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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53화 (153/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53화 >

“아이구···”

호텔 6층 안쪽에 있는 자그마한 직원 회의실.

그곳의 중앙 자리에 앉은 곽상영은 양쪽 어깨를 번갈아가며 매만지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방금 전, 엘리베이터 안에서 강태한이 지압을 해준 자리였다.

‘오늘은 좀 너무 세게 누르신 거 아닌가···’

강 원장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번 건 통증이 유독 강했다. 마치 뼈에 불이 붙은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물론 시간이 짧은 탓에 그런 조치를 취하신 거겠지만, 그래도 계속 몸 안쪽이 살짝 저려오고 있었다. 게다가 그 저릿함이 점점 몸 안쪽으로 스며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저, 곽 매니저님?”

“음? 왜 그래.”

“슬슬 회의 시작할까요?”

잠시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데 집중하고 있던 곽상영. 그러던 중 옆에 있던 다른 지배인이 넌지시 묻자, 그는 그제야 사람들이 다 모여 자기만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크흠, 흠.”

괜히 머쓱해졌는지, 곽상영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회의 자체는 주에 한 번씩 이뤄지는 가벼운 정기회의였으나, 그래도 총지배인인 곽상영이 가만히 앉아있으니 시작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평소처럼 각 부서 특이사항을 보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그럼 저부터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곽상영이 넌지시 말하자, 그제야 회의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각자 가져온 서류를 살피며 특이사항을 보고하는 각 부서의 지배인들.

다만 정기회의라는 것 자체가 뭔가 큰 일이 있어 소집하는 게 아니기에, 보고 내용 자체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다.

“뭐 딱히 문제가 있는 부서는 없는 것 같구만···”

그렇게 기본적인 절차가 순조롭게 끝이 나고.

“그럼, 그 외의 부분에서 안건이 있는 사람?”

“저, 한 번 확인해두고 싶은 게 있는데요.”

그 외의 안건을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배인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객실부를 담당하고 있는 지배인. 그가 무슨 말을 꺼낼지는 곽상영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페르모 심사원들이 방문할 수 있다는 말에 직원들도 바짝 긴장이 들어간 상황인데··· 아무래도 역효과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회의에 자리하고 있는 다른 이들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사례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었다. 여기에 있는 이들 모두 예전보다 피곤한 기색이 짙어보였으니까.

“흠. 그 부분은 나도 인지하고 있긴 했지. 그래서?”

“대충 언제까지는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언제부터는 살짝 느슨해져도 된다, 이런 방침이 간략하게라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곽상영은 나지막하게 침음을 삼켰다.

충분히 말할 수 있고, 한 번 다루긴 해야 하는 안건이다. 하지만 그 기간을 어떻게 잡을 것이냐? 라고 하면 딱히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한국에 들어온 건 맞나요?”

“국내에 들어온 것까진 불명확한데··· 저번 달쯤 일본에서 관계자들끼리 행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페르모 쪽 참가자들의 숫자가 유달리 많았다나봐.”

곽상영의 말에 지배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야기다.

페르모 가이드는 전 세계의 숙박업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아무래도 한 국가에 방문했을 때 주변 국가들도 최대한 많이 들르려고 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그쪽이 시간적으로도, 비용적으로도 효율이 좋을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만약 지난 달 방문지가 스위스처럼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국가였다면, 다음 행선지를 추측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라면···

대한민국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동선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미슐랭도 그렇고 여태동안 그런 경우가 많았다.

“뭐 그럼 지금 높은 확률로 서울에 있겠네요.”

“그렇겠지.”

“아흐! 차라리 모르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남자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장난기 반, 진심 반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몰랐으면 그냥 나중에 ‘다녀갔었구나’하고 넘어갔겠지만, 지금은 막연하게 직원들만 긴장하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흐음···”

곽상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직원들의 피로가 누적되면, 결국 나중에 어딘가에서 실수가 터진다. 100점을 고집하다 실수할 바엔 살짝 느슨하게 80점 안팎을 유지하는 것. 그게 딱 적당한 수준이라고, 그는 예전부터 생각해왔었다.

“그러면 그냥 모르는 척 할까?”

결론을 내린 곽상영이 넌지시 말했다.

페르모 가이드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긴 하다. 다른 건 몰라도 외국 손님들이 찾아오는 빈도는 거의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나니까.

하지만 다른 손님들의 평가도 중요한 건 마찬가지다. 직원들의 피로가 쌓인 탓에 뭔가 사건이 터져 뉴스에라도 나오면, 그냥 말짱 도루묵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돼요?”

“뭐, 굳이 힘을 안 줘도 우리 호텔 서비스는 원래 괜찮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사실은 곽상영이 진즉부터 고민하고 있었던 부분이다. 다만 깔끔하게 포기하기엔 계륵마냥 아쉬운 부분이 있어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왠지 지금은 머리가 맑은 덕분인지, 어렵지 않게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고민하는 얼굴을 하면서도 내심 안도하는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러면 다들 그런 걸로 하자고. 사장님한테는 내가 말씀드리면 되고··· 다들, 직원들한테 그냥 평소처럼 있으라고 해. 자네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줘도 되고.”

“저 그럼 오늘 반차 써도 됩니까?”

“···김 매니저 오후에 일정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더욱 모범이 되죠.”

“그렇게까지 가버리면 이제 모범이 아니라 본보기로 처형을 당하게 되는 거지.”

결론이 나오고 다소 느슨해진 회의장의 분위기.

우스갯소리로 피식거리던 곽상영은 팔짱을 끼며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찝찝한 게 조금도 없다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뭔가 개운한 기분이다.

“그건 그렇고, 짐 하나를 덜어내서 그런가 곽 매니저님 얼굴이 유난히 훤해 보이네요.”

“그렇게 아부해도 반차는 안 돼.”

“아니, 아부가 아니라 진짜로 하는 말인데요. 얼마 전까지 있던 다크서클도 살짝 얇아진 거 같고.”

그 말에 곽상영은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꺼진 액정화면에 자기 얼굴을 비춰보았다. 확실히, 검은 화면 너머로도 느껴질 정도로 안색이 환했다.

“···음?”

이상하다 싶은 느낌에 아예 스마트폰 카메라를 키고 본인의 얼굴을 살펴보는 곽상영. 그렇게 보니 환한 안색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냥 불과 십 몇 분 전,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을 봤을 때만 해도 피곤에 쩔어가지고 퀭한 얼굴이었었는데, 지금은 무슨 며칠 동안 쾌면을 취하고 출근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왜 이래? 이거.”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깨를 으쓱이던 찰나.

곽상영은 뒤늦게 자신의 몸이, 그것도 매우 가벼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신기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스트레칭하듯 몸을 이리저리 들썩거렸다.

“나 왜 이렇게 컨디션이 좋냐?”

“···그걸 저희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해요?”

그 뒤로도 한참 몸을 움직이던 곽상영.

그런 그의 머릿속에 뒤늦게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어깨에 남아있었던, 그 강렬한 욱신거림!

허나 그 욱신거림은 이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 대신 상쾌함이 느껴질 정도로 가볍고 부드러운, 그야말로 최상의 컨디션이 되어 있었다.

‘역시 강 원장님이신가···’

손을 봐줬다고 해도,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시간동안 잠깐 몇 군데 짚어줬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 정도 효과라니. 곽상영은 속으로 감탄을 삼켰다.

불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리 그래도 너무 세게 누른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떠올렸었지만, 지금은 한 치의 의심 없이 믿음으로 차있는 곽상영이었다.

* * *

“요즘 들어 부쩍 느끼는 건데 말이죠.”

휴게실에 나란히 앉아있는 최성현과 황 실장.

조용히 앉아 단어장을 들여다보고 있던 최성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러자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황 실장이 슬쩍 눈길을 줬다.

“뭔데?”

“요즘 들어 외국 손님이 부쩍 많이 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좀 합니다.”

흐음. 황 실장은 잠시 입 부근에 손을 올리고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예전보다 조금씩 늘고 있었잖아.”

“뭐 그렇기는 한데··· 왠지 체감이 더 되는 느낌?”

최성현은 그러면서 형광펜을 들고는 단어장에 체크를 하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들어간 메모와 필기의 양으로 보아, 그가 영어공부에 꽤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런 분위기는 비단 최성현 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공부를 시작했던 강태한 원장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안마사들도 손님과 간단한 회화 정도는 할 수 있도록, 하다못해 간단한 왓튜브 영상이라도 찾아보는 상황이었으니까.

“뭐 그럴 만도 하지.”

예전에는 외국 손님이 찾아오더라도, 거의 모두가 강태한을 찾는 손님들이었다. 가게를 보고 왔다기보다는 강태한을 보고 찾아온 느낌이라고 할까.

허나 요즘은 조금 다르다.

장인코스나 일반코스를 예약하는 경우도 많고, 특히 호텔 쪽에서 찾아오는 외국인 손님들이 많다. 그냥 빈 말일 수도 있겠지만, 듣기로는 안마 때문에 이곳에 숙소를 잡았다는 말도 종종 나오는 모양이다.

이게 소문이 대체 어디서 퍼지는 건가, 싶지만···

뭐 거래처에서 듣던가, 인터넷의 방문후기에서 봤든가, 이래저래 알아서 소문이 퍼져가고 있는 모양.

어쨌거나 그런 상황이다 보니 다른 안마사들도 외국인과 마주치는 일이 꽤 잦아졌고, 다들 알아서 기본 회화정도는 할 수 있도록 영어를 익혀놓는 분위기가 되었다.

“혹시 모르지. 나중가면 해외에 가게를 낼 수도 있지 않겠어?”

“···해외에 저희 안마원을요?”

그 말에 최성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살짝 생소하게 들려오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건 좀 너무 간 거 아닌가?”

“뭘. 저번에 영국 갔을 때 선수들 반응만 봐도 충분히 가능하겠더만. 지역 구단 하나만 단골로 잡아도 적자 볼 일은 없을 걸?”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

막상 들어보니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설득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최성현. 그런 그에게 황 실장이 넌지시 물어봤다.

“그건 그렇고, 저번에 물어봤던 건 생각해봤냐?”

“어떤 거요?”

“천마안마 지부··· 아니, 체인점 말이야.”

지난 번, 강태한과 이야기했었던 체인점 관련 내용.

그렇다고 당장 실행할 것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의 의사 정도는 물어봐둬서 나쁠 게 없다는 결론이 나왔었다.

그렇게 최성현에게도 생각을 물어봤었는데, 일단은 생각을 좀 하겠다며 답변을 뒤로 미뤄뒀었던 것.

“참고로, 성훈 씨랑 태진 씨는 원장님이 허락만 해주면 충분히 그럴 생각이 있다고 했었어.”

황 실장은 덧붙이듯 장인코스의 다른 두 명의 대답을 말했다. 그러자,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듯했던 최성현이 입을 열었다.

“저는 그냥 여기 있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래?”

“뭐 따로 체인점을 차리면 수입은 더 좋을 수도 있겠지만··· 그냥 돈만 생각했으면, 아버지 따라서 일 배우는 쪽이 훨씬 나았죠. 아무래도.”

최성현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걸 뭐라고 딱 설명은 못하겠는데··· 일단은 태한이한테서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워가는 게 맞지 않나? 그런 느낌이죠. 같이 붙어있다 보면 유명인사들도 자주 만날 수 있고···”

대충 말을 마치고 옆을 보는 최성현. 그러자, 자기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황 실장과 눈을 마주쳤다.

“뭐요. 또 왜요.”

“아버지가 무슨 일 하시는데?”

또 낯부끄러운 말 좀 했다고 놀리는 건가, 싶었는데, 다른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있는 황 실장이었다. 최성현은 일부러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대전에서 사업 하나 하고 계세요.”

“오··· 그럼 사장님 아들?”

“뭐 동네 슈퍼 아들도 사장님 아들이긴 하죠.”

최성현은 천천히 고개를 젓고는, 이 대화주제에 별 관심이 없다는 듯이 단어장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 * *

“알프레드 레오님, 맞으신가요?”

“예. 맞습니다.”

라이너 호텔 로비의 프론트 데스크.

그곳엔 배낭여행을 온 것처럼 큼직한 배낭을 메고 있는 남자가 한참 체크인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혹시 객실에 대한 요청사항 있으실까요?”

“음··· 강이 보이는 게 좋습니다. 일반 객실로 예약하긴 했는데, 마땅한 객실이 없다면 돈을 더 지불할 의사도 있습니다.”

“음, 아직 리버사이드 쪽 일반객실이 남아있으니, 이쪽으로 배정 도와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실까요?”

“아, 그러면 더할 나위 없죠.”

“그럼 바로 체크인 도와드리겠습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이 빙긋 웃으며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남자의 손에는 종이 포장으로 감싸진 카드키가 쥐어져 있었다.

‘흠··· 일단 프론트 서비스는 굉장히 친절한 편이고.’

카드키에 적힌 객실로 걸어가는 남자.

등 뒤에 두툼한 배낭을 메고 있는 그는 영락없는 관광객처럼 보였으나,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호텔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인테리어는··· 그냥저냥인가. 깔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뭔가 특색이 느껴지지도 않는 정도.’

객실에 도착하자, 그는 짐을 정리하기 이전에 방을 한 번 슥, 둘러보고 있었다. 밖에 있을 때와 달리, 지금은 얼굴표정마저도 냉철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뭐, 좋은 숙소인건 확실한데.”

한동안 객실 구석구석을 둘러보다, 이내 결론을 내리고 침대에 걸터앉는 알프레드. 그는 옆머리를 긁적이며 덧붙이듯이 말했다.

“적어도 아직까진 별 게 없네.”

알프레드 레오. 그는 프랑스의 잡지사, 페르모의 직원이자 페르모 가이드의 평가원들 중에 한 명이다.

그는 품 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고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기가 본 것들과 그에 관한 평가들을 휘갈기듯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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