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167화
“그런 일이 있었어요?”
“…응. 뉴스에도 나오긴 했었는데, 몰랐나 보네.”
“저야 뭐… 요즘 집이랑 체육관만 왕복하니까요.”
우 팀장의 말에 최아람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답했다. 요 근래 재활 운동에 집중하느라, 다른 쪽에는 거의 아무런 신경도 못 쓰고 있었다.
“아냐. 그래도 중상을 입었다거나 당장 목숨이 위험하다거나 했던 사람은 없었어. 그래서 뉴스에서도 크게 다뤄지지는 않았고.”
“그건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렇지. 다행이었지.”
최아람이 괜스레 미안해하는 기색을 띄자, 우 팀장은 충분히 모를 수 있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그러자 최아람의 얼굴에 침울한 기색이 그나마 사그라졌다.
“사고가 어떻게 났는데요?”
“나도 현장에 있지는 않았는데… 빗길에서 달리고 있다가 한 번 부딪치고, 뒤에서 연달아 들이받은 모양이야. 사중 추돌로 말이지.”
“아이고…….”
그 정도면 크게 다친 사람이 없는 게 용하다. 최아람은 의자의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짧게 탄식을 터트렸다.
“진짜 그나마 다행이었네요.”
“다들 운동선수라 좀 튼튼해서 버텼을 수도 있지.”
우 팀장은 시덥지 않은 농담을 입에 담으며 깍지 낀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러고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씁쓸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근데… 그래도 조금씩 후유증이 남아 있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 정도가 심하든 덜하든, 사고가 났던 인원들은 예전 같은 성적이 안 나오고 있나 봐.”
충분히 그럴 만하다.
올림픽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스포츠 대회라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물론 종목에 따라 더 권위 있는 세계 대회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가장 상징적인 대회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것은, 전 세계의 선수들과 경쟁을 한다는 것. 그렇기에 자연스레 대한민국에서 제일 뛰어난 선수들이 뽑히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거기에 뽑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메달을 따내기 위해 또다시 오랜 기간 실력을 갈고닦는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올림픽 선수라는 것은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갈고닦아 놓은 실력을 실전에서 온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훈련과 함께 컨디션 관리에도 힘을 쓰는 기간이다.
말하자면 칼날은 이미 날카롭게 벼려져 있고, 그 날카로운 날이 상하지 않도록 관리에도 힘을 써 줘야 하는 시기인 셈이다. 한껏 갈아 놓은 칼날은, 약간의 충격에도 그 날이 상해 버리니까 말이다.
‘그런 와중에 교통사고가 난다면…….’
당장에 심각한 부상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몸 내부에는 그 충격의 영향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사고가 난 직후에는 멀쩡했다가, 한참 뒤에 통증이나 후유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왕왕 있으니까 말이다.
“…혹시 누구누구 사고가 났는지 알 수 있나요?”
“양궁이랑 펜싱 그리고 태권도.”
“허어, 남녀 둘 다요?”
우 팀장은 대답을 하는 대신 한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최아람의 입에선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하나같이 메달을 노려볼 만한 효자 종목들이었던 것이다.
양궁은 뭐 따로 말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고, 태권도는 종주국으로서 꾸준히 메달을 확보해 오는 분야.
그리고 펜싱은 국내에서 비인기 종목에 위치에 있으면서도 최근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들을 뽑아내기 시작한, 나름의 효자 종목이다.
“뭐 단체로 이동 중이었나요?”
“잠깐 행사가 있어서 다 같이 서울에 갔다가 진천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지.”
하필 그런 상황에서 사고를 당했던 것.
최아람은 잠시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기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확실히 안 좋기는 하네요…….”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사실상 준비 기간은 끝이 난다. 재활 훈련에 컨디션 관리까지 끝마치기는 뻑뻑한 시간이며, 후보 선수가 있다 해도 애로 사항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양궁이랑 태권도는 선수 풀이 갖춰져 있기에 어느 정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도 있겠지만, 펜싱과 같은 비인기 종목은 그러기가 매우 힘들다.
본인도 비인기 종목 중 하나인 여자 역도를 했던 사람이기에,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 잘은 몰라도 내부에선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일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렇지. 근데 선수촌 내부 병원에서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며 기본적인 물리치료만 반복하는 중이고, 뭐 다른 걸 해 보려 해도 위에선 예산 얘기만 하고…….”
에휴. 우 팀장은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팀장이라고 해 봤자 별다른 힘도 없는 그의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 가는 상황이었다.
“…근데 그건 그렇고, 우 팀장님은 한결 같네요.”
그러던 와중, 최아람이 슬쩍 말을 걸었다.
“솔직히 팀장님 업무는 아니잖아요.”
우대석. 그는 대한체육회에 소속되어 있으며, 그곳에서 올림픽 국가 대표 운영 팀을 담당하고 있다.
아예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는 각 팀들이 개별적으로 하는 것이지, 그가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는 부분이다.
“…그렇지. 하지만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우 팀장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최아람은 길게 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우팀장은 현역 시절, 올림픽 출전이 예정되어 있던 수영 선수였다. 다만 다리의 부상 때문에 출전은 하지 못했고 선수 생활도 거기서 끝나 버렸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예전부터 선수들 입장에서부터 배려를 해 주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선수들 사이에서 평판이 아주 좋은 관계자 중의 한 명이다.
그리고 최아람 또한 그런 배려를 받았던 사람 중의 한 명. 그렇기에,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제 재활에 큰 도움을 주신 분이 한 분 계시긴 해요. 아니, 도움을 주신 수준이 아니라 그냥 불가능했던 걸 가능하게 만들어 주셨다고 할까.”
“허허, 대단하신 모양인데?”
“아니,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요.”
최아람의 말을 과장이라 생각하며 웃음을 흘리는 우 팀장. 하나 그 반응을 정정하듯, 최아람이 한층 진지해진 목소리로 강조하듯이 말했다.
“…그, 그래?”
“다만 제가 선생님한테 도움만 받아서, 이번에도 부탁을 들어주실지는 모르겠는데…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 예약을 잡으면 얼추 일정이 맞기는 하겠네요.”
살짝 당황한 목소리로 답하는 우 팀장. 그러거나 말거나, 최아람은 턱에 손을 올린 채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우 팀장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무슨 분이신데? 어디 교수님이신가?”
“아뇨? 안마사이신데요.”
“…안마사?”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었던 내용에, 우 팀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 * *
“으으음…….”
최성현은 손을 멈춘 채, 신중한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한동안 그렇게 서 있던 그는 결심을 마친 듯, 손으로 짚고 있던 부분을 슬쩍 눌러 보았다.
“…실장님.”
“왜?”
“어때요?”
그가 누른 곳은 양쪽 어깨의 안쪽 깊이에 위치해 있는 대저(大杼)혈.
강태한의 말에 따르면, 이곳을 압박하면 팔 전체의 근육을 자극할 수 있다는 모양이다. 단전에서부터 올라온 생기가 팔로 흘러 들어가기 전에 한번 멈췄다가 가는 지점이라나.
만약 예전에 그런 말을 들었다면 ‘그게 무슨 소리냐’라고 했을 것이다.
대저혈이라는 혈 자리 자체는 안마사로서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저 어깨의 근육들이 모이는 지점으로 알고 있었을 뿐이지, 생기라는 추상적인 개념과는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지금의 최성현은 그 말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 그 또한 체내에서 혈도를 따라 흐르고 있는 이 생기의 흐름을, 대강이나마 읽어 낼 수 있었으니까.
“그냥 시원한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그걸 실전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큰둥하게 답하는 황 실장의 말에 최성현은 보채듯이 물었다.
“아니, 약간 평소랑 다른 거 없어요?”
“평소랑?”
“시원함의 정도가 다르다, 팔 전체가 시원하다, 막혀 있던 게 뚫린 것 같다… 뭐 그런 거요.”
흐음. 최성현의 말에 황 실장이 잠시 눈을 감았다. 어깨의 느낌을 좀 더 세밀하게 느껴 보려는 듯한 반응. 하나 그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딱히 그런 건 없는데?”
“에잉.”
황 실장의 말에 최성현은 혈을 짚었던 손을 떼더니, 다시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다시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애초에 어깨에 혈 자리 하나 눌렀다고 그런 효과가 나오긴 힘들지. 태한 씨나 가능한 거 아닌가?”
“그러니까요.”
강태한은 다른 안마사들과 비교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가끔 보면 ‘안마로 이런 것도 가능한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얼마 전, 최성현은 강태한의 비밀을 알아냈다. 바로 몸 안에 흐르는 혈도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것을 이용해 안마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제 자신도 같은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
그 또한 기감을 얻었고, 강태한의 도움을 받은 이후로 그 감각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러니 자기도 이제 강태한과 같은 솜씨들을 보일 수 있게 될 것이라,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마냥 쉽지만은 않구만.’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지금.
시간이 지나면서 이 새로운 감각에도 나름대로 익숙해졌고, 이해도 비교적 깊어졌다. 하나 그럴수록 드는 생각은, 이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기감이 트이고 기를 인지할 수 있게 된 것은… 말 그대로 시작에 불과했다. 걸음마를 뗀 것도 아니고 이제 막 기어 다닐 수 있게 된 수준이라고 할까.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선, 훨씬 더 예민한 감각과 세밀한 솜씨가 필요했다. 그리고 최성현은 아직 두 가지 모두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그렇다고 얻은 게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다.
보이는 게 더 많아진 만큼 문제를 파악하는 시야도 넓어졌고, 분석하고 조치할 수 있는 능력도 한층 더 올라갔다. 적어도 안마사로서는 눈에 띄는 성장을, 아니, 진화를 이뤄 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갈 길도 같이 멀어졌다고 해야 할까.’
하나 보이는 게 더 많아진 만큼, 자신의 부족함도 훤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아득하게 높은 곳에 있는 강태한의 경지도 함께 말이다.
모르고 있었을 때도 막연한 목표였었는데, 지금은… 아예 아득히 떨어져 짐작도 가지 않을 정도다. 하늘에 붙어 있는 줄 알았던 별이 저 우주 끝에 있다는 걸 깨달은 느낌이라고 할까.
“뭐가 그렇게 침울하냐?”
“왜요. 침울해 보여요?”
“안마하다 말고 가만히 멈추니까 그러지.”
침대 위에 엎드려 있던 황 실장은 잠시 상체를 일으켜 뒤쪽을 쳐다봤다. 하나, 최성현의 얼굴을 살펴본 그는 곧 실소를 흘리며 다시 엎드렸다.
“침울한 게 아니었구만.”
걱정과 달리 빙긋 미소를 짓고 있는 최성현의 모습.
툭 까놓고 말해, 요 근래 최성현은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안마사로서 익힐 수 있는 요령과 기술의 한계를 말이다.
물론 꾸준히 강습은 받고 있었고 계속 기술에 발전은 있었지만… 이걸 아무리 배워도 강태한처럼은 될 수 없다는, 그런 확신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완전히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된 것.
비록 그 길이 너무나 막연하고 끝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발전해 나갈 수 있다. 기존에 한계라 생각했던 부분을 뚫고 나갈 수 있다.
“침울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물론 아직은 미흡하고 부족하다. 벌써부터 벽에 부딪힌 느낌도 든다. 하지만, 그래도 아예 갈피도 잡지 못하고 있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낫다.
“짜식, 괜히 걱… 끄억!”
“어, 방금 느낌 왔어요?”
피식 실소를 흘리던 황 실장. 그러다 순간 화들짝 놀라며 왼팔을 감싸 쥐었다. 최성현이 왼쪽 어깨의 대저혈을 누르는 순간이었다.
“…오, 온 것 같은데?”
“그럼 여기도 이쯤인가?”
“그어억!”
곧바로 오른쪽 대저혈도 눌러 보는 최성현. 그러자 이번에도 황 실장은 똑같은 반응을 보이더니, 아예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프잖아!”
“태한이한테 받을 때랑은 느낌이 많이 달라요?”
“달라. 뭐라고 해야 되나… 부드러움이 다르다? 자극이 너무 거친 느낌이다?”
흐음.
황 실장의 말에 최성현은 잠시 침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실전에 활용하기에는 좀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해 보였다.
* * *
한편, 강태한은 차를 운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산 안쪽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
인적도 딱히 느껴지지 않고, 마치 숲 사이에 도로가 뚫려 있는 듯한 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하지만 거기서 조금 더 들어가고, 숲속을 빠져 나오니.
“우와아아!”
이윽고 모습을 드러내는 탁 트인 평야.
깔끔하게 정돈되어 쫙 펼쳐진 골프장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고, 그다음으로 옆에 늘어서 있는 펜션들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온다.
약간 동화 같은 데서나 나오는 이상적인 별장의 모습을 딱 떼어 옮겨 놓은 듯한 광경이라고 할까.
“정말 좋네요, 여기!”
그 광경에, 조수석에 앉아 있던 유세아가 거듭 감탄을 터트렸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강태한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요. 저도 처음 와 보는 건데.”
대전 유성구에 위치해 있는 골프장과 펜션.
한참 공사가 진행되고 있던 중에도 제법 풍경이 볼만했는데, 공사를 마치고 이렇게 정리되고 꾸며진 모습을 보니, 그때보다 몇 배는 더 괜찮은 느낌이다.
“약간 외국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그러고 보니 제가 말 안 했던 것 같은데…….”
주차장에서부터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방팔방을 둘러보는 유세아. 그런 그녀에게, 강태한은 뒤늦게 생각난 듯 덧붙여서 말했다.
“여기, 온천도 있어요.”
다름이 아니라, 지난번 강태한이 직접 뚫어 줬던 바로 그 온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