.”
그 말에 최아람은 쑥스러운 듯 웃음을 흘렸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하반신이 마비되어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몸이었다. 지난 올림픽의 역도 금메달리스트이자 근육질의 스포츠 스타였으나,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기 발로 걸어 다니기는커녕 감각조차 느낄 수 없다. 원래는 이번 올림픽에 나갈 후보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바벨조차 제대로 들어 올릴 수가 없다.
사실상 자기 삶이 송두리째 엎어졌었던 상황.
그랬었던 그녀가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된 건… 모두 강태한의 덕분이었다. 말 그대로 희망이 되살아났다고 해야 할까. 그야말로 은인이었다.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저는 길만 터놨을 뿐이죠.”
다만 그녀의 말에 강태한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까지 빨리 회복한 건, 아람 씨가 노력한 결과입니다. 이렇게 몸 상태만 살펴봐도 얼마나 노력을 해 왔는지 티가 나네요.”
“하하… 그런가요.”
최아람은 엎드린 상태로 멋쩍게 웃음을 흘렸다.
칭찬에는 나름 익숙해진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곳에서 강태한이 하는 말에는 신기할 정도로 유독 쑥스러운 느낌이 드는 최아람이다.
약간 자기보다 더 높은 경지에 있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느낌이라고 할까, 대선배에게 칭찬을 받는 느낌이라고 할까… 강태한이 딱히 운동선수인 것도 아닌데, 신기한 현상이었다.
“요즘 언니분도 몸이 많이 좋아지셨더군요.”
“아, 저희 언니요?”
“예, 보람 씨요. 매주 찾아올 때마다 없던 근육이 생기고 계시던데.”
강태한이 언니의 이름을 언급하자, 최아람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자랑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언니가 진짜 열심히 하고 있죠. 원래는 그렇게 운동을 하라고 해도 안 하던 언니인데… 요새는 제가 체육관 나갈 때마다 같이 나가고 있다니까요.”
“어쩐지 근육이 붙어 가는 모양새가 꽤나 체계적이더라니, 아람 씨가 옆에서 지도를 좀 해 주신 모양이네요.”
“네. 아무래도 평소 몸을 안 쓰던 사람이 운동을 시작하면 여러모로 낯설 수밖에 없으니까요.”
최아람은 그녀의 언니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언니 최보람은 그녀보다 훨씬 예전부터 하반신 마비를 앓아 왔었다. 하나 그녀 또한 서서히 증상에 호전을 보이는 중이었고, 두 발로 걷는 것까진 무리여도 다리를 움직이는 것 정도는 가능해졌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었던 일.
이렇게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서 그런지, 그녀 또한 요 근래 운동에 맛을 붙여 꾸준히 재활 훈련에 동참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아. 너무 많은 걸 받았는데, 진짜로.’
사실상 두 자매를 살려 낸 것이나 다름없다. 거의 기적을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는… 어디 수상한 종교의 구세주라 해도 충분히 믿을 수 있을 정도다.
다만 그렇기에 최아람은 약간 난처한 기분이었다. 그녀가 오늘 이곳에 찾아온 것에는, 몸 상태를 확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또 다른 용건도 있었으니까.
‘무슨 염치로 여기서 또 부탁을 드린다냐…….’
그 용건은 다름이 아니라 올림픽 국가 대표 팀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지난번에 만났던 우대석 팀장에게 부탁받았었던 일말이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국가 대표 선수들 몇몇이 후유증을 앓고 있고, 그 때문에 훈련과 컨디션 관리에 지대한 영향이 있는 상황.
최아람 자신도 운동선수이자 한때 올림픽에도 나갔던 입장이었기에, 그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또한 안타까웠다.
그렇기에 그 자리에서는 선뜻 ‘내가 안마사 선생님 한 분을 소개해 드리겠다’라고 말해 놨었는데…….
막상 말을 꺼내자니, 괜스레 죄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막말로 강태한에게는 이미 너무 많은 걸, 그것도 받기만 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안마를 받을 때마다 돈을 내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말 그대로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또 부탁을 드려야 한다니.
뭔가 면목이 없기도 하거니와, 최아람 스스로가 살면서 베풀면 베풀었지, 아쉬운 소리를 했던 적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 더더욱 꺼려졌다.
“아람 씨.”
하나 그 고민이 너무 길어졌던 탓일까.
“네?”
“혹시 따로 할 말이 있으신 것 아닙니까?”
대놓고 얼굴에 티가 난 나머지, 강태한이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순간 최아람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 그… 다른 게 아니고요.”
뭐라 말을 꺼내야 할까.
처음 가게에 들어올 때 생각해 놨던 말이 있었는데, 당황한 탓인지 좀처럼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어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올림픽 볼 때 어느 팀 응원하세요?”
“네? 올림픽이요?”
뜬금없는 질문에 저도 모르게 되묻는 강태한.
대답은 당연히 정해져 있었다.
“그야, 뭐… 한국 팀을 응원하겠죠?”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 팀을 응원하는 게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물론 예외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강태한에겐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다.
“아하하… 아니, 제가 말하려는 건 그게 아니고… 이번에 국가 대표 팀에 문제가 좀 생겼는데, 혹시 선생님이 도움을 좀 주실 수 있으실까 해서요.”
자기가 생각해도 이상한 질문을 꺼내 놨지만, 그래도 헛소리를 한 번 꺼내 놓은 덕분인지 그다음에는 자연스레 본론을 입에 담는 최아람이다.
“흐음…….”
그녀의 말에 강태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요 며칠 동안 꽤나 바빴던 강태한이다. 페르모 가이드인가 뭔가에 이름이 올라가고, 이것저것 할 일들이 많아졌기 때문.
“일단 이야기는 들어 볼까요.”
다만, 그렇다고 자기 호기심까지 억누를 필요는 없다. 국가 대표 팀이라. 강태한은 관심이 생긴 얼굴로 답하며, 최아람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 * *
“후우우…….”
과녁을 바라본 채, 한 번 길게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 상태로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힘은 활을 붙잡고 시위를 잡아당길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몸에 들어가 있는 힘을 날숨과 함께 천천히 몸에서 빼낸다.
그렇게 심신을 가다듬고 몸이 가벼워진 것이 느껴지면, 조용히 주위 환경을 확인한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것을, 고요하다면 고요한 공기를 가만히 선 채로 느낀다.
여기까지 마치면 비로소 활을 쏠 준비가 되는 것.
얼핏 꽤나 복잡해 보이지만, 익숙해지면 컨디션에 따라 몇 초 만에 끝날 때도 있을 정도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아.’
하나, 그리 어렵지 않은 그 과정에서 그녀는 몇 분 동안 정체되어 있는 중이었다.
정신을 집중하는 동안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탱해 줘야 하는, 말 그대로 듬직한 주춧돌의 역할로 중심을 잡아 줘야 하는 오른 다리.
이곳에 들어간 힘이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아니, 힘만 빠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욱신거리는 미약한 통증마저 느껴진다. 다름 아니라 지난번 사고의 후유증이 남아 있는 부위였다.
그나마 이 정도는 양반이었다.
그 상태가 오랫동안 이어지자, 과하게 경직되어 있던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시위에 걸어 놨던 화살을 그냥 빼낸 채, 터덜터덜 벤치를 향해 걸어갔다.
“이번에도 그래?”
“네.”
대한민국의 양궁 선수이자, 압도적인 기량으로 국가 대표의 자리에 오른 선수인 정가인. 그녀는 굳이 길게 답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짧은 대답과 함께 간결하게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것 같더라.”
실제로 긴 대답은 필요 없었다.
김 코치는 그녀의 다리를 내려다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군살 없이 단단해 보이는 다리는, 그 근육이 무색할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조금 쉬겠습니다.”
정가인은 담담한 말투로 그렇게 말하고는 본인의 오른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간간이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이, 욱신거리는 통증이 꽤나 심해진 듯했다.
“오늘 병원에서는 뭐라 그랬어?”
“평소랑 똑같았어요.”
“…따로 뭐 조치한 건 없었고?”
정가인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의 반응에 김 코치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고는, 들고 있는 종이에 뭔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힘들지도 모르겠는데.’
지난번 사중 추돌 사고의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김 코치는 그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사고의 규모가 컸기에 최악의 경우까지 상상했지만, 다행히 심각한 부상을 입은 인원은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다만 거기서 안도를 하는 건 너무 일렀던 모양이다.
겉으로 보이는 외상은 없었으나, 선수들에게 보이지 않는 후유증들이 남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는 양궁 선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 선수는 오랫동안 집중을 하면 시야가 흐려지고, 한 선수는 매일 밤 가슴의 압박감을 호소하며 잠을 설친다.
그리고 본래 촉망받던 이 선수, 정가인은 제대로 준비 자세도 취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집중을 하면 한쪽 다리가 지나치게 경직되는 탓이다.
물론 그냥 화살을 쏘는 것 자체는 가능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화살을 쏘는 건 힘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제대로 집중해서 맞히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딱히 병원에서 취해 줄 수 있는 조치도 없는 것 같은 모양이고…….’
이곳, 국가 대표 선수들이 모여 있는 진천 선수촌에는 선수들을 위한 병원이 마련되어 있다.
뭐, 국내 최고의 의료진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선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스포츠의학 쪽에 조예가 깊은 이들로 구성되어 있는 의료진이다.
하나, 그곳에서도 별다른 처방을 내리지는 못했다.
수차례 검진을 해 보고 촬영을 해 봐도, 나오는 말은 그냥 ‘근육에 교통사고의 후유증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정도. 사실상 알 수 없는 증상이란 뜻이다.
물론 이곳의 진단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오늘은 서울의 다른 병원에 다녀왔던 참이다. 이쪽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랬던가. 하나 이번에도 별다른 성과는 없었던 모양이다.
“이쯤 되면 자연치료에 기대는 수밖에 없나…….”
자연치료. 말 그대로 몸이 알아서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알 수 없는 후유증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시간에 맡기는 치료법이라고 할까.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이들은 올림픽 국가 대표들이고, 올림픽까지 남아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