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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48화 (148/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48화 >

“왜··· 아프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최아람.

한동안 허리 아래로 느껴보지 못했던 고통의 감각이, 순간적이지만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말 그대로 비명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말이다.

물론 하반신 마비라고는 해도 감각이 완전히 사라졌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그냥 뭐에 눌리고 있는지 아닌지 구분하는 정도의 수준이지, 이토록 선명하고 뚜렷한 감각은 아니었다.

···헌데.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어.’

최아람은 손가락으로 눈가를 슬쩍 훔쳐냈다.

손가락 끝에 묻어나온 눈물 한 방울.

방금 전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를 때 눈가에 맺혔던 한 방울이다. 단지 그뿐이었으나, 그녀에겐 그 한 방울이 방금 일어난 일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말해주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저, 선생님.”

한동안 눈물이 묻은 손가락을 내려다보던 최아람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말로, 감각을 되살릴 수 있나요?”

“원래라면 확답을 내리기 힘든 증상이다만···”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말에, 강태한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자신감이 묻어나오는,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는 그런 미소였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시간이 꽤 걸리긴 하겠지만 다시 두 발로 설 수도 있겠지.”

너무나도 담담하게 기적을 입에 담는 목소리.

그 내용 자체는 그 무엇보다 사기처럼 느껴지는,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으나···

아직까지 남아있는 방금 전의 고통 때문일까.

아니면 이 남자의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일까.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목소리에서는 깊은 신뢰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직, 희망을 가져도 되는 건가?

처음엔 그냥 다리감각이 둔해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다음엔 그냥 일시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엔, 그래도 재활훈련을 하다보면 뭐라도 조금씩 바꿔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매번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의 기대는 무참히 꺾이고 더 큰 좌절감으로 다가왔다.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현실에 적응하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랬는데, 다시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니.

최아람은 그 말이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멍한 표정으로 강태한을 쳐다볼 뿐이었다.

“아마 다 잘 될 걸세.”

그런 그녀의 생각을 읽어낸 걸까.

강태한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방금 전과 같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용기가 되었는지, 최아람도 마음을 굳힌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침대에 엎드리는 최아람.

더 이상 두 발로 설 수도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인 이후, 그녀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낙심과 우울한 기색이 남아있었는데, 지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오히려 단단하게 굳어있는 표정.

마치 각오를 다진 듯한 모습이다.

허나, 그녀의 그런 모습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강태한의 양손이 각각 목 아래와 허리를 짚고.

짚어낸 두 손으로 거의 동시에 척추의 위아래를 자극하는 순간.

“어어얽!”

그녀의 입에서 다시 한 번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처음 느꼈던 고통이 종아리에 국한된 것이라면, 이건 척추를 따라 온몸으로 흘러들어가는 전기충격 같은 고통이었다.

“아, 그렇지.”

그 반응에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강태한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전까진 신뢰가 가는 목소리였는데, 지금은 왠지 공포스럽게 들려왔다.

“아무래도 지압을 깊숙이 넣어야하는 상황이라서 말이야. 꽤 아플 수밖에 없을 걸세.”

그동안 온몸이 들썩거리고 비명이 터져 나올 상황에서도 ‘좀 아프다’ 정도로만 말하던 강태한이, ‘꽤 아프다’라고까지 표현한 상황.

기존에 다니던 손님들이 들으면 그야말로 식은땀이 흐를 법한 말이었으나, 오늘 처음 안마를 받는 최아람으로서는 ‘이게 꽤 아픈 수준?’이라고 항의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끼으으윽···”

허나, 머릿속이 새하얀 나머지 말을 떠올릴 정도의 정신이 없다. 그녀의 입에선, 그저 죽어가는 익룡 같은 처절한 신음만 간간히 새어나올 뿐이었다.

* * *

‘그래도···’

한편, 그러거나 말거나 안마에 집중을 하는 강태한.

‘혈도 자체는 튼튼한 편이라 다행이군.’

안쪽까지 지압을 넣어 척추의 대주혈을 직접 자극시킨 그는, 그 상태로 펌프를 가동시키듯 하단전을 깨우고 생기를 활성화시키기 시작했다.

잠시 모았다가 흘려보내고, 다시 모았다가 흘려보내기를 반복하는 과정.

강줄기가 흘러가듯 자연스레 순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 생기를 적당히 모아 덩어리 채로 혈도를 순환시킨다.

그 구조상 혈도 자체에 다소 무리를 주는 방법이었으나, 최아람의 혈도 자체는 나름 질기면서 탄탄한 편이었고, 덕분에 별다른 이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흐으으, 으윽···”

물론 당사자인 최아람은 온몸에서 느껴지는 낯설면서도 강렬한 감각에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지만··· 적어도 강태한이 예상치 못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고 있는 상황.

‘흐음. 슬슬 반응이 오는가.’

중추신경은 그 이름처럼 신경계의 핵심이 되는 곳.

그리고 척추를 따라 흐르는 대주혈 또한 혈도의 기둥과도 같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 둘이 얽혀있는 상황인 만큼 직접 손을 댈 수는 없다. 못할 건 없지만, 미세한 오류에도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며, 오히려 상황을 더 키우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 대신 대주혈에 자극을 흘려보내고 활성화시키고, 얽혀있던 두 줄기가 자연스레 떨어질 수 있도록 유도한다.

비유를 들자면 엉켜있던 호스에 물을 틀어 스스로 풀어지도록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물론 딱히 신호가 강해진다고 신경에 움직임이 생기는 것은 아니니, 대주혈을 활성화시키고 확장시키는 데에 중점을 둔다.

그렇게 십여 차례를 반복했을 때.

살짝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단전의 펌프질에 맞춰 대주혈이 맥동(脈動)하면서, 얽혀있던 부분이 느슨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은 이쯤.’

어느 정도 반응이 나타나면 펌프질을 멈춰 혈도에 휴식을 주고, 그동안 안마를 통해 몸을 풀어주고, 몸에 쌓여있던 탁기들을 외부로 빼낸다.

그러고 나서는 같은 과정을 다시.

그렇게 몇 차례 반복했을까.

“흐그으윽···!”

나름 익숙해진 건지, 아니면 목에 힘이 빠진 것인지, 처음에 비해 한참 작아진 신음을 내뱉는 최아람.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강태한은 두 눈으로 분명히 보고 있었다.

침대 끝부분에 다다라있는 그녀의 발끝, 그곳에서 대주혈의 맥동에 맞춰, 발가락들이 미세하게 움찔거리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 * *

“···핫.”

최아람은 침대 위에서 불현듯 눈을 떴다.

새카만 방 안과 천장. 잘은 모르겠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침대에 누운 상태로 머리를 긁적였다.

“굉장히 기분 좋은 꿈을 꿨던 것 같은데···”

장우영 회장님이 추천해줬던 안마원.

그곳에 안마를 받으러 갔더니 안마사 선생님이 갑자기 다리의 감각을 되돌려주는··· 그런 꿈이었다.

“후후.”

다시 눈을 감고 꿈의 내용을 되짚어보던 그녀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생각해보면 생각해볼수록 수상한 내용의 꿈이었지만, 그래도 내심 계속 바라왔었던 일이라 그런가, 생각만 해도 절로 웃음이 새어나온 것이다.

“···아니, 잠깐. 진짜잖아?”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는 최아람.

당연한 말이지만, 여긴 그녀의 방이 아니었다.

이곳은 천마안마의 십 번방.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자, 꿈처럼 두리뭉술하게 느껴졌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상상 이상의 고통으로 치과에 간 어린아이마냥 비명을 질러댔던 일, 몸부림을 치고 싶었지만 몸이 거짓말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던 일. 그리고···

“···아야.”

마지막 쯤 하반신의 통각이 선명하게 돌아왔던 일.

시험 삼아 허벅지를 꼬집은 최아람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하반신이 마비된 이후로는 강한 자극을 줘야 그나마 느낌이 왔었는데, 그 때문에 힘 조절을 잘못했던 것이다.

“···진짜로 돌아왔네.”

자칫하면 멍이 들 수도 있을 정도의 아픔.

하지만, 그 이상의 감격이 밀려온다. 그녀는 잔뜩 입 꼬리가 올라간 얼굴로 허벅지를 꼬집고, 긁고, 두드리면서 야단을 떨기 시작했다.

“후후, 하하하하!”

그런 자기 꼴이 우스운 걸까, 아니면 기쁨이 터져 나온 걸까, 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트리며 더욱 거칠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아람 씨.”

“억?!”

그러던 와중에 들려온 다른 사람의 목소리.

자기가 생각해봐도 미친 사람처럼 보일 법한 모습이었기에, 최아람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재, 재만 씨?!”

“크흠, 그, 괜찮으신 거 맞나요?”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그녀를 따라 가게에 왔었던 수행원, 이재만이었다.

그는 원래 직원이 들고 오는 쟁반을 한 손에 든 채 걱정 어린 눈빛으로 최아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네, 뭐··· 기운이 넘치네요. 하하, 하하하.”

“그럼 다행이죠 뭐. 전 또 무슨 일이 생겼나 해서.”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 최아람.

이재만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미소를 짓고는, 조명등을 켜고 테이블 위에 쟁반을 올려놓았다.

“저··· 그, 언제부터 와계셨어요?”

“정확히 뭐라 말씀드려야할지는 모르겠는데··· 노크를 하고 들어오니, 옛날 빨래 두드리듯이 허벅지를 두드리고 계시더라고요.”

사실상 다 봤구나.

최아람은 체념하듯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죠?”

“문제라기보단··· 오히려 기쁜 일이죠.”

그녀는 가볍게 허벅지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다리에 감각이 돌아왔거든요.”

“아하··· 어, 진짜로요?”

“네. 그래서 좀 신이 났었다고 할까···”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이재만의 눈치를 살피는 최아람. 허나 그런 그녀의 모습과 달리, 이재만은 마치 자기 일처럼 신이 난 반응을 보였다.

“와, 진짜 잘 됐네요!”

“그, 그렇죠?”

“어떻게, 선생님이 더 따로 말씀하신 건 없어요?”

“그, 잠들기 직전이라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아, 앞으로 한 달 정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찾아오라고 하셨어요. 그러면···”

···그러면. 머지않아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거라고.

그는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더 좋아질 거래요.”

“정말 다행이네요, 아람 씨.”

기억을 떠올린 그녀는, 괜히 울컥해진 듯 살짝 촉촉해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이재만은 진심어린 축하를 건넸다.

“여기 원장님 솜씨가 기가 막힌 건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이런 것까지 해내시네요.”

“···원래 이런 쪽으로도 유명한 분이신가봐요?”

감탄이 어려 있는 이재만의 목소리.

그런 그의 반응에 최아람이 호기심이 담긴 표정으로 넌지시 물었다.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인데, 마치 예상 범주 내의 일인 것처럼 너무 쉽게 납득하는 반응이었던 것이다.

“뭐 장난 아니시죠. 예를 들면··· 아, 그러고 보니 여기서 차랑 다과를 좀 주시던데, 드시겠어요? 차 냄새가 엄청 좋던데.”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생각했는지, 이재만이 뒤늦게 가져온 차를 권했다.

다만 방이 넓은 탓에 테이블과 침대 사이에는 꽤 거리가 떨어져있는 상황. 이재만은 쟁반을 침대 위로 갖다 주려 쟁반을 집었지만.

“아, 그냥 거기 놔주세요.”

최아람은 그를 만류하고는, 몸을 일으켜 휠체어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자기가 직접 테이블로 가려는 생각이었다.

당연히 침대에서 마시는 쪽이 편하겠지만.

그럼에도 굳이 자기 몸을 움직이는 최아람이다.

그녀다운 행동이다.

이재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엇!”

휠체어의 받침대를 붙잡은 손이 순간 미끄러졌다.

이재만이 화들짝 놀라 손을 뻗었으나, 이미 늦었다.

당연하다는 듯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몸. 헌데.

“···어어?”

순간, 그녀의 오른발이 쓰러지던 그녀의 몸을 지탱했다. 비록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으나, 그 자체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덕분에 휠체어 위에 몸을 실은 최아람.

그녀는 엉거주춤하게 앉은 모습 그대로,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하하.”

그런 그녀의 입에서 새어나온 웃음.

머지않아 그녀의 뺨에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리더니, 이윽고 줄줄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 순간의 감격, 그리고 그동안 감춰왔던 감정들이 모조리 흘러나오는 것만 같은 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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