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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44화 (144/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44화 >

“하긴, 저라도 태한 씨랑 가까이 지내고 싶어지긴 할 거 같아요.”

그러자, 유세아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왠지 덩달아 자기도 뿌듯해하는 그런 느낌의 미소였다.

“일단 안마도 엄청 잘하지, 외모도 훤칠하면서 호감형이지, 같이 있으면 뭔가 마음도 편하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강태한의 장점들을 꼽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말에 강태한은 피식 실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세아 씨는 이미 저랑 가까이 지내고 있잖아요.”

“어···”

“아니면 더 가까이 지내자는 말씀이신가?”

“아니, 그게 아니라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요!”

강태한의 말에 유세아는 귀를 붉히며 목소리 톤을 살짝 높였다. 감정이 눈에 훤히 드러나는 듯한 반응.

“하하하.”

그 반응에 강태한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스크린에서는 볼 수 없는, 유명 여배우가 아닌 유세아로서의 모습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최면마술사 폴이라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 무대 위에는 또 다른 마술사가 올라와 마이크를 붙잡고 있었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하니 최면으로 마술을 하는 사람인 모양.

“제 마술을 위해선 도와주실 분이 좀 필요한데···”

당연하게도 최면을 보여주려면 그 상대가 필요하다. 남자는 가볍게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한 테이블을 가리키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저쪽에 앉아계신 남자 분, 잠시 나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 말입니까?”

그가 가리킨 테이블은, 다름 아닌 강태한이 앉아있던 곳. 강태한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네. 어려운 건 아니니, 잠깐만 시간을 좀 내주시죠. 여자 친구 분께도 조금만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공손한 목소리로 한 번 더 말하는 남자.

강태한은 가볍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흐음··· 뭐 못 나갈 것까지는 없는데.’

이것도 어찌 보면 쇼의 일부분이 아니겠는가. 거절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한 명이 거절을 하면 다른 사람들도 줄줄이 거절을 할 게 뻔했다.

물론 강태한이 쇼의 분위기까지 걱정해줄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굳이 흥을 깰 필요도 없는 일. 강태한은 선뜻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오, 다들 박수 한 번 부탁드립니다!”

안도의 표정을 짓는 남자와, 강태한에게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 강태한을 그 사이를 걸어 무대 위로 올라섰다.

‘···어라.’

허나 강태한이 막상 무대 위로 올라오자.

남자는 순간 당황한 기색을 얼굴에 드러냈다.

최면은 똑같은 사람이 걸어도 상대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일 분 안에 어린 시절부터 전생까지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 한편, 한참동안 공을 들여도 될까 말까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멀리서 봤을 때는 안 느껴졌는데···’

무대로 걸어오고 있는 이 남자의 경우에는, 후자다.

테이블에 앉아있을 땐 오히려 온화한 인상에 가까웠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 왠지 모를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누가 봐도 최면에 잘 안 걸릴 거 같은 사람.

허나 누굴 탓하겠는가.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신중하게 고르지 못했던 자신과 안목을 탓할 수밖에 없다.

“자, 혹시 잠깐 자기소개를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는 이 건물 20층에서 안마원을 운영하고 있는 강태한이라고 합니다.”

“오오, 사장님이셨군요!”

일단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이야기.

이는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함도 있지만, 상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는 최면의 성공률을 높이는 비결. 남자는 얼핏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강태한의 성향이나 특징들을 하나씩 집어내고 있었다.

“자, 그럼 가벼운 최면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잠시 여기를 좀 봐주시겠습니까?”

남자는 남들 몰래 마른침을 삼키고, 조심스레 품 안에서 작은 펜듈럼을 하나 꺼내들었다.

“자아, 하나, 하나, 하나, 하나.”

기다란 체인에 연결되어있는 탁한 빛의 크리스탈.

펜듈럼은 강태한의 눈높이에서 남자가 말하는 신호에 맞춰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고, 강태한의 시선도 그를 따라 좌우로 오가고 있었다.

‘처음부터 강하게 들어가야 한다.’

원래라면 차근차근 단계를 올려가는 게 맞지만, 이런 사람을 상대할 때는 반대다. 그렇게 하면 애초에 첫 스텝부터 들어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점점 몸이 편안해지다가, 졸려옵니다, 자아, 자아.”

규칙적인 박자로 들려오는 평온한 목소리.

얼추 준비가 되었다 싶었을 때, 남자는 펜듈럼을 거두고는 강태한의 눈앞에서 가볍게 짝, 하고 손뼉을 쳤다. 그리고.

“오오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웅성거리는 사람들.

무대에서는 펜듈럼을 흔들고 있던 남자가 눈을 감은 채 그대로 뒤로 쓰러져있었고, 강태한이 그의 등을 받쳐 든 채 난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 * *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

방금 전까지 최면을 받고 있었던 강태한.

허나 최면의 효과로 쓰러진 것은 강태한이 아니라, 그에게 최면을 걸고 있던 최면사였다. 쓰러지던 최면사의 등을 받쳐 든 그는 머쓱한 웃음을 흘렸다.

무림에서도 상대방의 정신에 간섭하는 술법은 존재했다. 소위 사술(邪術)이라 불리는 것들.

허나 상대방의 정신력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로 갈라지고 서로 간의 경지 차이가 심할 경우 오히려 술법을 되돌려 받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기에, 실전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리고 강태한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술들에 면역이 있어 통하지 않으며, 정신에 간섭을 시도할 경우 자동적으로 술자에게 되돌려주는 힘이 있다.

천마가 되고 나서 습득했던 마교 비급의 영향.

다만 현대에선 사술이란 개념 자체가 없으니, 사실상 쓰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반쯤 잊어먹고 있었던 개념인데···

‘이런 상황에서 반응을 할 줄이야.’

그 때문에 최면술은 강태한에게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했고, 오히려 되돌아가 상대방이 스스로 최면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강태한으로서는 그야말로 난감한 상황.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봤다.

“어떻게 된 거지? 최면사가 쓰러졌는데?”

“빙의술 같은 거 아니야?”

“헐, 대박. 그게 실제로 돼?”

관객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쇼의 연장선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다들 기대감이 바짝 올라있는 모습.

강태한은 조그맣게 한숨을 쉬고는, 미소를 지으며 관객들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것이 의도된 상황인 것처럼 보이도록 말이다.

“와아아아!”

그에 따라 환호를 보내주는 관객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입장에선 어쨌거나 신기해보이면 괜찮은 것 아니겠는가.

‘뭐 대충은··· 알 것 같군.’

그러는 동시에 강태한은 최면사의 상태를 확인했다.

등으로 슬쩍 흘려 넣은 기감. 가볍게 살펴보니, 이걸 사술이랍시고 받아쳤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기초적인 수준이었다.

등을 받쳐 든 상태에서, 반대 손으로 조심스레 목 쪽을 짚는다. 거기서 혈을 짚어 상단전에 자극을 가하고, 가수면 상태에서 정신을 끄집어 올린다.

그 직후.

“끄허억!”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 목덜미를 붙잡았다. 움직임이 너무 다급했던 나머지 그대로 넘어질 뻔했으나, 강태한이 그의 어깨를 잡아준 덕분에 무사히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남자의 모습.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두려움마저 아른거린다. 강태한은 빙긋 미소를 짓고서는, 관객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하, 아무래도 태한 씨가 제 몸에 아직 익숙하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헐··· 미쳤다.”

“진짜 빙의술인가봐!”

“최면사가 아니라 무당인데?”

우와아아아!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오는 관객들.

반면, 걱정이 가득 담긴 눈빛을 보내오는 이도 있었으니, 다름 아닌 유세아였다.

‘오래는 못하겠군.’

생각보다 재밌을 것 같다는 기분도 들었지만, 장난으로 유세아를 너무 걱정시킬 수도 없는 노릇. 강태한은 살짝 고개를 숙이고 복화술로 말을 걸었다.

“제가 박수를 치면, 빙의를 했다가 돌아온 것처럼 행동하세요.”

앞뒤 설명 없는 지시였으나, 남자 또한 수많은 무대를 경험해본 최면술사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대충 파악했는지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배려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조그만 목소리로 전하는 감사인사.

강태한은 눈짓과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 다음, 다시 관객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태한 씨가 더 놀라기 전에 다시 되돌리겠습니다. 이쪽을 한 번 보실까요?”

짝!

그리고 박수를 치는 강태한.

그러자, 남자는 괜스레 엉거주춤하는 시늉을 하더니, 다시 처음 무대에 올라왔을 때처럼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섰다.

“···최, 최면을 통한, 비, 빙의마술이었습니다!”

“와아아!”

“우와아아아!”

아직 당혹감이 남았는지 말까지 더듬으며 목소리가 어색하게 나왔지만, 다행히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도와주신 태한 씨에게 깊은 감사를 보내며··· 휴우. 아, 이건 소정의 선물입니다.”

괜스레 이마의 땀을 훔치던 남자. 그는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이, 품 안에서 작은 상자를 강태한에게 건넸다. 보아하니 기념품으로 나눠주는 펜듈럼인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저,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어쨌거나 잘 수습된 상황.

강태한은 그와 가볍게 악수를 나눈 뒤, 상자를 들고 테이블로 되돌아왔다. 그러자 유세아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저, 태한 씨. 괜찮은 거 맞죠?”

“네. 솔직히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멀쩡하네요.”

강태한은 아리송해하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연스럽게 시치미를 뗐다.

* * *

“지운아! 진짜로 왔네?”

넓은 무대와 단상이 갖춰져 있는 뮤지컬 연습실.

황지운이 그곳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최PD가 깜짝 놀라며 뜀걸음으로 다가왔다.

“제가 온다고 했잖아요.”

“그렇긴 한데··· 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최PD가 황지운의 다리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전화로 들었을 땐 그냥 평소처럼 농담을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정말로 깁스를 풀고 있었다.

“괜찮아. 의사선생님도 가볍게 돌아다니는 수준이면 상관없을 것 같다고 했고.”

“···다리가 그렇게 빨리 붙었다고?”

“의사선생님도 놀라시더라.”

최PD의 반응에 황지운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놀랄 만도 하다. 다른 게 아니라 황지운 본인도 믿기 힘든 수준의 회복속도였으니까.

천마안마에 다녀온 지 이제 사흘.

완전히 회복됐다고 하기엔 살짝 부족하지만, 깁스를 푸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볍게 뛰어다녀도 괜찮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다.

‘게다가 컨디션까지 좋으니···’

몇 주 동안 집에서 쉬었다고는 믿기 힘든 몸.

어제만 해도 몸이 근질거려서 옆 동네까지 조깅을 하고 돌아왔을 정도로, 컨디션은 그야말로 최상이라 할 수 있었다.

“···진짜 괜찮은 거지?”

“그렇다니까.”

최PD의 말에 히죽 미소를 짓는 황지운. 그러자 최PD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에이, 대역 좀 찾아보려했는데 안 되겠네.”

“뭐야. 다른 사람 찾고 있었어?”

“하하하, 장난이지, 임마.”

그러더니 장난스레 웃음을 터트리고, 이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탁탁 두드렸다.

“황지운이 맡기로 되어있었던 로한을 누가 맡으려고 하겠냐? 관객들한테 비교당할 게 뻔한데.”

“뭐··· 마땅히 할 사람이 없기는 하지.”

“띄워준다고 바로 받는 거봐. 애가 겸손이 없네.”

서로 한 번씩 헛웃음을 터트리는 두 사람.

최PD는 슬쩍 뒤쪽을 쳐다봤다. 본격적인 리허설까진 아니지만 주요 장면에서 배우들끼리 연기호흡을 맞추고 있는 중이었다.

“너, 대본은 다 외웠나?”

“당연하지.”

황지운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집에서 할 일도 없잖아. 겸사겸사 외웠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리골절로 쉬고 있는 동안 틈만 나면 대본을 들여다보며 이미지트레이닝을 해왔던 황지운이다.

이 무대에 주연으로 서고 싶다는 마음은, 다른 누구보다도 황지운 본인 스스로가 가장 컸으니까.

“그럼 내가 상대역 좀 해줄 테니까··· 이 파트로 한 번 상태 좀 볼까?”

최PD는 대본의 한 부분을 짚으면서 말했다.

런던의 항구에 막 도착한 로한에게 구걸하던 거지가, 정작 로한도 빈털털이라는 걸 알게 되고선 오히려 불평을 늘어놓는 장면.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그럼에도 타국에서 맞는 힘든 상황에서도 로한의 의지와 희망을 노래하는 넘버로 유명한 파트다.

“바로 가자고?”

“뭐, 목이라도 좀 풀래?”

“좀 그렇긴 한데··· 아냐, 그냥 하지 뭐.”

머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는 황지운.

허나 그 반응과는 달리, 구석의 소무대로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은 기대와 설렘이 담긴 것처럼 가볍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황지운 선배님, 몇 주 쉬지 않으셨나?”

“그러게. 좀 크게 다치셨다고 들었었는데.”

소무대 주변으로 천천히 모여드는 다른 배우들. 그들의 시선은 다름 아닌 황지운에게 집중되어있었다.

“확실히, PD님이 기다려보자고 하셨을만하네.”

연습실 구석에 마련된 작은 소무대에 불과했으나, 황지운은 그곳에서 황혼의 수레바퀴가 왜 그의 대표작인지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의 존재감과 무대장악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로한 역에는 지운이 밖에 없지.’

도저히 휴식기를 거친 배우라 생각하기 힘든 퍼포먼스. 그 모습에, 최PD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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