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안마하신다 155화 >
“태한 씨, 저번에 이야기했던 거 말인데.”
사무실 쇼파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던 강태한.
방금 문을 열고 들어온 황 실장이 말을 걸자, 강태한은 감고 있던 눈을 서서히 뜨면서 황 실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혹시 내가 방해를 한 건가?”
왜일까, 황 실장은 문득 자기가 강태한을 방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협지에서 운기조식 중에 눈치없이 말을 거는 엑스트라처럼 말이다.
“아뇨, 괜찮아요.”
그런 황 실장의 반응에 강태한은 고개를 저으며 대수롭지 않아하는 말투로 말했다.
“중요한 일이었다면 제가 문이라도 잠가놨겠죠.”
운기(運氣)를 통해 내공을 운용하는 중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딱히 큰 집중력이 필요할 정도로 깊이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애당초 이런 곳에선 언제라도 끊고 빠져나올 수 있도록 가볍게만 운용하는 것이다.
‘내공 자체가 많이 쌓이기도 했고.’
연못의 물은 돌팔매 한 번에도 흙탕물이 일 수 있으나, 드넓은 호수의 물은 바위가 떨어져도 이내 잔잔해질 뿐이다.
내공 또한 이와 마찬가지.
이제 막 현대로 돌아와 단전이 텅 비어있을 땐 여러 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 운기를 취했으나, 지금에 와선···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아, 지난번에 여기 바로 옆에 있는 공실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거 있잖아.”
“음··· 그랬었죠.”
강태한이 기억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너 호텔이 오픈을 한 지도 이제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빌딩 내의 상권도 활성화된 지 오래다.
다만 임대료가 비싼 탓인지 아직 빌딩 내에 공실들이 드문드문 남아있었고, 천마안마가 있는 20층의 바로 옆 칸도 아직 공실로 남아있는 중이었다.
“요가 교실이 들어올 예정이라 했었죠? 아마.”
“그랬었지. 근데 오늘 빌딩 관리팀 쪽 사람이랑 점심 한 끼 했었는데··· 거의 다 진행되고 있던 와중에 엎어졌나봐.”
“···그래요?”
흐음. 강태한은 잠시 침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희한테는 잘 된 일이네요.”
“그렇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황 실장이 동조했다.
천마안마는, 오픈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인지도와 손님들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때는 천마코스에만 손님이 몰린 탓에 ‘어떻게 일반코스를 찾는 손님들을 늘릴 수 있을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은 필요 없었다.
손님들이 계속 늘어가면서, 장인코스는 물론이거니와 이젠 일반코스도 서서히 예약이 밀려가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여기서 좀 더 멀리까지 보자면, 향후 체인점을 낼 때 필요한 안마사들을 미리 고용하고 가르쳐둘 필요도 있었기에, 여러모로 지금보다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물론 비용적인 부분이 부담스러울 수는 있겠지만··· 뭐 대출을 받아도 되는 부분이니까.”
“대출이라.”
강태한은 턱 부근을 감싸 쥐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비용이 어느 정도 되는데요?”
“뭐 공사도 해야 되고, 임대도 생각을 해야 하니···”
황 실장은 주변에 있는 이면지를 끌어오더니, 거기에다 글자를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계산을 하고 있는 모양.
“대충 이 정도는 생각해놔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는 이내 얼추 예상되는 비용을 종이 위에 큼직하게 적어 앞으로 내밀었다. 그 숫자를 쳐다보던 강태한은 옆머리를 긁적였다.
“이 정도면··· 대출 없이도 되겠는데요?”
“태한 씨, 0하나 빼고 읽은 거 아니야?”
강태한의 말에, 황 실장은 밑줄을 치듯 뒤쪽에 늘어선 0들을 스윽 훑어냈다. 너무 담담한 말투에 숫자를 잘못 본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아뇨, 제대로 본 게 맞아요.”
허나 황 실장의 말을 듣고 다시 유심히 살펴봤지만, 강태한의 대답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단호해진 목소리였다.
“···태한 씨 이사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죠?”
“아버지 가게도 더 큰 데로 옮겨드렸고···”
“네.”
황 실장은 잠시 뜸을 들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곤 자기가 써놓은 숫자를 보고, 다시 강태한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이 정도 여유가 있다고?”
“흠··· 뭐, 그렇네요.”
천마안마에서 모은 수익과 팁도 꽤 많은 양이지만, 대청그룹에서 받은 계약금, 감사금, 그리고 더 마이스터의 로열티까지 합치면, 상당히 큰 액수가 된다.
거기에다 이번에 그 돈을 대청그룹 관련 주식들로 불리기까지 했으니··· 솔직히 말해, 당분간 돈 걱정은 굳이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액수가 되어있었다.
“대출은 나중을 위해 아껴두도록 하죠.”
“···뭐, 태한 씨가 그렇다면야.”
강태한이 빈 말을 할 것 같진 않기에 일단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럼에도 황 실장은 얼굴은 ‘이게 진짜인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강태한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해주세요.”
“그래··· 일단 알았어.”
아직 아리송해하는 황 실장을 뒤로 한 채, 강태한은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1번방과 5번방 사이에서 손님의 기척이 느껴졌던 것이다.
“아, 원장님. 손님 오셨어요.”
아니나 다를까 복도에서 마주치는 직원.
강태한은 방 번호를 전해 듣곤 손님이 있는 방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젠 서서히 넓혀가는 단계인가···’
딱히 커다란 욕심이나 야망 같은 건 없다만.
그렇다고 역량이 있는데 움츠리고만 있을 생각은 없다. 강태한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오.”
방 안의 침대 위에는 페르모의 평가원.
이제 막 사우나를 마치고 가게에 찾아온, 알프레드 레오가 누워있었다.
* * *
“안녕, 하세요.”
방 안으로 안마사가 들어오며 인사를 건네자, 알프레드는 서투른 한국말로 답했다. 그러는 동시에 상대방의 모습을 슬쩍 살펴보았다.
‘흐음···’
솔직히 말하자면, 첫인상이 조금 애매하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젊다고 할까?
적어도··· 영혼 탈곡기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저··· 음···”
“영어가 편하시면, 영어로 말씀하셔도 됩니다.”
“오, 영어가 되시는 군요.”
한국말을 떠올리며 알프레드가 말을 버벅이고 있자, 강태한이 넌지시 말했다. 그러자 알프레드의 얼굴에 화색이 드리워졌다.
“그럼··· 혹시, 그쪽이 이 가게의 원장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지금 받을 건 천마코스 안마고요.”
“네.”
조심스레 상대방에게 확인 차 물어보는 알프레드. 혹시라도 다른 코스로 오해해 다른 사람이 온 게 아닌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뭐 대충 예상하고 있던 범주 내이긴 하지만···’
평가라는 것은 결국 주관적인 면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렇기에 타인의 평가는 마냥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
심지어 본인이 작성에 참가하고 있는 페르모 가이드의 호텔들도, 가끔 ‘여기가 3성급이 되나?’ 싶거나 ‘여기가 1성밖에 못 받나?’ 싶을 때가 종종 있다.
페르모 가이드의 평가원들은 전 세계 국가들을 돌아다니고, 묵어본 숙소의 숫자는 세 자릿수에 가볍게 다다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나름 공정하게 선정했다는 가이드도 이렇게 평가가 엇갈리는데.
하물며 그냥 개인이 적은 리뷰는 오죽하겠는가.
다만 ‘영혼이 탈곡되는 듯한 기분’이라는 표현이 유독 인상 깊어 기억에 남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기대감을 가졌던 모양이다.
‘물론 아직 실력은 모르는 거다만···’
허나 살짝 김이 새버리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장인이란 것은 본래 세월이 흐르고 경험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 반면 앞에 있는 안마사는 기껏해야 삼십도 안 되어 보였다. 아무래도 솜씨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딘가 불편한 곳이 있나요?”
“음··· 그냥 여기저기, 좀 뻐근하네요.”
그래서 그런가, 상태를 물어보는 안마사의 말에도 다소 성의 없는 대답이 나왔다. 알프레드는 별다른 말없이 얌전히 침대 위에 엎드렸다.
그래도 기본 이상은 해주겠지.
딱 그 정도의 기대감. 헌데.
“그럼, 한 번 살펴보죠.”
강태한의 손이 그의 등 위에 올라오는 순간, 알프레드는 뭔가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대체 무슨···’
바위라도 올려놓은 것처럼 묵직한 존재감.
마치 핀셋으로 고정된 나비 박제 같다고 할까?
그저 등 위에 손 하나를 얹고 있을 뿐이었는데, 알프레드는 자신의 몸이 완전히 제압되어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거기에··· 아직까지 사우나의 기운이 남아있었던 건가, 싶을 정도로, 체내 안쪽에서 선명하게 퍼져나가는 따스한 온기까지.
솔직히 그저 손을 얹어놓은 것의 효과라기엔 지나치게 신비로운 현상들이다. 그리고 그 현상에 알프레드가 어안이 벙벙해있을 때쯤.
“으음.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는 모양이군?”
“···예. 그렇습니다.”
“보아하니 시차도 자주 바뀌는 것 같고··· 거의 대륙에서 대륙을 오가는 수준이구만.”
···뭐지?
마치 자기 명함이라도 들여다본 것처럼 족집게로 맞춰낸다. 허나 그가 자신의 정체를 알 리는 없었다. 애당초 명함은 한국에 들고 오지도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자기 몸을 살펴보고 맞췄단 말인가?
그것도, 그냥 등 위에 손 한 번 얹어보고선?
어리둥절하다 못해 당황스러움을 느끼는 알프레드.
“어디가 문제인지는 대충 알겠군.”
그러거나 말거나, 강태한의 양손은 서서히 움직여 그의 허리, 척추의 주요 혈자리들 중 가장 아래쪽에 있는 명문(命門)혈 인근에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그럼, 이제 시작하겠네.”
그리고 그 엄지손가락들이 성큼성큼, 척추를 따라 오르며 각각의 혈자리들을 짚어내기 시작하자.
“홀리, 씨에에에엣!”
알프레드는 대체 어떤 부분을 ‘영혼이 탈곡된다’라고 표현했던 것인지,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탈곡이라기보다는···’
마치 영혼을 쥐어짜내는 듯한 느낌!
허리춤에서부터 시작해 목 아래까지 차례대로 올라오는 지압은, 그야말로 비명을 쥐어짜내듯 참을 수 없는 수준의 자극을 올려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척추를 따라 오르는 지압이 끝나고 잠시 숨을 돌릴 틈이 있나, 싶었는데.
우두두둑!
이번에는 그의 몸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단순히 관용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이게 여기서 나도 되는 건가?’싶은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이게 맞나요, 미스터?”
왠지 섬뜩한 기분에 저도 모르게 외치는 다급한 목소리. 허나 강태한은 그와 상반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답할 뿐이었다.
“참을만할 텐데?”
“그게 무슨··· 어?”
그때쯤 강태한이 그의 뒷목 쪽을 가볍게 손으로 짚어냈다. 그러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알프레드의 몸이 거짓말처럼 느슨해졌다.
방금 전까지 느꼈던 섬뜩함도, 공포도, 초조함도.
마치 물에 들어간 솜사탕처럼 사르륵 녹아버린 것.
‘오오···?’
그리고 그 대신에 느껴지는 것은.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시원함.
마치 막혀있던 수로가 뻥 뚫리기라도 한 것처럼, 방금 지압을 했던 척추를 따라 시원한 감각이 흐르고 있었다.
그 뿐인가.
그 감각은 척추에서 끝나지 않고, 강태한의 손길을 따라 차츰차츰 몸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강태한의 손이 근육을 주무르면.
비록 처음에는 아플지언정, 이내 물꼬가 트인 것처럼 시원한 감각이 흘러들어와, 쌓여있는 피로를 깔끔하게 씻어냈다.
‘이건··· 이건···!’
그가 관심을 가졌던 건, 영혼의 탈곡.
직접 겪어보고 처음 떠올린 생각은, 영혼의 착즙.
그리고 지금 느끼고 있는 건··· 영혼의 정화(淨化).
깨끗한 몸에 깨끗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었던가.
몸 내부는 마치 부품을 새로 갈아 끼운 자동차처럼 깨끗한 기분이고, 머릿속은 잡념하나 없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별점 열 개··· 아니 백 개!!’
서서히 맑아져가는 머릿속.
그리고 개운해진 그 안을 마음껏 휘젓고 다니는 쾌락적인 자극들. 서서히 새하얘져가는 정신 속에서, 알프레드는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었다.
* * *
“···후우.”
그날 밤.
객실의 테이블에 앉아, 알프레드는 조그마한 탄식을 내뱉었다. 그의 앞에는 평소 들고 다니는 수첩이 펼쳐져 있었다.
“여운이 가시지를 않는군···”
방금 전, 그는 천마안마의 방에서 눈을 뜬 참이다.
자기가 언제 잠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마사지를 받던 도중에 그대로 잠에 들었던 모양.
평가를 하러 찾아간 사람의 입장에선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래도 마사지의 효과만큼은 톡톡히 느낄 수 있었다. 알고 싶지 않다 해도, 걸음이라도 한 번 내디뎌보면 곧바로 체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몸이 이렇게 가벼워질 수가 있었나?’
가볍게 허리와 어깨를 비틀어보는 알프레드.
너무나도 가볍고, 너무나도 부드럽다.
마치 자기 몸이 아니라 체조선수의 몸을 빌려오기라도 한 느낌이다.
오랜 타지생활로 곳곳에 쌓인 여독?
적어도 체감 상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툭 까놓고 말해, 고향에서 한 달 이상의 휴가를 보낸다 해도 이런 컨디션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일단은 적어둬야겠지.”
지금 시간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돌아다닌 곳들에 관해 간략하게 서술하고 평가를 남겨놓는 시간이다. 알프레드는 이용했던 순서대로 각 부대시설에 관한 서술을 남겨놓았다.
그리고 끝을 맺는 총평.
[여행의 피로를 풀고 가기에 적합한 호텔. 편리하고 좋은 숙소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고, 사람에 따라선 1성까지도 충분히 줄 수 있을만하다.]
이것이 오늘까지 느낀, 라이너 호텔에 관한 알프레드의 총평이었다. ···하지만, 잠시 고민하던 알프레드가 이내 뒤쪽에 추가적인 내용을 적기 시작했으니.
[단, 호텔 위쪽에 위치한 안마원, 그 중에서도 원장님이 직접 담당하는 마사지를 예약하고 방문하는 것이라면, 가히 3성까지도 가능하다고 생각함.]
페르모 가이드의 최고 평점인 3성.
해당 내용까지 덧붙여놓은 알프레드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테이블 위에 볼펜을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