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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61화 (161/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161화

“어, 그래. 성현이구나.”

잠시 동안 흐르는 정적.

그 정적 속에서, 최주헌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한 반응을 보였다. 하나 속으로는 내심 당황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야 물론, 최성현도 여기서 일을 하고 있으니 그가 찾아오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사실 이 가게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라고 해 봤자 아들 최성현과 아들 친구인 강태한, 두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그가 당황한 것은… 아들이 자길 만나는 걸 꺼려 하고 있다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야 그럴 만도 하다. 칭찬 한마디 제대로 해 준 적 없고, 만날 때마다 잔소리만 늘어놓는 아버지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어제만 해도 ‘오늘은 먼저 이야기를 좀 들어 주자’라고 그렇게 다짐을 했었는데, 그럼에도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잔소리만 늘어놓았을 뿐이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서 온 거냐?”

당장 지금만 봐도 그렇다.

아들이 먼저 자길 찾아온 상황에 내심 기뻐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딱딱한 말이 튀어나온다.

좀 더 부드럽게 말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머리로는 그렇게 해야 한다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몸에 배인 행동들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아뇨. 안마 좀 해 드리러 왔는데요.”

하나, 최성현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원래라면 여기서 최성현도 살짝 가시 돋친 반응을 보이고, 첫 단추부터 살짝 어긋난 상태로 이어지는 것이 그들의 대화 패턴이었는데… 지금의 최성현은, 능청맞은 표정으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안마사가 안마실에 안마를 하러 들어오지, 뭐 하려고 들어오겠어요.”

“그건… 그렇구나.”

“그렇죠?”

최성현은 침대 쪽으로 가까이 걸어오면서 그렇게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최주헌은, 별다른 말없이 엎드려 베개 위에다 팔을 포개고 고개를 숙였다.

최성현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그의 등 부근에 슬쩍 양손을 올려놓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손 한번 ‘슥’ 올려서 몸 전체의 상태를 훑어보고, 온기도 불어넣고 하는 것은 최성현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건 오직 강태한에게만 가능한 일.

하나 그렇다고 아무런 소용이 없는 건 아니다.

이런 식으로 근육의 상태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으니까.

최성현은 등에서부터 시작해 양쪽 어깨, 옆구리, 허리 순으로 차례차례 주요 부위들을 가볍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 손길에서 나름 기교가 느껴진 덕분일까.

아직 제대로 힘이 들어간 건 아니었지만, 벌써부터 제법 시원한 느낌이 오고 있었다.

‘…생각보다도 제대로 된 느낌인걸.’

장인은 사소한 부분부터 다르다는 말이 있다.

최성현의 안마를 받던 최주헌은 문득 그 말을 떠올렸다. 아직 본격적인 안마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것만 봐도 아들 녀석의 솜씨나 마음가짐 같은 것은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아까 보니, 몸도 꽤나 듬직해져 있었지.’

예전부터 스포츠를 좋아하고 잘 놀던 녀석인지라 비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렇다고 몸이 좋냐 하면 그건 또 애매했다.

그냥 좀 마른 느낌이라고 할까.

하나 지금 느껴지는 인상은… 좀 달랐다. 최주헌은 슬쩍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최성현을 쳐다봤다.

어깨는 딱 벌어져 훨씬 넓어져 있었고, 얼핏 얇아 보이는 팔도 군살 하나 없이 근육으로 이뤄져 있었다. 딱 봐도 짧은 시일 만에 만들어지는 몸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진지하게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더니.

아무래도 마냥 빈말은 아닌 모양이다. 평소 아들의 가벼운 모습만 보아 왔던 최주헌에게, 이건 꽤나 의외의 모습이었다.

“…확실히, 허리 쪽이 많이 안 좋으시네요.”

“뭐 이 나이에 안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

한편, 유독 허리 부근을 유심히 살펴보던 최성현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살짝 씁쓸함이 담겨 있는 목소리. 그 말에 최주헌은 일부러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반응했다.

자식들한테 부드러운 아버지는 못 되었지만…….

그래도 자식한테 짐이 되거나 걱정을 끼치는 아버지는 되지 말자. 최주헌은 예전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고, 이것만큼은 잘 지키고 있다고 자부했다.

적어도 아직까진 자식들 앞에서 앓는 소리 한번 낸 적 없었으니까.

“어깨도 많이 안 좋으시고요.”

“어제 집 밖에서 자서 그런가, 잠자리가 조금 불편하더라고. 그래서 그런가 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아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를 얼버무리는 최주헌.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최성현은 저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다 보이는데.’

이미 직접 만져 보고 확인한 내용인데도 굳이 부인하는 모습. 그 모습에 최성현은 새삼 깨달았다. 자기 아버지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고.

그리고 그가 왜 이러는지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사실은, 왜 만날 때마다 잔소리를 하는지도 알고 있다. 결국은 아들 녀석이 걱정되는 것이다. 정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그건 부모라고 해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다만… 서툴렀을 뿐이다.

아버지도, 자신도. 서로 이해는 하고 있지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몰라 겉돌았을 뿐이다.

“그럼 슬슬 시작할게요, 아버지.”

하지만 그건 지금부터라도 바꾸면 되는 것이다.

이 안마가 그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좋겠다. 그런 생각과 함께, 최성현은 아버지의 양쪽 어깨를 잡고, 혈 자리를 짚고 있는 엄지손가락에 지그시 힘을 더했다.

“느허어어억!”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오는 아버지의 비명 소리.

하나 천마안마에서 꽤 오랫동안 장인 코스를 맡아 온 최성현이다. 그는 익숙한 상황인 듯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프세요?”

“윽… 좀, 아프긴 하구나.”

“많이 뭉쳐 있어서 그래요. 좀 참으세요.”

그에게 안마를 가르쳐 준 것은 다름 아닌 강태한. 그래서 그런지, 손님에 대한 대처법 또한 비슷했다. 최성현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고는 다시 지압을 누르기 시작했다.

“흐그으으윽……!”

방금 전까지는 뭔가 서먹했던 부자지간의 따스한 교류, 그런 것과 비슷한 느낌이 있었으나… 막상 안마가 시작되고 나니, 방 안에는 고통을 참는 아버지의 신음 소리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 * *

다만 최성현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굳어 있던 어깨가 슬슬 부드러워지기 시작하고, 허리에 뭉쳐 있던 근육들도 어느 정도 풀어지자, 뼈까지 뚫리는 듯했던 고통도 서서히 사그라진 것이다.

“후으으으…….”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워 내는 상쾌할 정도의 시원함. 워낙 몸이 굳어 있었던 탓일까, 풀어진 근육을 타고 흘러드는 자극이 참으로 각별한 느낌이었다.

“이제 좀 괜찮으시죠?”

“그래… 좋구나.”

최성현이 넌지시 묻자, 노곤한 얼굴을 하고 있던 최주헌이 답했다. 방금 전까지 비명을 지르고 있었건만, 지금은 긴장의 기색도 찾아보기 힘든 느슨한 모습이었다.

“좋기도 하고, 살짝 옛날 생각도 좀 나고…….”

그렇게 몸이 풀려 있어서 그런 걸까, 최주헌의 입에선 평소 내고 싶어도 잘 나오지 않던 부드러운 말투가 나왔다. 그런 아버지의 목소리에 최성현도 히죽 미소를 지었다.

“옛날 생각이요?”

“그래. 예전에 네 형이랑 너랑 같이… 어버이날이었나. 네 형은 발 닦아 주고, 너는 어깨 주물러 주고… 그때 참 좋았는디.”

꽤 그리운 기억이었는지, 한동안 잘 사용하지 않던 사투리마저 새어 나오는 최주헌이다. 그 말에 최성현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 초등학생 때 일이었나?”

“맞을걸?”

부모님 족욕시켜 드리고 어깨도 주물러 드리기.

초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이 냈던 숙제였을 것이다. 물론 딱히 검사를 받는 것도 아니고 꼭 해야 하는 숙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형이랑 같이 해 드렸었던 것 같다.

“…뭐 그런 걸 다 기억하세요.”

“기억해야지, 이놈아.”

괜스레 머쓱한 기분에 퉁명스레 말하는 최성현.

그런 아들의 목소리에 최주헌은 엎드린 채로 허허, 웃음을 터트리며 답했다. 그런 아버지의 반응에 최성현 또한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사실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대로, 그렇게 진지한 마음으로 안마사 일 시작했던 건 아니에요.”

그러던 중, 최성현은 나긋나긋하면서도 진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손은 계속해서 허리 쪽의 혈 자리들을 짚어 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냥 용돈벌이 정도였다고 할까… 자격증도 안마사를 하려고 딴 건 아니고, 스포츠 트레이너 쪽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따 둔 거였죠.”

거기까지 말하고 최성현은 잠시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평소라면 잔소리가 한 번 나왔을 타이밍. 하나 그는 엎드린 채 그의 말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평소와 다른 그 반응에, 최성현은 용기를 얻은 듯 뒤이어 말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근데 막상 하다 보니 생각이 점점 바뀌더라고요. 뭐라고 해야 하나,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게 바로바로 보인다고 해야 할까…….”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건, 중요한 부분이지.”

조용히 듣고 있던 최주헌이 한마디 거들었다. 왠지 모르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한마디였다.

“그래서 한번 제대로 해 보려고요.”

시작은 분명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냥 조건이 상당히 괜찮은 아르바이트 정도.

하지만 강태한의 모습을 보며 생각이 점점 바뀌기 시작했고… 지금에 와선, 스스로 자신의 일에 나름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최성현의 말은 짧고 간단했으나, 결코 무게가 가볍지는 않았다.

잠시 흐르는 침묵.

최성현이 묵묵히 안마를 하고 있는 와중, 최주헌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꼬리뼈 쪽 좀 한 번 더 주물러 봐라.”

“여기요?”

“그래. 거기.”

허벅지 쪽을 주무르던 최성현이 손을 옮기자, 최주헌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덧붙이듯이 말했다.

“손맛이 꽤나 시원하네.”

단순히 아들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느끼는 바가 그랬다. 그동안 아들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던 것이 미안해질 정도로 말이다.

“한번 제대로 해 봐도 괜찮을 것 같구나.”

크흠, 흠.

말을 마친 최주헌은 괜히 머쓱해졌는지 두어 차례 헛기침을 터트렸다.

“뭐 보니까 가게도 엄청 잘되는 것 같고… 태한이가 사장이니까 딱히 돈 떼이거나 팽 당할 걱정 같은 것도 없을 테고.”

“태한이가 그런 부분은 확실하긴 하죠.”

그러곤 괜스레 장난스럽게 덧붙이는 말.

그 말에 최성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하고는, 슬쩍 시계를 쳐다봤다. 마음 같아선 좀 더 있고 싶었으나, 다음 예약이 있으니 그러긴 힘들었다.

“자, 안마는 여기까지입니다, 아버지.”

“뭐냐, 벌써 한 시간이 지났냐?”

주무르던 부위를 마무리하고 가볍게 등을 탁탁 두드리니, 최주헌이 살짝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큼 안마의 만족도가 좋았던 건지 아니면 아들과의 대화가 좋았던 건지. 어느 쪽이건 간에, 그의 얼굴 표정에는 아쉬운 마음이 담겨 있었다.

“다음에 제가 또 주물러 드릴게요.”

하나 앞으로는 이런 시간이 종종 있을 것이다.

처음 먼저 다가가는 것은 어려웠지만, 서로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난 지금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최성현의 말에, 최주헌도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는 네가 대전으로 내려와라.”

“알았어요.”

아버지의 말에 최성현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답했다.

한 시간 전만 해도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았었으나, 지금은 안마로 뭉친 곳을 풀어내듯 노곤하게 풀어진 부자지간이었다.

* * *

며칠 뒤, 라이너 호텔의 카페.

“확장 공사는 어떻게, 잘 마무리되어 가십니까?”

“네. 조만간 영업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곳에서 강태한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누군가와 마주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오가는 분위기로 보아, 그리 딱딱한 자리는 아닌 모양이었다.

“다행이네요. 솔직히 말하면, 천마안마 쪽 수용 인원이 늘어나면 저희 호텔 쪽에서도 반가운 일입니다.”

상대방은 다름이 아니라 호텔의 총지배인인 곽상영.

요즘 들어 천마안마와 함께 SNS에서 언급되는 일이 잦아지고, 실제로 주말마다 찾아오는 손님들이 늘어나서 그런지, 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임대계약 조건도 낮춰 주신 겁니까?”

“하하하… 제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저는 그냥 건의를 했을 뿐입니다만.”

이 빌딩 자체는 여러 사람의 투자를 받고 지어졌지만, 실질적인 주인은 라이너 호텔의 사장이다.

총지배인인 곽상영은 사장에게 해당 사항과 관련하여 건의를 올렸었고… 사장은 그걸 흔쾌히 받아들여, 상당히 좋은 조건에 임대계약을 진행했다.

물론 다른 투자자들과 복합적으로 엮여져 있어 마음대로 조건을 낮춰 줄 수도 없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해 줄 수 있는 데까진 되도록 맞춰 준 조건이라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강태한 입장에선 그대로 계약을 진행할 생각도 있었는데, 갑자기 계약 조건이 확 좋아졌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

강태한은 찻잔을 들어 올리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건의를 했으니 이야기가 진행된 것 아니겠습니까. 덕분인 셈이죠.”

“후후, 뭐 그렇게 봐주신다면야…….”

강태한은 말을 마치고 차 한 모금을 마셨다. 곽상영은 그런 그를 지켜보며 눈치를 보다,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근데… 사장님이 한번 좀 뵙고 싶다 하시는데.”

“저를요?”

“예. 같이 이야기도 좀 나눠 보고, 안마도 한번 받아 보고 싶으시다고.”

“흐음.”

강태한은 침음을 흘리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대답이 나오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안 될 건 없죠, 8시쯤에 오신다면야.”

먼저 호의를 받았다면 호의로 답하는 것이 맞다.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었기에, 강태한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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