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안마하신다 158화 >
“뭐 내가 전부 다 본 건 아니지만, 요즘 폼 좀 올라온 선수들은 다 비시즌 때 천마안마에 들락거리지 않았을까.”
“하하. 그럴 것 같기는 하네요.”
김태평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최태준.
그는 빙긋 웃으며 쇼파에 등을 기대앉더니, 덧 붙이듯이 몇 마디를 입에 담았다.
“그래도, 이번 시즌은 저도 기대가 좀 되네요.”
“흐음··· 팀으로서? 아니면 야구선수로서.”
“둘 다요.”
이번 시즌, 한하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기세가 등등했다. 물론 아직 그리 많은 경기를 치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난 시즌의 그 파죽지세 같은 포텐셜을 이어가는 분위기다.
올해는 정말 가을야구, 더 나아가 우승까지도 넘볼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팬들은 물론이거니와 선수들의 기대도 한껏 치솟아있는 상황.
“그래도 후자 쪽 기대가 좀 더 큰 것 같네요.”
허나 이런 팀의 성적이나 기록 같은 부분을 떠나서··· 순수하게, 한 명의 야구선수로서 이번 시즌에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선수들의 능력이 한껏 벼려진 느낌이라고 할까.
경기력은 한층 끌어올려졌고, 마운드의 긴장감은 예전과 비교할 바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경기의 수준 자체가 달라졌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재미가 있다.
프로가 되고 나서는 오히려 야구를 즐기지 못하게 된 느낌이 있었는데, 요즘은 마운드 위에 서는 것이 즐거울 정도였다.
“···요새 좀 경기 뛰는 게 좀 재밌긴 하지?”
그런 최태준의 말에 김태평도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애당초 ‘팀으로서, 선수로서?’라고 되물은 것부터 그 또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증거였다.
“잘은 몰라도, 아마 여러모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시즌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
팬들이 야구 보는 맛이 늘은 것처럼.
선수들 또한 야구하는 맛이 늘어난 시즌이다.
사실, 천마안마의 존재가 각 팀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을 무렵, ‘이러다 다 같이 안마 받고 상향평준화 되서 예전이랑 똑같아지는 거 아니냐’라는 말도 좀 나왔었는데.
막상 비슷한 상황이 되고 보니, 상향평준화가 되긴 했더라도 그만큼 경기의 수준과 재미가 올라가면서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는 내용이 되었다.
“아··· 꼬였다, 꼬였어.”
그때쯤, 휴게실 문이 열리며 한 선수가 안으로 들어왔다. 한하의 대표적인 고참 선수 중에 한 명인 이광호 선수였다.
“왜요, 뭔 일 있어요?”
“아니··· 다음 주 잠실 경기 있잖아.”
이광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날 선생님 안마를 예약해놨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예약을 안 잡아놨었네.”
“어라. 저번 달에 저랑 같이 잡지 않았어요?”
“너 하는 것만 보고 내 건 안했나보다···”
에휴.
최태준의 말에 대꾸를 하고난 후, 이광호는 짧은 한숨과 함께 쇼파 빈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스마트폰으로 어떤 사이트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취소된 자리는··· 당연히 없고.”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천마안마의 예약확인 페이지. 저번 달쯤부터 운영되고 있는 페이지로, 특정 날짜를 누르면 어떤 시간에 어떤 코스의 예약이 남아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아··· 잠실 경기 있을 때 받아둬야하는데.”
시즌이 시작되고 나면, 선수들의 여가시간은 확 줄어든다. 일정은 빡빡하게 돌아가고, 당연히 천마안마에 방문할 시간도 적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전의 한하나 부산의 대성처럼 연고지를 아래쪽에 두고 있는 경우에는 거리적으로도 멀기에 더더욱.
그렇다보니 서울에 경기가 잡혀있는 날이, 가장 쉽고 편하게 안마를 받으러 갈 수 있는 날이다.
경기에 맞춰 미리 안마를 잡아놓는 건 자연스러운 일처럼 되었을 정도. 당일 잠실에서 경기가 있는 팀 선수들이 천마안마 대기실에서 먼저 마주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었으니, 말 다했다.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으세요?”
“아니, 뭐 컨디션이 나쁜 건 아닌데···”
“그럼 일반코스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요기, 이 사람. 딱 점심시간쯤에 자리 하나 남아있네요.”
“음··· 그래? 이 분한테 너도 받아봤어?”
“꽤 괜찮아요. 거기 실장님이 조만간 장인코스 담당자도 늘릴 거라 했는데, 이 사람도 거기 후보에 들어간다고 했던 거 같은데.”
흐음···
김태평의 말을 듣고 나지막하게 침음을 흘리는 이광호. 그는 그 후로도 세상 신중한 표정으로 한동안 고민에 잠겨있었다.
* * *
똑똑.
“들어와요.”
평오대의 체육대학 3층에 위치해있는 한 교수실.
안쪽에 앉아있는 나이 지긋한 남성이 노크소리에 답하자, 닫혀있던 나무문이 천천히 열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교수님.”
“그래. 오랜만이다, 태한아.”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강태한.
강태한이 꾸벅 인사를 건네자, 앉아있던 남자, 소주환 교수는 싱긋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방금 전까지 읽고 있던 책을 덮고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안경집 안으로 집어넣었다.
“흐음, 뭐 일단은··· 졸업 축하한다.”
“하하··· 감사합니다.”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졸업식에도 참가 안하고 오늘에야 졸업장을 받으러 왔기에, 괜스레 묘한 느낌이 들은 것이다.
“아, 그래. 마실 것도 안 꺼내놨구만.”
소 교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는 듯, 뒤쪽에 놓인 소형 냉장고를 열더니 커피 두 개를 꺼내더니, 작은 과자 몇 개와 함께 앞에 올려놓았다.
‘예전부터 참 살가운 교수님이었지··· 아마.’
강태한 학번을 담당했던 학년 지도교수.
육십 년 전의 일인지라 세세한 일들까지 기억이 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좋은 인상이 남아있다.
물론 교수의 진면목은 대학원까지 가야 알 수 있다지만··· 그래도 뭐, 지금 강태한의 안목으로 봐도 꽤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특히 동기들 중에서도 강태한을 유독 신경써줬었는데···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됐었는데, 그게 무슨 사건이었는지까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 무슨 일로 졸업생이 교수를 찾아왔나?”
“뭐, 대단한 용건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지금 당장 중요한 일은 아니다. 소 교수의 말에 강태한은 짐짓 멋쩍어하는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번 학기 때 제 편의를 좀 봐주셨으니··· 한 번 인사를 오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후후. 뭘. 학교가 학생이 잘 되길 도와주는 곳이지, 발목을 잡는 곳은 아니지 않나?”
소 교수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히려 자네 덕분에··· 헤매던 학생들이 좀 진로를 잡은 느낌이야. 요즘, 잘 나간다면서?”
“으음··· 나쁘지 않은 편이죠.”
“겸손하기는. 이미 다 들었어.”
스포츠의학과는 굉장히 진로가 불안정한 학과다.
학과명대로 스포츠와 관련된 컨디션 관리, 의학적 접근방식 등을 배우지만, 이를 직업으로 활용하려면 물리치료학과를 졸업하고 관련 자격증을 따야했다.
학과 자체는 꽤나 실용적인 학문을 배우지만, 그걸 활용하기 위해선 다른 학과를 전공하고 졸업해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러다보니 진로가 복잡하거나 불투명하고, 극히 소수만이 제대로 전공을 살려서 취직할 수 있는 게 어쩔 수 없는 학과의 현실이었다.
그러다 안마사 자격증이 일반인에게도 허용된 것.
당시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지금도 논란이 좀 있는 내용이긴 하다만, 적어도 스포츠의학과에서는 생로(生路)가 뚫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해당 자격증을 학과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빠르게 따낸 것이 바로 강태한.
그렇게 먼저 스타트를 끊은 강태한이 이렇게까지 성공하여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니··· 다른 학과생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될 수밖에 없다.
“너 같은 선배들이 종종 나와 줘야, 후배들도 기운이 나는 법이지. 나도 예시로 써먹고 말이야.”
“···좋은 예시로 쓰인다니 다행이군요.”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런 강태한에게 소 교수가 연이어 말했다.
“좋은 예시 수준이 아니지. 원래는 안마사 자격증에 시큰둥한 놈들이 많았는데, 요새는 하나둘씩 다 시작하고 있더라고.”
소 교수는 안마사 자격증이 허가되었을 때부터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권유해왔던 사람이다.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자격증 공부를 시작한 강태한이나 최성현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별 관심도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허나 그랬던 분위기가 한 번에 뒤집혔으니.
다름 아닌 강태한의 영향력이었다. 툭 까놓고 말해, 교수가 백 번 말하는 것보다 실제로 잘 나가고 있는 선배의 이야기가 더욱 설득력 있는 법이니까.
“크흠, 흠. 그런가요.”
교수의 칭찬에, 강태한은 괜스레 쑥스러운지 헛기침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이야기의 화제를 살짝 바꿔놓기로 했다.
“사실, 방금 하신 말이랑 살짝 연관이 있는 용건도 하나 있는데요.”
“뭔데?”
“다른 게 아니고··· 제가 안마사를 좀 뽑아야 할 일이 있어서요. 어느 정도 기본은 갖춰진 사람들로.”
흠.
소 교수가 입을 다문 채 가볍게 침음을 흘렸다.
“기본이라 하면, 자격증?”
“자격증도 그렇고, 사람도 얼추 봐야겠죠.”
“분위기로 봐서 그냥 직원 몇 명 뽑는다는 건 아닌 거 같고··· 무슨 일인데?”
“사업을 좀 넓혀보려고요..”
“···오호.”
강태한의 답은 짧고 간결했지만, 흥미를 끌기에는 충분했다. 소 교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혼자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이더니,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괜찮은 인재가 있으면 좀 소개해 달라?”
“네. 교수님께서는 안마협회 쪽에도 친분이 좀 있으시지 않습니까.”
소 교수는 굳이 부정하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 번 알아보지, 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 그래도 협회 쪽에서 안마사업의 수요와 공급은 늘어나는데,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 숫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종종 이야기가 나오던 참이다.
그런 와중에 이런 제안은 나쁘지 않다.
다만, 소 교수는 살짝 낮아진 목소리로 넌지시 질문 하나를 덧붙였다.
“근데, 네 후배들 중에서 소개를 해도 되는 거지?”
“뭐··· 교수님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요.”
“크, 역시. 잘 된 선배 하나가 학과를 살리는구나.”
강태한의 대답에 그는 짧은 탄성과 함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 *
“흐음···”
라이너 빌딩의 바로 앞에 서있는 한 외국인.
빌딩을 한 바퀴 돌며 이리저리 살펴본 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페르모 가이드의 평가원.
알프레드의 강력 추천을 읽고 바로 예약을 잡은, 현재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평가원들 중에 한 명이다.
“일단 외관은 오히려 마이너스인데.”
건물 자체는 나쁘지 않다.
일층부터 사층까지가 상가로 이뤄져있어 다소 난잡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오히려 편의적인 면에서는 유리하고, 잘하면 가산점이 될 수도 있으리라.
다만 지금 그가 확인하고 있는 내용은, 이 호텔이 알프레드의 보고서 내용대로 3성의 평가를 받을 가치가 있냐는 것이다.
그렇기에 평가의 기준도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
그렇게 바깥을 한 차례 둘러보고, 호텔 로비에서 체크인까지 마치고, 객실 내부까지 둘러봤을 때···
그가 내린 결론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알프레드가 너무 피곤한 상태였다든가.”
굶주렸을 때 먹는 따뜻한 음식은, 설령 그게 싸구려 오트밀이라 할지라도 커다란 감동과 만족을 준다.
숙소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몸이 피곤에 찌들어있는 상태라면, 객실의 만족도도 한층 더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페르모 평가원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혹은··· 이곳의 마사지의 만족도가 다른 평가를 다 뒤집을 정도로 좋았던가.”
그는 업로드 된 알프레드의 보고서를 다시 읽으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보고서 뒷부분에 특히 강조되어있는 이 천마안마라는 가게. 그렇게 수차례 강조를 해놨으면서, 소감에 해당되는 부분에는 ‘영혼의 정화를 경험’이라며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막연한 표현만 적어 놨다.
···뭐, 어쨌거나 곧 있으면 답을 얻을 문제다.
자기가 직접 체험해보면 끝나는 일.
보고서에 적혀있는 것처럼 적어도 한 달 가량의 예약은 꽉꽉 밀려있는 모양이었지만, 그는 운 좋게 저번 주에 취소된 자리를 하나 예약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번째로 찾아온 페르모 평가원.
그는 예약시간에 맞춰 천마안마로 향했고···
그날 밤.
페르모 평가원들의 웹클라우드에는, 천마안마에 대한 극찬이 담긴 3성 평가 보고서가 추가로 업로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