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 안마하신다-145화 (145/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45화 >

[‘황혼의 수레바퀴’ 로한 역의 황지운, 기적 같은 완치로 연습 복귀! ‘팬들에게 염려 끼쳐서 죄송하다.’]

[완전히 사라진 주연 교체 위기? ‘리허설도 성공적’ 황혼의 수레바퀴, 차질 및 변경 없이 진행 예정]

“야, 이거 도중에 엎어지는 거 아닌가했었는데.”

천마안마의 휴게실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기사를 둘러보던 황 실장. 황지운의 복귀와 관련된 기사를 본 그는, 왠지 뿌듯함이 실려 있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문제없이 제대로 공연하나보네.”

“왜요. 거기에 지인이라도 있어요?”

평소에도 기사를 읽으며 뭐라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오늘은 유독 리액션이 적극적인 느낌이다. 그 모습에 최성현이 슬쩍 말을 걸었다.

“그런 건 아니고··· 오랜만에 문화생활이나 좀 할까 해서 뮤지컬 예약을 해놨었거든.”

“엑? 실장님이 뮤지컬도 봐요?”

황지운의 말에 최성현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러자 황 실장이 스마트폰을 든 손을 쇼파 위에 내려놓으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야, 나는 뮤지컬 보면 안 되냐?”

“아니, 평소 이미지를 생각하면··· 좀 안 어울린다고 해야 하나, 아주 의외라고 해야 하나···”

“내 이미지가 어떤데?”

“그 뭐야, 그··· 운전할 때 혼자 트로트 부르고, 정체모를 노래 흥얼거리고, 막 그러시잖아요.”

뭐 그렇다고 보면 안 된다는 건 아니고.

최성현이 머쓱해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덧붙이듯이 말했다.

“···사실 나도 이번이 처음이기는 해.”

그러자 황 실장이 어색한 표정으로 쇼파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사실 뮤지컬과 거리가 멀어 보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딱히 평소에 관심을 갖는 분야도 아니었으니까.

“근데 저번에 시크릿 싱어 보는데, 황지운이가 노래 하나 기깔나게 하더만. 그래서 관심이 좀 생겼었지.”

“아, 공주 알밤맨이요? 장난 아니긴 했죠.”

시크릿 싱어는 정체를 감추고 나온 가수들이 서로 경연을 벌이는 음악예능 프로그램. 거기서 황지운은 공주 알밤맨이라는 이름으로 뮤지컬 노래들을 선보였고, 7연속 우승을 하며 대활약을 펼쳤었다.

“그거 보고 뮤지컬 예약하신 거구나.”

황 실장의 말에 최성현은 납득했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전에 황지운의 영향으로 뮤지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앞에 있는 셈이었다.

“근데 이번에 황지운 씨 사인 왜 안 받으셨어요? 가게에 안 걸고 따로 보관하고 계신건가?”

“사인? 아직 공연도 안 보고 왔는데 무슨 사인.”

사인을 받으려면 일단 만나야하지 않겠는가?

황 실장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최성현이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가게 다녀갔잖아요.”

“···어? 진짜로?”

“그 뭐야··· 저번에, 점심으로 차돌짬뽕 먹었던 날이요. 목발까지 짚고 와서 꽤 눈에 띄었었는데.”

황 실장은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좀 있었을까. 그는 뒤늦게 떠올랐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겼다.

“짬뽕을 먹은 날이면··· 혹시 치과 다녀온 날인가?”

“아, 그랬던 거 같기도?”

“맞네···”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린 황 실장.

그는 턱을 괴고 앉아,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쉬운 마음이 가득 담겨있는 한숨이었다.

“실장님. 황지운 씨 팬이에요?”

그러던 와중, 앞쪽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마침 휴게실 안으로 들어온 참이었던 강태한이었다.

“팬이라고 할 것까진 아닌데··· 좀 아쉽네.”

“못 봐서 아쉬우면 팬이죠, 뭐.”

“그런가?”

황 실장은 최성현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 모습에 강태한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사인도 받아두길 잘했네요.”

“···사인 받아뒀었어?”

“그 날 받은 건 아니고··· 어제 점심시간에 밖에서 따로 좀 만났었거든요.”

바로 전날, 감사를 전하고 싶다며 찾아왔던 황지운.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잠깐 일층의 카페에서 만났었는데, 최근 사인 액자가 늘어나지 않았던 걸 떠올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사인을 받아뒀었다.

“아마 차에 있을 거에요.”

“캬! 역시 태한 씨가 배려심이 깊다니까!”

“아, 그리고···”

강태한의 말에 엄지를 치켜세우는 황 실장.

그러는 동안 강태한은 지갑을 뒤적거리더니, 안에서 뭔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괜찮으시면, 이것도 가져가세요.”

“이게 뭔데?”

보아하니 무슨 티켓처럼 생긴 모양. 이게 뭔가, 하고 살펴보던 황 실장의 눈이 순간 동그래졌다.

“황혼의 수레바퀴··· 트, 특별석?”

누가 보더라도 특별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름!

더군다나 뮤지컬 좌석에 대해 자세히 아는 건 아니었지만, 예매를 할 때에도 VIP석까지만 나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니, 이걸 내가 받아도 되나?”

말하자면 비매품으로,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물건. 강태한을 쳐다보는 황 실장의 눈빛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 반응에 강태한은 싱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원래 여자 친구랑 같이 가려고 했었는데, 그 날 일정이 있다고 해서 그러긴 힘들 것 같더라고요.”

“그럼 뭐, 아버지라든가···”

“아버지도 쉬는 날 아니면 가게일로 바쁘시고, 그냥 부담 갖지 마세요. 저도 황지운 씨한테 선물로 받은 거니까요.”

황 실장은 머쓱한 표정으로 두어 번 머리를 긁적거리다, 손에 쥔 티켓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곤 피식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알았어. 잘 보고 올게.”

역시, 직원 복지가 장난이 아니라니까.

황 실장은 덧붙이듯이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강태한이 준 티켓을 지갑 안에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 * *

겨울의 추위도 한풀 꺾어지고.

슬슬 봄기운이 느껴진다 싶어질 무렵.

최근 천마안마에서는··· 요즘 들어 야구선수들의 방문이 부쩍 잦아지고 있는 걸 느끼고 있었다.

“하루에 최소 한두 명씩은 오는 거 같네요.”

“그럴 만도 하지 뭐.”

옆에 선 직원의 말에, 황 실장은 키보드를 두드리며 당연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봄이 되고 4월이 되면, 야구의 새로운 시즌이 열린다. 프로야구선수들에게 있어선 휴식을 마치고 본업으로 되돌아가는 시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다보니 컨디션 관리에 바짝 신경을 쓰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

다만 원래는 한하와 대성의 선수들이 주로 방문했었는데··· 하나둘씩 다른 팀 선수들도 찾아오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대다수 팀의 선수들이 꾸준히 들락거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 태식이 아니냐?”

“앗, 선배님.”

“에이, 앉아있어 그냥.”

그렇다보니, 이런 식으로 상대팀 선수끼리 서로 가게에서 마주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엉거주춤 일어나며 인사를 건네는 후배 선수, 그리고 손을 저으며 그런 그를 저지하는 선배 선수. 허나 서로 그리 친근한 사이는 아닌지, 그 뒤로 두 선수 다 침묵 속에서 어색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크흠, 흠.”

거기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선배 쪽.

그는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는, 애써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태식이 너, 여기 자주 오나보다?”

“아니 뭐, 자주 오는 건 아니고요··· 저번에 주호 형이 말해줘서 알게 됐는데, 가끔 훈련 받고 뻐근하다 싶으면 찾아오죠.”

“그렇구나··· 팀원들도 많이 다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형네 팀은 어때요? 세양 쪽 선수 분들이 자주 보이긴 하던데.”

“아, 그래?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아무래도 시즌 때만큼 자주 보는 건 아니잖아. 하하.”

실상은 양쪽 팀 선수들 모두 이미 천마코스 예약 날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장인 코스라도 받아보려고 예약문의를 돌리는 상황이었지만, 서로 눈치를 보며 굳이 사실대로 말해주지는 않는다.

이곳, 천마안마의 솜씨와 효능을 알고 있기 때문.

이미 꽤 많은 야구선수들이 오가고 있는 상황인데, 괜히 업계에 더 널리 알려지거나 서로 예약경쟁이 붙게 된다면 곤란한 상황이 될 수 있었다.

‘이미 충분히 그런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서 더 심해질 지도 모르지 않는가. 실제로 아직까지 이곳의 존재를 모르는 팀과 선수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주태식 씨?”

“아, 예.”

“4번방으로 들어가실 게요.”

그러는 사이 안내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후배 선수. 그러자, 선배 쪽이 살짝 당황과 부러움이 섞여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오늘 원장님한테 직접 받냐?”

앞 번호인 1번방부터 5번방까지는 천마코스를 받을 때만 배정되는 곳이다. 4번방으로 안내를 받는다는 것은, 그가 천마코스를 받는다는 것.

“예. 선배님은 무슨 코스로 받으시는데요?”

“나는··· 일반코스.”

그도 천마코스 예약을 해두긴 했지만, 이번 달도 아니고 다음 달에 잡혀있는 예약이다. 그는 살짝 부러움이 담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여기 다른 안마사분들 솜씨도 좋죠.”

“그렇기는··· 하지, 응.”

“그럼 좋은 시간 되십쇼, 선배님.”

인사를 건네고 복도로 걸어가는 후배의 모습.

왜일까. 마지막에 슬쩍 보였던 입 꼬리의 형태가 괜스레 마음에 걸린다. 끝 부분이 살짝 올라가있던 그 모습이 말이다.

‘시즌 개막까지 생각한다면··· 그에 맞춰서 다음 달에 받는 게 시기적으로 더 적절하지.’

그렇게 생각을 해보지만.

그래도 당장에 부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는지, 그는 못내 씁쓸한 표정으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 * *

“오늘은 시간을 내줘서 고맙네.”

“별 말씀을. 저녁을 사주시는데, 제가 더 감사하죠.”

당산동에 위치해있는 한 고기집.

그곳에서, 강태한은 불판을 사이에 두고 대청그룹의 명예회장 장우영과 마주앉아 있었다.

“사람만나는 걸 싫어하진 않습니다.”

“그런가. 다행이군.”

빙긋 웃으며 말하는 강태한의 모습에, 장우영도 마주 미소를 지었다. 왠지 얼굴이 좀 푸근해진 느낌이라고 할까. 처음 봤었던 딱딱한 인상과는 결이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건 그렇고··· 조금 의외군요.”

인사를 마친 강태한이 가게를 둘러보며 말했다.

내부가 깔끔하기는 하지만, 딱히 대단할 것까진 없어 보이는 평범한 고깃집이었다. 툭 까놓고 말해, 재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가게였다.

“이런 가게를 알고 계시다니.”

“하하. 나도 삼겹살은 꽤 좋아한다네. 뭐 더 좋은 집도 있기야 하겠지만, 여기가 자네 가게랑 가깝기도하고, 그리고···”

마침 접시에 담겨 테이블 위로 올라오는 삼겹살.

큼직하게 썰린 두툼한 고기 위로 핑크빛 윤기가 흐르는 것이, 딱 봐도 고기의 상태가 좋아보였다.

“여기 멜젓이 아주 제대로거든.”

허나 장우영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다른 쪽이었다.

멸치젓의 방언인 멜젓.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말하며, 고기와 함께 테이블에 올려 진 멜젓 소스를 불판 구석자리에 올려놓았다.

“이따가 한 번 고기랑 같이 먹어보게.”

“그렇게 말하면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네요.”

그러는 동안, 강태한은 자연스레 집게를 쥐고 불판 위에 고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불판 위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고기.

장우영은 천천히 하얀색으로 물들어가는 삼겹살을 지켜보다, 넌지시 입을 열었다.

“요즘, 우리 회사가 강 원장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전해 들었네. 얼마 전에 아들 녀석이 직접 말해주더군.”

강태한의 협력으로 완성된 안마의자, 더 마이스터.

이는 안마의자 시장을 정복하고 열풍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대청건설의 대형 프로젝트 수주 건에도 간접적으로 엄청난 기여를 했다.

“고맙네, 여러모로.”

덕분에 대청그룹은 새로운 입지를 탄탄하게 다질 수 있었고, 주가는 두 말할 것도 없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상태.

지금은 주식도 얼추 정리하고 사실상 은퇴한 상태였지만, 회사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남아있었기에 장우영은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저야 뭐, 대가를 받고 일을 맡았을 뿐인데요.”

허나 강태한은 마땅한 일을 했을 뿐이라는 듯, 고개를 살짝 저으며 담담하기 짝이 없는 반응을 보였다.

“으음. 그렇군.”

겸손이나 겉치레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반응이다. 정말 이십 대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의 모습. 그 모습에 장우영은 속으로 감탄을 삼켰다.

“그런데··· 아까 말씀하시려던 건 뭡니까?”

그러던 중, 불판의 고기를 뒤집고 있던 강태한이 넌지시 물었다.

“···음? 뭐 말인가?”

“가게에서 뭔가 말씀하려고 하셨던 거 같았는데.”

괜찮으면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물어봤던 장우영.

허나 그 말을 꺼내기 전에, 머뭇거리며 하려던 말을 삼키는 모습이 있었다. 그 부분을 짚어내자, 장우영의 얼굴에 순간 놀란 기색이 나타났다.

“···허허, 그걸 알고 있었단 말인가?”

“제가 눈치는 좀 있는 편이라.”

강태한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캐묻는 건 아니고, 단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우신 것 같아서요. 나중에 말씀하셔도 됩니다.”

“···아니, 지금 꺼내도록 하지.”

장우영은 잠시 뜸을 들이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내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운동선수가 한 명 있네. 학생 때부터 우리 재단의 후원을 받은 친구인데··· 아마 자네도 알 거야. 최아람이라고.”

최아람이라 하면 지난 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여성 역도선수다. 그 후로 시간이 꽤 지났지만, 그래도 기사에서 종종 언급되는 이름. 장우영의 말에 강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고 있죠.”

“그럼, 아람이가 크게 부상을 입고 활동을 멈춘 것도 알고 있겠군.”

강태한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지난 올림픽은 그에게 육십 년도 더 전의 일이었기에, 그는 최근에 나온 부상 관련 기사들로 그녀의 이름을 더 자주 접해왔었다.

“우리 회사 재단의 후원을 받는 선수라 이러는 건 아니네. 개인적인 친분으로 이러는 것도 아니고. 다만··· 다만, 그 아이가 안타까울 뿐이야.”

장우영은 씁쓸한 표정으로 잠시 뜸을 들이다, 강태한의 눈을 쳐다보며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다면, 그 아이를 한 번 봐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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