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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49화 (149/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49화 >

최아람은, 어렸을 때부터 항상 밝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해왔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얼추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울어봤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무리 징징거려봤자 원하는 건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힘든 언니를 더 힘들게 만들 뿐.

꼭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면 도움을 청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묵묵히 혼자서 해결한다. 애초에 어쩔 방법이 없는 일이라면, 순순히 포기하고 받아들인다. 그게 최아람의 방식이었다.

그랬는데.

“···흐윽.”

그녀는 쏟아지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왜 눈물이 나오는 건지는 본인 스스로도 말하기 어려웠다. 그저, 다시 두 발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람 씨.”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슬슬 울음이 멎어갈 무렵.

옆에 앉아있던 이재만이 조용히 손수건을 내밀었다. 품 안에서 꺼낸 것이지만, 마치 방금 세탁한 것처럼 깨끗한 물건이었다.

“···고마워요, 재만 씨.”

최아람은 이재만이 건넨 손수건을 얌전히 받아들고, 눈물로 범벅이 된 뺨과 손을 닦았다. 그녀는 대충 문대기만 했는데도 흥건하게 젖은 손수건을 보고, 새삼 ‘참 많이도 울었구나’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뭔가 젠틀하시네요. 손수건도 챙기고 다니고.”

“항상 준비되어있어야 하는 직업이니까요.”

최아람의 말에 빙긋 미소를 짓는 이재만.

방금 전 대화와는 별개로, 그 또한 감격에 젖어 왠지 흐뭇해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장우영 회장을 가까이에서 모신지는 이제 햇수로 대략 사 년 정도.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최아람과도 몇 차례 마주치고, 친분이 생기게 되었다.

‘···정말 잘 된 일이야.’

그렇기에 그녀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을 해왔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저 눈물의 의미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아직 눈물이 남아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흐으으응!”

허나 다음 순간,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던 최아람이 손수건에 코를 풀었다. 그 모습에 찰나, 이재만의 얼굴에 당황의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아닙니다. 원래 손수건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물건인걸요.”

그 말대로, 손수건은 이럴 때 쓰기 위해 갖고 다니는 물건이다. 딱히 아깝다든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가 아람 씨한테 선물하는 물건이기도 하고요.”

“어, 그런 거였어요?”

“네. 저는 원래 두 개씩 들고 다닙니다. 대여용 하나, 선물용 하나씩이요.”

그렇지만 다시 돌려받고 싶지는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 그가 갖고 다니는 손수건은 하나뿐이었지만, 그는 자연스러운 얼굴로 거짓말을 입에 담았다.

* * *

“아, 되게 좋았네요.”

강태한이 운전하고 있는 자동차 안.

유세아는 조수석에서 가볍게 기지개를 펴고는,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굉장히 멋진 공연이었어요.”

“그러게요.”

유세아의 말에 강태한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게 아니라 오늘은 에이원의 콘서트가 있었던 날. 콘서트는 방금 전 성황리에 끝을 맺었고, 두 사람은 공연을 보고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 성대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어서 걱정을 좀 했었는데, 오늘 그런 느낌은 전혀 없더라고요. 오히려 예전보다 음색이 좀 더 맑아진 느낌?”

“뭐···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유세아의 말에 강태한이 머쓱한 목소리로 답했다.

오늘 콘서트의 주인공인 에이원, 박시준.

그의 목소리를 되돌린 것은 강태한이었다.

물론 돌아온 목소리에 적응하고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되기까지는 박시준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그래도 괜스레 머쓱한 기분이 되는 강태한이었다.

“아, 그리고 좌석도 엄청 좋았어요.”

유세아는 방금 공연을 떠올리며 넌지시 말했다.

두 사람이 앉은 자리는 VVIP석.

VVIP석은 관중들이 몰린 부분에서 살짝 벗어나있으면서도 공연은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소위 명당이라 불리는 위치에 널찍하게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세아 씨가 좋았다니 다행이네요.”

강태한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살짝 평범한 느낌이었다. 좋은 자리인 것은 맞는데, VVIP라고 붙일 정도까지는 아닌 느낌?

VVIP라는 말에 약간 무림시절 권문세족들의 자리 같은 것을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너무 큰 걸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하실래요?”

“어떤 거요?”

“마트 들르는 거요. 피곤하시면 그냥 가고, 괜찮으시다면 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들렀다 가고.”

슬슬 목적지에 거의 다다라갈 때쯤.

강태한이 유세아에게 넌지시 물었다. 오늘은 에이원의 콘서트가 있는 날이자, 강태한의 집들이가 있는 날. 그 말에 유세아가 당연하다는 듯 즉각 답했다.

“들러야죠! 오늘이야말로 제가 요리 한 번 제대로 해드릴 테니까요.”

“···뭔가 거꾸로 된 것 같기는 한데.”

그녀의 말에 강태한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집들이를 오는데 손님이 요리를 한다니, 일단 일반적이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세아 씨가 하고 싶다면야, 뭐.”

“후후. 기대하셔도 좋아요.”

그러더니, 그녀는 조수석 아래에 내려둔 종이가방을 뒤적거렸다. 집들이 선물이 들어있다고 했었던 가방. 그녀는 거기서 묵직한 뭔가를 꺼내들었다.

“오늘 마시려고 술도 한 병 가져왔거든요.”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다름 아닌 양주케이스.

세련된 디자인의 상자에는 멋들어지게 박힌 상표명과 함께 X.O.라는 글자가 덧붙여져 있었다.

“코냑이군요.”

“주변에 술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이걸 추천해주더라고요. 맛도 부드러운 편이고, 그리고···”

“그리고?”

순간 유세아의 말문이 막혔다.

‘생각보다 도수가 높아서 금방 취한다.’ 친구의 말을 떠올린 유세아는 괜스레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비싼 값을 한데요.”

적당히 떠오르는 말로 대충 얼버무린 유세아.

딴 곳을 바라보는 그녀의 귀는 왠지 붉은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그럼 오늘은 집주인이지만 손님한테 식사 대접 좀 받아볼까요.”

그런 유세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마트 주차장을 향해 핸들을 돌리기 시작했다.

* * *

“짜잔!”

잠시 후, 강태한의 식탁 위에는 유세아가 차린 저녁 겸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막 휘황찬란한 수준까진 아니지만, 요리의 가짓수가 세 개나 되는 먹음직스러운 식탁이었다.

“처음 쓰는 주방인데 엄청 잘 만드셨네요.”

“후후, 오히려 넓고 깔끔해서 좋던데요.”

강태한의 말에 유세아는 빙긋 미소를 짓고는, 가볍게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주방 자체가 넓기도 하지만, 그릇부터 조리도구, 조미료도 정돈이 너무 잘 되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본인 집의 주방보다도 훨씬 쾌적한 수준.

이사를 온 참이라 깨끗한 걸까, 아니면 집들이 때문에 특별하게 정리를 해놓은 걸까··· 아니면 집안일도 완벽한 사람인 걸까.

만약 후자 쪽이라면, 다소 복잡한 기분이 되는 것이 유세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잔뜩 어지럽혀진 본인의 방과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뭔 일 있나요?”

“아, 아뇨?”

‘나도 방 좀 치워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강태한이 말을 걸어오자, 유세아는 제 발이라도 저린 것마냥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보다, 배고프시죠?”

그녀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는 듯, 앞에 놓인 해물탕을 덜어 강태한의 앞으로 건넸다. 칼칼한 향과 해산물들의 풍미가 함께 퍼져오는, 냄새만 맡아도 술을 찾게 만드는 요리였다.

“이건··· 술이랑 같이 마셔야겠군요.”

“아무래도 그게 좋죠!”

그러면서 마트에서 사온 소주를 여는 강태한.

그런 그의 모습에, 유세아의 입 꼬리가 저도 모르게 살짝 위로 휘었다.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어.’

유세아는 강태한과의 연애에 굉장히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허나,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는 것!

같이 캠핑도 가고, 펜션도 가고, 즉 둘이서 함께 밤을 보낸 적이 꽤 있었지만, 말 그대로 잠만 자고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분위기도 그렇고 그런 분위기였는데 말이다!

물론 강태한이 살짝 둔한 면도 있고, 그만큼 자신을 배려해준다는 생각도 들어 괜찮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슬슬 다음 스텝을 밟고 싶은 마음이다.

결국은 이런 계획까지 꾸미게 되었던 것.

강태한에게 잔을 받는 유세아는, 웃음기와 각오가 함께 서려있는 그런 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태한 씨가 술이 세보이진 않았으니까···’

그동안 함께 식사는 여러 번 했지만, 강태한이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즐기기는 하지만, 스스로 조절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렇다면 강태한의 주량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유세아는 그런 결론을 내리고 이 계획을 수립했다.

그렇다고 만취 상태로 만들 생각까진 없다.

그냥··· 그의 본심을 엿볼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유세아는 받아든 잔을 그대로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그럼 짠 한 번 할까요?”

먼저 건배를 권하는 유세아.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기에, 강태한도 흔쾌히 잔을 들고 그녀의 잔에 부딪쳤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이윽고 소주 두 병이 비워지고.

다 먹은 요리들과 빈 그릇 대신, 마른안주와 양주들이 식탁에 올라오며 자연스레 2차가 시작되었다.

그러고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태한 씨.”

“예.”

한동안 조용히 앉아있던 유세아의 말에, 강태한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취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맑은 목소리였다.

“···술 좀 세시네요.”

“그런 편이죠.”

그렇게 말하면서, 강태한은 들고 있던 양주잔을 마저 비워냈다. 얼음도 넣지 않은 스트레이트였다.

“원래는 잘 안 드셨으면서···”

“이 술이 제법 맛이 좋네요.”

그러면서 강태한은 한 번 더 잔을 채웠다.

그러자 유세아도 자기 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저도 줘요.”

“세아 씨는 그만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괜찮아요. 오늘은 마셔도 괜찮아.”

“왜요?”

“태한 씨 취한 모습 볼 거니까요···”

유세아는 팔에 턱을 괸 채로 진실을 입에 담았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제가··· 뭐라고 했죠?”

“술 한 잔 더 달라고요. 근데 그만 드세요.”

강태한은 싱긋 웃으면서 못 들은 척했다.

사실은 중간부터 그녀의 의도는 눈치 채고 있었던 강태한이다. 단지 술이랑 안주가 실제로 훌륭했고, 또 재미가 있어서 따랐을 뿐.

“시러요···”

“왜 싫어요?”

“오늘 태한 씨한테 물어볼 게 있단 말이에요···”

유세아는 접시에 담긴 땅콩 한 알을 만지작거리며 혀가 굴러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짝 불만이 섞여있는 듯한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그럼 꼭 술을 마셔야 되나? 그냥 물어보면 되죠.”

“···그런가?”

강태한의 말에 유세아가 그를 쳐다봤다.

확실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자기가 그러지 못하고 이런 계획을 짠 이유가 분명 있었겠지만 지금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태한 씨.”

그의 말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거리던 유세아가 강태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허나 그 시선은 곧 아래로 처지더니, 살짝 침울해진 목소리로 바뀌었다.

“···혹시 저, 매력이 없나요?”

“세아 씨가요?”

“예···”

유세아는 이제 아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처음엔 배려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걱정도 좀 생기고··· 연애는 처음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그 상태로 두서없이 횡설수설 늘어놓는 유세아. 강태한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태한 씨 본심이 참 궁금해졌단 말이죠··· 참는 거면 참을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고, 만약 매력이 없다고 그러면···”

말을 늘어놓던 유세아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차마 말을 맺지 못하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

하지만 앞에는 강태한의 모습이 없었다.

방금 전까지 앞에 앉아있었는데.

유세아가 주변을 돌아보려는 순간.

“···어어?”

그녀의 시선이 순간 확, 하고 높아졌다.

저도 모르게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강태한의 얼굴이 너무나도 가까이에 있었다. 어느새 다가온 강태한이 그녀를 옆으로 안아들었던 것.

“태, 태한 씨?”

“그럼, 오늘은 세아 씨 말대로 하죠.”

화들짝 놀라 강태한을 부르는 유세아.

강태한은 부름에 답하는 대신, 평소와 같은 담담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갈피를 못 잡겠는 유세아가 넌지시 물었다.

“뭐, 뭐를요?”

“참을 필요 없다고 하셨잖아요.”

강태한은 품 안의 유세아를 내려다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순간, 그와 눈을 마주친 유세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취기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홍조.

이윽고, 그녀의 고개가 천천히 위아래로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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