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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51화 (151/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51화 >

‘부디 잘 됐으면 좋겠는데···’

멀리서 보이는 라이너 빌딩을 쳐다보면서, 최아람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강태한을 만나고 다시 두 발로 설 수 있게 되었을 때, 당연하게도, 그녀는 자신의 언니를 떠올렸었다.

언니는 자기보다 훨씬 오랫동안 하반신 마비로 고생을 해오지 않았는가. 언니의 다리가 낫길 바라는 것은 최아람의 오랜 소망 중 하나였다.

그동안 무슨 방법을 써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었는데··· 혹시 원장님의 솜씨라면, 언니의 몸 상태에도 뭔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다리의 감각은 물론이거니와 다시 두 발로 서서 걷는 것까지 가능하게 되었을 때, 결국 최아람은 강태한에게 언니의 이야기를 말했다. 그러자.

‘안 그래도 신경이 좀 쓰이기는 했었습니다.’

강태한은 ‘한 번 봐드리겠다’며 흔쾌히 수락했다.

장우영 회장에게 들어 자매의 일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강태한도 내심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언니와 함께 찾아온 오늘.

과연 언니에게도 자신과 같은 효과가 있을지, 솔직히 확신은 할 수 없었다. 다만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멀찍이 보이는 빌딩을 쳐다보며, 최아람은 괜스레 마른침을 삼켰다.

“아람아.”

“응?”

“무슨 일 있니?”

괜히 긴장마저 하고 있던 최아람에게 최보람이 넌지시 말을 걸었다. 그런 그녀의 물음에 최아람이 조금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별 일 없는데, 왜?”

“그냥, 약간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얼굴을 보거나 손을 잡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뒤에서 휠체어를 끌고 있을 뿐인데 대체 어떻게 알아낸 것일까.

최아람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빙긋 미소를 지었다. 하긴, 언니는 예전부터 자기 마음 하나는 귀신같이 알아맞혀냈던 것이다.

“···언니랑 같이 걸으니까 좋아서.”

아마 이게 얼버무리는 말인 것도 알고 있겠지.

그래도 최아람은 적당한 말을 입에 담고는, 발걸음을 재촉하듯 계속 걸었다. 왠지 모르게 긴장의 기색은 사라져있었다.

* * *

천마안마 안쪽에 위치해있는 십 번방.

이곳은 다른 방보다 공간이 널찍하게 잡혀 휠체어를 끌고 들어가도 문제가 없고, 곳곳에 손잡이나 부딪힘 방지 패드들도 부착되어있는 특별한 방이다.

“···흐으음.”

그 방의 침대 위에서, 강태한은 여성의 등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최보람. 그녀의 몸 상태를 살펴보던 강태한은 나지막하게 침음을 흘렸다.

‘유전적인 문제인 건 생각대로였지만···’

최아람과 최보람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강태한은 이것이 외부적인 요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집안에서 내려오는 유전적인 내력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 생각은 최아람의 상태를 살펴봤을 때 더욱 커졌고, 지금 최보람의 몸을 확인했을 때 확신이 되었다.

선천적으로 대주혈과 중추신경이 가까워 서로 얽히고 간섭하게 된 것이 원인이었으며, 증상 또한 완전히 동일했던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쪽은 이미 꽤 늦어버린 감이 있군.’

최아람의 경우에는 아직 증상이 나타난 지 오래 되지 않았고, 혈도를 최대한 활성화시키는 것만으로도 얽혀있던 부분은 느슨하게 풀어낼 수 있었다.

허나 이번에는 달랐다.

서로 얽혀있는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되었고, 이미 몸이 여기에 적응해버렸다. 지금의 이 상태를 정상적인 모습이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모든 생물은 몸을 원상태로 회복시키려하는 재생력을 가지고 있다. 강태한이 혈도를 자극시키는 건 대부분 이 재생력을 끌어올려 스스로 몸을 회복시키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허나 이런 경우에는 재생력이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몸이 이미 이 상태를 정상적인 상태라 인식하여, 오히려 이 상태로 회복하려드는 것이다.

‘···이건 좀 어렵겠어.’

이미 하나처럼 얽혀 풀어내기도 힘들고, 설사 느슨하게 풀어내더라도 스스로 회복할 수 없다. 사실상 손을 댈 수 없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손을 때내려던 찰나.

“저··· 선생님? 아니면, 원장님이라 불러야하나요?”

침대에 엎드려있던 최보람이 말을 걸어왔다. 강태한은 그녀를 쳐다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느 쪽이건 상관없습니다.”

“그럼 선생님으로 할게요.”

최보람은 잠시 뜸을 들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그,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예?”

손님에게 감사를 받아본 적은 많지만, 안마를 시작하기도 전에 감사를 듣는 것은 다소 희귀한 경험이다. 강태한이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생님이, 저희 아람이를 치료해주신 거죠?”

“아, 그 이야기군요.”

뒤이은 최보람의 말에 강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분이 이야기한 모양이네요.”

“아뇨. 동생은 왠지 말을 피하더라고요. 서프라이즈라더니, 그래서 그런 건가.”

최아람은 딱히 그런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지만, 최보람은 얼추 그 내용을 짐작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동생의 생각정도는 대충 파악할 수 있었고, 애당초 동생이 걸을 수 있게 되자마자 안마원에 가려한 것부터 부자연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 선생님이 동생을 다시 걷게 만들어주신 분이라 하면··· 이 부자연스러운 상황도, 요 근래 다시 재활훈련을 시작했던 것도, 몸 상태가 급격히 호전된 것도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방금 전 등을 짚는 손길을 느꼈을 때, 그때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저 닿는 것만으로도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저희 아람이, 정말 착하고 열심히 노력했던 아이거든요. 그래서 너무 안타까웠었는데···”

엎드린 상태로 말하고 있었기에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들려오는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안도가 목소리에 묻어나온 것이다.

“선생님 덕분에 아람이가 다시 걷고,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강태한은 그녀의 말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딱히 감사를 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건 그렇고··· 저는 아무래도 힘들겠죠?"

그리고 다음 이어진 말에 강태한의 눈썹이 움찔 떨렸다. 다른 게 아니라 강태한이 생각한 내용 그대로였던 것이다.

“아람이한테는 말 안했지만··· 사실 햇수가 지나갈수록 점점 상태가 더 악화되는 걸 느꼈거든요. 뭐라고 할까, 몸이 굳어간다고 할까요.”

병원에선 별다른 말이 없었고 검사결과도 달라진 건 없었지만, 본인 스스로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어떤 느낌이 왔다. 이제 완전히 끝이 나버렸다고. 다시 회복될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꽤 감이 좋으시네요.”

강태한은 굳이 부정하거나 감추는 기색 없이, 담담한 목소리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그녀가 말한 내용은 강태한이 내린 결론과 얼추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그 말대로입니다.”

“···그렇죠?”

강태한의 담백하게 딱 떨어지는 대답에 최보람은 내심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자기도 모르게 기대를 가졌었던 모양이다.

‘아람이는 나도 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최아람은 예전부터 좋은 것이 있으면 최보람과 함께 나누고 싶어 했다. 맛있는 게 있으면 꼭 포장해오고, 같이 식당에 가고, 경치가 좋은 곳이라며 최보람을 등에 업은 채로 산에 올라가고.

아마 이번 일도 비슷한 맥락이리라.

자기도 두 발로 설 수 있었으니, 언니 또한 효과를 볼 수 있으리란 생각으로 이곳에 데려왔겠지. 하지만 세상에 불가능은 엄연히 존재하고, 아니나 다를까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뭐, 아무래도 좀 오래 걸리겠죠.”

“···네?”

허나 그 다음 이어진 강태한의 말은, 최보람의 생각과 전혀 다른 말이었다.

방금 전처럼 담담하게 말하는 목소리. 마치 기한이 오래 걸릴 뿐,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최보람은 살짝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까는 힘든 상황이라고···”

“네. 그래서 시간이 좀 많이 필요할 겁니다.”

힘든 상황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다고 말한 적은 없다. 강태한은 덧붙이듯이 가볍게 말했다.

“회복과정도 복잡하고, 아람 씨보다 근육량도 떨어지니 운동도 좀 열심히 하셔야겠고···”

이번 같은 경우에는 재생력을 활용할 수 없다.

허나 그뿐이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막혀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아마 아람 씨처럼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건 무리겠지만··· 아마 일 년 정도면 두 발로 서서 살살 걸어 다니는 것 정도는 되겠네요.”

“그,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요?”

놀란 기색이 역력한 최보람이지만, 그 말에는 적지 않은 의심도 섞여있었다. 본인의 상태를 스스로 얼추 짐작하고 있었던 그녀였기에, 더욱 믿기 힘든 말이었다.

“뭐, 예를 들자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럴 때는 백 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쪽이 확실하다.

강태한은 그녀의 신유혈 부근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짚어내고, 반대편 손으로는 오른쪽 아킬레스건 부근을 짚어냈다. 그나마 혈도가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는 지점이었다.

그렇게 위치를 잡아내고.

양쪽에 자극을 주는 순간.

“끼앗?!”

항상 나긋한 목소리로만 말하던 최보람의 입에서 고음의 현악기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음 순간, 최보람은 거의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키더니, 자신의 하반신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왜 아프지?”

“뭐 이런 느낌이지.”

자매라 그런지 반응이 엇비슷하군.

그녀의 반응에 강태한은 최아람 때의 반응을 떠올리며, 머쓱한 표정으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 * *

[안쪽으로 찔러주는 페르토나··· 아, 중간에 이보르 선수가 끊어내네요. 에버튼 바로 공격으로 갑니다.]

[이거 위험합니다! 이보르 선수의 패스 컷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공격, 이거 이번 시즌 에버튼의 골 공식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영국 런던의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한참 축구경기가 이어지는 와중, 경기를 중계하고 있던 해설의 목소리가 점점 격앙되며 커져간다.

그 말대로 빠르게 몰아치는 공격!

이보르가 걷어낸 공은 바트 포스터를 통해 고드윈에게 이어지더니, 순식간에 골로 연결되었다. 골이 터지는 순간 관객석에서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에버튼, 정말로 강합니다! 남은 시간 5분에 쐐기를 박아 넣고 승리를 거머쥔 에버튼!]

[이번 경기로 4위에 올라서면서 정말, 정말 오랜만에 챔피언스 리그 후보에 들어가는 에버튼입니다. 지금 이 텐션만 유지한다면, 사실상 챔스 티켓 한 장은 에버튼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는데요!]

[이 정도면 챔스 티켓은 사실상 확보해놓은 거나 다름이 없고, 개인적으로는 더 나아가 챔스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그게 더 기대가 될 정도입니다.]

경기가 마무리되자, 얼핏 띄워주는 것처럼 들릴 정도로 과한 찬사가 에버튼FC로 쏟아졌다.

허나 그 말은 딱히 과장이 들어가지 않은 사실이었다. 이번 시즌, 에버튼이 보여준 활약은 그야말로 역대급이었으니까.

그동안 파죽지세의 기세로 승리를 거둬오더니, 이번 경기로 마침내 4위의 자리까지 올라섰다. 사실상 팀들 간의 서열이 굳어져가던 프리미어리그에서, 이건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우하하하! 챔스다, 챔스!”

“이야, 내가 에버튼이 챔스 후보에 들어가는 걸 보게 될 줄이야! 이런 날이 다 오는구나!”

“내일 지구 멸망하는 거 아니냐? 미쳤다, 진짜!”

오랜 세월동안 약팀을 응원해왔던 에버튼의 팬들에겐 그야말로 너무나도 큰 선물.

그리고 그동안 팀에서 노력해온 선수들에게도 너무나도 큰 경사라 할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자, 관중석은 물론이거니와 에버튼 선수들 사이에서도 환호성이 멈추지를 않았다.

···한편, 에버튼이 대활약을 펼치면 펼칠수록 프리미어 리그 구단들, 아니, 더 나아가 스포츠 업계에 전반적으로 퍼져가고 있는 소문이 있었으니.

“···그래서, 이게 그 물건이란 말이지?”

“예. 어렵게 구해온 겁니다, 감독님.”

“에버튼 선수들의 트레이닝 비결이라는 바로 그···”

스윽, 하고 조심스레 제품의 겉면을 쓰다듬어보는 중년의 남성. 그가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제품은, 다름이 아니라 바디케어의 신제품, 더 마이스터였다.

에버튼 선수들이 직접 외부에다 말을 한 적은 없었지만,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나가더니 이제는 공공연한 비밀처럼 되어버린 화제의 전자제품.

회사의 입장에선 딱히 영국에 수출을 한 적도, 별다른 홍보를 한 적도 없는데, 직수입을 해서까지 알아서 물건이 팔려나가고 있는, 신비로운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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