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168화
캉!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공. 쭉 뻗어져 나가던 공은, 머지않아 멀리 떨어진 잔디밭 위로 떨어졌다.
“잘 치시네요.”
그러자 바로 옆에 서 있던 강태한이 조그맣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손으로 햇빛을 가리고 공이 떨어지는 걸 지켜보고 있던 유세아는, 조금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에이, 잘 치기는요. 태한 씨야말로, 약간 봐주면서 하는 느낌이 나는데요?”
“…그런가요?”
강태한은 말을 애매하게 흐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예전부터 가끔 느끼는 부분이었지만… 확실히 촉이 좋다. 실제로 유세아가 치는 것에 맞춰 타수를 조절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그 부분까지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기에, 강태한은 스리슬쩍 이야기의 방향을 돌렸다.
“사실은 아까 골프를 치자고 했을 때, 조금 의외라고 생각하기도 했었거든요.”
숙소에 짐을 풀어 놓고 가볍게 산책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중, 유세아는 앞에 탁 트여 있는 골프장을 가리키며 ‘기왕 온 거 골프도 쳐 보지 않을래요?’라는 말을 꺼냈었다.
그녀의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던 강태한.
다만 평소 골프를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고, 유세아도 딱히 별다른 언급은 없었기에 체험에 가까운 느낌이 되지 않을까 했었는데…….
“근데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하지만 생각보다 공을 치는 유세아의 솜씨가 제법이었다. 물론 목표 타수보다 아래로 치는 언더파는 무리지만, 그래도 괜찮은 타수를 노려 볼 정도.
“하하… 사실은요.”
차례를 마치고 다음 차례인 강태한이 공을 향해 걸어가고 있던 도중. 유세아는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예전에 한번, 태한 씨가 골프치러 간다고 했던 적이 있었잖아요. 아버지랑 간다고 하셨던가, 그랬었던 것 같은데.”
“으음… 그랬었죠.”
언제를 말하는 건지 알 것 같다.
조원호 아저씨한테 연락해서 아버지와 같이 골프 연습장에 같이 갔었던 날이다. 거기서 강태한은 채은비를 만났었고, 아버지는 조원호 아저씨랑 신기할 정도로 친해져서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 오고 있었다.
“근데 그게 왜요?”
“그때 아는 언니 따라다니면서 연습 좀 했었거든요……. 태한 씨가 다음에 골프장 간다고 하면 따라가려고.”
유세아는 괜스레 멀리 있는 숲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냥 말하기에는 상당히 쑥스러운 이야기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때는 강태한이랑 정식으로 사귀지는 않은, 만난 지 얼마 안 된 때였으니까 말이다.
솔직히 말해 골프에 그렇게 큰 관심이 있지는 않았지만… 관심 있는 사람과 공통된 관심사가 생기면, 당연히 만나는 횟수도 늘어나는 법이지 않은가.
다만 왠지 어설픈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골프를 좋아하는 지인에게 밥까지 사 주면서 연습장에 필드까지 따라다녔었던 유세아였다.
“근데 막상 이제 골프에 좀 자신이 생기고 나니, 태한 씨가 간다는 말을 안 하더라고요. 후후후.”
여러모로 쑥스러운 기억이긴 했지만, 지나고 난 지금 생각해 보면 나름 재밌는 이야기다. 유세아는 시선을 돌린 채로 웃음을 흘렸다.
“다음부턴 종종 오면 되겠네요.”
그런 유세아의 말에 강태한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골프에 대한 흥미가 다소 식었던 것은 사실이다. 스포츠는 이기기 위해 노력을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인데, 강태한은 오히려 힘 조절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다만 스포츠를 목적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그냥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걸 중점적으로 본다면… 이것도 나쁘지 않다.
탁 트인 잔디밭의 여유로운 풍경을 보면서, 강태한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도 들고… 그리고 골프장은 다른 사람의 눈도 거의 없으니까요.”
“아… 그러게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강태한. 다만 그런 강태한의 말에, 유세아의 얼굴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어딘가 씁쓸해하는 모습이라 할까.
‘마음대로 돌아다니기가 힘들긴 하지…….’
유세아가 속해 있는 엔터는, 아이돌 그룹들을 제외하면 개인 사생활에 굉장히 관대한 편이다. 게다가 유세아는 신인 시절 회사 쪽에서 반쯤 방치해 놨던 전적이 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여배우치고 자유롭다는 의미지, 정말로 마음 편하게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괜스레 구설수에 오르내려서 좋을 일은 딱히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강태한과 만나는 장소도 비교적 한정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은 되도록 피해야 하고, 어딜 가든 선글라스 정도는 필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강태한이 쉬는 날이 주말이 아닌 평일이라, 사람이 적은 날에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 정도일까.
덕분에 캠핑을 가거나 펜션에 묵는 정도는 별문제가 없지만… 그래도 평범한 커플들처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걱정하지 않고 다니고 싶은 것이 유세아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다른 사람들한테 자랑도 좀 하고…….’
더군다나 매번 강태한에게 배려를 받는다. 그렇게 신경을 써 주는 것이 고맙지만, 때로는 미안한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굳이 그 원인을 찾는다면, 자기가 여배우인 것이 그 원인이거늘.
“세아 씨?”
“예?”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그런 유세아의 안색을 살펴본 강태한이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유세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아뇨, 그냥 날씨가 좋아서 하늘을 쳐다봤는데, 햇빛 때문에 눈살이 좀 찌푸려졌었나봐요.”
자연스러운 미소로 답하는 유세아.
어차피 고민한다고 해서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말한다고 해도 태한 씨에게 괜한 부담만 더해 줄 뿐. 그렇기에 유세아는 여태 그래 왔듯, 굳이 말을 꺼내지 않고 삼키기로 했다.
‘언젠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때가 오기를.’
그런 희망을 조심스레 떠올려 보면서.
* * *
골프를 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탁 트인 평야라고 해도 애당초 산속에 있는 지형. 크기는 일반적인 골프장보다 훨씬 작은 편이고, 코스의 수도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생각보다 재밌었네요!”
다만 오히려 그렇기에 가볍게 즐기기에 좋다. 연인이나 가족들끼리 놀기 좋다고 할까. 애당초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고 말이다.
“사실 언니한테 배울 때는 별 재미가 없었거든요.”
“그러게요. 저도 저번에 쳐 봤을 때보다 오늘이 더 재밌었네요.”
“여기, 태한 씨의 지인분이 초대한 거라 하셨죠?”
“예. 제 지인이라고 해야 하나, 아버지의 친구분이라고 해야 하나…….”
처음에는 강태한의 지인이었지만, 이제는 아버지의 친구라는 느낌이 더욱 강했다.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으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덕분에 이런 시간도 보내고, 감사한 일이네요.”
즐거워 보이는 유세아의 목소리에, 강태한은 빙긋 미소를 짓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런 두 사람은 각각 뭔가를 손에 든 채로 복도를 걷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 펜션의 핵심적인 시설 중의 하나, 온천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유세아의 손에 들린 것은 다름 아닌 갖가지 세면도구들. 과연 여배우라고 할까, 온천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꽤나 본격적으로 갖춰져 있는 듯한 느낌이다.
반면 옆에 있는 강태한은…….
“근데, 태한 씨는 그것만 있으면 돼요?”
“예? 뭐… 비누나 샴푸는 안에 있지 않나요?”
유세아의 말에 강태한은 손에 쥔 플라스틱 곽을 가볍게 흔들며 답했다. 마트에서 파는 여행용 양치 도구. 치약과 칫솔만 들어 있는, 딱 기본적인 세트다.
유세아가 챙겨 가고 있는 짐과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고 할까. 그를 지켜보고 있던 유세아는 내심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면, 딱히 피부 관리 같은 건 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난번 강태한의 집에 갔을 때도, 딱히 화장품 같은 것들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기본적인 스킨, 로션까지도 말이다.
하나 그런 것치고 강태한의 피부는 굉장히 깔끔한 편이었다. 어지간한 배우들과 비교를 해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니 오히려 더 나을 정도로 말이다.
‘흐으음…….’
유세아는 살짝 고개를 돌려 강태한의 얼굴을 새삼스레 살펴보았다. 확실히, 잡티 하나 없이 깔끔하다. 무심결에 손가락으로 만져 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안마가 피부 관리에 좋다는 게 사실인 건가…….’
그뿐인가. 깔끔한 피부는 얼굴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옷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저 안에 자리 잡혀 있는 탄탄한 근육들 또한 얼굴 못지않은 수준이다. 매끄러운 촉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 품에 꼬옥 안기면, 단단하면서도 탄력적인 느낌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데, 그 안에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세아 씨.”
“아, 네.”
“이쪽으로 오세요.”
생각에 깊이 빠져들고 있던 유세아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생각이 깊어진 나머지 집중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따라 좀 멍하시네. 골프 때문에 피곤하신가?”
“하하…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유세아는 괜스레 시선을 피하면서 말했다. 떠올렸던 생각의 내용들 때문인지, 괜히 머쓱해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 근데 지금 여기에 손님이 저희밖에 없다고 했었죠?”
“그렇죠.”
펜션은 공사가 끝났고 시설을 이용하는 것도 가능해졌지만, 아직 정식으로 오픈을 한 것은 아니다.
영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필요한 절차들이 남아 있다고 했던가. 때문에 지금은 가오픈처럼 지인들 위주로 초대를 하고, 미비한 부분들을 체크하는 정도만 진행하고 있었다.
“그럼 사실상 전세를 내고 쓰는 셈이겠네요.”
후후. 유세아는 살짝 들뜬 목소리를 냈다.
펜션에 온천이 있는 것도 들뜰 만한 일인데, 그걸 혼자서 독점할 수 있다니. 설레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 온천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두 사람을 발견한 직원이 말을 걸었다.
“엇, 지금 온천 쓰시려고요?”
“예. 그런데요.”
“지금 한쪽이 공사가 덜 끝나서, 쓸 수 있는 탕은 하나뿐인데…….”
탕은 기본적으로 두 개로 나뉘게 되어 있다.
남탕과 여탕. 하나 직원의 말에 따르면… 지금은 둘 중에 한 곳만 완성이 된 상태라는 것이리라.
“으음, 그렇군요.”
그 말에 강태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원호 아저씨는 완공이 된 상태라 했었는데… 아무래도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어?’
한편, 같이 그 말을 들은 유세아는 그 잠깐 사이에 여러가지 생각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럼 같이 들어가야 되나?’
그래도 되는 건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지만, 못할 것까진 없다. 연인 사이인데 상관없는 부분이지 않은가?
이미 진도도 다 나간 상황인데!
하나… 왠지 그래도 같이 온천에 들어가는 건, 살짝 영역이 다른 듯한 느낌이다. 새삼 부끄럽다고 할까, 선이 다른 느낌이라고 할까.
하나 그녀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빠르게 결론을 내리고,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려는 순간…….
“아뇨. 이틀 전에 공사 마무리 다 끝냈잖여.”
“어, 그래요?”
“그려, 그려. 공사도 다 끝났고, 내가 어제 돌덩이도 다 닦아 놨어. 지금 바로 씻으러 들어가도 괜찮어.”
뒤쪽에 있던 다른 아주머니 한 분이, 사투리가 묻어 나오는 말투로 정정해 주듯이 말했다. 그녀는 유세아를 바라보며 덧붙이듯이 재차 입을 열었다.
“탕은 두 개니까, 편하게 이용혀.”
“그렇다고 하네요. 죄송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빙긋 미소를 지으며 답하는 유세아. 그 말마따나 고민할 거리는 사라졌지만… 왠지 모르게 허탈해하는 기색이, 그녀의 얼굴에 남아 있었다.
* * *
한편, 강태한이 유세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이.
천마안마의 아래층에 위치해 있는 라이너 호텔, 그곳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겨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내부 평가로만 올라와 있던 페르모 가이드의 한국 평가 결과가 정식으로 갱신되어 공식 사이트에 공개되었기 때문.
“곽 매니저님!”
“왜, 왜!”
“프론트 쪽에 인원 좀 더 늘려 주셔야겠는데요!”
“다른 쪽에도 인력 남는 게 없어! 어쩔 수 없다. 그냥 못 받는 문의들은 흘리라고 해!”
라이너 호텔의 평가는 기존에 나왔던 대로 3성.
그에 따라 호텔에 들어오는 문의도 단번에 몇 배로 띄워졌으며, 체감상으로는 거의 열 배 이상은 되는 느낌이었다.
“대비를 한다고 했는데도 이 모양이니, 원.”
페르모 가이드의 내부 평가가 먼저 나오는 이유는, 다른 평가원들의 이의를 받기 위해서도 있지만, 해당 호텔에 미리 준비 기간을 주는 느낌도 있다.
사람이 많아지는 것에 대비하는 기간이라고 할까.
총지배인인 곽상영도 그건 대강 짐작하고 있었고, 인원을 확충하고 미리 업무 체계를 개선시키는 등, 나름의 대책을 갖춰 놨었지만… 그럼에도 감당이 안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후우우.”
그리고 이 영향을 받는 건 천마안마도 마찬가지.
카운터에 앉아 있던 황 실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아침부터 쉴 새 없이 울리고 있는 전화기의 코드를 슥, 뽑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