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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39화 (139/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39화 >

“네. 안마의자요. 이번에 바디케어에서 출시한 더 마이스터 말입니다.”

조금 헷갈려하는 듯한 장태현의 반응에, 마르케시는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콕 집어서 말했다. 허나 그렇다고 장태현의 당혹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이번 신제품이 반응이 참 좋기는 한데···’

더 마이스터의 인기는 그야말로 열풍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수준이다. 물량이 부족한 나머지 창고에 제품이 쌓일 틈이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허나 그렇다고 다른 그룹 총수와의 은밀한 면담에서, 그것도 국내 기업도 아니고 인도에서 온 재벌과의 대화에서 나올만한 내용은 아니지 않은가.

크흠.

장태현은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으며, 애써 당황한 기색을 감췄다.

“아무래도 저희 제품이 마음에 드신 모양이군요.”

플랫폼 건설 프로젝트만 생각하고 있었던 탓에 상당히 의외의 제안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안 좋은 일은 아니다.

어찌됐거나 마르케시가 이쪽 제품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긍정적인 일이었으니까. 그것도 먼저 수입을 제안할 정도라면 단순히 ‘마음에 든다’ 수준이 아닌 것이다.

“예. 아주 마음에 들었거든요.”

그리고 그런 장태현의 말에 마르케시는 히죽 웃으며 솔직하게 답했다.

오늘 아침, 그는 백화점에 찾아가 다른 안마의자들도 한 번씩 체험해보았다.

어쩌면 더 마이스터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나오는 안마의자들 모두가 성능이 출중한 걸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간소하게나마 시장 분석을 해보고 내린 결론은··· 그냥 더 마이스터의 성능이 압도적인 수준으로 특출나다는 것. 그리고 그만큼 상업적 가치 또한 월등하다는 것이었다.

놓치고 싶지 않은 아이템이다.

마르케시는 진지하게 그리 생각했다.

“그래서, 제가 꺼낸 제안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야 물론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장태현은 짐짓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현재 국내 수요를 따라잡기도 벅찬 상황이라서 말입니다. 게다가 인도 쪽 안마의자 시장에 관해선 제가 딱히 들어본 내용이 없어서. 약간 걱정스러운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군요.”

원래라면 중국 쪽부터 시작해서 일본, 동남아 쪽으로 차츰 넓혀가는 것이 주요 수출루트다.

안마의자 시장 자체가 대체적으로 동아시아 쪽에 국한되어있는 편이고, 그 외의 국가에는 백화점 같은 곳에 소량 납품하는 정도가 고작이었으니까.

그리고 인도 또한 그렇게 시장이 넓은 편은 아니다. 서방 쪽보다는 수요가 좀 있는 편이었지만, 달리 말하면 딱 그 정도 기대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해외 판매처가 늘어난다면 좋은 일이지만.

중국시장과 일본시장에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이 타이밍에, 벌써부터 발을 너무 넓게 펼치는 건 기회비용적으로 손해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흐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해는 됩니다.”

마르케시 또한 나름 산전수전 거쳐온 기업가.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장태현이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하지만 저도 손해가 날만한 거래는 제안하지 않습니다.”

단지 물건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라면, 개인적으로 구매를 요청했을 것이다. 굳이 수입까지 제안한 것은 이 아이템이 충분히 사업적 가치가 있다는,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인도에서 안마의자라는 기구가 상당히 생소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특이하고 새로운 것에 돈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난 부유층은 얼마든지 있으며, 이 안마의자는 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물건이었다.

십 분만 앉아있어도 뭉친 근육들이 풀어지고, 한 시간을 앉아있으면 만성피로에 절여져있던 몸에 생기가 돌아오는데, 이걸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마르케시는 자신의 안목과 판단에 상당한 확신을 갖고 있었으며, 그 확신을 바탕으로 이 제안을 건넨 것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함께 사업을 하나 진행하면서 신뢰관계를 쌓아두면, 다른 사업까지 추가로 성사시키기 편하겠죠.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은근슬쩍 떡밥을 던져놓는 마르케시.

무슨 사업을 말하는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 사업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당사자 둘은 뻔히 알 수 있었다.

엘리펀트 인더스트리에서 진행하고 있는 대형 점유 플랫폼 프로젝트 수주 건. 해당 사업을 대청건설에게 맡길 수 있다는 것.

마르케시의 말은 일시적으로 비위를 맞추려는 것도 아니었고, 단지 없는 말을 꺼내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남아있는 경쟁사들의 조건은 하나같이 얼추 비슷한 상황이었고, 향후 이어질 비즈니스 관계와 추가협상가능성을 고려해서 저울질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다른 사업이 연계가 된다면야···

아무래도 저울은 이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마다할 수가 없군요.”

마르케시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장태현.

허나 그 표정은 밝다.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면 자기가 따로 언급이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마르케시 쪽에서 직접 말을 꺼내주지 않았는가.

“현재 생산량과 차후 예정까지 고려를 해봐야겠지만··· 일단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그렇기에 장태현은 선뜻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물론 수주 건에 대해서 확정된 내용은 없다. 어쩌면 나중에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라며 오리발을 내밀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공적인 자리는 내일이고, 오늘은 사적인 자리에 불과하다. 확실하게 결정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상대 거래처 그룹의 총수와 굉장히 긍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성과라 할 수 있었다.

“하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하군요!”

그러면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천천히 걸어오는 마르케시. 장태현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갔다. 두 사람은 딱 중간에 해당되는 지점에서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서로 빙긋 미소를 짓는 두 사람.

어찌보면 안마의자가 맺어줬다고 할 수 있는, 그런 기묘한 인연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렇게 악수를 나누고 손을 떼던 도중.

마르케시는 뒤늦게 떠올렸다는 듯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것이, 방금 전까지 진지했던 모습과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혹시, 안마의자 좀 따로 구할 수 없겠습니까···?”

아침에 백화점에 찾아가 안마의자들을 둘러봤던 마르케시. 거기서 그는 인상 깊은 사실 한 가지를 또 확인했다.

“백화점에서는 팔고 싶어도 물건이 없다더군요.”

적어도 6주에서 7주, 사실상 거의 두 달가량을 기다려야한다는 이야기! 당장이라도 갖고 싶었던, 심지어 귀국하는 전용기에도 설치해서 사용하려 했던 마르케시에겐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그, 그러시다면야···”

간절함마저 느껴지는 듯한 마르케시의 눈빛.

살짝 부담스러울 정도의 그 눈빛에 장태현은 당혹감을 느끼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꼭 구해드리도록 하지요.”

“우하! 감사합니다! 시원시원하시네요, 미스터 장! 하하하!”

그러면서 그 다음에는 유쾌한 아저씨처럼 호쾌한 웃음. 순수하게 기뻐하는 그 모습에, 장태현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정 없으면 집에 있는 거라도 떼드려야겠구만···’

* * *

그로부터 며칠 뒤.

[엘리펀트 인더스트리 총수 타르빈 마르케시의 깜짝 방문? ‘수 천 억짜리 프로젝트가 달린 발걸음.’]

[때로는 변덕스러운 구단주, 때로는 냉철한 기업인. 타르빈 마르케시와 관련된 일화들과 전략적 분석.]

[오 천 억짜리 어깨동무? 사이가 부쩍 좋아 보이는 두 그룹 총수들 사이. 마르케시曰 ‘미스터 장은 아주 훌륭하고 친절한 비즈니스 파트너!’]

본래 잡혀있던 마르케시의 방문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그에 따라 엘리펀트 인더스트리와 대청그룹 간의 관계에 대한 기사들이 여럿 올라왔다.

‘잘 되어가는 모양이네.’

그 기사들을 훑어보며, 강태한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장태현 회장과 마르케시, 두 사람 모두와 친분이 있다 보니 해당 기사들이 신기하면서도 각별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태한 씨, 뭘 그렇게 흐뭇하게 보고 있어?”

“저희 가게 손님들이 나온 기사요.”

슬쩍 맞은 편에 앉은 황 실장이 넌지시 물어보자, 강태한은 스마트폰 화면을 그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까 되게 친근하게 느껴지네.”

화면에 나와 있는 건 마르케시와 장태현의 기사.

원래라면 이런 기사는 다른 세계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강태한의 말을 듣고 보니 무슨 동네 사람 이야기마냥 가깝게 느껴진다.

“뭐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더 묘한 기분이지.”

두 사람 다 가게에 찾아온 적이 있고 어찌 보면 재방문까지 한 사람들이니, 없는 말을 한 건 아니다.

“아니다. 마냥 관계없는 이야기도 아닌가.”

그러면서 황 실장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왜요. 주식이요?”

“그렇지. 내가 또 대청그룹의 열혈 주주잖아.”

지난 번, 강태한이 안마의자의 기술고문으로 참가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황 실장은 여유 있는 자금을 모두 빼서 바디케어 주식에다가 몰아넣었다.

무조건 대박에, 최소한 상한가는 친다는 생각.

당시 릴렉스홈에 밀려 한참 하한가를 치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강태한에 대한 믿음과 신뢰 하나만으로 풀매수를 때렸던 것이다.

그 결과, 불어난 돈이 적어도 투자금의 5할 이상.

소액이긴 하지만 나름 주식을 오래 해왔었는데, 그의 투자 인생에서 가장 버라이어티한 수익률이었다.

그 기억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 걸까.

황 실장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있었다.

“혹시 대청건설도 들어가셨어요?”

“아니, 그건 안 샀는데···”

하지만 지금 가장 핫한 종목은 대청건설이다.

엘리펀트 인더스트리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마르케시가 직접 방문을 하고, 장태현 회장과 친밀한 관계까지 보이자 주식시장이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는 사실상 수주를 따낼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봤는데, 이젠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되어있는 상황.

이 상당한 호재에 국내 투자자들은 물론이거니와 해외 자금들까지 몰려든 바람에, 대청건설의 주가는 한참 우상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태한 씨 말 좀 들을 걸.”

황 실장이 아쉬움이 잔뜩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게 아니라 마르케시가 가게에 찾아왔던 그 날,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았지만, 강태한이 넌지시 그런 말을 해줬던 것이다.

“···그러는 태한 씨는? 재미 좀 봤나?”

“음··· 적당히요.”

강태한은 잠시 턱을 괴며 짐짓 생각에 잠긴 시늉을 하다가, 빙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적당히라···”

대박이 났다, 돈을 긁어모았다.

황 실장에게는 그런 상투적인 말들보다도, 강태한의 적당히란 말이 더욱 묵직하게 느껴졌다.

“오늘 저녁 회식은 태한 씨가 사는 건가?”

“뭐, 그 정도야 가뿐하죠.”

슬쩍 한 번 찔러보는 황 실장.

그 말에, 강태한은 어깨를 으쓱이며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 * *

“야, 이거 차타고 내려오니까 편하네.”

슬슬 보이기 시작하는 대전 톨게이트의 간판.

그러자, 조수석에 앉아있던 최성현이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운전을 안 하면 편할 수밖에 없지.”

“그러니까 말이야.”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는 강태한. 그 말에 최성현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편하게 잘 왔다, 태한아.”

평소 강태한만큼 자주 들락거리지는 않지만, 최성현도 강태한과 같은 대전 출신이다. 이번에 집에 좀 다녀오려 한다는 말에 강태한이 흔쾌히 태워주겠다고 했던 것.

“그래? 그럼 혹시 나 좀 도와줄 수 있냐?”

“무슨 일인데?”

“잠깐 아버지 가게에 좀 들르려고 하거든.”

강태한은 하이패스로 톨게이트를 지나가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직원 중에 갑자기 펑크를 낸 사람이 있다고 해서 말이야. 가서 일손 좀 도와드릴까 하는데, 너도 잠깐 손 좀 빌려줄 수 있나 해서.”

“···그래?”

최성현은 슬쩍 시계를 쳐다봤다.

이제 곧 오전 11시가 되가는 시간.

점심시간이 코앞인 와중에 일손이 모자라다면, 가게 업무에 상당한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너희 아버지도 좀 뵐 겸, 나도 같이 도와드리지 뭐.”

강태한네 가게라면 최성현도 알고 있다.

골목길 안쪽에 위치한 소박한 규모의 가게.

요즘 한참 손님이 몰린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래도 거기 일손 도와드리는 게 그리 대수겠는가. 최성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그러면서 강태한은 핸들을 돌리기 시작했다.

최성현이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다른 길.

그의 집과도, 강태한의 집이나 가게와도 연결되지 않는 길이었다.

“왜 이쪽으로 가?”

“아버지 가게로 간다니까?”

“···그럼 저쪽 길로 갔어야지.”

“아, 이번에 가게 새로 옮겼거든.”

“···그래?”

강태한의 말에 최성현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시 등받이에 등을 기대앉았다. 왠지 모를 불안함이 엄습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러면··· 일손이 부족하실만 하네.”

가게 근처에 도착한 최성현은, 납득이 간다는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딱 봐도 예전 가게보다 훨씬 넓어 보이는 가게.

그런데도 바깥에는 열댓 명은 가뿐히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각자 손에 번호표처럼 보이는 종이를 하나씩 들고서 서성이고 있었다.

“너, 처음부터 여기 데려올 생각이었지.”

“처음부터는 아니고, 중간부터.”

문득 떠오른 듯 운전석을 흘겨보며 말하는 최성현.

그런 최성현의 반응에, 강태한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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